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근대 사법의 응보적 성격에 대하여 본문
근대 사법의 응보적 성격에 대하여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기존의 회복적 정의 관련 서적이나 논문들은 회복적 정의의 특성과 실천 방안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둔 편이었다. 형사사법을 회복적 정의와 대조되는 응보적 정의로 규정한 뒤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회복적 정의를 내세우는 식이다.
회복적 정의가 천동설 이후 나타난 지동설처럼 기존의 형사사법을 비판하면서 나타난 사법의 새로운 이론이라면 기존의 이론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하워드 제어는 실제 범죄 사례를 소개하면서 응보적 정의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분석한다. 그의 분석은 매우 예리하지만 좀 더 심층적인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사법의 역사적 발전이라든지, 형벌이론의 쟁점, 자연법론과 법실증주의의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다룬 회복적 정의 이론서는 현재 없는 형편이다.
사법의 역사 속에서 응보적 정의는 어떤 위치에 있을까? 사실상 응보적 정의는 근대 사법을 의미한다. 고대의 법체계에서는 응보보다 공동체적 화해 및 보상을 중시했다. 그러나 중세를 거치며 국가의 힘이 강해지면서 사회는 법질서에 의해 통제되는 경향이 매우 강해졌다. 통치자의 영향력이 점점 막강해지면서 범죄는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민족국가가 탄생하고 공화제가 확립되면서 ‘왕의 지배’는 ‘법의 지배’로 전환되었고 법적 권위는 더욱 강해졌다.
사법의 응보적 성격이 강해진 것은 자본주의 발달과도 관련이 깊다. 근대 이후 시장경제가 발달하면서 경제 주체들은 국가로부터 독립되길 원했다. 동시에 자본가들은 소유권을 보장받기 위해 강제력이 보장되는 강력한 실정법을 요구했다. 사회계약론이 발달한 것 역시 자본가의 소유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적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가 형벌로서 강력한 응보를 한다. 사회계약론이 새로운 질서에 대한 합리화라고 한다면 이러한 형벌 역시 합리화해줄 이론이 필요했다. 그것이 응보주의와 예방주의 같은 형벌이론들이다.
근대 사법은 응보적이다. 범죄는 추상화되어 국가의 법률을 위반한 행위로 축소되었으며, 범죄에는 형벌이 따른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는 관념이 근대사회에는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응보적 정의, 즉 처벌 중심적 사법으로 완전히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응보적 정의는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우선 말한 대로 사법은 처벌 중심적이고 국가 중심적이다. 갈등이나 분쟁, 범죄가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은 공동체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사법 기관으로 달려가며, 궁극적으로 잘못한 사람에게 처벌이 이루어지길 원한다. 국가는 사적 폭력을 금지하고 공적 제재를 독점하는데, 형벌을 부과하는 역할과 함께 진정한 피해자를 자임한다. 국가는 법률에 근거해 존재하고 법률에 따라 운영되므로 법이 곧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범죄자는 법을 위반한 것이므로 국가가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는 것이다. 이것은 처벌 중심적이고 국가 중심적인 관점에서 범죄의 개념을 전치시켰기 때문이다. 사법의 관점에서 범죄란 법을 어긴 행위이다. 처벌은 반드시 법 규정을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었고, 또 누군가는 명백히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법률에 그 사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없다면 범죄로 성립되지 않는다.
현실세계에서는 분명히 잘못된 행위가 있었고 누군가 피해를 입었다 하더라도 사법세계에서는 그것이 범죄가 될 수 없다. 따라서 국가는 개입할 수 없고 처벌할 수 없다. 이러한 부조리는 실정법 중심의 사법체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근대사회에 들어서 사법계에서는 자연법론을 폐기하고 법실증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강력한 실정법을 필요로 한 부르주아의 역할이 컸다. 이러한 흐름은 근대과학의 발전과 흐름을 같이 하는데, 데카르트에서 뉴턴까지의 기계론적 과학 사조가 법학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고전역학에서는 경험할 수 있는 현상만을 다루는 것처럼 법학에서도 법전에 있는 법률만이 진정한 법이라고 보았다. 오늘날 실증주의 과학은 낡은 패러다임이 되었지만 경제학이나 교육학, 정치학을 비롯해 법학에서는 여전히 주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법실증주의의 맹점은 실제 현실을 반영하기보다 법전에 있는 조항과 법논리만을 법적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법 절차는 현실논리와 유리되어 협소한 법적 논리로 환원된다. 이런 이유로 사법부와 검찰은 막대한 권력을 갖게 되었고 특권 의식이 형성되기 쉬운 조건이 되었다. 똑같이 범죄를 저질렀다 해도 판사와 검사 직군은 기소될 확률도 적지만 기소된다 해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뿐만 아니라 재력이 있는 자본가들은 소위 전관예우가 통하는 변호사를 대거 고용하여 법망을 피해나간다. 법꾸라지, 법비 같은 멸칭 언어가 생겨난 까닭이다.
근대사법의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응보주의든 예방주의든 상관 없이 가해자 처벌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피해자가 소외된다는 점이다. 진정한 피해자는 국가가 되면서 현실의 피해자는 주변인으로 밀려나 정당한 발언권도 얻기 힘든 처지가 된다. 정작 가해자가 중벌에 처해진다 해도 피해자의 피해는 회복되기 어렵다. 민사 소송을 한다 해도 대부분의 가해자는 경제적으로 피해자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기 어렵다. 이처럼 응보적 정의는 당사자들의 필요를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범죄 예방과 가해자 속죄도 형식 논리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1) 처벌 중심의 사법
2) 국가 중심의 사법
3) 법실증주의의 사법
이처럼 근대사법은 응보주의, 국가주의, 형식주의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근거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경험적 실재론의 문제를 담고 있다. 근대사회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문화적으로는 가치 다원주의를 지향하며, 경제적으로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지향해 왔다. 그러나 핵심적으로는 계급 모순을 은폐하고 있다. 사회계약론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평등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부의 불평등으로 인해 차별이 만연하다. 자본가들의 소유권, 거칠게 말해 이기적으로 축적한 그들의 부를 지켜주기 위해 강력한 국가주권이 강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사실상 자본주의와 국가주의는 떼래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로, 한국처럼 후발주자들은 처음에 국가의 힘이 강했지만 체제가 안정화될수록 경제권력이 압도하는 사회가 된다. 이러한 질서가 은폐되어 있고 이것을 감추기 위해 현재의 제도는 합리화될 필요가 있다. 지식인들의 중요한 역할은 응보주의와 국가주의, 형식주의를 합리화할 수 있는 이론을 생산하고 유포하여 대중이 문제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법실증주의가 주류를 차지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법논리에 빠지다보니 사법계는 현실의 대중과 괴리되어 버린 것이 오늘날 비정상적 사법의 모습이다.
실증주의가 그런 것처럼 법실증주의 역시 존재론을 인식론으로 환원시키는 우를 범했다. 경험적 사실이 전부인 것처럼 이론을 세웠지만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은 대단히 협소한 것이며, 그러한 사건이 벌어지게 된 인과적 힘, 즉 구조와 기제는 우리의 경험적 인식을 넘어서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 본질적 질문을 던질 때에 와 있다. 대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법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정 무엇인가? 존재론에 기반해 범죄를 본다면 범죄는 결코 개인들만의 사건이 아니며, 범죄자 개인의 문제로 국한될 수 없다. 범죄 사건은 범죄자 개인을 포함하여 다양한 층위를 지닌다.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층위들을 고려할 때 비로소 범죄에 대한 올바른 상을 정립할 수 있다. 모든 층위를 고려하여 범죄 사건을 바라볼 때 더욱 올바른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건을 법률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협소하게 바라볼 때 우리는 정작 범죄가 사람들 간에 벌어진 일이라는 중요한 사실을 놓칠 수 있다. 범죄는 사회적 현상이자, 한 개인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비판적 실재론은 우리에게 범죄와 사법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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