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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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서클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을 위한 조언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학생들 간의 갈등이 학교폭력으로 신고되어 해결하고자 할 때는 정식절차를 밟아야 할 뿐 아니라 학부모의 상황까지 고려해야 해서 여간 복잡하고 힘든 게 아닙니다. 갈등이 벌어진 직후에, 가능하면 갈등이 벌어지기 전에 학생들 중심으로 대화모임을 하는 게 좋습니다. 물론 일상적인 방식으로는 말이 통하지 않아 특별한 계기가 필요한 경우라면, 학교폭력으로 신고하여 정식으로 다루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가급적 학교장 종결제로 마무리지을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요.
괴롭힘이나 따돌림의 문제는 가급적 초기에 다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실에서 일상적으로 대화모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작은 싸움으로 끝날 일도 그냥 넘어가면 큰 싸움이 되니까요.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면 규칙적으로 일기 쓰기 또는 에세이 쓰기로 아이들 마음을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대화모임 자리에서도 글쓰기를 도입할 수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면 쪽지에 써서 진행자에게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큰일이 아니라면 반 전체 아이들이 함께하는 대화모임이 좋지만 심각한 사안이라면 사전 작업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가해 학생(그룹)과 피해 학생(그룹)을 따로 만나는 사전모임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대부분의 가해 학생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그저 장난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학생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회복적 정의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잘잘못을 가리기 이전에 피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해 의도가 있었는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가, 학칙에 위배되었는가 등의 질문 이전에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벨린다 홉킨스 박사님의 조언처럼 우리는 회복적 정의의 5가지 신념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첫째,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이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당사자 학생은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합니다. 둘째, 누구나 자기 생각과 감정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안전하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솔직히 말할 수 있는 것이 존중입니다. 셋째, 발생한 말과 행위에 대한 영향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쩌면 이 부분이 문제를 풀어가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를 의도하지 않은 말이나 행위였다고 해도 상대방이 괴로움을 호소하면 이에 대한 책임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나 원하는 것을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역시 존중에 해당합니다. 당사자의 진정한 필요/욕구에 기반해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다섯째, 문제를 풀어가는 주체는 당사자 자신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존엄한 존재로서 자기 삶의 주인됨을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생들과 대화모임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위기 같습니다. 편안하면서도 진지한, 공감적이면서도 원칙에 충실한 모습으로 임할 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행자가 경직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해당 학생들의 발달 특성을 잘 이해해서 그 수준에 맞춰 바라봐주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마다 잘 성장하고 싶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구가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됩니다. 과거와 현재의 일을 다루기는 하지만 반드시 미래를 염두에 두고 희망적으로 풀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학생들에게 10년 또는 20년 뒤의 자기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밝고 건실한 성인으로서의 자기 모습을 상상합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요. 그렇게 되기 위해서 지금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노력이 요구되는지 생각해보는 시간도 교육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전모임에서 피해학생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학생의 개인사, 취미, 좋아하는 것, 성격 등에 대해 가볍게 이야기 나누고, 따뜻한 공감과 함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습니다. 차근차근 벌어진 일에 대해 확인하면서 그때 들었던 감정에 대해 물어봐야 합니다. 불쾌하고 힘들었던 감정을 확인하고 공감해줘야 마음이 풀립니다. 다만 막연하게 듣지 않고 구체적인 걸 물어서 좀 더 명확하게 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들)로 인해 무엇이 가장 힘들었는지, 어떤 게 괴로운지, 생활은 어떻게 달라졌는지,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충분히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본모임에서는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어서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무얼 원하는지 등을 묻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먼저 사과에 대한 것입니다. 가급적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왜 사과받을지 생각해보게 합니다. 당사자 입장에서 최대한 원하는 방식으로 사과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그리고 재발방지와 관계설정이 뒤따릅니다. 물질적 피해가 있었다면 변상에 대해서도 물을 수 있겠지요.
가해학생이 여럿 있다면 사전모임에서 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 나누는 게 좋습니다. 서로 상황을 공유할 필요도 있고, 일관된 접근을 위해서도 개별 사전모임보다 집단 사전모임이 권장됩니다. 간혹 자기가 왜 이 자리에 나와 있는지 모르는 학생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때는 역으로 왜 나왔을지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끝까지 이해를 못하겠다고 하면 나중에 피해학생에게 확인해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가해학생(들)과도 어느 정도 편안한 분위기를 가져야겠지만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상황을 회피하기 위해 딴짓을 하거나 무책임하게 말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 진행자로서 (화내지 않고) 진지한 태도를 요청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해학생에게도 질문은 같습니다. 다만 문제해결을 위해, 피해학생 입장에서 어떻게 느꼈을지, 무엇이 힘들었을지, 어떤 사과를 받고 싶을지, 어떤 약속이 필요할지 생각해보고 답할 수 있게 합니다.
본모임은 사전모임보다 긴장감이 높습니다. 사실관계에서 합의가 안 될 수 있고,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인데 진행자로서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보다 원칙대로 절차를 제공해주는 역할임을 의식하는 게 좋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해 입장이 첨예한 경우,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은 뒤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가리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저쪽에서는 저런 이야기를 하는 걸 확인했다, 그리고 이 문제로 피해학생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데, 그 이야기를 좀 더 들었으면 한다, 이런 흐름으로 이끌어가는 게 좋습니다. 진행하다보면 의외로 가해학생으로 지목된 아이도 피해를 본 경우가 있는데, 자연스럽게 그 부분도 다루면서 잘못을 인정할 건 인정하고 사과하는 쪽으로 방향을 가져가야 합니다.
문제해결서클에서는 정식으로 합의문을 작성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사과를 할 때 어떤 일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과할 것인지를 분명히 하고, 재발방지에 대한 약속도 서로 납득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관계설정은 당장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마음을 표현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중요한 건 학생들이 이 기회에 몰랐던 것을 배우고 책임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므로 중간중간 학생들의 성숙한 발언이나 태도를 칭찬해주는 것도 필요합니다.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솔직히 자기 마음을 표현한 학생들은 분명히 무언가를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대화모임을 마칠 때 소감을 꼭 묻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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