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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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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루돌프 슈타이너는 누구인가? (6)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5. 27.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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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슈타이너 자신의 말대로라면, 그가 인지학이란 말을 쓰게 된 계기는 로베르트 침머만(Robert Zimmermann, 1824 1912)에게 있었다. 침머만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철학자로서 슈타이너는 빈 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다.

 

1882년, 침머만은 <인지학: 현실주의에 기반한 이상적 세계관에 대한 개요>를 출판했다. 여기서 그는 헤겔류의 철학자들로 대표되는 독일 이상주의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체계에 반기를 들었다. 침머만에 의하면, 그러한 이상주의 철학자들은 최고의 추상 수준에서 존재, 비존재, 현존, 모순과 같은 개념들로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이 마치 신이나 되는 양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이는 경험적 바탕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슈타이너가 이야기하듯이) “침머만은 '우리는 인간들 내부의 신이, 신 중심의 관점으로 이어지는 발언을 하도록 허락해서는 안 된다. ..... 인간의 관점에 확고하게 뿌리박아야 한다.”고 얘기했다. 이런 이유로 침머만은 그의 <인지학>을 집필하여 헤겔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신지학에 맞섰다. 

 

슈타이너는 "후에 나는 이 <인지학>이라는 책제목으로부터 이 이름을 따왔다"고 덧붙였다(그러나 정말 이름뿐인 것이, 침머만이 '인간의 관점'을 옹호하기는 했으나 그 자신이 대항하려 하는 헤겔식 신지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추상적 방법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인지학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인간의 관점'을 발견한다. 인지학은 인간의 관점에서 시작하는 정신적 행로―정신적 인식의 행로―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관점이란 무엇인가?

 

가장 넓은 의미에서 인간의 관점이란, 우리가 처한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서 지금 있는 곳으로부터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이는 너 자신을 알라는 델포이의 금언을 다시 한 번, 우리 시대에 합당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즉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것으로부터 인간의 관점은 시작된다.

 

1912년,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책을 한 권 쓰려고 했다. 그는 이 책을 끝낼 수가 없었고, 이 원고는 후에 단순히 <인지학: 미완성 유고>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세 가지의 다른 관점, 즉 인간 본성에 대한 접근법을 약술하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슈타이너는 그 첫 번째 관점으로 인간학(anthropology, 인류학)적 접근을 말한다. 이는 현재 인정되는 과학적 방법의 한계 내에서 감각을 통해 우리가 인간(인류)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을 정리한다. 여기서는 해부학, 심리학 등을 고려한다. 인간과 동물의 비슷한 점, 그리고 원주민 공동체에서 최고로 발달한 사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족들의 문화를 탐구한다. 선사시대 종족들의 유물과 유적, 기후와 지리적 여건이 인간 생활에 미친 영향도 조사한다. 예술과 종교의 비교사뿐 아니라 어문학사도 연구한다. 한마디로, 슈타이너에게 인간학은 “좁은 의미에서 거기에 속하는 것뿐 아니라 인간 형태론, 생물학 등을 포함하는, 인간에 관한 물리적 연구의 총체”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신지학의 관점이다. 슈타이너는 이 낱말의 쓰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지금 우리의 의도는 이 낱말의 선택이 적절한지 혹은 부적절한지를 조사하고자 함이 아니다. 우리는 이 단어를 단순히 인간에 관한 연구에서 인지학과 대비되는 두 번째 관점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할 것이다." 신지학은 인간이 정신적 존재라고 가정한다. 이는 인간의 영혼이 감각-지각적인 사물과 과정을 반영하고 흡수할 수 있다는 데 그치지 않고, 정신세계에서 순수하게 정신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가정한다. 정신세계에서 끌어 모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분명 지상의 삶에서 유용한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학과 신지학이 발견한 것 사이에는 필연적인 '틈새'가 존재한다. 슈타이너에 의하면 인지학은 중간 통로로서 이 틈새를 메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약 인간학이 그 지역에 관한 이해를 얻고자 이곳 저곳, 이 집 저 집을 다니는 저지대의 여행자이고, 또 신지학이 같은 지역을 놓고 언덕 꼭대기에서 얻을 수 있는 조망으로 비유할 수 있다면, 인지학은 여러 세부사항을 볼 수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는, 언덕의 비탈에서 보는 조망에 비유할 수 있다.

 

인지학은 인간을 관찰을 통해 드러나는 대로 연구하겠지만, 실제 관찰 속에서 그 물리 현상으로부터 정신적인 징후들을 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 이는 협의의 인지학이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영혼을 연구하는 정신분석학, 그리고 정신과 관계된 정신학(pneumatosophy)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로써 인지학은 신지학으로 넘어 들어간다.

 

- 루돌프 슈타이너, <인지학: 미완성 유고>(Anthroposophic Press, 1988), 77-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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