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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루돌프 슈타이너는 누구인가? (8)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7. 27. 16:30

 

 

1900-1907: 신지학의 정신적 교사

 

신지학의 흐름에 동참하면서 슈타이너는 자신의 경험적 시련을 통해 그 가르침을 급속히 통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신지학을 시험하고 변형하였다. 강연과 저서에서 슈타이너는 자신의 정신적 탐구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만을 가르쳤다. 그는 이론이 아니라 인식을 통해 자신이 받아들인 것만을 가르쳤다. 그는 실로 신지학이 이론뿐 아니라 인식의 방법이란 것을 증명하는 일을 자신의 첫 번째 임무라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적인 지식에 대한 실제 접근법의 발달과 함께 현대 과학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필요했다. 신지학 모임들은 당시 과학의 권위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슈타이너는 애니 베산트(Annie Besant)나 리드비터(C. W. Leadbeater)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지학 교사들과 달리 과학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 따라서 그는 정신적 통찰력의 정당화를 위해 과학이나 그 방법론을 도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역시 물질주의는 물질주의였고 인지학은 정신과학이었다.

 

그럼에도 슈타이너는 인지학 혹은 정신과학이 엄격하고 정직하며 현상학적이고 실험적이며 논리적이고 반복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과학적 방법론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목적과 이상으로서, 고대의 신비적 교의와 전통 문화에서 당연시하던, 과학과 예술, 종교의 합일을 제안했다. 이때 그가 말한 과학은 추상적인 기계적 물질주의식의 관습적인 과학은 분명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 과학은 사실상 궤도를 벗어났으며, 만일에 다른 방향을 잡았거나 강조점을 달리했다면 아주 다른 과학적 접근 이론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이를 바로잡고자 다른 가설들을 토대로 대안과학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자신은 동양인이 아니라 서양인이었으므로, 슈타이너는 신지학적 통찰력을 서양 비교주의와 철학 내에서 재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나아가 그는 반그리스도적 편견을 지닌 신지학에, 그리스도와 골고다의 신비의 진정한 의미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애니 베산트에게 슈타이너는 '독일 기독교 신비주의자'로 받아들여졌다.)

 

슈타이너의 목표는 결코 신지학을 무산시키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신지학이 내건 “진리보다 상위의 종교는 없다"는 좌우명에 일치하도록 그것을 완성하고자 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자신의 직접 경험으로 비추어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과 우주 진화의 중심에 있는 진리였으므로, 그는 이 진리와 다른 신지학적 진리들을 통합하는 일이 그의 임무라 생각했다. 둘째, 그는 의식이 진화한다는 사실(역시 자신의 직접 경험을 통해 실재함을 알게 된) 존중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과학적 사고로 전형화된 '의식혼'의 시대에서, 정신적 계시의 내용은 더는 침침한 신비주의로서가 아닌, 엄격하고 정직하고 현상학적이면서 논리적인 형태로 전해져야 했다.

 

그러므로 비의적(秘儀的)인 가르침의 이 첫 번째 시기는 인지학의 기반을 가장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놓아가는 기간이었다. 이를 위해 슈타이너는 이른바 '기본서들'—<어떻게 더 높은 세계를 인식하는가〉, 〈신지학〉, 그리고 〈신비학 개요〉을 저술했다. 이런 저서들은 내적 발달의 통로를 펼쳐보였고,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정신심리 구조와 진화를 설명했다. 〈자유의 철학〉과 더불어 이 책들은 인지학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이룬다. 이는 그의 업적의 외형을 완성시켰다. 내적으로는 비교(秘敎) 운동의 기초를 세우는 과제에 착수했다. 우선은 기존의 신지학협회 비교분과 내에서 교사가 되어 그 가르침들을 활용하는 것으로 이 일을 수행하였으나, 그는 차츰 그것들을 자신의 인지학적 지향에 비추어 변형시켜 나갔다. 동시에 그는 이 비교연구에 “인식상의 제식 순서” (cognitive ritual order)를 덧붙였고, 이는 프리메이슨 교의와 유사한 변형이었다. 이들 모임에서 슈타이너는 비교강의와 개인적인 정신지도를 하였다.

 

 

1907-1914: 그리스도와 기독교

 

이 시기의 특징은 기독교적 신비주의가 그 깊이를 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한 인지학적 이해를 정교하게 하는 작업은, 골고다의 신비 전에, 또 신비가 이루어지던 사이와 그 이후에 이루어진 그리스도 행위의 의미와 복음서들에 대한 집중적인 정신적 탐구를 수반하였다. 이 놀라운 연구를 따라, 인간 자연 우주 속의 정신세계가 그리스도와 협력하고 있다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계시가 드러났다.*

 

* 루돌프 슈타이너는 복음서의 모든 저자(마태, 마가, 누가, 요한)에 대하여 중요한 연속 강연을 하였다. 모두 Anthroposophic Press에서 출판되었다. '골고다 이전 그리스도의 행적에 대한 슈타이너의 단일강연 역시 같은 곳에서 출판되었다. 현 시대 그리스도 활동에 대한 그의 기본 관점은 〈에테르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재림>(The Reappearance of Christ in the Etheric, Anthroposophic Press, 198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은 직립, 언어, 사고, 양심, 경이로움, 놀라움, 기억 등과 같은 인간의 보편적 특징이 지니는 정신적 의미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이해만이 아니라, 카르마와 재육화, 죽음 뒤의 삶에 대한 깊은 탐구까지 포함하여, 인간의 관점이 심화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동시에 예술에도 새로이 초점을 맞추었는데, 우선 신비극(1910-13)을 집필 상연하였고, 이어서 인지학의 거처가 될 건물 또는 '전당'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함께그리고 신지학협회를 탈퇴함과 아울러인지학은 일반적인 문화와 문명 속으로 더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 수많은 책 가운데서도 특히 René Querido가 편집한 <재육화에 대한 서양식 접근법>(A Western Approach to Reincarnation, Anthroposophic Press, 1996)과 루돌프 슈타이너의 <개인과 인류의 정신적 지도>(Spiritual Guidance of the Individual and Humanity, Anthroposophic Press, 1993)를 참조하라.

 

 

1914-1918: 악의 인지와 극복

 

물론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 기간이다. 인지학에서는 스위스 도르나흐에 인지학의 물질적, 정신적 고향인 첫 번째 괴테아눔이 지어진 기간이기도 하다. 괴테아눔은 사실 한 해 전 1913년 9월 20일, 가랑비가 내리고 멀리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날 저녁에 공사를 착수했다. 슈타이너는 이를 기념해 시를 한 편 읊었다. 그가 낭송을 끝내자 천둥번개가 내리치고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옴,

아멘.

 

악들이 세를 떨칩니다.

 

스스로를 떼어내는

내 자신임을 증언하고

다른 이들이 있어 생겨나는

이기심의 죄악을

일용할 양식 속에서 경험하나니

그곳은 하늘의 뜻이

다스리지 않는 곳,

인류 스스로

당신의 왕국에서 떨어져

당신의 이름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오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여.

 

 

이 시이른바 "대우주적 주기도문"는 기독교 신비주의에 대한 슈타이너의 정신적인 연구에서 비롯했다. 이른바 “지식의 복음서”라 불리는 <제5 복음서>***에 대한 강연들에서 그는 젊은 예수가 야훼의 정신에서 나오는, 신비로운 예언적 영감의 목소리인 바트콜****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어떻게 깨닫게 됐는지를 이야기했다. 바트콜은 이제 인류에게 예전과 같은 영감을 가져다 줄 수 없었다. 성스러운 계시에 다다를 수 있는 능력은 사라졌다. 이를 알아차린 예수는 방랑을 시작했다. 팔레스타인을 벗어난 어딘가에서 그는 '이교도'의 성지 앞에 섰다. 예수의 나이 24세였다. 사람들은 불행과 괴로움으로 고통받았다. 성직자들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희생이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예수에게 무한한 사랑의 표출을 느낀 사람들은 그를 제단으로 내몰았다. 즉시 그의 영혼은 정신적 영역들로 전이되었다. 그는 인류의 모든 고통과 슬픔이 응축된 인간 영혼의 심연을 응시했다. 그러자 예수는 태양의 영역으로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거기서 그는 바트콜의 지혜의 목소리, 변형된 목소리를 들었다. 이때 예수가 들은 말의 의미가 바로 슈타이너가 괴테아눔의 초석에 새긴 우주의 기도문이 되었다. 슈타이너는 '자아'의 해방과 정신세계로부터의 분리를 수반하는, 악의 인식에 관한 이 기도문을 발설한 것이 “우리의 활동 과정에서 겪은 일 중 가장 숭고한 순간 중의 하나"였다고 했다.

 

*** 루돌프 슈타이너, <제5 복음서>(Rudolf Steiner Press, 2002).

 

**** 바트콜 : 하늘에서 온 소리. '하늘로부터 들린 소리'에 관해 어떤 학자들은 랍비 문학과 연관시켜 해석하려 한다. 즉, 말라기 선지자 이후 신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였던 영과 예언자가 잠잠해진 400년 동안의 침묵기에 신의 영적 소리를 반영해 전달해 주는 수단을 통틀어 히브리어로 '바트콜'이라 불렀는데, 번역하면 '소리의 딸'이란 의미이다'소리'는 하늘로부터 온 신의 음성이었고, 신이 친히 침묵을 깨뜨리고 다시 자신을 인간에게 알리는 계시이다.

 

괴테아눔의 점진적인 건설 외에도, 전쟁시기에는 악을 극복하는 일이 새로이 강조되었다. 슈타이너는 악이 가지고 있는, 서로 별개이면서도 협력 관계에 있는 두 가지 힘, 혹은 존재를 구분해냈다. 그는 이 두 세력을 루시퍼(Lucifer)와 아리만(Ahriman)이라 불렀는데, 루시퍼는 정신세계로 물러나 천국으로 돌아가라며 지상의 인류를 유혹한다. 이에 비해 아리만의 역할은 인류를 반대 방향으로물질세계, 경직된 사고, 두뇌가 만들어낸 거짓 천국에 빠지도록유혹하는 것이다. 이 두 세력은, 슈타이너가 생각하기에, 현대 문명의 모든 면에서(인지학을 포함하여) 죽음의 힘은 제외하고 삶의 외양만으로 문화를 창조하는 일에 협력했다.

 

이 죽음의 문화의 실재는, 인지학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정신적 통치자인 대천사 미카엘을 돕기 위해 탄생했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그에게 굉장한 확신으로 다가왔다.

 

비교주의자들은 미카엘이 1879년에 지배권을 장악하였으며, 그 전에 하늘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 승리한 대천사가 마침내 아리만 세력을 누르고 지상으로 쫓아버림으로써 그들은 이제 지상에서 고삐 풀린 것처럼 되었다고들 하였다.***** 미카엘을 돕는 인지학은 이들 세력을 무찔러야 했다. 이 전투는 무엇보다 “그리스도로 충만한" 인간 관점의 중도(균형)를 가는 동안 정신적인 것의 탁월함을 주장할 수 있는 인지학자들의 능력에 달려 있었다.

 

세계에 이러한 비전을 알리기 위해 슈타이너는 역사 과정 안에 있는 정신적인 신비들을 풀기 시작했다. 그는 수많은 연속 강연을 통해 이 일을 해냈다.****** 이와 동시에 슈타이너는 죽은 자들과 협력하고, 산 자와 죽은 자의 공동체를 받아들이는 일이 중요하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이에 대해 인간들은 문지방 양편에서 단일한 생명 실체를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가르쳤다.*******

 

***** 루돌프 슈타이너의 <대천사 미카엘: 그의 임무와 우리의 임무>(Anthroposophic Press, 1994) 참조.

 

****** 일례로, 루돌프 슈타이너의 <현대 역사의 징후에서 실재까지>(From Symptom to Reality in Modern History, Rudolf Steiner Press, 1972) 참조.

 

******* 루돌프 슈타이너, <연결된 채로 있기>(Anthroposophic Press, 199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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