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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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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루돌프 슈타이너는 누구인가? (5)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5. 8.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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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Anthroposophy)이란 말은 슈타이너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이상주의 철학자인 F. W. J. 셸링과 I. H. 피히테, 스위스 의사이자 전체론적 사상가 이그나츠 트록슬러를 포함하는 독일의 19세기 사상가들 중 상당수가 이 말을 썼다. 트록슬러에게 인지학은 인간 본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근본 철학을 뜻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참된 생리학과 생명기술 [자연의 작용에 대한 과학]인간의 지식과 존재, 능력과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은 인간 본성과 그에 대한 철학, 즉 인지학에 기반한다. 인지학은 이런 의미에서 히포크라테스가 '신적인 인간'이라 칭한, 이상적인 의미의 의사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자연철학이다.)"*

 

Ignaz Paul Vital Troxler, Naturlehre des menschlichen Erkennens, oder Metaphysik (Hamburg: Felix Meiner Verlag, 1985), 97쪽.

 

웨일스의 연금술사이자 신비주의자로 알려진 토머스 본(Thomas Vaughan)은 19세기의 이 '낭만주의적 인지학자들'(그 들은 종종 이렇게도 불린다)이 등장하기 한참 전인 17세기에 이미 인지학이란 말을 쓰고 있었다. 1650년 장미십자회 운동과 결부되어 중요한 문서들을 영어로 번역하던 본은 유지니어스 필라레테스(Eugenius Philalethes)라는 필명으로 <인지학적 신술(神術) : 인간의 본성과 사후 상태에 관한 소고> (Anthroposophia Theomagica : A Discourse on the Nature of Man and His State after Death)라는 짤막한 저술을 남겼다. 이 책에는 집필 목적이 "신의 지혜로 비춰본 인간 본성"을 생각해 보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 <토마스 본 작품집〉(The Works of Thomas Vaughan, New Hyde Park, N.Y. : University Books, 1968), 1-63쪽 참조.

 

연금술과 신플라톤주의의 뉘앙스를 풍기는 위와 같은 17세기 자료는 인지학이란 말이 실은 이른바 '헤르메스적 우주론'의 약칭일 뿐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이런 신비학적 전통은 특히 르네 게농(René Guénon)이 지적한 것처럼 “형이상학적이 아니라 '대우주'와 '소우주'라는 이중적 의미의 우주론적인 지식"과 관계가 있다.*** 다시 말해 헤르메티시즘일반적으로는 서양의 비교(秘敎)주의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이라는 단어는 신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 사이를 중재하는 미묘한 상태에 대한 과학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는 신학의 영역인 신학적 '제1' 원리들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 헤르메스에 대한 게농의 에세이는 <영지(靈智)의 검〉(The Sword of Gnosis), Jacob Needleman 편 (Baltimore, Md. : Penguin, 1974), 370쪽에 나와 있다.  

 

‘헤르메스적’(Hermetic)이라는 명칭은 그리스 신 헤르메스의 이름에서 나왔는데, 그는 신들의 전령이자 해석자로서 지팡이가 그의 주된 상징이다. 이런 의미에서 헤르메스는 이집트의 토트(Thoth), 로마의 머큐리(Mercury), 힌두의 부다(Budha), 그리고 게르만의 오딘(Odin), 즉 보탄(Wotan)과 어느 정도 동일하다 할 수 있다. 헤르메스보다도 세 배 더 위대하다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는 서양 신비주의 최초의 전설적인 스승으로서 땅과 달 아래, 그리고 하늘이란 세 영역의 지배자라는 뜻에서 그렇게 불린다. 이런 덜 중요한 신비우주론적이고, 따라서 파생적이기 때문에 위대한(혹은 신학적인) 신비와 대비하여 이렇게 불린다는 원시의 인간 상태―인간(Anthropos) 혹은 원형적인 인간 상태를 깨닫는 것 이외에 어떤 것도 아니다. 따라서 이것과 연결되는 정신과학은 인간(Anthropos)을 지향하므로 '인지학적'(anthroposophical)이라 생각되는 것이 당연하다.

 

인지학의 기원이 헤르메티시즘이라고 보는 또 다른 근거는 슈타이너의 성장에 괴테가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수 학자들이 주장해 왔듯이, 괴테가 가진 상상력의 원천은 정확히 헤르메스적, 연금술적인 전통과 닿아 있기 때문이 다. 예를 들어 괴테의 <초록 뱀과 아름다운 백합에 관한 동화>(Fairy Tale of the Green Snake and the Beautiful Lily)가 〈크리스티안 로젠크로이츠의 화학적 결합>(The Chemical Wedding of Christian Rosenkreutz)의 변형이며, 그가 “신비”와 같은 장미십자회의 시들을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이보다 덜 알려진 사실은, 자연과 대안과학 창조에 대한 괴테의 전반적인 접근이 헤르메스적이고 연금술적인 텍스트에 대한 깊이 있는 탐독과 변형에 기초하였다는 것이다.**** 슈타이너가 괴테를 모델로 한 이상 그 역시 이러한 전통의 일부분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인지학은 서양 비교주의 발달의 정점이라고 하겠다.

 

**** 예를 들어 R. D. Gray의 <연금술사 괴테〉(Goethe the Alchemist, Cambridge, U.K. :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2)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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