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7) 본문
인지학에 따른 발도르프 한글교육을 위하여 (7)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조기 한글교육과 한글놀이
발도르프 교육에 대한 오해 중 대표적인 것은 '배움을 놀이처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놀이가 곧 배움'이라는 식의 사고에 대해 슈타이너는 '끔찍하다'고 표현합니다. <교육과 예술·교육과 도덕>을 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옵니다.
"아이가 놀면서 배우도록 한다는 것처럼 끔찍한 일은 없습니다. 인위적으로 아이로 하여금 놀면서 배우도록 이끈다면, 그런 아이는 어른이 되어 삶을 놀이로 살게 되는 결과밖에 얻지 못합니다. 학습은 늘 재미있어야 한다는 얄팍한 말을 하는 사람은 아이의 놀이를 어른의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어른이 놀이를 할 때와 같은 내면의 상태로 아이가 놀이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른에게는 놀이가 삶에 동반되는 재미이고 장난이지만, 아이에게 놀이는 삶의 진지한 내용물입니다. 아이는 언제나 놀이를 진지하게 여기며, 그렇게 놀이를 진지하게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하는 놀이의 본질입니다." (42)
아이들은 놀이를 하고, 어른은 노동을 합니다. 슈타이너의 설명에 따르면 놀이는 의무나 책임, 억압과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이기 때문에 즐겁고 순수하게 인간적인 활동입니다. 이에 비해 노동은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무언가입니다. 그러나 어른은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노동을 해야 합니다. 이때의 노동은 밥벌이만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길이자,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입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우리는 직업을 찾게 됩니다. 노동을 의미 있게 바라보지 못하는 한 우리 시대의 사회문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이를 해방시키는 놀이의 기쁨과 평생을 속박하는" 노동 사이에서 우리는 가교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술입니다. 놀이와 노동의 대립을 해소하는 것이 예술이기에 우리의 교육은 예술이 되어야만 합니다. 소위 '발도르프 한글놀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되는 활동들이 문제인 것은 교육과 놀이의 경계를 구분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발달단계에 맞지 않게 영유아 아이들에게 조기교육의 방식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올바른 교육은 올바른 인간 이해에서 나옵니다. 발도르프 교육에 대해 '놀이와 예술 활동을 곁들인 독일식 감성교육' 정도로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단순히 아이에게 한글을 빨리 떼주되 좀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떼주고 싶다는 욕망에서 발도르프 교육을 끌어다 쓴다면 최소한 '발도르프'라는 말은 빼는 것이 진실한 태도일 것입니다.
신적이고 정신적인 인간 존재
정신세계에 머물던 존재가, 자신의 카르마에 의해 지상세계로 내려와 인간으로 태어나는 일에 대해 교육자로서 우리는 무한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고유한 개별성은 탄생 직후부터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자신의 개성에 맞게 새롭게 만들어 갑니다. 그 과정에 대해 슈타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뼈를 깎고 힘줄을 끊어 자기 몸을 세상에 맞는 형태로 만드는 것은 근본적으로 끔찍한 일이며 한없이 비극적인 일이다." 다행인 것은 정신세계의 문지방을 지키는 존재가 아이로 하여금 그런 사실을 모르게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를 신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죽음과 새로운 탄생 사이에 인간은 외적 세계에 대한 관심이나 흥미가 없습니다. 전적으로 정신적인 내면의 삶에 관심을 둘 뿐입니다. 외적 삶을 이해하려는 지식욕이나 호기심이 없습니다. 이것은 지상에 막 내려온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갈이 이전에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고, 오히려 아이에게 해가 됩니다. <발도르프 교육예술>에서 슈타이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에게 어떤 낱말을 가르치려 들면 여러분은 그 아이로 하여금 그 낱말을 배울 흥미를 완전히 몰아내게 됩니다. 지식욕이나 호기심이 교육에 도움이 되리라는 여러분의 기대는 정작 아이가 배워야 할 바로 그것을 아이에게서 사라지게 합니다. 여러분은 절대로 호기심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25)
아이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이갈이 시기부터입니다. 이갈이를 하면서 아이에게서는 호기심과 함께 주의력이 강해집니다. 온갖 질문이 쏟아집니다. 이때 우리는 이갈이와 함께 아이 안에서 깨어나는 것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결코 지성이 아닙니다. 이 시기에 깨어나는 것은 상상력(판타지)입니다. 슈타이너는 이러한 상상력이 '영혼의 모유'라고 말합니다. 문자와 숫자에 대해 배우는 것은 이갈이 이후 학교에 입학해서이고, 모든 것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때의 수업은 앞서 말한 것처럼 모든 과정에 예술의 요소가 스며들어야 합니다. 문자는 그리기와 같은 예술로 출발해야 합니다.
슈타이너는 조기교육에 대해 매우 매몰차게 비판합니다. 영유아에게 지적 학습을 도입하면서 '발도르프'라는 말을 갖다 붙이는 시도에 대해 우리는 똑같은 비판을 가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유아 현장에서 이미 많은 것을 배우고, 심지어 책도 거의 읽을 정도가 됩니다. 낱말의 철자를 따로따로 구분해서 배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대단히 지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것들이 아이들에게 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되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실제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죠. 오히려 그런 것 때문에 아이의 영혼이 망가집니다. 몸속 깊은 곳의 건강에 이르기까지 아이는 망가집니다. 유아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그런 학습 때문에 아이가 몸과 영혼 모두 허약한 사람으로 커갑니다." (32)
우리나라에서 만 6~11세 아이들의 경우 우울증 진료인원은 지난 2018년 1849명에서 2022년 3541명으로 91.5% 증가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영향도 있겠지만 점점 늘어가는 조기교육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놀고 하루 하루를 즐겁게 살아가야 할 어린이가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대체 우리 사회는 어린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인지,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어린아이를 신적이고 정신적인 존재로 보는 것은 고사하고, 어른과 똑같이 존엄한 존재로 여기지도 않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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