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코로나 팬데믹의 의미를 조명하다>를 듣고 (2) 본문
바이러스에 대한 사회적 대처는 백신이다. 백신 접종은 권유되기도 하고 강요되기도 한다. 백신은 근본적으로 외부에서 주입되는 것이다. 자연의 것으로도 만들지만 화학적인 것도 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은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 피부는 경계지만 벽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경계이다. 피부는 무엇을 들여보낼지, 막아낼지 결정한다. 백신 접종은 이러한 피부의 본성을 무시하고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가 갖고 있는 면역체계가 강요받는 것이다.
백신에 대한 발상의 근간은 기술이다. 굉장히 기계적인 발상이다. '외부에서 무얼 넣어주면 그것이 싸워줄 거야.' 이것은 질병이 걸리는 과정과 정반대이다. 질병은 우연히 걸리는 것이고 면역체계에 의해 결정된다. 백신은 인간에게 물질성을 강화한다고 슈타이너가 말했다. 이로 인해 정신으로 가는 과정이 조금 막힌다. 그 이유는 우선 우리의 경계가 무시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병에 대해 개인의 면역체계가 개별적으로 작동한다는 걸 외면하는 사고방식에 기인한다.
그런데 인간을 아리만화하는 것, 물질화하는 것에 대해 인지학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고 슈타이너는 말했다. 인지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백신을 맞아도 그리 큰 피해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독일은 현재 아동에게 접종하라고 하는 백신이 18가지나 된다. 태어나고 짧은 시간 안에 접종을 시작해야 하고, 그게 싫다면 이민을 가거나 크게 데모를 해야 할 상황이다. 슈타이너는 과격하게 저항하는 것도 올바르지 않다고 말했다. 좀 더 예술적으로, 발도르프 교육의 방식으로 저항해야 한다. 백신을 접종하되 예술적인 활동을 넓히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특별히 오이리트미를 들 수 있다. 오이리트미를 제대로 하면 에테르체에 강한 영향을 준다. 오이리트미는 움직임이 정신적 형태를 갖춘 것으로 물질화, 경화되는 현상에 대한 좋은 대응책이 될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 사회적 경향성으로 드러나는 것을 살펴보자. 백신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들의 충돌이 있었다. 굉장히 감정적인 충돌로 이어졌다. 마스크 찬성론자와 반대론자 들 사이에도 굉장히 감정적인 충돌이 있었다. 개인들의 정치적 성향 역시 후퇴하는 현상이 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어렵게 발전해온 민주주의가 약간 전체주의적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충돌이 위험한 것이다. 뭔가 길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의식혼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의 의식, 인식, 경험하는 것을 통해 자기 행위를 결정할 수 있다. 우리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것이 의식혼의 시대이다. 대책 없는 긍정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제 3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전체주의 흐름을 막아내는 길을 찾는 것이다. 내 안에서 내 자유를 찾듯 다른 사람의 자유, 순수성, 정체성을 존중해야 한다. 백신 접종도, 거부도 존중해주는 것이다. 최대한 자기 책임으로 살도록 해야 한다.
그럼에도 충돌이 일어난다면 한 발 물러나 사실 그 자체로 판단해야 한다. 내 감각, 감정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두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코로나 시대에는 그게 어렵다. 여기에는 불안이 크게 작용한다. 개인적 결정이 후퇴하면서 국가의 재량이 커졌다. 이 상황에서 내면적으로 나 자신의 판단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 후퇴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니라 누군가가 개입하고 끌어줬으면 하는 심리로 후퇴한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자기 맘대로 하려는, 국가에 반대하는 극단성도 커졌다. 중용의 길을 찾을 수 있음에도 극단적인 경향이 강화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기는 인간의 의식이 개화하고 모든 개인이 자신의 자유를 끌고 가는 시기이다. 인간의 역사에는 언제나 이러한 의식의 위기가 있었다. 의식혼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 어려워서, 다시 말해 자유를 자기 안에서 끌어내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의식 안에서 자기 실현에 대한 신뢰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도 있다. 더구나 이 시대는 아직도 굉장히 심하게 물질주의와 정신적 빈곤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사회 전반에서 적나라한 물질주의에서 빠져나오는 게 힘들어졌다. 전반적인 사회 현상이다. 우리는 아직 의식혼의 시대를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래서 전세계적 도전에 대해 의식혼에 맞는 대응 방식을 못 찾고 있다.
이 전염병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과거로 되돌아가게 하고 있다. 어느 여성 사회학자가 이런 퇴행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되도록 최대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설득하도록 하자. 같이 고통을 겪고 해결해 나가자. 적극적으로 나서고 해결책의 씨앗을 뿌리자."
발도르프 교육자로서, 인지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내면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그리고 우리 시대의 물질적 경향을 물리치고, 예술적이고 정신적인 작업에 대해 더 노력하자. 그러면 언제든 백신을 맞아도 괜찮다. 그러면 우리의 면역체계도 변화한다. 의식혼의 시대를 위한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앞서 나가야 한다.
(인사)
*
슈뢰더 교수님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양한 측면을 균형감 있게 다뤄주셨다. 개인적으로 가장 우려했던 것은 인지의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에도 극단적인 백신반대자들이 있다는 점이었는데, 중용의 길을 잘 제시해주신 듯했다. 백신에 대해 나 역시 한때 거부감을 갖고 있었지만 감정을 내려놓고 사실 그 자체에 대해 연구하면서는 관점이 바뀌었다.
어린 시절에 가벼운 전염병을 앓고 이겨내는 것이 고유한 면역체계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주류 의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들 중에는 홍역이나 볼거리 같은 치명률이 낮은 질병에도 사망할 수 있는 위험군이 있고, 그러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가급적 90% 이상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류 의학의 관점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이것은 개인이 아니라 전체를 생각하는 공중보건의 관점에서 생각할 때 더욱 타당하다.
물론 백신을 너무 과신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백신뿐 아니라 서양의학의 주류적 관점은 대단히 기계적이고 물질적이다. 질병이 생기면 그 부분의 불편함을 줄이고 증세를 없애는 데 집중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질병이 생긴 원인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근본적인 치료 방법을 찾는 일이다. 백신 접종 역시 강제적인 방식이 아닌 권유의 방식으로 갈수밖에 없다. 모두를 위해, 깨어 있는 의식으로, 자발적으로 접종을 할 수 있도록 편안한 분위기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아리만적인 경향에 대해 저항하고 균형을 잡는 방법은 우리의 내면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예술 활동을 즐겨 하며, 따뜻한 사회적 관계에 힘을 쏟는 것이리라. 우리에게는 의식혼의 교육학뿐 아니라 의식혼의 의학 또한 필요하다. 인지학은 우리가 의식혼 수준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는 학문이다.
의식혼의 시대를 가장 위협하는 것은 반지성주의가 아닐까? 의식혼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감각혼에서 지성혼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다. 지성혼의 건강한 발전 없이 의식혼으로의 도약은 불가능할 것이다. 아무려나 한국에서 인지학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매우 크다. 슈뢰더 교수님의 강의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인지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라코브 선생님의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듣고 (2) (0) | 2023.01.24 |
---|---|
크라코브 선생님의 <갈등의 원인과 해법>을 듣고 (1) (0) | 2023.01.20 |
<코로나 팬데믹의 의미를 조명하다>를 듣고 (1) (0) | 2023.01.13 |
(죽은 이와의) 동행 - 미하엘 데부스 (0) | 2023.01.04 |
1923년 괴테아눔 정기 총회 연설 - 루돌프 슈타이너 (0) | 2022.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