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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마스를 추모하며 - 마틴 콜레윈 본문

인지학

하버마스를 추모하며 - 마틴 콜레윈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6. 4. 10. 12:59

하버마스를 추모하며

 

마틴 콜레윈
2026. 3. 26.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옮김

 

 

위르겐 하버마스는 70여 년 동안 날카로운 논쟁을 통해 신생 서독 공화국을 시작으로 독일 전체에 중요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원래 언론인을 꿈꿨던 그는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학자가 되었고,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026년 3월 14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29년 6월 18일에 태어났다. 이는 그와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던 미하엘 바우어(Michael Bauer)의 사망일과도 같다. 하지만 이 날짜를 제외하면, 바우어와 하버마스는 한 가지 핵심적인 의도를 공유한다. 1927년 인지학회 총회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이사직을 사임해야 했던 미하엘 바우어는 훗날 위르겐 하버마스 철학의 핵심 요소가 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신뢰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나는 사람들의 영혼 깊은 곳에 신뢰가 없다면 의미 있는 소통은 불가능하다고 덧붙이고 싶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그 사람이 나를 이해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내 영혼의 일부가 그 사람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그것은 우리 지침의 첫 번째 항목에 명시된 바와 같이, 공동의 정신적 토대 위에 이루어진다. 한 영혼을 다른 영혼과 연결하고, 이를 통해 말로 소통할 수 있게 하는 바로 그것이, 우리 사회의 진정한 기초이다.” 하버마스는 단지 다른 표현으로 같은 말을 했을 뿐이다. 사실 의사소통은 모든 인간 사회의 기초이다. 바우어의 말이 옳다면, 인지학자들도 하버마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의 첫 번째 주요 저서는 《의사소통행위이론》이며, 그의 철학은 《의사소통 관계의 비판》이라고 더 적절하게 묘사되어 왔다.
 
초창기 하버마스는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여기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사회학자로서 그는 실제로 카를 마르크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독특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는 정신이라는 개념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고, 때때로 그것을 생산적으로 활용했던 몇 안 되는 동시대인 중 한 명이었다. 이러한 정신 개념은 그의 헤겔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버마스가 이 기념비적인 저서를 쓰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한 인터뷰에서 이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의외의 용어를 선택하며 이렇게 답했다. “저에게는 하나의 사고 동기와 근본적인 직관이 있습니다. 이 직관은 사실 개신교나 유대교 신비주의 같은 종교적 전통, 그리고 셸링에게서 비롯된 것입니다. 동기를 형성하는 사고는 자기 내적으로 붕괴된 근대성의 화해, 즉 근대성을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영역에서 가능하게 했던 구분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공존의 형태를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율성과 의존성이 조화로운 관계를 맺게 되어, 과거 지향적이고 실질적인 형태의 공동체주의가 지닌 의심스러운 본질을 내포하지 않는 공동체 안에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직관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온전한 상호주체성의 경험을 지향합니다. 이는 지금까지 역사가 만들어낸 그 어떤 의사소통 구조보다도 더 섬세한(fragiler), 상호주체적 관계의 그물망이 점점 더 정교하게 엮여가면서도, 오직 상호작용적 모델 안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자유와 의존 사이의 관계를 가능하게 합니다.”*
 

* J. Habermas, Die Neue Unübersichtlichkeit.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85, S. 202.

 
역사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의식혼의 새로운 시대를 ‘근대’라고 부른다. 하버마스가 ‘근대 프로젝트’라고 부르는 것은 그에게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미완성 상태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의 본질을 설명하며 한때 ‘걸려버린 모빌’이라는 비유를 사용한 적이 있다.* 각 부분이 다시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그것을 들어올려야 한다. 하버마스의 저작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그의 저작은 고도로 발달한 의식혼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위대함이자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 J. Habermas, Untiefen der Rationalitätskritik, in: Die neue Unübersichtlichkeit. Suhrkamp, Frankfurt am Main 1985, S. 136.

 
그의 저작은 우리의 행동과 말에 내재된 어떤 것을 의식하게 해준다. 대개 그것은 깊숙이 숨겨져 있지만, 명시적으로 살펴보면 하버마스가 후설의 현상학에서 차용한 사회학적 용어인 ‘생활세계’라고 부르는 것에서 드러난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 이론은 체계와 생활세계의 대립을 설명하고, 소위 경제-관료 체계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화’를 비판한다.
 
하버마스의 후기 철학에서 신앙과 지식의 관계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그는 스스로를 “종교적으로 무감각한 사람”이라고 칭했지만, 신앙의 내용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며, 최근에는 신앙을 자극적으로 경시하는 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신앙을 사회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간주하며, 이를 오늘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담론으로 풀어내려 노력한다. 그렇다면 온건한 자연주의적 성향을 지닌 이 위대한 민주주의 이론가는 종교와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자유와 연대적 공존, 자율적인 삶과 해방, 개인의 도덕적 양심, 인권,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싹튼 평등주의적 보편주의는 유대교의 정의 윤리와 기독교의 사랑 윤리에서 직접적으로 물려받은 것이다. 본질적으로 변함없는 이 유산은 항상 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재해석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다른 대안은 없다. 탈국가적(postnationalen) 구도가 제기한 현재의 도전에 직면해서도 우리는 여전히 이 본질에 의지하고 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포스트모던적 수사일 뿐이다.”**
 

* J. Habermas in der Festschrift , Nomos, Baden-Baden 2025.
** J. Habermas, Zeit der Übergänge. Suhrkamp, Frankfurt am Main 2001, S. 175.

 
 
마틴 콜레윈(Martin Kollewijn)
19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났다. 암스테르담에서 네덜란드어 문헌학과 철학을 공부한 후 베를린에서 철학과 언어학을 전공했다. 1987년부터 1991년까지 하이델베르크의 하르덴베르크 문화연구소에서, 1991년부터 2007년까지 베를린 인지학회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마틴 콜레윈은 철학과 지식사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으며, 현대 미술, 의식 발달, 생명윤리 문제, 신경과학 등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https://dasgoetheanum.com/aufrechter-gang/

Nachruf - Aufrechter Gang

Über siebzig Jahre lang gab Jürgen Habermas erst der jungen Bundesrepublik und dann ganz Deutschland durch scharfe Polemik Begleitschutz. Der ursprüng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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