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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라는 새로운 공동체 본문

인지학

발도르프학교라는 새로운 공동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10. 5. 10:11

발도르프학교라는 새로운 공동체

 


* 미하엘 데부스, <교사를 위한 네 번째 강연>, 2013.2.22. 참고
김훈태 2014.6.12

 



Ⅰ.
지혜
자연

Ⅱ.
도덕적 법칙 - 야훼
사회

Ⅲ.
개별적 도덕성, 자유, 책임감
자유로운 존재
-------------
개인 존재, 독신성

Ⅳ.
새로운 그룹 정신
새로운 공동체
-------------
집단사회, 사회적 기계

Ⅴ.
새로운 예루살렘
새로운 자연
-------------
글로벌화된 기계

 

루돌프 슈타이너는 <자유의 철학>에서 인류의 발달사에 관해 말하면서 인간 사회의 공동체가 어떻게 변화해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바 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온 생명이지만 자연 이상의 높은 수준이며, 만일 인간이 동물 이하로 떨어진다면 자연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서만 산다면 동물보다 못한 존재가 되는데, 그 이유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생각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사실 본능은 자연의 지혜이다. 지혜로운 본성이다. 숲속의 다람쥐나 여우, 멧새는 지혜로운 본성에 따라 자연과 갈등 없이 살아간다. 그들은 과욕을 부리지 않고 고통에 빠지지 않는다.

자연에서 빠져나온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공동체이다. 지혜로운 자연의 본성을 잃어버린 대신 공동체를 이루어, 서로를 의지하고 통제하며 살아간다. 이러한 공동체는 수많은 규범과 규율을 가지며, 공동의 도덕성을 천명한다. 그러나 도덕성이란 본래 개별적인 것이다. 자연에 도덕성이 없는 것처럼, 자연의 법칙과 같은 보편적 도덕성이란 진정한 의미에서 존재할 수 없다. 지역과 문화에 따라 도덕성은 다르고, 개별적인 상황에 따라서도 다르게 규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시 이 공동체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지만 오늘날 완벽하게 자유로운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자연으로부터 해방된 인간에게 도덕적 법칙이란 과도기적 의미에서 필요한 것이다. 자연의 본성에 따라 살 수 없는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위해선 도덕성이 필요하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인간이 아직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사는 시기를 제1단계라 한다면 공동체라는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시기를 제2단계라고 할 수 있다. 개별 인간의 발달단계로 본다면 제1단계는 첫 번째 7년주기로 이 시기에는 도덕적 법칙이 없다. 유아기의 아이들은 모방의 시기이고, 여기에는 선악이 있을 수 없다. 두 번째 7년주기에 도덕성이 오며, 이 시기 아이들에게는 아주 명확한 도덕적 법칙이 필요하다. 자연으로부터 해방됐고 사회라는 도덕적 법칙이 있는 곳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세 번째 7년주기에는 거기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이때부터 한 개인의 고유한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제1단계에서 제2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루시퍼에 의한 작용이라고 슈타이너는 설명한다. 루시퍼는 항상 분리를 시키는데, 구약성서에서는 그 사건을 ‘원죄’라고 부른다. 뱀으로 분한 루시퍼의 유혹에 의해 선악과를 따먹은 남녀는 결국 낙원에서 쫓겨난다. 관점을 바꾸어 본다면 자연으로부터 인간이 해방된 사건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제 인류는 제3단계로 넘어간 시점에 와 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자율적인 힘을 가졌고, 개인적 자유와 인간의 권리를 확장해 왔다. 세 번째 7년주기의 아이들처럼 인류는 개별적 도덕성을 갖추게 되었고, 외적 권위보다 내적 권위를 찾는다. 그리고 공동체로부터 분리되는데, 제2단계에서 제3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도 루시퍼가 작용한다.

제3단계에서는 나의 흥미가 사회적 흥미보다 앞선다. 기존의 공동체가 구성원에게 늘 개인적 관심사보다 사회적 관심사를 강조하고, 사회적인 것에 개인적인 것을 종속시키라고 말해왔다면, 이제는 모든 구성원이 개인적 관심사에 따라 살게 된다. 모두 다 자유로운 개인인 까닭이다. 이로 인해 세상에는 점점 공동체가 무너져가고 있다. 독신가구가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고, 같은 마을(혹은 아파트)에 살면서도 교류가 전혀 없는 일이 흔하다. 개별적인 관심이 공동체의 관심을 넘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다 자기 관심사가 중요한 것이다. 개별적 도덕성은 개별적 책임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개인이 책임을 다하지 않을 때 도덕성은 상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무질서와 혼란, 고독이 지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루시퍼는 인간을 분리하고 또 분리하여 독신자로 만든다. 공간적으로 모여 있다고 해도 관계 맺지 못하게 서로를 분리시키며, 자만심에 빠지도록 한다. 다음으로 작용하는 힘은 아리만으로부터 온다. 아리만은 이제 독신자들을 분류하여 번호를 매기고, 그들 각자가 무엇을 하는지 감시한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처럼 인간은 사회적 기계의 부품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컴퓨터와 TV, 스마트폰과 같은 거울을 통해서 세상을 보며, 이미 세상 모든 것은 상품이 되어버렸다. 제3단계에서 인간이 스스로 자유로워지지 못한다면 세상은 거대한 기계가 되고 만다. 제4단계에서 인류는 전체주의적이고 기계주의적 사회가 되느냐, 새로운 공동체가 되느냐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제5단계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과제이다.

우리 사회 역시 새로운 공동체로 들어서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를 가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파시즘적이고 기계적인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이다. 우리가 만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더욱 타락하고 말 것이다. 슈타이너는 인간 한명 한명이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어야만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 각자는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 자기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사람만이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내적 수련은 누구도 강제할 수 없는 자발적인 작업이어야 한다. 의식혼의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은 정신적인 초대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발도르프학교는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갈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이다. 동시에 발도르프교육 운동의 초석이 되는 유기적 사회삼원론 운동은 내적 수련을 바탕으로 한 자유로운 인간들의 공동체 운동이다. 지금 우리가 자각하고 만들어가는 모든 것이 병든 사회를 치유하기 위한 전범이 될 것이다. 정의가 무너진 사회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진리에 따른 길이다. 기성세대가 스스로 깨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의식혼의 삶을 실천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아이들은 그 어디에서도 희망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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