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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인지학은 종교인가 - 엘마르 슈뢰더 (3) 본문

인지학

인지학은 종교인가 - 엘마르 슈뢰더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10. 4. 10:32

거기에는 기존의 그리스도교라는 전통적인 종교 안에, 세계 종교 안에 들어 있는 그런 많은 내용들 혹은 단어들이 그대로 옮겨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제가 있어요. 그다음에 그 안에는 성사라는 말이 있고, 어떤 정신적인 거룩한 행위 같은 것들이 나오고, 골고타의 사건도 있고, 그다음에 또 여러 가지 음식 같은 것들도 있잖아요. 그런 건 전부 기존의 그리스도교에 이미 있었던 것이에요. 사람들한테 익숙한 겁니다. 그런데 이 그리스도인 공동체라는 것에도 똑같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이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공동 창시자이기도 합니다. 사실 발기인이기도 합니다. 직접적은 아닐지라도 슈타이너의 저작들에서 끊임없이 인지학과 종교가 완전히 같은 것 혹은 같은 성질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아닐지라도 매우 유사하다, 연결점이 많다, 라는 것을 인정할 만한 그런 언급들이 계속 나오거든요. 사실은 그렇게 얘기했어요. 예를 들어서 인지학이 일어나게 만든 인지학의 가장 심연에 흐르는 그 자극, 충동 같은 것들이 사실은 무엇이냐? 골고타의 사건이라는 그 신비였다라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이 말에서 슈타이너의 의도 같은 것을 똑바로 이해하려면 그리스도 자극 혹은 그리스도적 동기라는 게 무엇인가?’라는 걸 한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런 점들을 이해하려면 슈타이너의 이력, 정신적인 경로, 밟아온 길 같은 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우리가 독일에서 Theosophie, 영어도 마찬가지로 Theosopy라고 하잖아요. 그게 신지학인데, 즉 신에 대한 지혜 혹은 지식 같은 것들이에요. 슈타이너 자신이 유럽에서 19세기에 생겼던 신지학협회의 회원이었어요. 그리고 독일 협회 회장이 되기도 했고요.

 

그리고 이러한 신지학의 어떤 내용들을 마음에 품고 있거나 배우거나 듣고 있다가 그다음에 그중에 일부를 근간으로 한 상태에서 인지학 이야기를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슈타이너가 어떻게 얘기하냐 하면요. 이렇게 인지학과 연관지을 수 있는 이 신지학이라는 것은 새로운 어떤 종교가 아니었다라고 얘기해요. 보통 사람들이 이 신지학이라는 말을 일반적인 학문 혹은 바깥쪽에서 비과학적인 세계와 우주, 신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하잖아요. 슈타이너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종교가 아니었다라고 얘기해요.

 

그러면 새로운 종교가 아니었으면 신지학이 뭐였냐? 슈타이너가 이해하는 신지학이에요. 그건 뭐냐 하면 그 당시 시대에 현대의 세상을 이해하게 하는 우주에 대한 혹은 인간에 대한 올바른 수단 같은 것이었다, 이해의 수단이었다, 라고 얘기합니다. 말하자면 신지학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 수단 같은 것을 바탕으로 해야 종교가 오늘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 올바른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라고 슈타이너 자신이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슈타이너가 말하자면 인지학을, 일종의 종교적인 바탕 같은 것에서 뭔가 이렇게 정제해낸 것 같은, 잘 걸러서 깨끗하게 정제해낸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습니다. 슈타이너식으로 말하자면, 종교 안에 들어 있는 많은 언명, 주장, 계명, 모든 내용이 있는데 그것 안에서 뭔가 올바른 지혜 같은 것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런데 그것을 내가 나의 방법으로 혹은 심리학적인 바탕을 두고 그걸 잘 정리해내면 그것이 인지학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이 느껴져요. 지금까지의 맥락을 보면요.

 

그래서 이렇게 종교가 가지고 있는 정말 올바른, 반드시 인간이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내용들을 걸러서 오늘날의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이렇게 제공한다, 제시한다, 라는 게 슈타이너의 생각이죠. 슈타이너의 입장에서는 인지학이라는 것이 매우 현대적인, 어쩌면 가장 현대적인, 그런 근본적인 것에 대한 지혜 혹은 지식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것이 현대인들에게 혹은 현재 이 시대에 적절한 것이다, 적합한 것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적합한 정도가 아니고 현대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들의 머리를 식혀드리기 위해서 통계를 하나 보여드리겠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나라들에 중국 독일 이탈리아 이런 나라, 한국이 포함 안 돼 있습니다. 그런 나라들에서 인구의 몇 명이 얼마나 많은 부분이 종교와 연관돼 있느냐 혹은 종교를 가지고 있느냐라는 거예요. 그걸 보여주고 있는 그래프입니다. 노란색 부분은 뭐냐면 아예 무신론자, 그리고 저 숫자가 지금 제일 위에 중국에 74라고 써 있는 거는 74%가 무신론자인 거고요. 그런데 제일 아래쪽 그림 보시죠. 거기는 인도예요. 인도는 무신론자거나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거나 하는 두 가지를 다 합쳐서 2%밖에 되지 않아요.

 

 

 

그러면 한국은 어떤가요? 한국과 관련된 통계를 알아보니까 50.7%가 어떤 종류든 간에 어떤 종교에 속해 있어요. 그런데 이 50.7% 중에서, 즉 인구의 절반이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중에서 45.6%가 불교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38.7%가 개신교에 속했고요. 13%가 가톨릭 신자,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그래서 아까는 막대 그래프였는데 여기는 지금 이제 다른 형태의 그래프예요. 이 통계에서는요. 44%가 어느 종교인가에 속해 있고, 지금 56%는 종교와 관계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아까 보신 통계, 지금 저기 자료가 출처가 조금 다른 건데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종교인 중에서 저기 비율들이에요. 개신교 불교 천주교 이런 식으로요. 45%가 개신교 신자 종교인들 중에서요. 18%가 천주교 신자, 35%가 불교 신자 이렇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또 다른 형태의 종교적인 신앙 집단이 있죠. 그건 바로 무속 신앙이에요. 근데 그 무속 신앙은 좀 비율이 작습니다.

 

 

그런데 이걸 읽을 때 조금 주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점이 있습니다. 인구의 절반 정도가 종교적이거나 아니면 종교를 믿거나 어떤 특정한 종교 집단에 속해 있다, 라는 사실 말이에요. 문제는 뭐냐 하면,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건요. 어느 종교 집단에 속해 있다는 비율을 보면서 이 숫자가 그 퍼센테이지만큼 그 사람들이 종교신자니까, 라고 생각하는 데는 조금 주의가 필요해요. 예를 들어서 종교 집단에 속해 있지 않은데 종교적인 사람들이 있어요. 그렇잖아요. 왜냐하면 아주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어떤 영성적인 것을 체험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슈타이너는 굉장히 현대적인 형태의 신앙, 신앙적으로 가는 것에 굉장히 현대적인 형태야, 라고 얘기합니다.

 

말하자면 개별자가 자기 자신이 아주 개별적인, 내적인, 혼자서 결정하고 혼자서 노력하고 추구하는 그 방법 안에서 세계를 향한 혹은 이 우주 만상에 대한 그 근본을 확인하는 노력을 해서 어떤 결과들 혹은 지혜 같은 것을 얻어내려고 하는 그 과정 혹은 그런 성향 같은 것들이 그것도 사실 종교적이거든요. 종교에 관한 이런 동기 혹은 생각, 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번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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