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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용어해설집》을 읽고 본문

책소개 및 서평/발도르프교육 및 인지학

《인지학 용어해설집》을 읽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5. 14. 11:57

《인지학 용어해설집》을 읽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양평자유발도르프학교의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박규현 선생의 <인지학 용어해설집>을 꼼꼼하게 읽었다. 이 자료집은 정식으로 출판된 것은 아니고, 인지학 공부모임에서 활용하기 위해 제작된 공부자료로 보인다. 인지학포럼에서 '인간의 4구성체'를 주제로 발제를 하기도 했던 박규현 선생은 부산에서 논술 및 인문학 강사로 오래 활동하다가, 한국발도르프협동조합 초대 이사장으써 주로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강연을 해온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하늘에서 온 글, 한글>이라는 책을 공동으로 저술한 뒤 훈민정음과 인지학을 주제로 왕성한 강연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안다. 발도르프 교사코스나 인지학연수를 받지 않고 홀로 인지학 서적을 탐독하여 강의를 하고 학교를 세워 교장이 되었다고 들었다. (참고로 발도르프학교에는 교장이 없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분은 인지학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저자에 대한 소개는 <어린 왕자 - 내 안의 구도자>와 <잃어버린 신을 찾아서 - 내 안의구도자, 도마복음>의 책날개에 있는 내용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한다. "젊은 날에는 진보적 사회 운동에 열정을 가졌지만 현실 사회주의 몰락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사회 흐름에 대한 경험을 계기로 인간 실존 문제에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 서양 철학과 인문, 사회과학을 뒤쫓아 가는 공부 끝에 태생적 오리엔탈리즘에 물든 서구 시각만으로는 우리의 역사, 정서, 문화를 설명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철학의 근본 문제와 삶의 궁극적인 존재 질문'을 화두로 동양 사상을 두루 공부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서 고금을 관통하는 원리적 세계 이해와 교의가 있음을 느끼고 동서 종교를 비교, 탐구하게 되었다. 이 여정에서 동서양의 철학, 종교, 과학이 통융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인식 지평으로서 '보편 종교성'이라 할 수 있는 영역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인류 보편 가치의 현재성' 조명을 소명으로 여기게 되었다."

우선 표지 그림이 왜 두뇌인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진 두뇌가 왜 '인지학 용어해설집'의 표지 그림이어야 하는지 의아했다. 의문과 함께 물질주의적인 인상을 받았다. 책 내용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시도라 생각하지만, 학문적 정체성 혼란의 문제가 심각해 보였다. 이 부분에 대해 좀 더 논의가 진행되길 바란다. 그 동안 인지학에 대한 연구는 슈타이너의 사상을 순수하게 소개하는 형태 위주로 진행되었지, 이렇게 독자적인 해석을 적극적으로 개진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통전교육연구소의 김희동 선생과 <공부를 잘해서 도덕적 인간에 이르는 길>의 저자 이양호 선생 정도가 떠오른다. 김희동 선생은 본래 초등교사를 하다가 영국의 에머슨 칼리지에서 발도르프교육과 인지학을 공부하고, 꽃피는 학교의 교장으로서 우리 문화를 중심으로 동서양 사상, 그리고 인지학을 통합해 통전교육을 만든 것으로 안다. 이양호 선생은 지곡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하다가 독일 만하임의 발도르프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번역과 저술, 강연을 통해 새로운 교육운동을 펼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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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용어해설집>을 읽으며 서두에서부터 이해가 잘 안 된 부분은,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는 내용이었다. "번역은 직역을 기초로 적절한 의역을 부가하되 주요 용어에 대해서는 반드시 송수신어의 원어를 적시해주고 특정 용어 사용에 대한 근거를 역주에 밝혀주어야 합니다'(2-3)라고 되어 있는데, 이어서 "이 글에서는 송신어 원어 표기가 필요할 경우 영어를 기준으로 합니다. 독일어와 영어 사이 번역 문제까지 다루지 않습니다."(4)라는 일러두기가 나온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위스에서 주로 활동한 독일어 사용자로서 인지학의 모든 원전이 독일어인 상황에서 번역어인 영어를 송신어로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독일어를 영어로 1차 번역한 텍스트를 다시 한국어로 중역하여 공부하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인지학 용어를 해설하는 이 책에서 송신어의 기준을 영어로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후 주요 용어들에 대한 고찰을 모두 1차 번역된 영어로 접근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오류들이 상당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18쪽에서 '의지, 감성, 사고'를 'will, feel, think'의 번역어로 제시하는데, 'Wollen, Fühlen, Denken'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흔히 영미권에서 하듯이 'willing, feeling, thinking'이라는 번역어를 쓰고, 다시 '행하기, 느끼기, 생각하기'라고 제시하는 게 낫지 않을까. 이어지는 19쪽의 용어 해설은 논쟁적인데, 특히 '감성'에 대해 "인지학에서는 감각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지각 전체를 감성(feel)이라 지칭합니다. 따라서 이때 감성은 일상어의 감정, 정서, 오성, 이성, 도덕성을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입니다."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러한 주장은 37쪽에서 "인지학에서는 모든 감각-지각, 언어, 논리에 입각한 앎은 감성(feel), 즉 마음의 작용에 속한 것입니다. '지(知)'는 사고가 아니라 감성, 얼이 아니라 마음에 속한 일이라는 말입니다."라는 문장으로 이어지는데, 저자의 신체, 영혼, 정신(Leib, Seele, Geist) 이해가 과연 '인지학적'인지 의문스럽다. '사고=정신, 감성=영혼', 이렇게 잘못 도식화하지 않고는 주장할 수 없는 내용이다.

- 25쪽에서 'self, ego, Self'라는 용어를 제시하고, 26쪽에서 "그러나 기존 번역서들에서는 에고를 외래어처럼 사용하고 셀프를 대소문자 구별없이 '자아'라는 용어로 통일해 사용함으로써 혼란을 키워왔습니다."라고 하는데, 대체 어느 번역서에서 그렇게 사용하는지 궁금하다. 슈타이너는 주로 'Ich(나)'라는 용어를 쓰고, 국내 번역서들에서는 이를 '나' 또는 '자아'로 번역하며, 영미권에서는 문맥에 따라 'I'나 'Ego' 또는 'Self' 등으로 옮기기도 한다. 저자는 '자기(自己), 자아(自我), 주체(主體)'로 구분해서 번역해야 한다고 제법 긴 설명을 덧붙여 주장하는데, 이 역시 논쟁적이다. "널리 알려진 12감각론의 마지막 감각인 Self-sense를 자아감각이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의미상 이 감각은 촉각이 유발한 세계에 대한 분리 의식을 사고과정을 통해 재통합함으로써 얻어지는 일원적 의식 내용을 포함하므로 에고와 구별할 수 없는 '자아'라는 용어로 번역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26)라고 하는데, 자아감각의 원어는 'Ich-sinn'이다.

- 28쪽에서는 'imagination'을 'imagenation'으로, 31쪽에서는 'consciousness'를 'consicioussness'로 잘못 썼는데, 반복해서 이 오기가 나오는 까닭에 신뢰감이 떨어진다. 또 31쪽에서 "감각혼은 아스트랄이 자아체의 영향을 받아 변형된 것입니다. 감각+아스트랄+자의식=감각혼인 것이죠. (자극 정보+관념화+욕망=감정.감성 지각) 감각혼은 아스트랄과 섞여 구별되지 않게 발생합니다."라고 설명하는데, 책 전체에서 아스트랄체를 아스트랄로, 에테르체를 에테르로, 발도르프교육을 발도르프로 생략해 부르는 것도 어색하지만, 슈타이너의 <신지학>을 보면 아스트랄체는 감각체(또는 혼체)와 감각혼을 통합하여 부르는 용어라는 설명이 나온다(<신지학>, 51쪽). 바로 잡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감각+아스트랄+자의식=감각혼'이라는 도식도 생경하다. 이어서 "생애 두 번째 7년이 감각혼 발달이 주도하는 시기가 됩니다."(31)라는 표현도 기존의 인지학적 발달론과 상충된다. "이렇게 감각혼의 시기를 통과하고 오성혼이 작용하기 시작하는 3번째 7년 주기에 들어서면......"(36) 역시 마찬가지이다.

- 38쪽을 보면, 'sympathy와 antipathy'를 '동감(同感)과 반감(反感)'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sympathy'의 번역어로 '동감'이 더 적절하다는 주장은 논의해볼 만하지만, 39쪽에서 "내 신을 사랑하는 것이 동감이듯 그로 인해 다른 신을 혐오하는 것도 동감입니다. 이 대목이 중요합니다. '혐오'조차 그것이 감정 구속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동감입니다."라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 혐오는 반감이 의식의 표면에 드러날 때 나타나는 대표적 감정이기 때문이다. '반감'에 대해 '거리두기'가 원래의 뜻(38)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좀 더 정확히 보자면 반감은 밀어내어 분리되려는 힘이고 그래서 거리를 만들 수 있다. "동감과 반감은 얼마나 감성적인지 이성적인지, 자의적인지 보편적인지에 의해 구별되는 것이지 좋고 싫고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부에서 이를 '호감'으로 번역하는 것은 완전한 잘못입니다."(39)라고 하는데, 'Sympathie'를 호감으로 번역하는 이유는 '끌어당겨 다른 것과 융합하려는' 이 힘이 '좋아하는 마음'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융합감(融合感)으로 번역한다. (반감은 이척감(離斥感)으로 옮기기로 최근에 결정되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는 좀 더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러나 이 두 힘은 우리 영혼의 양극적 특성이자, 의지와 사고로 나아가는 감정의 양측면이기도 하다(<신지학>, 88쪽).

- 40쪽에 <Memory/ Imagination, Mental picture/sense picture, 표상/형상>이라는 소제목이 나오는데, 아마 'Vorstellung과 Bild'를 뜻하는 듯하다. 왜 'Memory'가 '표상'이 되는지는 모르겠다. 영어본 <일반인간학>을 보면 'Vorstellung, Bild'를 'Mental picture, Image'로 번역해 놓았다. "제목의 원어에 제시된 것처럼 인지학의 표상/ 형상은 '정신적 상/ 감각적 상'의 대비입니다."(40) 우선, 제시된 것은 원어가 아니라 영어로 옮겨진 번역어이고, 그 뒤에 나오는 설명도 부정확해 보인다. "이때 '정신적'이란 말의 실제 의미는 memory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인데, 출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유아의 '기억'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슈타이너는 이 기억이 전생의 것이라고 봅니다."라는 설명은 표상이란 죽음과 태어남 사이에 겪은 정신세계의 체험이 반영되는 것이라는 슈타이너의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또 "<보편적 앎>에서는 영어의 symbol, idea, representation'을 모두 표상으로, image, picture를 모두 형상으로 번역한 곳이 많습니다. ...... 좀더 발전된 번역어 정리가 시급한 실정입니다."(41)라고 하였는데, 이런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반드시 독일어 원전을 봐야 하고, 이해가 안 되면 경험이 풍부한 외국 교수들과 교류를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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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문제의식은 분명하다. 발도르프교육이 한국에서 양적 성장은 했지만 교사들이 인지학을 충분히 체화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기 번역 용어 선택의 혼선"에 의해 기초 개념들이 명확히 이해되지 않았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발도르프교육이 주체적으로 소화되고 현지화되느냐 여부의 첫 발이 개념 이해의 정확성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1) 그래서 이 책은 더욱 철저히 검증되어야 한다. 저자는 스스로 인지학을 충분히 체화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자가 이미 체화한 '동양사상' 또는 '인류보편사상'에 인지학을 끼워맞추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보편사상'이라는 미명 아래 공통점에 집중하다보면 인지학 그 자체의 특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

5쪽부터 본격적인 용어 해설에 들어가면서 "인지학은 하나의 부분 이론이 아니고 세계관입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인지학을 정신세계에 대한 과학적 탐구라고 하는 것이 더 온전한 규정이 아닐까한다. 인지학을 단지 '세계관(Weltanschauung)'이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철학적 관점으로 국한하는 것이고, 물질세계와 정신세계를 실제로 체험한 뒤에 그 원리를 탐구하는 과학적 방식이 아닌, 세계관이라는 이론적 도식을 구체적인 현상들에 적용하려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스럽지만 이런 경향성은 자료집 전체에서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슈타이너는 첫 번째 교사교육의 개회사에서 발도르프 학교는 결코 세계관 학교가 아님을 강조한다.(<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 26쪽)

간혹 반짝이는 통찰이 눈에 띄기도 했다. "영감적 인식은 이 태초의 말씀(생명력)을 들을 수 있는 영적 의식 상태입니다."(31)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너무 많은 오류와 독선, 그리고 아마추어리즘이 엿보였다. 인지학의 풍부한 내용이 지나치게 도식화 및 단순화되었고, 근거로 다루는 텍스트 자체가 너무 부족하다. 음양오행, 주역 등과 연결하는 시도 역시 신선하긴 하지만 대체로 과도하고 단정적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10쪽의 다음과 같은 문장들 ; "슈타이너는 [보편인간학](국내에는 일반인간학 혹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 앎으로 번역되었으나 이는 오류입니다) ......", "제도권 학계에서 아카샤와 공을 다른 실재로 보는 입장이 만연하고 발도르프계에서도 이런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고 있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오류입니다.", "위에 제시된 태극-음양-삼재의 흐름은 모든 '영원의 철학'이라 불리는 인류의 지혜 전통에 공통됩니다." 등.

인지학 용어들을 해설한다면 우선 인지학이라는 사상을 창시한 루돌프 슈타이너의 수많은 원전을 토대로 (문헌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객관적이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아직 초감각적 기관을 계발하지 못한 상태라서 그런지, 자료집 전반에 나오는 동서양 사상의 거침없는 '통융합'과 명쾌한 설명을 흔쾌히 납득하지 못하겠다. 저자 역시 슈타이너가 말한 것처럼("나는 스스로 체험하고 인식한 것만을 말했다. 특히 이런 분야의 글은 자신의 체험만이 표현 대상이 되어야 한다.", <신지학>, 7쪽) 스스로 체험하고 인식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다만 여러 주장과 인용에 따라야 할 주석과 참고문헌이 없는 것은 매우 의아했다. "번역어로만 분별할 수 없는 뜻 차이는 반드시 역주를 달아 밝혀주어야"(3) 한다고 서두에 밝힌 입장과는 달라보인다.

하나 더 짚고 싶은 것은 이 자료집이 원텍스트로 삼은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앎>(최혜경 번역, 밝은누리. 이 책이 나오기 전에는 일본인 인지학자 타카하시 이와오의 일어본을 중역한 <일반인간학>이 유일한 한국어 텍스트였다.)의 영어 제목이 <General Anthroposophy>라고 하는데(15), 실제로는 <Study of Man : General Education Course>이다. (원제는 <Allgemeine Menschenkunde als Grundlage der Pädagogik>) 아무리 찾아보아도 <General Anthroposophy>라는 책은 찾을 수 없었다. "Anthroposophy는 인지학으로 번역됩니다. 이를 인간학이라 해도 내용상 큰 오류는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이어서 나오는데, 실제로는 내용상 큰 오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인간학과 인지학은 전혀 다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학술적으로 쓰이는 용어는 그 쓰임새에 대한 분명한 정의와 근거가 뒷받침되고 맥락적으로 이해되어야"(2) 한다는 저자의 주장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야말로 "자의적인 해석"이 아닌가! 이후 그 책의 제목을 <보편인지학>으로 하겠다는 결정도 그래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스스로 탐구해온 '동서양 통합사상'의 관점에서 인지학 서적을 주체적으로 연구해보니 "이렇게 이해되더라" 하는 식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동양학의 관점에서 인지학에 접근하고 저널을 쓰는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동양학 연구자가 "인지학은 이것이다!"라고 규정하고 인지학자를 자처하는 것은 만용 또는 정체성의 혼란으로 보인다. 자료집을 읽는 내내 '이것이 과연 인지학인가?' 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이 자료집을 읽고 드는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인지학의 용어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독일어 원전에 대한 더 많은 번역 작업이 필요하다.
2. 동양학의 관점에서 인지학을 해석하는 것과 인지학의 관점에서 동양학과 인지학을 비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정체성의 문제)
3.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은 100년이 넘는 전통과 세계적 네트워크가 있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연구될 수 없다.
4. 우리는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고, 성급하게 단정내리는 태도를 지양해야 하며, 학문적으로 엄밀한 자세를 갖춰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이 갈구하는 대로 사고하고 그 사고를 통해 얻은 내용만을 믿으려 하는 사람은 진리에 이를 수 없다."
- 루돌프 슈타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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