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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 이 글은 14장 '개인성과 종속'의 일부분입니다. 슈타이너가 당대에 얼마나 앞선 여성주의 사상가였는지, 생각해 볼 만한 구절이라 발췌해 올립니다. 글이 길다면 굵게 처리된 문단만 읽으셔도 좋습니다. 슈타이너의 윤리학은 극우주의가 준동하는 오늘날 더욱 더 되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때 인종주의 시비에 올랐던 슈타이너가 사실은 철저한 인권주의자임을 아래 글을 통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아울러 조만간 에 대한 해설을 연속해서 올리고자 합니다. 인간이 그 자체로 완전히 자유로운 인격으로서의 천부적 소질을 타고난다는 견해는, 인간이 자연적인 전체 내부(인종, 종족, 민족, 가족, 남성 그리고 여성)의 한 구성원으로 등장하며, 그 전체 내부에서 작용한다는 사실(국가, 종교 등등)과 외관상으로 대치하는 듯 ..
루돌프 슈타이너, 해방과 자유를 향한 발전으로서의 역사 클라우스 오토 샤머 1) 전기 슈타이너는 1861년 2월 27일 헝가리(현재는 전 유고슬라비아)의 크랄리에비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었고, 그는 세 자녀 중 첫째였다. 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 철도회사의 직원이었다. 슈타이너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의 몇몇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79년 우등으로 학교 졸업시험에 통과한 그는 빈 공과대학교에 들어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을 공부했다. 1883년에는 퀴르슈너(Kürschner) 교수의 「민족문학(Nationalliteratur)」 편찬을 도와 괴테(Goethe, 1749~1832)의 자연과학 분야 저서를 편집했으며, 1890년에는 바이마르의 괴테-실러 문서보관소(..
우리 시대에 그 영혼에까지 뿌리박힌 이기주의는 물질주의적인 태도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정신의 시대란 이러한 이기주의의 극복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의식적으로 낡은 혈연관계의 단절을 시도했습니다. 진정한 신앙 생활의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에선 근본적인 한 문장을 남겼는데 읽어보면, 아버지와 어머니, 형제와 자매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다른 뜻이 아니라 바로, 오래된 혈연관계의 자리에 영혼과 영혼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정신의 끈이 들어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이렇게 묻겠지요. 무엇이 그 길이고 방법인가? 인간이 물질주의를 극복한 그 정신주의, 또 동시에 보편적인 인류애의 실천으로서의 형제관계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그러면 사람들은..
1918-1922: 인지학과 사회활동 전쟁이 종결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은 몰락하고 독일은 혼돈에 빠져 있을 때, 슈타이너는 세계를 재건하고 악의 충동을 변화시키는 ‘미카엘’ 운동을 일으키는 임무에 착수했다. 이제 내적인 작업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사회정치, 과학, 종교, 의학, 그리고 농업에 이르는 각종 개혁이 요구되었다. 슈타이너는 이 일에 온 정성을 다해 임했다. 이것이 이른바 '사회 삼중구조 체제'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는 형제애의 경제적 영역, 평등의 사법적 영역, 그리고 자유의 문화적 영역을 자율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으로 파악했다. 이 운동의 성과는 미미했으나 이를 바탕으로 발도르프교육이 탄생했다. 그리고 그리스도 공동체(혹은 종교부흥 운동), 인지학적 의학, 생명역동농업이..
1900-1907: 신지학의 정신적 교사 신지학의 흐름에 동참하면서 슈타이너는 자신의 경험적 시련을 통해 그 가르침을 급속히 통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신지학을 시험하고 변형하였다. 강연과 저서에서 슈타이너는 자신의 정신적 탐구로 확인할 수 있는 내용만을 가르쳤다. 그는 이론이 아니라 인식을 통해 자신이 받아들인 것만을 가르쳤다. 그는 실로 신지학이 이론뿐 아니라 인식의 방법이란 것을 증명하는 일을 자신의 첫 번째 임무라 보았다. 이를 위해서는 정신적인 지식에 대한 실제 접근법의 발달과 함께 현대 과학에 대한 비판적 평가가 필요했다. 신지학 모임들은 당시 과학의 권위에 심심한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 슈타이너는 애니 베산트(Annie Besant)나 리드비터(C. W. Leadbeater)를 포함한 대부분..
9 그러므로 이러한 의미에서 인지학이란, 우리가 살면서 정신과 영혼에 대한 자각을 통해 신지학, 곧 최고의 지혜를 에워싸기 위해 나아가는 바로 그곳에서 출발하고, 또 항상 그곳을 포함하는 통로이다. 이런 '인간에 대한 관점'은 슈타이너의 일생에 걸쳐 관련이 있으며, 질적으로 다른 여러 단계에서 전개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는 그가 문화운동으로 이어지기를 바랐던 세력의 점진적 발전에 공헌했다. 1861-1883: 준비 슈타이너는 자연과 기술(그의 아버지는 철도회사에서 근무했다), 그리고 가톨릭 성당에 둘러싸여 유년기를 보냈다. 그는 정신세계의 실재에 일찌감치 눈을 떴다. 아홉 살 되던 해에 그는 자살한 먼 친척의, 육체를 떠난 영혼과 조우했다. 이는 지극히 중요한 경험이었다. 기하학과 수학, 그리고 철..
8 하지만 슈타이너 자신의 말대로라면, 그가 인지학이란 말을 쓰게 된 계기는 로베르트 침머만(Robert Zimmermann, 1824 1912)에게 있었다. 침머만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철학자로서 슈타이너는 빈 대학에서 그의 강의를 들었다. 1882년, 침머만은 를 출판했다. 여기서 그는 헤겔류의 철학자들로 대표되는 독일 이상주의라는 거대하고 추상적인 개념체계에 반기를 들었다. 침머만에 의하면, 그러한 이상주의 철학자들은 최고의 추상 수준에서 존재, 비존재, 현존, 모순과 같은 개념들로부터 시작하여 자신들이 마치 신이나 되는 양 써내려갔다는 것이다. 이는 경험적 바탕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맞서기 위해서(슈타이너가 이야기하듯이) “침머만은 '우리는 인간들 내부의 신이, 신 중심의 관점으로 ..
7 인지학(Anthroposophy)이란 말은 슈타이너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이 단어는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상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이상주의 철학자인 F. W. J. 셸링과 I. H. 피히테, 스위스 의사이자 전체론적 사상가 이그나츠 트록슬러를 포함하는 독일의 19세기 사상가들 중 상당수가 이 말을 썼다. 트록슬러에게 인지학은 인간 본성으로부터 도출되는 근본 철학을 뜻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모든 참된 생리학과 생명기술 [자연의 작용에 대한 과학]―인간의 지식과 존재, 능력과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은 인간 본성과 그에 대한 철학, 즉 인지학에 기반한다. 인지학은 이런 의미에서 히포크라테스가 '신적인 인간'이라 칭한, 이상적인 의미의 의사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자연철학이다.)"..
6 인지학(Anthroposophy)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로 '인간'을 뜻하는 anthropos와 '지혜'를 뜻하는 sophia, 두 단어가 합쳐서 된 말이다. 신지학(Theosophy: sophia가 '신'을 뜻하는 theos와 합쳐져서 된 말)이 신의 지혜 혹은 신성한 지혜를 의미하듯이, 인지학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지혜' 혹은 인간적인 지혜를 뜻한다. 생애의 마지막 해인 1925년에 쓴
4 무엇보다도 인지학은 다음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 우리가 세계를 알아가는 방법에 관한 이론 - 정신적 혹은 내적 발달의 실제 통로 - 인간과 지구의 진화를 그 기원이 되는 먼 정신세계들로부터 현재 순간(그리고 내세)까지 추적하는 복합적인 비이원적 우주론 - 인간 발달을 물질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와 더 높은 자아인 참 '나'의 측면에서뿐 아니라 사고와 감정, 의지의 측면에서 설명 - 골고다의 신비, 즉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반을 둔 종교 진화론 - 대안적인 자연과학으로 이어지는 자연적이고 정신적인 과정에 대한 연금술적 이해 - 카르마와 재육화, 사후세계, 그리고 천상의 아홉 천사계급의 시간과 역사 참여 등을 포함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통찰 5 위에 열거한 요소들은 '인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