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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갈등 해결을 위한 평화교육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갈등 해결을 위한 평화교육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7. 7. 15. 23:28

갈등 해결을 위한 평화교육

 

김훈태(슈타이너사상연구소 )


아이들의 올바른 인성을 함양한다는 명분으로 교육부는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어 2015721일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교육부는 인성교육진흥법으로 답한 것입니다. 이 법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실시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학교에서는 이미 전인교육의 이념을 토대로 도덕이나 윤리 수업시간에, 그리고 생활지도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아이들에게 예(), (),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과 관련된 가치와 덕목을 가르쳐 왔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욕설, 왕따, 괴롭힘, 금품갈취, 성폭력 등의 사건들은 학교를 벗어나 사회 문제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눈에 드러나는 신체폭력은 감소했을지 몰라도 욕설 같은 언어폭력과 SNS를 통한 사이버폭력은 더욱 확산되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육청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학기별로 인성교육 실천주간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생 및 학부모 상담주간을 운영하고, 학교생활기록부의 행동발달 기록란에 인성덕목을 중심으로 학생의 행동특성을 기재하기도 합니다. 특히 교육과정과 연계한 인성교육을 위해 인권교육, 사이버폭력 예방교육, 성교육, 장애이해교육, 안전교육, 학교폭력예방교육, 평화통일교육, 다문화교육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의무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 일단 지나치게 많습니다. 인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도 너무 많은 활동이 요구되지만, 교사들도 관련 연수가 폭증해 시달리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국가주도의 인성교육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습니다. 먼저 교육을 통해 국가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국민을 육성한다는 식의 발상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21세기의 교육은 더 이상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는국민을 길러내는 것이 목표가 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고유성에 집중하는 개별화 교육이 되어야 하며, 교사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자유 교육 또는 자치 교육이 되어야 합니다. 진정으로 아이들의 인성을 함양하길 원한다면 교육부는 인성교육 실천주간을 의무적으로 운영하게 하는 현재의 방식을 접고, 교사들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교사들 스스로 각자의 교실에 적합한 인성교육 방법을 계발하여 사용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일괄적으로 실시되는 현재의 산만하고 파편적인 방식은 인성교육을 일회성의 프로그램 또는 이벤트로 전락시키고 형식화하여 그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성교육이라는 명칭도 문제적입니다.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하필 인성일까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인성교육진흥법은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승객들을 내버리고 혼자 탈출한 세월호의 선장과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 되겠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그 배경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인성이 훌륭하면 사회는 건전하고 올바르게 될까요? 세월호에서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거듭 하면서 자기들만 몰래 탈출했습니다. 이때 대부분의 승객들은 승무원의 지시를 믿고 따랐지만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였습니다. 오히려 지시를 거부하고 배를 빠져나와 바다에 뛰어든 일부 승객들만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근본적으로 해경과 정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대처로 인명피해가 컸습니다. 이는 개인의 인성보다 사회의 구조적인 부조리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개인의 인성에만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 구조에서 눈을 떼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인간성이 파괴된 시대에 인간성을 회복하는 교육적 실천은 필요한 것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인성교육을 법으로 강제해야 할 필요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각종 프로그램의 백화점식 나열은 오히려 본질을 왜곡할 수 있습니다.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교육을 평화교육의 한 영역으로 포함하여 평화교육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또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평화교육을 실천할 수 있도록 주의를 환기하는 작업도 필요해 보입니다. 물론 평화교육을 진흥법과 같은 방식으로 강제하거나 국가 주도로 확산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강제된 평화를 평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사회의 폭력성에 눈을 뜨고, 평화의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평화 문화를 교육 현장에서 만들어 내는 것이 곧 평화교육일 것입니다.

 

평화 문화에 대한 비전은 다음과 같은 가치, 태도, 전통, 사고와 행동양식을 반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차별이나 편견 없이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인권, 생명을 존중한다.

모든 형태의 폭력을 거부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폭력적 갈등의 뿌리를 근절하고 방지하는 데 헌신한다.

현재와 미래 세대가 추구하는 개발과 환경의 요구를 공평하게 하는 과정에 온전하게 참여한다.

여성과 남성의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증진한다.

모든 사람의 표현, 의사, 정보의 자유를 인정한다.

국가와 인종, 종교, 문화, 그룹 간 그리고 개인 간의 자유, 민주주의, 관용, 연대, 협동, 다원주의, 문화적 다양성, 대화와 이해의 원칙에 헌신한다.

 

여기에서 평화란 단순히 전쟁이나 직접적 폭력의 부재뿐만 아니라, 권력과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로 드러나는 구조적 또는 간접적 폭력의 극복까지를 의미합니다. 요한 갈퉁에 따르면, 전쟁과 물리적 폭력이 없는 상태는 소극적 평화에 지나지 않습니다. ‘적극적 평화는 갈등의 원인이 제거되고 정의가 바로 서는 상태,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의 기본욕구가 충족되며, 정의가 실현되고, 갈등이 비폭력적 과정을 통해 해결되는 세계입니다. 나아가 내적 평화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 평화운동가인 틱낫한 스님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내면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내면의 평화란 깨어 있는 마음의 상태를 뜻합니다. 평화 문화란 이처럼 내면의 평화와 함께 사회적으로 적극적 평화를 추구하는 노력인 평화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평화운동 가운데 하나가 평화교육입니다.

 

평화교육은 하나의 독립과목이 아니라 전체 교육과정과 학교 문화를 두루 포함합니다. 교실에서 교사는 아이들과 평화의 본질에 대해 토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느꼈을 때가 언제인지 이야기 나누고, 평화를 파괴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한 방법들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또한 일상적 갈등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능력들, 다시 말해 올바르게 대화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것 말입니다. 교실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해결하는 법을 배웠다면 이제 지역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관심을 쏟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화교육 역시 개별화교육이 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발달적 특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예컨대, 유치원이나 초등 저학년 교실에서 교사는 주지주의적 학습과 토론의 방식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서 아이들이 평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훈계를 하는 것보다 동화의 형태로 이야기를 지어내 들려주는 것이 좋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아침에 선생님을 만나는 방식(포옹을 하거나 악수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놀이와 식사, 그리고 수업과 수업 이외의 시간에 자연스레 접하는 평화로운 문화가 아이들에게 더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추상적 사고의 힘이 탄생하는 사춘기 이전의 아이들을 위해서는 머리보다 손발과 가슴에 집중하는 방식이 더 실제적이기 때문입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발달적 차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선해야 할 것은 학교생활 전반에서 지켜야 할 평화적인 태도에 대해 교사가 적절한 권위를 통해 모범을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이와 함께 예술적인 활동을 통해서 평화 문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배워나갈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또 공감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가 훈련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평화교육의 목표를 능력과 태도, 그리고 지식의 세 관점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영국의 평화교육학자 데이비드 힉스의 모델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평화 능력 : 평화를 위한 교육


비판적 사고

문제를 비판적이면서도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새로운 증거와 합리적인 주장 앞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바꿀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편견과 교화, 선전 등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협력

공동 작업에서 협력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며,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른 사람 또는 집단과 협력해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공감

다른 사람들, 특히 자신과는 다른 집단, 문화, 국가 등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견해와 감정들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단호함

다른 사람들과 분명하고 단호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의 권리를 무시하는 공격적인 방식이거나 자신의 권리를 부인하는 흐리멍덩한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갈등 해결

객관적이고 조직적으로 다양한 갈등을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갈등에 대한 다양한 해결방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한 스스로 그 해결방안을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 문해

개개인의 삶과 지역공동체, 그리고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차원 모두에서의 의사결정에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해야 한다.

 

평화적 태도 : 평화를 통한 교육

 

자아의 존중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와 자신의 독특한 사회적, 문화적, 가족적 배경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타인에 대한 존중

다른 사람들, 특히 자기와는 다른 사회적, 문화적, 가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생태학적 관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자연환경과 생활환경을 존중해야 하며, 지역환경과 지구환경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열린 마음

비판적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정부, 개인, 사건 등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전해야 한다.

 

전망

자신이 속한 사회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그리고 나아가서는 세계적 차원에서 좀 더 나은 세계는 어떤 것인가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전망에 마음을 열고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

 

정의에 대한 헌신

민주적 원리와 과정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역적, 국가적, 국제적 차원에서 더욱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계를 위해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

 

평화 지식 : 평화에 관한 교육

 

갈등

개인적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상황과 그러한 갈등을 해결하려는 시도들을 연구해야 한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비폭력적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

 

평화

개인적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존재하는 평화와 적극적 과정으로서의 평화의 개념들을 연구해야 하며, 평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고 있는 개인이나 집단의 실천 사례들을 살펴봐야 한다.

 

전쟁

전쟁과 관련되어 흔히 제기되는 주요 문제들과 윤리적 난제들에 관하여 숙고해야 하며, 지역적 차원에서 세계적 차원에 이르기까지 개인과 집단에 끼치는 군사문화의 영향을 살펴봐야 한다.

 

핵 문제

광범위한 핵 문제에 관하여 학습해야 하고, 방위와 전쟁 억제에 관한 중요한 이론들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또한 개인과 집단, 그리고 정부의 노력을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정의

개인적, 세계적 차원에서의 부당한 상황들에 관해 학습해야 한다. 그리고 오늘날 정의를 위한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개인과 집단들의 업적에 대해서도 학습하도록 해야 한다.

 

성차별

성차별과 관련된 문제들을 학습해야만 한다. 또한 성차별주의의 역사적 배경과 성차별주의가 남성들에게는 어떻게 이롭게, 여성들에게는 어떻게 불리하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권력

오늘날 세계에서 권력의 문제와 권력의 불공평한 분배가 사람들의 기회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해서 학습해야 한다. 또한 개인과 집단이 자신들의 삶을 주관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는 방식에 대해서 알아보아야 한다.

 

인종차별

인종차별과 관련된 문제들을 학습해야 한다. 또한 인종차별의 역사적 배경과 인종차별주의가 백인들에게는 어떻게 이롭게, 흑인들에게는 어떻게 불리하게 작용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환경

전 인류의 환경복지와 자신들이 의지하고 살아야 할 생태계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한다. 환경문제에 관하여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고, 환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치활동에 효과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미래

가능하고 바람직스러운 대안적 미래를 연구해야 한다. 어떠한 대안이 더 정의로우면서도 덜 폭력적인 세계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새로운 세계를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지식 영역에 더 추가해야 할 항목들이 있습니다. 분단체제와 이념차별, 국가폭력, 친일파 청산 같은 문제들입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제1세계와는 다른 특수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역사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물론 평화교육은 평화에 관한 지식을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평화적 태도와 능력의 계발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열거된 태도들은 사회적 문제가 곧 개인의 문제이기도 함을 깨닫게 합니다. 평화로운 사회는 제도적인 개선 노력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일상적 실천이 중요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일상이야말로 정치적인 것이며,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에서 평화 문화를 위해 싸워나갈 수도 있습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 역시 평화교육의 본질을 이룹니다. 아이들이 정부의 선전이나 압력 단체의 주장에 대해 그 내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대중매체와 교과서 속에 숨겨진 편견들, 이를테면 가부장주의나 성차별, 군사문화 등을 경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고 협력할 수 있는 능력은 갈등 해소의 가능성을 높이고 학급 분위기를 더욱 편안하게 만듭니다.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부탁의 형식으로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도 평화교육의 핵심적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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