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강의노트] 코로나 팬데믹,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1) 본문
* 교육공동체벗에서 3회 동안 진행했던 강의의 준비노트입니다. 실제 강의와는 내용이 약간 다르지만 요즘 제가 고민하는 교육적 문제를 정리한 것이라 올려봅니다. 강의 도입부만 올리고, 주요 내용은 참고도서를 소개하는 것으로 갈음합니다.
[강의노트] 코로나 팬데믹, 교사와 학생은 어떻게 만나야 할까? (1)
- 교사와 학생의 기질 이해와 대처 방법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1. 8. 11
제목이 좀 거창해서 부담스럽긴 한데요, 중요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 이번 여름은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 의외로 올림픽 경기가 우리에게 큰 힘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MBC 같은 방송국, 일부 신문사들의 저열한 인식 수준도 드러났지만 최선을 다하면서도 경기를 즐기는 선수들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떤 경기, 어떤 장면이 가장 마음에 남으시나요? 저는 양궁도 좋았지만 역시 김연경 선수의 배구시합이 드라마틱했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의 현실
자, 먼저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미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긴 얘기는 아니고, 이번 코로나 사태의 성격을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전세계가 델타변이 바이러스로 또다시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네요. 오늘 신규 확진자가 2200명이 넘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연말까지 백신 접종이 어느 정도 완료되어도 종식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사망률이 줄어든다는 것인데, 결국 다른 독감처럼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지 않나, 하게 됩니다.
문제는 백신인데, 이번 델타변이도 그렇고 선진국들 중심으로 아무리 예방접종을 한다고 해도 가난한 저개발국가를 도외시한다면 치명적인 변이가 또 어떻게 확산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건 도덕적인 문제를 떠나 아주 실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존처럼 자국중심주의, 이기주의적 관점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나아가 불평등과 차별이 있는 한 위기는 지속될 것입니다. 인간세계뿐 아니라 자연 생태계를 전부 포괄하는 원헬스(one-health)의 패러다임으로 나아가야겠지요.
코로나를 제외하고는 올여름이 생각보다 무난하게 지나가는 것 같은데요. 물론 우리나라에 한해서 그렇고, 세계적으로 자연재해가 심상치 않습니다.
지난 7월에는 캐나다 뉴스가 충격을 주었습니다. 한여름에도 에어컨이 필요없다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에서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지속돼 한 주 동안 719명이 돌연사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었습니다. 그 원인은 열돔 현상 때문이라고 하던데, 북반구의 제트기류가 약해지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하지요. 제트기류가 약해진 건 지구온난화 때문이고요.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폭염에 건조한 날씨와 낙뢰, 그리고 강풍까지 겹치면서 대형산불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캐나다와 미국뿐만 아니라 지금 터키도 큰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서 김연경 선수의 팬들이 터키에 묘목을 선물하는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들 나라뿐 아니라 그리스, 이탈리아, 알제리, 무엇보다 러시아의 시베리아가 심각합니다. 또 얼마 전에는 그린란드의 빙하가 하루만에 85억톤이 녹았다는 뉴스도 있었지요.
저처럼 신생아와 어린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심정이 착잡하실 거라 봅니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그래도 저지할 수 있다" 의견이 분분한데, 어떻게든 희망을 갖지 않으면 정말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의 절망은 오로지 인간에게서 기인하지만 역설적으로 희망도 인간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십년 가까이 걸린다는 백신 개발도 1년만에 해내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교육이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 서두는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교육자이기 때문에 세상이 아무리 비관적이어도 의지를 갖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우리를 보고 있으니까요. 이 아이들을 잘 키워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우리 자신부터 평화를 되찾고 유지하며 확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재난은, 어쩌면 교육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도록 하죠. 훌륭한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많으시겠지만 구조적으로 우리는 치열한 입시를 뚫고 지금의 체제에 순응하도록 길러졌습니다. 그렇지 않나요. 개인적으로 공부를 깊이 하고 명상을 오래 하셔서 내적 평화를 얻었다 하더라도 이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그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면 체제 유지와 재생산에 일조를 하는 것밖에 안 됩니다.
많은 학자들이 급격한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고 소리 높이고 있습니다. 4차산업혁명이나 메타버스 같은 굵직한 담론이 많습니다. 물론 그런 변화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지만 학교라는 공간이 추구해야 하는 방향성은 다르다고 봅니다. 성인이 되기 전, 영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오히려 변치 않는 무엇일 것입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정말 중요한 교육은 인류 역사를 거쳐오면서 쉽게 변하지 않는 가치와 지식, 기술에 관한 것입니다. 기초생활습관을 익히고, 평화로운 관계를 맺으며, 기본적인 학습능력을 갖추는 것이겠죠. 어쩌면 학교는 거칠고 변화가 심한 세상에 본격적으로 나가기 전, 기초적인 삶의 역량을 갖추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교육에 대해 더 비판을 한다면, 우리는 젊은 세대가 합리적이고 건강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데에서 실패했다고 봅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한발짝 떨어져서 보셨으면 합니다. 저희 세대와 비교해서 가장 큰 차이가 뭘까요? ...... 저는 분주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이 얼마나 바쁜지 아시지요? 어른인 우리보다 더 바쁘지 않나요? 학습량도 너무 많고 미디어 사용시간도 어마어마합니다. 계속해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인터넷강의를 듣고 문제지를 풀고 학원을 몇 군데씩 다니고...
이렇게 바쁜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할 여유가 있을까요? 과연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반성적으로 성찰할 수 있을까요? 지금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는지, 어떤 삶을 추구해야 할지... 그런 여백 같은 시간이 있나요? 특히 소위 공부를 잘한다는 친구들의 문제가 뭔가요? 지금 젊은 세대가 광범위하게 갖고 있는 모습 말입니다.
저는 아이들이 진다는 걸 못 받아들이는 것이 굉장히 큰 문제라고 봅니다. 게임에서, 놀이에서, 학습에서 자기가 진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정서가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겨야 하고, 불리하면 꼬투리를 잡아서 비난합니다. 일부 젊은 남성들, 어느 정도 여성들도 그런 모습이 있겠지만요, 새로운 세대가 보여주는 모습의 특이점은 공정을 주장하지만 대단히 자기중심적인 태도로 비합리적 논리를 견지한다는 것입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분들에게 시험을 치게 한다든지, 정당에서도 시험을 봐서 선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든지... 예는 굉장히 많습니다.
물론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선량하고 어진 마음일 거라고 봅니다. 하지만 사회적 흐름의 변화는 무시할 수 없는데요, 우리가 놓쳐온 게 뭘까요? 학교라는 거대 시스템 속에서 우리가 자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어떻게 해서 우리는 이런 걍팍한 세상을 만들어버린 걸까요?
비판이 길어졌는데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인간적인 문화를 만드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고, 인간적인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오로지 인간중심적인 문화는 아니고, 인간계와 자연계를 아우를 수 있는 평화로운 문화가 필요합니다. 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인간을 다시 돌아보자! 인간 그 자체에 관심을 갖자!
인간적인 학교의 필요성
비대면 수업이 이어지면서 우리가 깨달은 것 중 하나는 학교가 정말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으니 돌봄이 충분하지 않은 가정의 경우 아이들의 학습능력뿐 아니라 생활습관도 전반적으로 저하되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의 기능을 단순화하면, 크게 학습적인 부분과 생활적인 부분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학습이란 생활습관이라는 토대가 없으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동안 학교가 가장 중시했던 게 뭐라고 보시나요?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 말고요. 저는 그것을 '근대적 학교 시스템의 유지'라고 생각합니다. 뭐랄까요. 이런 흐름은 관료화의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더 넓게 보면 우민화입니다. 사회학의 눈으로 보자면 학교는 현재의 체제에 순종하고 체제를 재생산할 수 있는 개인들을 양산하는 곳입니다. 한 명의 개인, 개인에게는 큰 관심이 없지요. 있나요? 제가 보기에는 없습니다.
교육이란 오로지 인간만을 대상으로 하는 정신-문화적 작업입니다. 교육은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고, 그 인간은 고유한 자아를 가진 존재입니다. 저는 교육이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릅니다. 그리고 자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평생을 내가 누구인지, 나는 뭘하고 싶은지, 나와 너, 그는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하는지를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로점을 보고, 점집에 가고, 손금도 보고 하는 게 다 왜 그렇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늘 궁금하기 때문입니다. 애정도 크지요. 나에 대한 관심은 어마어마합니다. 왜 안 그렇겠나요. 늘 자기 자신과 살아가는데요. 그래서 얼굴과 몸매를 가꾸고, 옷을 사입고, 좋은 차를 타려 하고, 멋진 집을 갖고 싶습니다. 학위와 자격증, 인맥 등을 쌓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나에 대한 관심은 애나 어른이나 똑같습니다. 나이 지긋한 노인도 예쁘시다고, 잘 생기셨다고 말씀드리면... 좋아하실까요, 싫어하실까요? "네가 있어서 참 도움이 되고 든든하다",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은 저마다 정신적 자아가 있기 때문에 존엄성을 인정받고 싶고 존중받고 싶은 것입니다. 예외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뭔가 도움이나 치유가 필요한 상황일 것입니다. 동물이나 식물도 생명으로서 존중해야겠지만 인간은 더 높은 무언가를 원합니다.
자아를 가진 인간은 자신의 존재감, 자존감, 자신감, 자아감을 늘 확인하고 싶어합니다. 누구든 그래요. 그리고 자아는 고유하기 때문에 서로 다 다르죠.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아이들을 만날 때 그 아이를 잘 이해하고 알아주는 게 필요하다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는 문제입니다. 개별화 교육은 학습에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복잡하게 서로 다른 아이들을 어떻게 파악하죠? 그럴 때 도움받을 수 있는 게 기질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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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질 관련 참고도서
브라이언 리틀, 이창신 옮김, <성격이란 무엇인가>, 김영사
대니얼 네틀, 김상우 옮김, <성격의 탄생>, 와이즈북
베티 스텔리, 하주현 옮김, <인생의 씨실과 날실>, 푸른씨앗
르네 퀘리도, 김훈태 옮김, <발도르프 공부법 강의>, 유유
김훈태, <부모가 되어 가는 중입니다>, 유유
_______, <교사를 위한 인간학>, 교육공동체벗
_______,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 교육공동체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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