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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깨달음의 알속 - 역자 후기(2010년 6월) 본문

명상수련/깨달음의 알속 -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깨달음의 알속 - 역자 후기(2010년 6월)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 23. 18:32

역자 후기

 

2010년 6월

 

이 책은 역자가 감옥에 있던 2006년에 번역을 한 것이다. 출소를 하고서야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이 이미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왔음을 알았지만, 그 책은 내용 일부가 삭제되었거나 스님의 목소리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역자는 오랫동안 이 책의 문장을 다듬어 왔다. 미루어왔던 편집작업을 역자의 결혼식을 앞두고 서둘러 겨우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the Heart of Understanding>이라는 본래 제목의 ‘the heart’를 어떻게 옮길지 고심하다가 핵심核心이라는 말 대신 우리말인 알속으로 옮겼다. 알속이라는 말에 담겨 있는 풍부한 의미를 되새겼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이밖에도 가급적 부드럽고 아름다운 우리말을 쓰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뜻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때는 집착하지 않고 한자말을 선택했다.

 

감옥에 가기 전 평화교육 관련 논문을 쓰기 위해 쉬는 날이면 대학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때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책은 아주 얇았고 쉽게 쓰였기에 영어본이지만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평소 존경하던 틱낫한 스님의 육성을 직접 듣는 것처럼 울림이 풍부한 문장들이었다. 천천히 책을 읽으며 깊은 위안을 받았고 일상에 차츰 평화가 깃들었다.

 

어찌하다 보니 소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라고 부르는 걸 하게 되었다. “다시 이십대로 돌아가도 집총을 거부할 것인가?” 누가 묻는다면, 곤혹스럽겠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나 자신과 내 삶이 비록 온전하게 평화롭지는 않더라도 나의 이상은 평화에 닿아 있기 때문이다. 평화는 세상의 진실과 하나이고, 단 한 순간이라도 진실하지 않다면 삶은 부패해버리고 만다는 믿음을 나는 갖고 있다. 가르쳤던 아이들이 그걸 가르쳐 주었다.

 

그렇다면 폭력이란 무엇인가? 사실 나의 학문적 관심사는 평화가 아니라 폭력이었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폭력적인가?’ 이 질문이 왜 나는?’으로 바뀐 것은 아이들을 가르친 덕분이다. 초등학교 교사가 된 뒤 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서게 되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폭력을 두려워했고, 오로지 사랑받고 싶어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리하지 못했다. 평화는 말로 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게다가 미군기지 이전문제, 즉 평택 대추리 사건까지 내 삶에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평택에서 근무한 내게 이라크 파병과 주한미군기지이전은 직접적인 문제였다. 감옥에 들어가기 직전인 200654, 정부는 군대와 전경과 용역깡패 들을 동원해 대추리에 진격해왔다. 대추분교에 집결해 있던 시위대를 곤봉과 방패로 폭행하고 학교를 파괴했으며 운동장의 나무를 크레인으로 뽑아버렸다. 현장에서 빠져나와 대추리 아이들이 전학해온, 내가 근무하던 학교에 돌아왔을 때 운동회가 끝나고 있었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단체로 입은 아이들 속에서 대추리 아이들을 찾았으나 한 명도 없었다. 다음 날 대통령은 청와대 앞마당에서 어린이들과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만일 이 책을 감옥에서 번역하지 않았다면 나는 울화병으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틱낫한 스님의 깊은 통찰과 자비로 가득한 음성에서 한 가닥 빛을 느꼈다. 종종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내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나사렛 예수처럼 하느님께 기도를 올렸다. 감옥은 단지 갇힌 세상이었고, 폭력적인 현실은 별다르지 않았다. 처절할 정도로 구원받고 싶었다.

 

틱낫한 스님의 말씀은 구원 없음으로 해서 구원을 주었다. 내가 세상만물과 더불어 있다는 것, 아니 세상 모든 것이 서로 더불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적과 나彼我를 구분할 수 없었다.

 

인간과 세상을 바르게 안다는 것만큼 미혹에 빠지는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건 없다. 출소 후 다니게 된 과천자유학교에서 발도르프교육과 인지학人智學을 만나면서도 같은 감동을 받았다.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 박사 역시 세계의 실상을 바르게 알라고 가르치는 것이었다.

 

슈타이너는 불교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는 교육이 인간과 세상에 대한 바른 앎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슈타이너가 말한 의식혼의 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믿는다.

 

세계 속에 내가 있고 시공과 물질이 있기에 사람의 마음이 생겨난 것이라고 믿는 물질주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우리 마음 안에 세계가 있고, 의식이 있기에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는 세계란 감각기관(六根)을 통해 받아들인 감각대상(六境)이 재구성되어 마음 안에 펼쳐진 것(六識)이기 때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 세계를 창조하거나 파괴할 수는 없겠지만 마음을 모아 깨어있는 삶을 산다면 평화는 가능하리라.

 

병역거부소견서에도 담았던 틱낫한 스님의 시 <권유>를 덧붙임으로 후기를 마친다.

 

20106, 과천시 갈현동에서

김훈태

 

 

권 유

 

약속하세요, 약속하세요.

지금 이 순간 내게 약속하세요.

하늘 한가운데

태양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 동안

내게 약속하세요.

 

누군가 태산 같은 증오와 폭력으로

당신을 산산이 부수더라도

한 마리 벌레를 대하듯

당신의 삶을 짓밟더라도

당신의 사지를 절단하더라도

 

형제여, 기억하세요.

그 사람은 당신의 적이 아니란 걸.

오로지 당신의 사랑과 자비만이

스러지지 않고

멸함이 없으니

증오로는 결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당신이 홀로 잔악함과 마주할 때

당신의 불굴의 용기와

사랑으로 가득한 고요한 눈동자와

크나큰 고통을 이기고 외딴 곳에 홀로 피어난

한 송이 꽃과 같은 당신의 미소를

아무도 알지 못하더라도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삶과 죽음을 거듭하면서

여전히 당신을 지켜볼 것입니다.

 

또 다시 혼자되어

당신의 사랑이 영원함을 기억하며

나는 머리를 숙인 채 계속 걸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난할지라도

내 발걸음을 비춰 주는 해와 달은

여전히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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