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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깨달음의 알속 -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9) 본문

명상수련/깨달음의 알속 -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깨달음의 알속 -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9)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7. 11. 15. 10:22

깨달음의 알속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옮김



부처는 부처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비어 있음의 마당에서는 꼴도 없고 감각도 없고 인식도 없으며 의지도 없고 의식도 없느니라. 시각과 청각과 후각과 미각과 촉각과 마음도 없고, 꼴도 소리도 냄새도 맛도 감촉도 마음의 대상도 없는 등 오온의 세계(시각부터 의식까지) 자체가 있지 아니하므로, 연기緣起의 시작도 없고 그 끝도 없으며(무지부터 늙고 죽음까지), 그렇기에 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극복 방법도 없으며,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의 성취도 없느니라.”

 

이 글은 오온이 모두 비어 있음을 분명히 하며 시작합니다. 오온은 각자 따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각각의 것은 다른 것들 모두와 더불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구절은 열여덟 가지 요소의 영역을 열거합니다. 먼저 우리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마음() 등 여섯 감각기관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꼴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마음의 대상이라는 여섯 가지 감각대상이 있습니다. 꼴은 시각의 대상이고 소리는 청각의 대상이며 다른 것들 역시 그와 같습니다. 끝으로 이 열두 가지 감각과 감각의 대상은 여섯 의식과 닿아 있습니다. (안식眼識), 들음(이식耳識), 그리고 마지막은 의식意識입니다. 따라서 시각을 포함한 감각들의 영역부터 열여덟 번째 의식까지 이 부분이 말하는 것은 어떤 영역도 그것 혼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것들은 오직 다른 모든 영역들과 더불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은 십이인연十二因緣이 무지로부터 시작하여 늙음과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십이인연 역시 그것들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한 존재는 오로지 다른 존재들에 의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 모두는 비어 있습니다. 비어 있기에 참으로 존재합니다. 네 가지 고귀한 진리(사성제四聖諦)괴로움도 없고, 괴로움의 원인도 없으며, 괴로움의 소멸도 없고, 그 소멸의 길도 없다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됩니다. 목록의 마지막 항목은 깨달음도 없고 깨달음의 성취도 없다는 것입니다. 깨달음(반야)은 불교의 핵심입니다. “깨달음이 없다라는 말은, 깨달음이란 개별적인 실재가 아님을 뜻합니다. 부처가 부처 아닌 것들로 이루어졌듯, 깨달음도 깨달음 아닌 것들로 이루어집니다.


부처와 마라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어느 날 부처님은 당신의 토굴 안에 머무르고 계셨습니다. 부처님의 시봉승인 아난다가 문밖 가까이에 서 있었습니다. 아난다는 갑작스레 마라가 다가오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마라가 오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사라져 주길 바랐지만 마라는 아난다에게 곧장 걸어왔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뵙기를 청했습니다.


아난다가 말했습니다. “여기가 어디라고 왔느냐? 너는 예전 보리수 아래에서 부처님께 패한 것을 벌써 잊었느냐? 여기 오는 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보구나. 썩 꺼져라! 부처님은 널 만나지 않으실 게다. 넌 악마일 뿐이야. 부처님의 적이란 말이다.”


마라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대의 스승이 적이 있다고 말하던가?” 그 말에 아난다는 아주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아난다는 스승께서 적이 있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난처해진 아난다는 마라가 왔음을 알려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해 주시길 바라면서요. “가서 전하거라. 다른 모임이 있어 여기 없노라고.”


하지만 부처님은 마라가 왔다는 말을 듣고 옛 친구가 찾아온 것처럼 무척 반가워하셨습니다. “그게 사실이냐? 정말 마라가 여기에 왔느냐?” 부처님은 마라를 반기러 밖으로 나가셨습니다. 아난다는 몹시 당혹스러워했습니다. 부처님은 마라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인 뒤 두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셨습니다. “반갑네! 어떠신가? 그간 잘 지내셨나? 하는 일은 다 잘 되고?”


마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를 토굴 안으로 데려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난다에게 나가서 차를 내오라고 이르셨습니다. ‘스승님을 위해서라면 하루에 백 번이라도 차를 내올 수 있다. 하지만 마라를 위해서는 전혀 내키지 않아.’ 아난다는 속으로 투덜거렸습니다. 그렇지만 이 일도 스승을 위한 것인데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아난다는 부처님과 손님을 위해 차를 준비하러 갔습니다. 그 일을 하는 동안 아난다는 둘의 대화를 엿들었습니다.


부처님이 아주 따뜻하게 되물으셨습니다. “어떻게 지냈는가? 자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마라가 답했습니다. “잘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요. 마라로 사는 게 지겨워요. 이젠 다르게 살고 싶어요.” 아난다는 무척 놀랐습니다. “아시잖아요. 마라로 사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말 한 마디를 해도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해야 하고, 무슨 행동을 하더라도 교활하고 사악하게 보여야 해요. 저는 정말 지쳤다구요. 게다가 제 추종자들도 견디기가 힘들어요. 그들은 이제 사회정의와 평화, 평등, 해방, 불이不二, 비폭력 같은 것들만 얘기하고 있다니까요. 더는 못 참겠어요! 그러려면 차라리 부처님을 따르는 게 낫잖아요. 저는 다른 걸 해 보고 싶어요.”


아난다는 불안해졌습니다. 그의 스승이 다른 역할을 맡기로 할까봐 두려웠습니다. 마라가 부처님이 되고, 부처님이 마라가 될까봐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부처님은 주의 깊고 자비롭게 귀 기울여 들으셨습니다. 마침내 고요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부처로 사는 게 즐거울 거라 생각하는가? 자네는 내 제자들이 내게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고 있군. 그들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내 입을 빌려 하고 있다네. 지나치게 화려한 사원을 짓고, 제단 위에 불상을 놓고서 바나나와 오렌지, 기름진 쌀을 바치기도 하지. 오로지 자기 자신들을 위해서 말이야. 나를 포장하고 내 가르침을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었어. 마라여, 만일 자네가 부처의 실상을 알게 된다면 부처가 되길 원치 않을 거라고 확신하네.” 그런 뒤 부처님은 이 대화를 요약해 긴 게송으로 노래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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