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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깨달음의 알속 -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11) 본문

명상수련/깨달음의 알속 -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깨달음의 알속 -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1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7. 11. 15. 10:26

깨달음의 알속

틱낫한 스님의 반야심경 해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옮김



스바하!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란 곧 위대한 만트라요, 최상의 만트라이며, 둘도 없는 만트라인 동시에 모든 괴로움의 소멸이자, 거짓 없는 진리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이 만트라를 일러 가로되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바하라고 하느니라.”

 

만트라(mantra진언眞言)란 당신이 몸과 마음과 숨을 하나로 모아 깊이 집중할 때에 외우는 것입니다. 당신이 깊이 집중하여 있을 때에는 손으로 움켜쥔 오렌지를 보는 것처럼 또렷하게 사물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아발로키타는 오온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더불어 있음의 본질을 깨닫고 모든 번뇌를 극복하셨습니다. 완전히 해방되셨습니다. 그분은 깊은 집중과 기쁨과 해방의 상태에서 중요한 무언가를 외우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만트라입니다.


젊은 남녀가 서로 사랑할 때, 남자가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면, 여자는 아주 소중한 세 낱말을 기다릴 것입니다. 만일 그 남자가 굉장히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면 아마 그는 자신의 감정이 분명해지길 바랄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말하기 전까지 오랜 시간 기다릴 것입니다. 그런 뒤 어느 날 공원에서 둘이 함께 앉아 있는 동안, 아무도 곁에 있지 않고 모든 게 고요할 때 긴 침묵을 깨고 남자는 그 세 낱말을 말할 겁니다. 여자는 그 말을 듣고 무척 떨리겠지요. 그만큼 소중한 말이니까요. 당신이 무언가를 말할 때는 그저 입으로 또는 머리로 하지 말고 당신의 모든 존재를 걸고 말하십시오. 온존재를 다해 말할 때 비로소 그것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변화의 힘을 갖고 있는 말이 바로 만트라입니다.


아발로키타의 만트라는 이렇습니다.

 

가테 가테 파라가테 파라삼가테 보디 스바하(Gate gate paragate parasamgate bodhi svaha)

 

가테(gate)가세(go)를 뜻합니다. 괴로움에서 괴로움의 해방으로 가세. 게으름에서 마음모음으로 가세. 이원론에서 불이론으로 가세. ‘가테 가테가세, 가세입니다. ‘파라가테paragate완전히 저 언덕(피안彼岸열반의 세계)으로 가세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아주 힘차게 말해야 합니다. 가세, 가세, 아주 건너가세. ‘파라삼가테parasamgate에서 sam은 모든 이, 또는 승가僧伽, 존재들의 완전한 공동체를 뜻합니다. ‘다 함께 저 언덕으로 건너가세.’


보디bodhi는 안의 빛, 깨달음, 깨어있음입니다. 당신이 깨닫고 나면 진실의 관점은 당신을 해방시킵니다. 그리고 스바하svaha는 기쁨과 흥분이 뒤섞인 외침입니다. “환영합니다!” 또는 할렐루야!”처럼요. “가세, 가세, 완전히 건너가세. 다 함께 저 언덕으로 가세. 깨달음이여, 영원하라!”


이것이 바로 보살이 외친 것입니다. 이 만트라를 들을 때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래야만 아발로키타가 내뿜는 힘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을 노래 부르듯 외우거나 머리로만 이해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비어 있음의 정신을 실천하고, 더불어 있음의 바탕을 가슴과 손발과 머리 전체로 꿰뚫어 보아야만 당신은 완전한 선정에 들 수 있습니다. 온존재로 만트라를 외우면 그 만트라는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당신은 아발로키타와 참된 소통을 하고 진정한 교분을 맺을 수 있으며, 당신 자신을 깨달음의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단순히 낭송을 위하거나 예배를 위해 제단에 올려두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과 세상 모든 존재의 해방을 위한 도구로서 주어진 것입니다. 농사를 짓기 위한 도구와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어진 그것으로 농사를 지어나가야 합니다. 반야심경은 아발로키타의 선물(보시)입니다.


보시布施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로 재물을 베푸는 재시財施, 둘째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는 법시法施, 그리고 셋째로 최고의 선물인, 두려움을 없애주는 무외시無畏施가 그것입니다. 아발로키타 보살은 우리가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도록 도와줍니다. 그게 바로 반야바라밀다의 알속입니다.


반야는 우리에게 평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견고한 지평을 선사합니다. 태어남과 죽음의 두려움, 이것과 저것의 이분법을 극복하게끔 해 줍니다. 비어 있음으로 살펴보면 모든 것은 곧 다른 모든 것이고, 우리는 더불어 있으며, 모든 사람은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가꾸어갈 때 당신은 온세상의 평화를 실현해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웃음을 머금고 깨어 있는 호흡으로 당신 내면을 일으켜 세운다면 당신은 세상의 평화를 위해 일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웃음은 당신 자신만을 위한 웃음이 아닙니다. 당신의 웃음으로 세상이 변할 것입니다. 당신이 자리에 앉아 명상을 할 때, 앉아 있는 순간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내면의 고요와 행복을 이뤄낸다면 당신은 이미 평화로운 세상의 초석을 다진 것입니다. 당신 자신이 평화롭지 않다면, 어떻게 다른 이들과 함께 평화를 나눌 수 있겠습니까? 당신 자신의 평화를 위한 일부터 시작하지 않는다면, 어디에서 그걸 시작하겠습니까? 앉으십시오. 미소 지으세요. 그리고 사물을 바라볼 때 진실로 알아보세요. 이런 일들이 바로 평화를 위한 노력의 밑바탕입니다.

 


어제 명상 수련을 하며 우리는 귤 나누기를 했습니다. 모두 귤을 하나씩 받았습니다. 우리는 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그것이 실재實在임을 깨닫도록 호흡하며 바라보았습니다. 대개 귤을 먹을 때 우리는 그렇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잡다한 생각을 하기 일쑤입니다. 귤 한 개를 바라보는 건 과일이 열리는 꽃을 보는 것이고, 햇빛과 비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 손 안의 귤은 생명의 놀라운 실존입니다. 우리는 그걸 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귤꽃의 향기와 따뜻하고 촉촉한 흙의 냄새도 맡을 수 있습니다. 귤이 실재가 됨에 따라 우리도 실재가 되는 것입니다. 생명은 바로 그 순간 실재가 되는 겁니다.


우리는 마음을 모아 귤의 껍질을 벗기고 달콤한 향기를 맡았습니다. 주의 깊게 귤의 잘린 속을 관찰하고 맛을 봄으로써 그것의 실재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 먹어치울 때까지 완벽하게 마음을 모아 조각들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귤을 먹는 건 아주 중요합니다. 귤과 그 귤을 먹는 사람 모두 실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역시 평화를 위한 기초적인 일입니다.


불교적 명상에 따르면 이러한 깨우침을 5년이나 10년 뒤에 성취하겠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순간들이 실재의 삶이 되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명상할 때는 그저 앉기 위해 앉아야지, 다른 무언가를 하기 위해 앉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20분 동안 앉아 있다면, 20분은 우리에게 생명력과 기쁨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우리가 걷기 명상을 할 때에는 어딘가에 도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걷기 위해 걸어야 합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힘 있게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걸음이 우리에게 실재의 삶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아침을 먹을 때에도, 아이를 두 팔로 안을 때에도 우리는 그렇게 마음을 모아서 해야 합니다. 포옹은 서양식 풍습이지만 동양에서는 의식적인 호흡법의 하나로 포옹을 합니다. 두 팔로 당신의 자녀 또는 어머니, 남편, 친구를 안아 줄 때 숨을 세 번 들이쉬고 내쉬어 보십시오. 그러면 최소한 열배 넘게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를 바라볼 때에도 마음을 모아 진실하게 바라보며 의식적인 호흡을 해 보세요.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당신의 그릇을 바라보며 가만히 나의 그릇은 지금 비어 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맛있는 음식이 차려질 것임을 안다.”라고 읊조려 보세요. 음식이 다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이나 당신이 요리를 하는 동안 세 번 호흡하면서 그것을 더욱 주의 깊게 바라보세요. “지금 이 순간 세상의 많은 사람들 또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그릇은 오랫동안 비어 있었다.”


날마다 4000여 명의 어린이가 먹을 게 없어 죽어갑니다. 오직 어린이만 따졌을 때 그렇습니다. 우리는 잘 차려진 음식을 앞에 두고 매우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또한 매우 괴롭습니다. 우리는 볼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그렇게 볼 때 그것은 우리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해 줍니다. 우리 앞의 그 방식은 분명한 것입니다. 그런 방식의 삶일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을 함께 평화롭게 만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과 악, 경이로운 것과 몹시 고통스러운 것을 대면했을 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상 모두를 평화롭게 만들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야 합니다. 깨달음은 명상의 열매입니다. 깨달음은 모든 것의 바탕입니다.


우리가 내쉬는 숨들, 걷는 걸음들, 짓는 웃음들은 우리의 평화에 긍정적인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세상의 평화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발걸음들입니다. 더불어 있음의 원리에 따라 당신의 일상 속 평화와 행복은 세상의 평화와 행복을 뜻합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발로키타의 말씀을 끝까지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당신이 거기 있었기에 반야심경이 아주 쉬워졌던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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