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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뉴스앤조이] 사회적 참사 앞에서 '회복적 정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4. 23. 10:23

사회적 참사 앞에서 '회복적 정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 정치적 변혁 운동에 더 깊이 참여해야 하는 이유

 

2024. 4. 23.
김훈태

 

응보 감정과 두 번째 화살

불의한 일을 보았을 때 우리는 도덕 감정을 느낀다. 우리 내면에 정의 욕구가 있기 때문인데,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정의는 사회라는 건물을 유지하는 중요한 기둥이고 불의의 만연은 이 건물을 철저히 파괴한다고 말한다.1) 그에게 정의 욕구란 피해자의 분노에 동감하면서 나오는 것으로, 분노에 따른 반감이 정의라는 형태로 구체화되는 것이다. 이 반감은 응보 감정으로 발전한다. 잘못한 자가 고통을 겪길 바라는 마음은 우리의 집단의식에 아로새겨져 있다.2) 그러나 응보 감정에 사로잡히는 순간 우리는 사건의 맥락을 잃고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놓치게 된다. 강한 반감과 도덕적 판단에 의해 마음이 경직되는 것이다. 

응징을 바라는 마음의 껍데기 안에는, 피해자의 피해가 회복되고 공동체의 관계가 치유되길 바라는 진심이 숨어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 다시 말해 껍데기와 같은 입장이 아닌 속마음으로서의 실익을 들여다볼 때 우리는 두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있다.3) 이러한 속마음을 어떻게 드러내고 또 알아줄 수 있을까. 다행히 우리는 말이라는 귀한 도구를 가졌다. 말은 칼이 될 수도 있지만 약이 될 수도 있다. 마음을 알아주는 대화를 통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는지, 그리고 바라는 게 진정 무엇인지를 나눌 수 있다. 그때 비로소 당사자들은 반감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사건을 직면하고 인간적 해결을 모색할 수 있다. 


회복적 정의의 한계를 넘어

회복적 정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처벌 중심의 사법이 갖는 한계를 깨닫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피해자의 피해 회복과 가해자의 자발적 책임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회복적 대화 모임의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다. 회복적 경찰 활동의 참여자 중 90% 이상이 만족해한다는 설문 조사가 이를 증명한다.4) 이렇듯 회복적 정의 운동은 공동체 내 개인들 간의 분쟁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 그렇다면 사회적 분쟁이나 구조적 불의에 대해서는 어떨까. 회복적 정의는 과연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치유하고 있을까. 이스턴메노나이트대학교에서 갈등 전환 프로그램의 개발 책임을 맡았던 보니 프라이스 로프턴은 회복적 정의의 한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5)

1. 회복적 정의는 범죄의 사회-경제적 뿌리를 다루는 데 실패하고 있으며, 이로써 예방적이지 못하다.
2. 회복적 정의는 범죄에 관해 개인들 사이에서만 문제 되는 현상 유지적인 규정을 채택하며, 이로써 좀 더 크고 좀 더 파괴적이며 체계적으로 영속화되고 있는 범죄들을 다루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는 이것이 마치 "출혈하듯 범죄를 쏟아 내고 있는 체계에 조그마한 반창고를 붙여 그 상처 부위를 막으려고 시도하는 것과 같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는 회복적 정의 담론이 지나치게 개인적 층위에 매몰되어 있음을 뜻한다. 회복적 정의의 질문은 사회적 층위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가해자 처벌 중심에서 피해자 회복 중심으로 이행하는 동시에 범죄 발생의 사회구조적 원인에 대해 시선을 넓혀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누가 피해자이고, 어떤 피해를 입었으며, 피해 회복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범죄의 사회적 원인은 무엇이고, 유사한 다른 사건들 안에 어떤 구조적 유사점이 있으며, 향후 재발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은 무엇인가'와 동행해야 한다.

우리 삶의 개인적 층위와 사회적 층위

층간 소음으로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당사자들에게 회복적 대화 모임은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잘잘못을 가리는 형사 사법과 달리 당사자 간에 무엇이 힘들었고, 어떤 사정이 있었는지를 말하고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갈등 조정만으로 절차가 모두 끝난다면 분쟁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회복적 정의는 소음 기준을 충족할 때까지 건물주가 보완 시공을 하도록 강제하고, 건물을 지을 때부터 정부가 규제를 강화하도록 하는 사회운동과 연결되어야 한다. 개인 간의 분쟁은 대부분 사회적 모순에서 온다. 구조적 불평등과 불의를 직시하지 못하고 개인 간의 다툼에만 초점을 맞출 때 회복적 정의 운동은 기존의 지배 체제에 포섭될 수 있다.

변형적 사회 활동 모델6)



사회적 층위의 문제를 개인적 층위의 문제로 환원하거나 그 반대의 환원 오류에서 벗어나려면, 두 층위의 관계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 영국의 과학철학자 로이 바스카는 사회구조와 개인들이 상호 간 영향을 주고받는 '변형적 사회 활동 모델'을 제시한다. 사회는 개인들을 사회화하고, 개인들은 그러한 사회를 재생산하거나 변형시킨다. 이러한 관점을 수용함으로써 우리는 정의를 개인 간 문제로 축소하지 않으면서 사회의 변형 또는 변혁, 즉 사회정의를 추구할 수 있다. 따라서 회복적 정의는 변혁적(transformative) 정의를 아우르는 개념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개인 차원의 범죄뿐 아니라 기업 범죄, 국가 범죄, 그리고 사회적 참사에 대해 회복적 정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존의 응보적 정의에 따르면 사회적 참사를 일으킨 책임자들을 찾아내어 처벌하면 문제는 해결된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무리된다면 피해자와 유가족뿐 아니라 영향을 받은 수많은 사람의 피해는 회복되기 어렵다. 끝내 일부 책임자를 처벌했다 하더라도 구조적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참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역사를 통해 경험했듯이, 참사를 일으킨 자들은 권력을 이용해 책임을 회피하고 여론을 조작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 온전히 이루어진 참사는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올바른 질문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21세기 이후에도 우리는 후진국형 참사를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2003년에는 대구지하철 참사가 벌어졌고, 2011년에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세상에 알려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는 전 국민이 실시간으로 정부의 구조 실패를 지켜본, 학살에 버금가는 사건이었다. 많은 시민이 잊지 않겠다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촛불을 들었지만 사회구조의 변화에 실패하면서 2022년 또다시 이태원 참사를 겪어야 했다. 이제는 누가 가해자이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그리고 누가 피해자이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한 질문 이외에 새로운 질문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참사의 사회적 원인은 무엇이고, 사회적 참사들 안에 어떤 유사점이 있으며, 향후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 진정한 대책은 무엇인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생활 화학제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기업들이 이윤에만 관심을 가질 뿐 국민의 안전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하며, 이를 관리해야 할 정부는 무능하고 안일했음을 보여 줬다.7) 살균 물질의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은 채 인체에 무해하다고 광고한 기업들과 이를 제대로 규제하지 않은 정부는 막상 피해가 현실화하자 책임을 회피하고 축소하기에 바빴다. 세월호 참사 역시 일본에서 들여온 퇴역 여객선을 무리하게 증축하고 불법적으로 운행한 기업과 이를 방조한 정부, 특히 침몰 당시에 드러난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은 조직적이었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인정하고 치유와 회복에 나설 의지와 역량이 없다는 것 역시 반복되는 참사의 중요한 공통점이다.

우리가 기업과 국가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는 다시는 비슷한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해서이다. 기업 범죄나 국가 범죄의 경우 불법행위를 결정한 자들을 강력히 처벌하고 제도적으로 규제를 강화할 때 비로소 재발을 막을 수 있다.8) 우리 사회는 그동안 재벌 대기업의 편법과 불법에 대해 봐주기식 수사와 솜방망이 처벌로 특혜를 주었다. 언론과 검찰, 사법부 모두 기업 범죄인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호의적이며, 상호 간에 금전적 이익을 취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국가 범죄 역시 이해관계로 얽힌 관료 집단은 진상 조사는 물론이고 책임자 처벌과 제도 개선에 극히 비협조적이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가 집단과 관료 집단이 특권 계층화했음을 보여 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회복적 정의는 사회를 어떻게 변혁할 것인가

사실상 우리 사회는 참사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 대규모 참사는 아니어도 날마다 노동자가 몇 명씩이나 죽고 있다는 현실에 언론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일을 하기 위해 출근한 우리 가족이 하루에도 몇 명씩 살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2023년 한 해 산업재해 사망 사고는 584건이 일어나 598명이 숨졌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2023년 재해 조사 대상 사망 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산재 사망자 절반가량은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업종별로 보면 건설업은 297건의 산재로 303명이 숨져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매년 건설 현장에서만 세월호가 한 척씩 물에 잠기는 것이다.

생명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불평등 사회에서 가장 먼저 붕괴되는 것은 도덕성이다. 도덕성 상실은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을 불러온다. 이것은 사회적 층위와 개인적 층위에서 동시에 벌어지는 것으로, 사회라는 건물의 기둥인 정의를 파괴한다. 건설업에서는 산재 사망자도 많이 나오지만 부실시공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신축 아파트 단지마다 철근이 상당수 누락된 채 부실시공 되었다는 뉴스는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 준다. 2023년 4월 29일 검단 신도시의 아파트 건설 현장이 붕괴된 것은 지하 주차장 무량판 기둥의 보강 철근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철근이 누락된 원인은 건설사의 비리와 감독 기관의 비리, 다시 말해 도덕성이 붕괴된 사회구조에 있다. 1970년 붕괴 참사가 벌어졌던 와우아파트 역시 마찬가지 이유였다.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은 회복적 정의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다. 피해자와 유가족이 강하게 주장하는 것은 피해 보상보다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이다. 이러한 요구의 실익은 참사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밝히고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2024년 1월 27일부터 50명 미만의 사업장에서도 적용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그러한 대책 중 하나이다. 기업 경영 책임자가 안전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해 사망 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형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법이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사회가 도덕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개인의 양심에만 기댈 수 없다. 참사를 예방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 필수이다. 

따라서 회복적 정의가 노력해야 할 일은 두 가지 층위에 걸쳐 있다.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상처와 필요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그리고 참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사회의 지배 형태를 더 정의롭게 바꾸는 것이다.9) 우리는 더 자주 사회적 불의에 관해 말해야 하고, 더 많은 사람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사회적 참사를 마주하는 우리의 과제는 개인들의 치유와 회복뿐 아니라 정치적 변혁 운동에 더 깊이 참여하고 실천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이 10년째 제정을 요구하는 '생명안전기본법'은 회복적 정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같다.

 

1) 애덤 스미스, 박세일 옮김, <도덕감정론>, 비봉출판사, 2009: 162-163.
2) 에밀 뒤르케임, 민문홍 옮김, <사회분업론>, 아카넷, 2012: 165.
3) "비구들이여, 아직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괴로운 느낌을 받으면 비탄에 잠기면서 매우 혼미하게 된다. 그것은 마치 첫 번째 화살을 맞고 난 뒤에 다시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과 같다. 반대로 이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은 괴로운 느낌을 받아도 쓸데없이 비탄에 잠겨 혼미하게 되지 않는다. 그것을 나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다'라고 말한 것이다." <잡아함경> 제17권 470경.
4) 2023년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피해자는 91%, 가해자는 93%가 결과에 만족한다고 답했다.
5) 보니 프라이스 로프턴, 변종필 옮김, '회복적 정의는 체계적 부정의에 도전하는가?', <회복적 정의의 비판적 쟁점>, 한국형사정책연구원, 2014: 385-386.
6) 로이 바스카, 김훈태 옮김, <자연적 필연성의 질서>, 두 번째 테제, 2021: 59.
7) "세월호·가습기 참사는 느닷없이 일어나지 않았다", <한겨레21>, 2022.09.03.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57337.html
8) 김혜경, <처벌의 원리 - 공동체 가치로서 연대성과 처벌의 인간화>, 마인드탭, 2018: 288.
9) 앤드류 울포드·아만다 네룬드, 김복기·고학준 옮김, <회복적 정의의 정치학>, 대장간, 2022: 47.
 

김훈태 / 한국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성공회대 사회학과 박사 수료. 초등교사로 일하다가 불교 신자로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했다. 수감 생활을 마친 뒤 대안 학교인 발도르프학교에서 다시 아이들을 만났다. 현재 슈타이너사상연구소를 운영하며, 발도르프 교육과 회복적 생활교육을 연구하고 있다. 경찰서와 교육기관 등에서 갈등 조정 전문가로 활동하기도 한다. 저서로 <교사를 위한 인간학>·<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회복되는 교실>(교육공동체벗) 등이 있다.


[출처: 뉴스앤조이] 사회적 참사 앞에서 '회복적 정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6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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