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사회삼원론과 행복한 삶 (2) 본문
개인의 불안은 잘못된 사회 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지기보다 나빠졌다는 걸 돌아봐야 합니다. 제가 학교를 다니던 8, 90년대만 해도 지금처럼 경쟁이 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입시교육이 중심이었지만 최소한 교실에서 친구들끼리 경쟁한다는 느낌은 거의 없었습니다. “공부 잘하는 놈은 나중에 안 찾아온다, 공부 못하고 말썽부리던 녀석들이 그래도 의리가 있다”, 이런 얘기를 선생님들이 많이 하셨지요. 아직은 공동체 문화가 남아 있던 시기였습니다. 실제로 20세기 말, IMF체제가 들어오면서 우리의 의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공동체 문화라는 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각자도생의 시대가 펼쳐졌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누구나 신자유주의자가 된 셈입니다.
모든 게 상품이 되었고, 시장화가 급속히 진행되었습니다. 이제는 학교도 교육도 상품이고, 학생과 부모는 교육소비자, 교사는 교육서비스 노동자처럼 되었습니다. 누구나 자기 이익을 절대적으로 중요시 여기고, 아무도 손해보려고 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무능한 사람은 도태되어야 합니다. 사회는 그저 개인들의 집합소이고, 능력이 뛰어나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 무능한 사람은 대놓고 무시를 당합니다. 저는 이것이 완전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지금 이토록 불안해진 것도 이렇게 잘못된 사고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고에 우리가 빠지게 되는 것은 사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다 내려놓고 순수하게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교육이란 무엇이고, 경제란 무엇인지, 행복하게 산다는 게 진정 무엇인지 우리는 스스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연히 교육은 아이의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닙니다. 지금 아이가 행복하게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고, 아이의 자아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입니다. 경제는 약육강식의 전쟁이 아니지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철저하게 이기적입니다.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가 곧 경제인 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여러분을 뵐 수 있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해주어서입니다. 이 옷을 제가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 커피도 먼 나라의 누군가가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또 누군가가 커피콩을 옮겨오고 볶아서 내려준 것입니다. 이 건물도 마찬가지지요. 많은 사람이 애써서 건물을 지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다른 이들의 노동에 의해서 살 수 있습니다. 근대사회가 되면서 사회는 복잡하게 분업화되었습니다. 이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분업화된 일을 우리가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노동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라 타인들을 위해서입니다. 이러한 상식적인 생각을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는 왜곡해 버립니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은 인간을 합리적이지만 매우 이기적인 존재로 상정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중 사회를 떠나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신자유주의는 마치 사회를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회 공동체 안에서 협력하며 사는 존재지요. 따라서 경제 영역은 박애의 정신을 기반으로 해야 합니다. 박애 또는 형제애, 우애, 사랑이 경제적 가치인 것입니다. 나는 타인들의 노동에 의해 살 수 있고, 내가 노동하는 것은 타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실상에 대해 왜곡된 사고를 갖게 합니다.
올바르게 사고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발도르프 교육을 선택할 거라는 믿음을 여전히 저는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사회가 겪었던 지난 몇 년간의 지독한 퇴행은 우리의 잘못된 사고방식, 다시 말해 이기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그 원인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내란행위로 탄핵된 대통령을 누가 뽑았습니까? 바로 우리가 뽑았습니다. 직접 뽑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막지 못한 책임이 큽니다. 코로나를 잘 극복하고도 우리는 그런 바보 같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의 마음 한켠에 ‘나도 부자가 되고 싶다, 나도 기득권이 되고 싶다’라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요. 100여 년 전, 처음으로 발도르프학교가 세워질 때 슈타이너는 사회삼원론 운동에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1914년부터 18년까지 이어졌던 끔찍한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슈타이너는 이러한 전쟁의 원인이 사람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획일화된 국가권력, 즉 중앙집권화된 권력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가 최근에 읽은 책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낸시 프레이저의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이라는 책인데요. 여기에서 ‘진보적 신자유주의’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진보적 신자유주의, 특이한 이름이지요? 간단히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프레이저는 사회적 불의에 대해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경제적 불평등과 관련된 분배의 문제, 그리고 소수자나 약자의 정체성과 관련된 인정의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당이 취하고 있는 입장을 보면 유색인종이나 성소수자, 여성에 대해 인정하고 존중하는 정책은 제법 과감하게 펼치고 있습니다. 상당히 진보적이지요. 그런데 분배 문제에서는 세련된, 또는 교묘한 신자유주의적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 유명해진 성소수자나 부유한 흑인, 기득권에 편입된 여성 등이 민주당 내에서 높은 자리를 갖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중산층이나 하층민은 심각한 경제 불평등 때문에 불만이 매우 큽니다. 분배의 문제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온 게 트럼프입니다. 트럼프는 극우 포퓰리즘을 내세웠지요. 백인 중산층, 서민들의 분노를 약자에 대한 혐오로 전환해서 유색인종과 이주민을 혐오하도록 선동하며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지지자들에게 다시 위대한 아메리카를 만들자고 거짓 약속을 했습니다.
곧 대선이 있어서 정치 얘기를 했는데요. 그만큼 우리의 삶이 이 선거로 인해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는 늘 시대정신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시대의 흐름을 좀 더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민주당이 어느 정도 ‘진보적 신자유주의’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IMF 체제는 김영삼 대통령이 불러들였지만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습니다. 물론 이명박 같은 사람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요. 정말 심각한 문제는 보수 정권, 정확히는 극우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우리의 삶이 그들의 장밋빛 약속과 달리 매우 처참하게 추락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진지하게 분배의 문제를 의제로 내세워야 합니다. 기득권이 모든 걸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세계관, 우리에게 너무나 깊이 들어온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을 극복해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보수 정당이 중심을 잡고 제대로 된 진보 정당이 약진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극우 정당은 완전히 퇴출되어야 하겠고요.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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