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사회삼원론과 행복한 삶 (3) 본문
사회삼원론적 사고방식
루돌프 슈타이너 역시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천박한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사회삼원론 운동의 일환으로 그는 노동자와 사용자가 협의를 하면서 기업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용자의 일방적인 기업운영은 노동자를 착취하고 과잉생산을 일으킬 우려가 항시 존재합니다. 슈타이너의 노사협의체 운동은 독일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에밀 몰트라는 사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그가 바로 첫 번째 발도르프학교를 열 수 있도록 토대를 제공한 발도르프-아스토리아 담배회사의 사장입니다. 처음에 그는 슈타이너를 초대해 노동자들에게 강연을 할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대부분 여성, 다시 말해 어머니들이었습니다. 많은 남성이 전쟁터로 끌려가 죽거나 장애인이 되었으니 어머니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그분들이 강연을 들으며 우리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더 큰 변화의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1919년 가을 슈투트가르트에 첫 번째 학교가 생겼습니다.
발도르프 교육운동의 근간에 사회삼원론의 정신이 있습니다. 사회삼원론은 우리의 기존 관념을 근본부터 흔듭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아이를 이 학교에 보낼 때 학비를 냅니다. 왜 학비를 내지요? 우리 아이가 학교에 다니니 그 댓가로 낸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은 발도르프학교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일반학교에서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우리 엄마 아빠가 내는 세금으로 돈 받는 거 아니에요?” 교육 상품에 대한 비용을 지불했으니 서비스를 똑바로 하라는 뜻일 겁니다. 그런데 교육은 경제 영역에 속하지 않습니다. 교육은 사고팔 수 없습니다. 교사들이 열심히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돈 많이 벌어서 부자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학비를 내는 것은 사실 이 발도르프 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후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제 활동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은 나 혼자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회를 위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일을 해서 돈을 벌었을 때 우리는 이 돈을 어디에 쓰는 게 좋을까요? 그렇습니다.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일에 집중적으로 써야 합니다.
우리 삶의 행복은 대부분 정신적이고 문화적인 활동을 할 때입니다. 가까운 사람과 우정을 나눌 때,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낼 때, 예술활동을 즐길 때, 그리고 공부를 할 때도 참 행복합니다. 학교는 바로 그 정신-문화 영역에 속하는 것이고, 자유의 정신을 기반으로 합니다. 자유롭게 교육 활동이 벌어지려면 경제 영역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것은 사실 무상으로 보내는 게 맞습니다. 돈이 없다고 학교를 못 보낸다거나 돈이 많은 사람은 아주 비싼 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지요. 돈이 많으면 학교에 후원을 많이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 힘들면 적게 후원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학교가 잘 운영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경제 영역에서 들어오는 아낌없는 후원이라는 것입니다. 학교 운영에서 부모들만의 후원이 아니라 기업체나 독지가의 도움을 받는 것은 학교의 생존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자, 이제 우리가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를 아시겠지요? 돈을 많이 버는 것 자체는 매우 좋은 일입니다. 그 돈이 정말로 의미 있는 일에 쓰일 수 있다면요.
슈타이너의 경제학에 따르면 돈, 즉 자본은 우리 모두의 공공재입니다. 경제라는 것은 반드시 둘 이상의 협업이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이 무인도에서 혼자 고기 잡고 농사지어서 사는 것을 경제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외부 세상에서 노동을 하고 무언가를 생산합니다. 목재나 철광석 같은 것을 원자재라고 한다면, 이것을 이용해 만든 의자나 자동차는 자본재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상품이 되고 시장에서 팔려나가 자본이 됩니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 상품이 생산되고 운반되며 소비됩니다. 이 결과 생겨나는 자본은 마치 식물의 꽃과 같습니다. 더 정확히는 꽃에서 나오는 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자본은 태양이라는 정신-문화 영역을 향합니다. 따라서 사적 이윤 추구를 위해 경제 활동을 한다거나 자본이 축적되어 기득권 계급을 위해 쓰이는 것은 사회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자본은 정신-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살찌우는 데 쓰여야 합니다. 정신-문화 영역에서 나오는 창조적 힘은 경제 생활을 더욱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앞서서 정치 이야기도 했지만, 정치는 경제 생활과 문화 생활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정치, 법률, 국가 영역은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약속들과 관련이 깊습니다. 누구나 똑같이 지켜야 할 약속입니다. 그러니 평등의 정신이 핵심을 이룹니다. 부자가 됐든, 고위공직자가 됐든 정치적으로 평등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최근에 사법부가 내란과 대선에 개입을 해서 큰 문제가 되었는데요. 실제로 일부 판사나 검사 같은 법조인들이 우리 사회에서 특수계급화되어 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서 법은 특권적 위치를 차지합니다. 법이 강제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저는 신자유주의와 사법화, 두 가지를 들고 싶은데요.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갈등을 전부 다 사법기관의 힘으로 해결하려는 경향, 즉 사법화를 굉장히 우려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사안도 모두 사법부에서 판단하고 결정하는 흐름이 커지다보니 검사나 판사들의 권력이 너무 막강해졌고, 이 권력을 사유화하고 계급화하면서 민주주의가 왜곡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병원이나 학교 같은 일상 생활 영역까지 사법화가 이뤄지면서 작은 갈등도 대화로 풀지 못하고 고소, 고발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습니다. 법은 최후의 보루로 남겨져야 하고 법조인들도 권력을 사유화하지 못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는 공동체 관계를 새롭게 복원해야 합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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