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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사회삼원론과 행복한 삶 (4) 본문

인지학/사회삼원론

사회삼원론과 행복한 삶 (4)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5. 6. 4. 17:46

더 많은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87년체제를 넘어서야 할 때에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87년체제는 민주화 운동의 커다란 성취이기도 하지만 한계이기도 합니다. 87년체제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크게 세 가지입니다. 하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한계, 다른 하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 그리고 분단체제입니다. 이번 내란도 북한과의 갈등을 이용하려고 했지요. 아직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외환 유치의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실제로 전쟁이 났을 수도 있다고 하지요. 당장 통일은 못하더라도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이끌어내는 것은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매우 시급한 일입니다. 때가 어느 때인데 여전히 종북, 빨갱이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다음으로 경제 문제인데요. 신자유주의적 경제질서를 넘어서는 일에서 저는 사회삼원론이 의미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양극단을 넘어서는 일에 사회삼원론적 경제논리가 중대한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슈타이너 경제학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이 기업을 운영하되 그 결실이 사적 소유가 아닌 사회 전체로 환원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생산성이 좋은 기업의 운영자와 노동자들은 어느 정도의 혜택이 주어져야 하고요. 노사간 협의는 필수입니다. 독일 같은 경우 현재에도 기업의 이사회에 노동자측이 50%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이 법제화되어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나 지역화폐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슈타이너의 경제학과도 상당히 밀접한 주제라 저는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민주주의, 직접적이고 참여적인 민주주의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치인들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모두 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 국회의원, 시장, 시의원 등은 이 학교에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그분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의 발도르프학교 중에는 시에서 땅을 100년 정도 무상으로 임대해주는 곳도 있습니다. 학교 차원에서 현실 정치와 긍정적인 협력관계를 마련하는 것도 무시못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학교 안에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발도르프학교의 민주주의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요? 제가 얼마 전 슈타이너의 <일반인간학> 10강을 강의하면서 감동받은 내용이 있는데요. 잠깐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한 인간이 우주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가 경외감을 갖지 못한다면 말, 즉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왜 저에게 감동적이었냐면, 저는 갈등조정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기도 한데 관계 회복을 위해 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많이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대화할 것인가에 대해 연구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슈타이너는 그 대화, 즉 말은 우리가 정신성을 놓칠 때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학교 안에는 정말 많은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 자체는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우리의 공동체가 정말로 민주적이고 건강하다면 갈등은 우리를 성장시키는 교육적 자산이지요. 이 부분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신적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그 사람의 본질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고 놀라워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게 발도르프 교육의 위대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경외감 또는 우주적 감정을 우리가 가질 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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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여상훈 옮김, <일반인간학> 제10강, 한국인지학출판사, 2023: 240-241쪽

 

오늘 우리는 이 시대가 어떻게 물질주의로 빠지게 되었는지 확실히 이해하려 시도하면서, 구와 조각달 형태, 사지의 방사형 등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겉보기에 완전히 상반된 것으로 시작해서 거대하고 엄청난 문화사적 사실들을 밝히려 한 것입니다. 이런 문화사적 사실들을 그 근본부터 잘 아는 것이 교사에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성장하는 아이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잘 알아야 교사 자신의 내면을 바탕으로 아이들과의 무의식적이거나 잠재의식적인 관계를 통해서 올바르게 교육하려 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을 자기 내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어야 인간의 형상을 제대로 중요하게 여기게 되고, 인간의 모든 형상이 거대한 우주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런 인간에게서 잘 발달한 작은 동물, 잘 발달한 동물만을 보는 것과는 달리 인간의 형상을 보게 됩니다. 상급 학년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흔히 착각하듯이, 근본적으로 오늘날의 교사는 성장하는 인간을 작은 동물로 여기고 이 작은 동물을 자연이 이미 발달시킨 상태보다 조금 더 발달시키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사람을 대합니다. 그런데 그런 교사가 "어느 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에게서 세계 전체와의 관계가 나온다. 그러니 내가 자라나는 각각의 아이의 그 무엇인가에 작업을 하면 그것은 세계 전체에 의미가 있는 작업인 것이다." 하고 말한다면, 그 교사는 앞서 말한 의식과는 달리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실에 있다면, 그곳의 각 아이들은 세계의 중심, 대우주의 중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교실이 대우주에게는 중심점, 아니, 중심점들인 것입니다.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생하게 느끼면서 생각해 보십시오!

 

그 교실에서 세계에 대한, 그리고 세계와 인간의 연관성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모든 수업을 신성하게 만드는 느낌으로 바뀌는지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인간과 세계에 대해 그런 느낌을 갖지 않고는 진지하고 올바른 수업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런 느낌을 얻는 순간, 그 느낌은 어떤 비밀스러운 통로로 아이들에게 전해집니다. 이전에 다른 맥락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땅속에 묻은 동판에 전선을 연결해 두면 전선 없이도 땅속에서 전기가 계속 전달되는 신기한 일이 벌어집니다. 오로지 자기중심적인 감정만 지닌 채로 학교에 간다면, 여러분은 온갖 전선, 즉 말을 동원해야 아이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앞에서 펼쳐 본 착상처럼 커다란 우주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감정은 전기가 땅속으로 전달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전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아이들과 하나가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과 모든 학생 사이의 비밀스러운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육학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런 감정을 바탕으로 세워져야 합니다. 교육학이 학문이 되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예술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속적으로 그런 감정을 지니고 살지 않으면서 배울 수 있는 예술은 어디에 있을까요? 교육학이라는 위대한 삶의 예술을 실행하려 할 때 우리가 지녀야 할 감정, 교육학을 지향해서 지녀야 할 그 감정은 거대한 우주, 그리고 우주와 인간의 연관성을 관찰할 때 불타오르게 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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