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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삶에서 동력 찾기 (1) - 미하엘 데부스 본문

인지학

삶에서 동력 찾기 (1) - 미하엘 데부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10. 25. 06:31

삶에서 동력 찾기


미하엘 데부스

 

 

*가브리엘 대천사() :16세기 ~ 1879, 역동적 시기,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시기

 

*미카엘 대천사(): 1879~ 23세기

 

대천사는 한 시대(소문화기)를 보호해 주는 정신적 존재를 말한다. 큰 주기의 문화의 시대는 약 2000년 주기로 변화된다. 그 안에 작은 문화의 시대는 약 350년 정도의 주기를 가진다. 이는 대천사의 의도에 따라 이루어진다.

 


가브리엘 대천사는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 일을 관장한다.

 

, 탄생과 관계가 있다. 인간의 탄생은 정신세계에서 지상세계로 내려오는 것을 말한다. 발도르프학교에서는 매년 성탄절마다 이것과 관련된 특별한 연극을 한다. 이 연극은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이 연극은 발도르프교사연수를 통해 교육받은 내용으로, 세계 어디에서나 똑같은 내용과 형식으로 거행이 된다. 이 연극은 3부로 나누어져 공연이 되는데, 1부 파라다이스에서는 아담과 이브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은 무대 위의 배우가 자신들의 선생님들인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정말 천사가, 아담과 이브가 내려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학년이 높아 가면서 그 배우가 자신의 담임교사임을 알고 무척 실망하지만 곧 아이들은 무대 위의 아담과 이브가 자신의 담임교사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1부에 등장하는 천상의 신과 아담은 꼭 남자교사가 맡는다. 그 외 역할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상관이 없다. 자유학교에서도 곧 이 연극이 거행되길 희망한다. 이 연극이 아이들에게 공연되려면 한 달반 정도의 기간 동안 집중연습이 필요하다. 이때엔 학부모들의 보이지 않는 지지가 필요할 것이다.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것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 보내는 일이다. 그런데 이 하강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다. 출생과 추방이 그것이다. 아기를 출산하는 과정도 3단계에 걸쳐 진행이 된다. 열리는 단계를 거쳐 밀어내는 단계 그리고 그다음이 출생이다. 오늘날 이러한 탄생의 증가를 단순히 출산율의 증가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정신세계에서 지상세계로의 탄생은 이것 이외에도 더 많은 것이 지상세계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16세기에는 정신세계보다 지상세계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이 시대는 과학과 기술이 발명되는 시기이다. 유럽에서는 세계를 정복하는 시대, 신대륙을 발견하는 시대, 온 세계가 하나가 되는 시대이다. 또한 세상이 물질적으로 가는 시대이기도 하다. 지상세계에만 너무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 물질주의자가 만연하게 된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과제는 출생과 추방이었다. 여기서 생겨난 물질주의 또한 정신세계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것이다.

 

 

미카엘 대천사는 죽음을 관장한다.

 

저울의 양 끝에 사람이 행한 선과 악을 저울질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미카엘 대천사는 항상 우리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세계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이 시대는 하늘을 관망하며 과학을 더 발전시킨다고 볼 수 있다. 과학을 다르게 보기 시작하면서 독립적인 인간이 된다. 종교에만 빠져 있으면 독립적인 성인이 되기 어렵다. 자연과학은 새로운 자극을 받아야 한다. 지상에서의 과학이 다시 정신세계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 다수의 사람이 정신세계로 가는 길은 종교적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시대부터 과학이라는 것을 다른 개념으로 생각해야 한다. 과학이라는 것은 정신세계를 기본으로 해서 탄생한 것이고 이것이, 미카엘 대천사의 과제이다. 그래서 발도르프교육은 종교가 아니라 정신세계를 되찾는 교육적 과학이다.

 

 

일상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왜 생기는 것일까?

 

현대인의 문제는 스트레스와 소진에 있다. 이 문제들은 외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는 것이다. 바로 스스로 결정하는 성인이 되고 싶은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살짜리 아이가 일어서고 움직이고 하는 모든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만약 어른에게 이 아이와 똑같은 하루를 보내라고 한다면 아마도 밤에 피로에 지쳐 쓰러질 것이다. 그런데 어른들과는 달리 아이들은 지쳐 쓰러지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없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힘찬 물살 위에서 배를 띄워 래프팅을 하는 것처럼 물살의 흐름에 따라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이 강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배에서 내려 강 중간에 버티고 서 있다면 아마도 물살에 떠밀려 쓰러지고 말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이 바로 아이들과는 다른 성인들의 모습이다. 강 중앙에 서서 어딘가 의지할 수 있는 곳을 붙잡고, 하루 종일 서서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서 있는 것이 성인의 모습이다. 흐름을 타고 주도적으로 배를 저어가는 아이들과는 달리 흐름과 맞부딪히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애만 쓰고 있는 성인들에게 부여되는 것이 스트레스이다.

 

외부의 통제 하에 있을 때 스트레스의 강도는 높아진다. 나의 선택으로 주도적으로 살 때 스트레스는 줄어든다. 스트레스의 증가는 일의 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통제 아래에 있느냐? 아니면 스스로 결정하느냐? 에 달려 있는 것이다. 가브리엘 대천사의 시대는 외부로부터 통제를 받는 시기였다. 예를 들어, 집에 청소기가 하나 박스에 담겨 배달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박스 안에 이제껏 쓰던 물건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기(청소기)가 들어 있다면, 당신은 함께 동봉된 사용설명서를 읽고 기기를 사용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보통은 사용설명서를 읽고 사용하는 것이 작동에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이때 사용설명서는 누가 누구를 위해 주는 것인가? 독일에서는 사용설명서를 도우미책자(도움안내서, 봉사안내서)라고 한다. 도움은 누구를 위한 도움인가? 기계가 인간을 위해? 아니면 인간이 기계를 위해? 정말 지금의 기계들이 사람들의 시중을 들고 있는 것일까?

 

마치 기계들은 인간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달리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기계의 시중을 들어야 작동이 되는 것이다. 만약 기계에 시중드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기계는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새롭게 생겨난 기계들이 사람들이 해야 할 자신의 일들을 해줘서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 것 같이 보이지만, 정말 우리는 기계의 도움에 힘입어 이전보다 더 많은 자유를 얻은 것인가?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면 수증기 속에서 6시간에 걸쳐 빨래를 해오던 엄마가 세탁기라는 기계를 들여놓고 난 뒤로는 더 이상 수증기 속에 쌓여 있는 엄마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세탁기로 인해 생긴 6시간 동안 엄마가 여유 있게 지내는 것도 보지 못했다. 엄마는 또 다른 무언가를 찾아 일을 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는 기술의 발달로 주어진 자유를 자신을 위해 쓰지 못하고 무언가 또 다른 일을 하는 데 그 시간을 쓰고 있다. 기계의 발달은 사람에게 자유를 제공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또 다른 무엇엔가 의지하며 살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다른 예로, 만약 약속장소로 가기 20분전,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작동을 하지 못한다면 무척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자동차를 정비소에 맡겨야 하고, 전화를 걸어 약속을 취소해야 하고, 그 약속과 연관된 나 이외의 다른 타인들의 인생도 혼란을 빚게 되는 것이다. 자동차나 컴퓨터와 같은 기계에 자신을 의존시키면 시킬수록 스트레스의 강도는 높아지고 자유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각종의 기계가 자유를 가져다주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져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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