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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아픔과 상실의 밤을 밝히는 치유 이야기> 역자 후기 본문

책소개 및 서평/발도르프교육 및 인지학

<아픔과 상실의 밤을 밝히는 치유 이야기> 역자 후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4. 27. 20:21

 


이 책의 번역을 의뢰받은 것은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인 2021년 봄이었다. 전세계적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크나큰 혼란이 세상을 뒤덮을 때였다. 책을 읽으며 나부터 깊은 위로를 받았다. 한 편 한 편 내 마음속 어둠이 밝혀지는 느낌이었다. 힘겨운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작업들을 모두 미루고 이 책에 매달렸다. 출판사 사정으로 예정보다 출간이 많이 미뤄진 것은 아쉽지만, 이제라도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어서 그저 감사할 뿐이다.
 
번역을 하며 근래에 세상을 떠난 소중한 이들을 떠올렸다. 모두 발도르프학교에서 일을 하며 맺었던 인연이다. 살면서 고통스러운 이별을 많이 경험했지만 사별이란 마음의 한 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비통이다. 여전히 마음의 구석 구석은 무너져 있다. 다만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마음의 영토가 넓어질 뿐이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다. 그저 한쪽이 무너진 채 살 뿐이다.
 
여기에서 그 이름들을 불러보고 싶다. 학교 동료로 만났던 강혜란, 고숙영 선생님, 학부모로 만났던 정재운, 윤종배 님, 그리고 나의 친구 선유와 제자 재민이. 이따금 또는 자주 생각을 한다. 함께했던 순간들이 반짝이며 떠올랐다가 부재의 상실감에 가슴이 무거워진다. 고맙고 그립고 미안한 마음이다. 
 
발도르프 교육과 인지학을 공부하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육신에 불과하지 않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인간에게는 영혼과 함께 정신이라는 본질적 요소가 있다. 정신으로서의 자아가 생을 반복하며 이 세상에 내려오고 또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다시 만난다. 이러한 세계관을 수용한 뒤로 비통이 내 삶을 지배하지는 않게 되었다. 떠나간 사람들이 그저 그리울 뿐이다.
 
수잔 페로우 선생님의 글은 마치 따뜻한 손이 거기에 있는 것처럼 영혼을 어루만진다. <마음에 힘을 주는 치유동화>의 번역에 참여했던 2016년 이후 계속해서 수잔 선생님의 글에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다. 덕분에 나는 나 자신을 위한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게 되었고, 틈틈이 내 아이들을 위해 이야기를 짓고 들려준다. 상상력이 가득한 이야기가 삶을 얼마나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지 모른다.
 
비통과 상실에 잠긴 어린이, 청소년, 어른을 위한 이 책의 이야기들이 독자들에게 크나큰 울림을 주리라 믿는다. 공교롭게도 4월에 책이 출간되었다. 4.3의 아픔과 4.16의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이다. 우리는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상처받은 영혼들이 치유받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5.18을 앞둔 이 시점에서 마음이 무너진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들이 위로가 되고 힘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2024. 4. 25.
서산에서 김훈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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