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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생각해보는 인간의 삼지체 - 인지학과 동양사상의 비교 (1) 본문

인지학

우리말로 생각해보는 인간의 삼지체 - 인지학과 동양사상의 비교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5. 23. 00:18

우리말로 생각해보는 인간의 삼지체 

- 인지학과 동양사상의 비교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신체, 영혼, 정신의 독일어 용어는 ‘Leib, Seele, Geist’입니다. 영어권에서는 ‘body, soul, spirit’으로 번역하고, 중국에서는 , , , 일본에서는 , , 등으로 번역해 사용합니다. 한국에서는 역자에 따라 , , ’, 또는 신체, 영혼, 정신등으로 번역합니다.

 

한국에 나온 인지학 책의 번역본을 살펴보면 양억관, 김성숙 선생님처럼 일본인 인지학자 타카하시 이와오의 일어본을 중역한 경우 , , 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물병자리 출판사에서 나온 초감각적 세계인식이나 신지학, 일반인간학등의 책을 보면 그렇습니다. 김정임, 이정희, 변종인, 최혜경 선생님처럼 독어본을 바로 번역한 경우 신체, 영혼, 정신이라는 용어를 씁니다. 그런데 최혜경 선생님의 경우 영혼적이라는 표현을 영적으로, 다시 말해 영혼을 영으로 쓰기도 하므로 , , 의 용어에 익숙한 사람은 혼동하기 쉽습니다. 섬돌출판사에서 인지학이란 무엇인가의 영어본을 중역한 조준영 선생님의 경우에는 신체대신 육체를 쓰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기본 용어가 통일되지 않고 사용되기에 혼란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보통 Leib에 대해서는 몸, 신체, 육체 등이 쓰이고, Seele는 영혼 또는 혼, Geist는 영이나 정신이라는 말이 혼재되어 쓰이는 실정입니다. 이는 인지학 및 발도르프 교육학을 수용하는 초기 과정에서 번역이 개별적인 작업 위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는 번역 작업을 한국 전체에서 통합하여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지학 기본 용어들을 통일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슈타이너는 신지학에서 인간의 구성 요소를 설명할 때 Leib뿐만 아니라 Körper를 쓰기도 합니다. 영어권에서는 둘 다 body로 번역하지만, 중국의 번역위원회에서는 둘을 구분하여 Leib을 신()으로, Körper를 체()로 번역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에서는 둘 모두를 으로 쓸 수 있는 동시에 Leib을 신체, Körper를 육체로 번역하는 것을 제안해봅니다. 자의(字意)를 풀이해보면 육()이 살과 근육 등 고깃덩이라면, ()는 뼈, 신경 등의 골격 구조와 관련이 깊습니다. ()은 아이를 뱃속에 갖고 있는 임산부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내포한 인간 존재로서의 몸을 뜻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Leib이라는 말에는 실제로 자궁 또는 모태라는 ‘Mutterleib’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슈타이너 원전을 읽다 보면 Leib이나 Körper의 의미 구분이 그렇게까지 엄격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대체로 Leib은 신체로 표기하되, 합성어의 경우에는 ‘-만 사용해 Physischer Leib, Ätherleib, Astralleib 등은 각각 물질체, 에테르체, 아스트랄체로 옮기고, Physischer Körper의 경우에도 물질체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독일어 용어를 완벽하게 한국어로 옮기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합니다. 하나의 용어를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 용어가 가지고 있는 본래의 의미와 새로 정립한 의미가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데다, 독일과 한국의 문화 전통이 다르기 때문에 사고의 바탕부터 상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 용어는 그러한 한계를 껴안고 가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어 원전을 영어나 일어로 번역한 것을 다시 한국어로 중역하게 되면 본래의 의미에서 한참 더 벗어나기 쉽습니다. 따라서 번역은 중역을 지양하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독일어 번역에 참고하는 것은 오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문학의 관점에서는 인간의 삼지체를 , , (, , )’으로 제안할 수 있는데, 언어적으로도 , , 은 깊은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한문에서는 통가자(通仮字)라 하여 음이 같으면 뜻이 서로 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 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만 같고 뜻은 상관없는 경우에는 동음자(同音字)라고 합니다. 그러나 신()Geist보다 Gott(, 조물주)을 연상시킬 뿐 아니라 신()과 음이 같아 혼동될 수 있으니 중국이나 일본처럼 영()을 쓰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독일어 Geist가 갖는 분명하고 깨어 있는 어감을 영이 충분히 살릴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래서 독어본을 번역하는 분들이 정신이란 말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절충점으로 정신과 영을 함께 쓰는 것을 제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Seele 역시 영혼과 혼을 함께 쓰고, Leib도 신체와 몸을 상황에 따라 바꾸어 쓸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 그 이외의 용어는 혼선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우리말로 생각해보는 삼지체

 

그러나 아쉬움은 남습니다. 번역 용어로 한자말을 많이 쓰는 게 한국어가 갖고 있는 정신성을 놓치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조심스럽지만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논의를 더 해보았으면 합니다. 인간의 삼지체를 고유의 우리말로 옮긴다면 , 마음,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양의 영혼 개념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일 것입니다. 영혼과 넋의 사전적 의미는 다 같이 사람의 몸속에 있어 마음의 작용을 다스린다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넋이 틀이라면 마음은 그 안의 알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넓게 보자면, 넋이 곧 마음이고, 마음이 곧 넋입니다. 실제로 그 둘이 섞여 쓰이는 경우도 흔합니다. 다만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넋보다 마음이 널리 쓰이므로 중국의 경우처럼 Seele를 심(), 즉 마음이라고 옮길 수도 있습니다.

 

마음은 느낌과 생각, 뜻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마음은 얼을 담는 그릇입니다. 우리말로 철학을 했던 다석 류영모는 사람의 주인이 곧 얼이고, 이 얼은 절대자인 신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우리말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문자를 한글이라 한다면, 한글에는 우리말의 정신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한글은 소리의 성질을 글자로 표현한 문자이기 때문에 입말과 글말이 하나입니다.

 

한국에서 좀 더 심화된 인지학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Geist, Seele, Leib’, 마음, 과 비교해 보고, ‘, 마음, 의 언어적 토대인 한글의 창제 원리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발도르프 교육을 추구하는 입장에서 우리는 인지학 자체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해야 합니다.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자칫 동양사상이나 다른 영성 사상들과 인지학을 무분별하게 뒤섞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국에서 인지학을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한국 고유의 정신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알려진 대로 기득권인 사대부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은 중국 문자와 다른 우리의 고유 문자인 한글을 창제하였습니다. 한글 창제의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지만, 대중에게 공표될 때는 분명히 동양의 고유 사상인 음양오행(陰陽五行)과 천지인(天地人)의 원리를 표방했습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이러한 창제 원리가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한글의 자음은 오행의 원리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오행에 해당하는 문자를 보자면 목(), ’, (), , ’, (), , ’, (), , ’, (), 입니다. ‘은 이 오행 체계에 포섭되지 않는 정신적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모음은 천지인에 따른 것으로 양()의 하늘 소리 ’(아래아)와 음()의 땅 소리 ’, 그리고 음양을 다 갖추어서 균형을 이룬 사람 소리 가 어울려 모음 문자가 만들어졌습니다.

 

 

제자 원리로 살펴본 우리말 속의 몸마음

 

우리말 의 제자 원리를 살펴보면, 몸은 초성과 종성이 모두 입술소리(순음) ‘이고, 중성이 입니다. ‘은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합해지는 모양이며, 성질은 만물을 품어 간직하므로 넓고 큰 것입니다. 오행으로는 토()이고, 계절로는 늦여름, 음으로는 궁()이 됩니다. 오행에서 는 정기(精氣)를 품어 물질을 태어나게 하며 질적인 변화를 가져옵니다. 비유하자면, 흙이 씨앗을 품고 있다가 싹이 나도록 하는 것과 같습니다. 중성 는 하늘소리 와 땅의 소리 가 만나서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하늘과 땅이 처음 사귀는 뜻입니다. ‘위쪽에 놓인 것은 가 낮이기 때문이며, 이 소리는 하늘소리 에서 입을 오므린 소리입니다. ‘와 비슷하나 보다 더 닫히고 둥근 하늘과 평평한 땅의 어울림을 취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몸은 만물을 품어 간직한 땅과 같은 것으로 새로운 물질을 태어나게 하고 질적인 변화를 가능케 하는 인간의 그릇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몸은 마음과 얼을 담는 그릇이자, ()입니다. 음성학적으로도 몸은 앞뒤로 열려 있기보다 닫혀 있어서 위로는 하늘 모양의 덮개이고 아래로는 땅 모양의 덮개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머리는 둥근 하늘의 모양이고, 사지는 평평한 땅의 모양입니다.

 

우리말 은 어떤 것들이 모여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 두 개인 것은, 하나는 하늘을 모은 것을, 다른 하나는 땅을 모은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늘과 땅을 모은 것입니다. 이 몸이 마음이 됩니다. ‘는 없었던 것, 보이지 않던 것이 막 밖으로 나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하늘을 모으고 땅을 모은 것들이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마음이 만났을 때 우리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하늘과 땅에 대해 모은 것을 서로 나누어 갖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오갈 때는 서로의 마음속에 있는 세계가 왕래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줄여서 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맘은 에서 중성만 달라진 말입니다. ‘와 비슷하나 입이 더 벌어집니다. 그 모양은 사람소리 와 하늘소리 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음은 그것에서 더 길게 소리를 낸 것으로 에 땅의 소리 가 이어진 것입니다. , (마음)은 하늘과 땅의 작용이 사물에 나타나지만 사람을 기다려서야 이루어지는 뜻을 취한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맘은 몸과 같이 하나의 그릇으로 몸보다는 열려있는 형태입니다. 몸이 상대적으로 닫혀 있는 그릇이라고 한다면 맘은 열려 있기도 하고 닫혀 있기도 한 그릇인 것입니다. 이 그릇 속에 얼이 담깁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의 사전적 의미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지((()의 움직임. 또는 그 움직임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상태의 총체.

2) 시비선악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하는 정신 활동. 사려분별(思慮分別), 생각.

3) (외부로부터의 자극에 대하여 일어나는) 기분. 느낌.

4) (어떤 사물이나 행동에 대하여) 속으로 꾀한 뜻.

 

1)은 몸에 머물면서 마음의 작용을 맡고 생명을 부여하는 비물질적 실체인 영혼 또는 넋과 통합니다. 2), 3), 4)는 각각 지(((), 즉 생각·느낌·뜻의 작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은 신비하고 오묘한 낱말입니다. 우선 초성은 으로서, ‘은 목구멍의 모양을 본 뜬 목구멍소리(후음)입니다. 목구멍은 깊고 젖어 있으므로 오행에서 입니다. 소리가 비어 있고 막히지 않는 것이, 물이 거침없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는 음()과 양() 사이에서 한 가닥 흘러나오는 물()을 뜻하므로 만물 생성의 시작을 의미하지만, 만물이 활동을 마치고 갈무리하는 겨울의 의미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한 해가 끝나는 순간이 곧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순간인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극단과 극단은 통하는 것처럼 음의 극단에 닿아 양의 극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는 잎을 모두 떨군 나무들처럼 부귀와 귀천의 구분이 없는 상태이고, 사람으로서는 올바른 지혜와 경청을 뜻합니다.

 

중성 는 하늘소리 와 사람소리 가 합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소리는 와 비슷하나 입이 더 벌어집니다. ‘와 마찬가지로 하늘과 땅의 작용이 사물에 나타나지만 사람을 기다려서야 이루어지는 뜻을 취한 것입니다. ‘가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형상이라면, ‘는 자기 내면으로 열려 있는 꼴입니다. ‘가 바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라면, ‘는 안으로 돌려진 시선입니다. ‘소리는 내면의 하늘(내적인 정신세계)을 향한 인간 자아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종성 은 음양오행의 체계에서 벗어난 반설음(半舌音)으로 맑지도 탁하지도 않은(不淸不濁) 소리이자, 자유롭게 흐르는 소리(流音)입니다. 은 우리말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자음일 뿐만 아니라 우리 겨레의 모든 살림살이에 담겨 있는 정신적인 말입니다. 얼의 알맹이를 이루는 고갱이말들이 모두 로 이루어진 것들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한 순수한 우리말을 살펴보면, 하늘은 날(), , 별로 이루어졌고 땅은 들, (, 호수), 바랄(바다)로 덮였으며, 사람이 사는 곳은 깊은 굴, 산골, 시골, 마을, 고을 등이 있습니다. , 우리 조상들은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얼이 있고 없음으로 따졌는데, 얼이 나간 사람을 얼간이나 얼뜨기라고 불렀습니다. ‘이 있어야 사람될 자격이 있고, ‘이 있어야 겨레로서 행세할 수 있으며, ‘이 있어야 문화살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강진원, <알기 쉬운 역의 원리>, 정신세계사, 2003

김명호, <한글을 만든 원리>, 학고재, 2005

류영모, <다석 마지막 강의>, 교양인, 2010

윤석빈, "훈민정음의 제자원리와 사이존재로서의 인간", <동서철학연구 제61호>, 한국동서철학회, 2011

이기상, <다석과 함께 여는 우리말 철학>, 지식산업사, 2003

정재도, <우리말의 신비 'ㄹ'>, 지식산업사, 2005

 

 

[출처 : 김훈태, <교사를 위한 인간학 - 발도르프 교육의 인간 이해>, 교육공동체벗, 2015]

 

* 약간의 수정과 첨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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