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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하나의 '세계관'인가? - 디트리히 에스테를 본문

인지학

인지학, 하나의 '세계관'인가? - 디트리히 에스테를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5. 22. 23:03

인지학, 하나의 '세계관'인가?

 

 

발도르프학교에 제기되는 대부분의 질문들 또는 발도르프학교에 보내는 것을 유보하거나 공격하는 일은 발도르프학교를 '세계관 학교'라고 말하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학교에서 인지학을 가르친다고 말한다. 그리고 비판하는 사람들은 종교적 종파의 영역 안에서뿐 아니라, 세계관에서 '중립적'이라고 여기는 테두리 안에서 공격한다. 여기서 '세계관'이라는 개념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금세기에 하나의 의미 변화를 겪었다.

 

['세계관'은 무엇을 의미하나?]

 

넓은 의미에서 인간 의식은, 학문(혹은 과학)에서일지라도 세상에 대한 어떤 일정한 관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런 학문적 관점에서 성찰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시각에서 행동을 취할 것인지이다.

 

 

세계관으로서 인지학

 

슈타이너의 저서 《역사 속에서 철학의 수수께끼》는 1914년, 그가 여러 해 동안 연구한 결과물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부터 현재까지의 철학자들에 대해 주목할 만한 방법으로 서술하고 있다. 슈타이너는 각각에 대한 인식의 실마리에서 생긴 다양한 견해(觀)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진리'에 대한 개별적 파악이 어떻게 철학의 체계로 이끌어지는지 보여주고자 시도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사고들이 옳거나 또는 그릇된 것이라는 판단이 아니었다. 그는 그러한 전제들로부터 사고가 성장한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다양한 인식의 단서를 통한 다양한 세계관]

 

1914년 슈타이너는 베를린에서 네 차례 강연회를 가졌다. 여기서 명백하게 '세계관'에 대한 물음과 인지학에 대한 이해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우선 슈타이너는 여기서 고정된 생각과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의 차이를 방법적으로 개발한다. 삼각형의 예를 들어 그는 고정된 상(像)을 가지고 작업하는 사고는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즉, 삼각형의 일반적인 개념은 없으며, 단지 상이한 개별의 형태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실제의 일반 개념, 삼각형의 원래의 상(像, 독일어 Idee의 번역)에 도달하기 위해서 사고는 하나의 다른 특성을 발전시켜야만 하는데, 다시 말해 스스로가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특별한 형태를 생각하는 대신 삼각형의 세 변을 내면의 움직임 안으로 옮겨 놓아야 한다. 각각의 특별한 형태는 움직임이 지속됨으로써 생겨난다. 이러한 아주 힘겨운 연습은 사고에 힘을 부여해 준다. 삼각형의 일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내면에서 바라보는 것을 통해 얻어내는 것은 다른 개념들, 이를테면 장미, 사자 등의 개념에도 적용된다.

 

[움직이는 생각]

 

슈타이너는 관점으로부터 하나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세계관들의 기본 위치를 써 넣었다. 즉, 물질주의(유물론) - 수학주의 - 합리주의 - 이상주의 - 심리주의 - 프네우마(정신)주의 - 유심론 - 일원론 - 다이너미즘(역동설)* - 사실주의 - 현상주의 - 감각주의...... 이런 관점들은 다시 다양한 내적 특성 안에서, 즉 그 사람이 체험한 특성을 통해 규정되고 변화한다. 다시 말해, 경험주의 - 신비주의 - 초월주의 - 신비학 - 그노시즘(영지주의) - 논리주의 - 주의설(主意說)/주의주의 등의 개별 개념을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하는 일은 중요치 않다. 슈타이너는 철학사에서 구체적 예증들을 제시한다.

 

 

데카르트의 기계론에 반하여 물질을 포함하는 일체의 자연현상을 힘으로 환원하여 생각하려고 하는 철학 이론.

 

[세계관 : 실재를 보는 일정한 방식]

 

이러한 각각의 관점들을 '옳다'고 하는 것은, 그 관점이 세상의 일정한 존재 형태의 체험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측면이 보편적 원칙으로 치켜 세워지게 되면, 즉 그것의 특별한 사고 형태가 모든 영역에 옮겨지면, 그것은 더욱 실제에 상응할 수가 없다. 그 고유한 관점에 상응하지 않는 것은, 거기에 예속되거나 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의 모든 현상 안에서 수학의 법칙성을 발견하는 일은 앎으로써 하나의 깊은 확신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많은 현실은 의심할 바 없이 수학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사물에 대해 계산(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확신과 객관성을 부여하며, 그 결과치들은 옳다. 그러나 계산될 수 있는 실제만을 인정한다면, 수학적 방법으로 파악할 수 없는 인식의 다른 영역들은 빠지게 된다.

 

슈타이너는 다음을 하나의 과제로서 간주했다. 즉, 그것은 인간의 지각 형태들과 사고 형태들의 여러 측면들을 인식하며 또한 다양한 관점을 통해 아주 상이하게 바라보는 방법에도 열려 있는 과학의 입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지학은 이런 관점에서 다음을 이야기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일정한 시선들을 지나서 한계와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사고를, 실제의 다양한 차원을 위해 지각기관과 인식기관으로 완성하는 것이다.

 

[세상 관찰의 다양한 특성에 열려 있음]

 

우리 문화의 많은 영역에서, 바로 오늘날 '과학'에서 역시 이러한 경향이 지배적이다. 즉, 고정된 상상과 사고의 형태들은 지나치게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무엇보다 기계주의와 물질주의적 사고로 향하게 한다. 곳곳에서 확인하건대, 우리는 생각이 '너무 짧아' 종종 파국으로 치달은 사건들에서 그 결과를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인식능력은 양적으로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인식능력은 세상의 물질적-감각적 측면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영역들에 접근하게 된다. 즉, 생명과정들, 영혼의 세계, 정신의 영역들, 세상의 초감각적인 측면에 대한 접근이 그것이다.

 

[내용의 결과들이 독단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인지학적 인식은 당연히 내용적 결과에 도달한다. 그 결과들은 개별의 삶과 사회적 실제를 위해 실질적인 작용을 하며 효과적이고 검증할 수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인식방법론으로서 교조적이고 배타적인 타당성의 의미로 이해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것은 인지학의 두 가지 기본 원리, 즉 개별의 자유를 우위에 두는 견해와 인간은 진화하는 존재라는 견해를 부인하는 것이다.

 

 

발도르프학교는 세계관 학교인가?

 

슈타이너는 발도르프학교가 '세계관 학교'로서 설립되었다는 지적에 강하게 항변했다. 발도르프학교는 모든 아동에게 기 회 균등하게 열려 있고, 아동의 부모가 학교를 선택한다. 학교에서는 인지학의 내용을 전달하지 않는다. "인지학은 학습내용은 아니지만, 우리는 인지학을 실질적으로 취급하는 데 주력합니다. (......) 인지학을 우리는 수업 방법론에 사용합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 '세계관'의 지도는 처음에 교회 대표자들에게 맡겨진 종교수업을 시작하며 다양한 종파들로 나뉘었다.

 

[인지학은 발도르프학교의 학습내용이 아니다.]

 

그렇지만 '세계관 학교'라는 개념은 발도르프학교에 관한 판단으로서 폭넓게 통용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 개념이 생 겨난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 특히 바이마르 헌법 이후 그리고 학교법에 관한 당시의 토론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 학교, 종교 학교, (종교적 혹은 비종교적) 세계관 학교(예: 사회주의적 입장) 들은, 가치중립적이며 비종교적인 보통의 학교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법적으로 또는 내용상으로 그 개념들이 설명되지는 않지만, 독일 민주공화국의 헌법에서, 그 안에 자녀의 교육과 관련하여 부모의 선택 권한과 시설은 자유롭다. 즉, 국가에서 통제하지 않는 학교라도 기본법으로 보증하지만, '세계관 학교'라는 개념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발도르프학교의 취지와 그 작업을 관찰하면, '세계관'에 관한 물음은 더 분명해진다:

 

- 부모는 특정한 종파 또는 세계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조건 없이도 자녀를 발도르프학교에 보낼 수 있다.

 

- 종교수업은 원하는 대로 실행할 수 있다. 즉, 해당 종교에 알맞은 종파의 대리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 발도르프 교육학의 토대는 자녀가 학교에 들어가기 전 학부모교육 시간에 부모에게 설명되며 전체 재학기간 동안 부모교육, 강연회, 세미나 등에서 다루어진다.

 

- 교육의 목적은 인간의 자주적 판단을 기르는 것으로 특정한 견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 교육하는 사람의 세계관적 토대가 없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다만 주요한 사실은 그 토대를 의식하게 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 견해들과 관계를 맺는지가 문제이다. 발도르프학교의 인간학적 방법론은 교육의 공통적 토대를 만든다.

 

- 1919년 8월 20일에 열린 초대 교사양성코스 기간 중, 저녁 강좌에서 슈타이너는 자신이 의도하는 학교의 기본규정을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특징지었다. 즉, 우리는 시대의 커다란 고통 속에서 그리고 시대의 커다란 과제를 위해 일하는데, "이 두 가지를 사람들은 그다지 크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방법으로서 인지학]

 

- 같은 인사말에서 이런 말을 한다: "발도르프학교는 다음을 고려한다. 즉, 인간의 전체적인 본성이 요구하는 대로 교육하고 수업한다는 점을 고려하는 의미에서 하나의 통합학교가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인지학적 의사, 치유 교육자, 농부의 작업과 비교한다. 이들 모두는 자신들의 일 영역에서 새롭고 좀 더 유익한 길을 걷기 위해, 환자 또는 소비자를 믿고 따르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인지학에 근거한 방법들을 적용한다.

 

 

 

[출처 : 디트리히 에스테를, 이정희 옮김, <발도르프학교에서 인지학은 무엇인가?>, 섬돌출판사, 2010, 55-62쪽]

 

* 문맥에 따라 약간의 수정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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