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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2019 <한국인지학포럼>에 대한 소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5. 31. 06:57

2019 <한국인지학포럼>에 대한 소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우리나라에 '인지학(Anthroposophie, 人智學)'이 알려진 계기는 1990년대에 발도르프 교육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부터이다. 공동육아와 대안교육운동이 활발히 벌어지던 그 시기에 사람들은 발도르프 교육을 대안적 교육의 하나로 여겼다. 1994년 제44차 세계 교육부장관 회의에서 21세기 개혁교육의 모델로 선정된 발도르프 교육은 유네스코의 지원 및 연구대상이 되기도 했다. 1995년에는 발도르프 교육과 관련된 국제세미나가 국내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일찍이 특수교육과 유아교육 분야에서 캠프힐이나 발도르프 인형 등이 소개돼 오다가 발도르프 교육을 지향하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생기고, 공교육에서도 관심을 갖는 교사가 많아지면서 1996년 처음으로 교사교육이 준비되었다. 이밖에도 19951월 정농회 정기연수회에서 프랑스인 농부 피리오 도니의 생명역동농법 강좌가 열린 뒤로 인지학적 유기농법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건축학 분야에서는 1928년 완공된 두 번째 괴테아눔 건물이 건축사에서 유기건축의 효시로 늘 언급되기 때문에 인지학적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 그리고 1992년에는 루돌프 슈타이너의 어떻게 초감각적 세계의 인식을 획득할 것인가가 출간되면서 명상 분야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그 당시 초청강사는 독일 도르트문트 발도르프 유아교육대학 요하네스 슈나이너(Johannes Schneider) 박사였다. “디지털시대의 미래교육”, 1995.4.14.-4.15. (크리스챤 아카데미)

** 1989년에 인지학 건축에 관한 첫 논문이 나왔다. 김홍룡, Rudolf Steiner의 건축이론과 작품에 관한 연구,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 1989.

 

슈타이너의 인지학은 응용분야로서 앞서 언급한 교육학, 농법, 건축, 명상뿐 아니라 의학, 약학, 예술(연극, 회화, 조소, 음악, 오이리트미, 보트머체조 등등), 은행, 장애인공동체, 사회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미 있는 움직임을 지속하고 있다. 이것은 인지학의 핵심에 포괄적인 인간학이 있기 때문인데, 슈타이너는 근대적 인간학의 창시자로 알려진 현상학파의 막스 셸러보다 앞선 인물이고 학문적 성취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히려 실천적인 면에서 더 많은 성과를 낳았지만 인지학은 오랫동안 공식적인 학계에서 외면받아 왔다. 결정적인 이유는 지배적인 유물론적 과학에 맞서 인간 정신의 우위를 단언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과학 또는 학문의 세계에서 정신의 실재를 주장하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신비주의나 비과학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러나 슈타이너는 물질이 실재하는 것처럼 정신 역시 실재하며, 정신 영역 또한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고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 정신 영역을 신비주의자들에게 넘겨주게 된다는 것이다.

 

인지학의 여러 분과 중 가장 성공적인 결과를 낳은 것은 단연 발도르프 교육학일 것이다. 전 세계에 1200개가 넘는 발도르프 학교가 존재하고, 우리나라에도 크고 작은 학교가 17개나 있다. 발도르프 교육을 지향하는 유아기관은 훨씬 많다. 세계 최초의 발도르프 학교가 1919년 가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세워진 뒤로 올해가 100주년이 되었다.*** 한국의 첫 발도르프 학교는 2002년 봄에 세워졌으니 17년의 역사를 갖는다. 한국인지학포럼은 이처럼 의미 있는 시기에 그동안의 역사를 성찰하고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인지학 관련 기관은 발도르프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 공교육의 지역별 발도르프교육연구회, ()발도르프교육협회, 아이라움, 그리고 ()한국슈타이너인지학센터 같은 교육기관 등을 중심으로 한 교육 분야가 우세하다. 인지학 서적도 주로 발도르프 교육과 관련된 책들이 번역되거나 저술되었고 다른 분야는 아직 미미한 형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인지학 자체에 대해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세미나를 열어온 경우는 극히 드물다. 유일하게 한국발도르프영유아교육학회에서 세미나를 열고 발표된 논문들을 학회지에 담았다.

 

*** 첫 학교는 발도르프-아스토리아담배공장의 사장 에밀 몰트가 노동자 자녀들을 위해 슈타이너에게 부탁해 세운 학교로서, ‘발도르프라는 말은 이 공장의 이름에서 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발도르프 교육학뿐 아니라 다양한 실천 영역들이 올곧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인지학의 학문적 토대를 단단히 다지는 작업이 시급하다. 우선 루돌프 슈타이너의 주저를 번역하여 출간하는 일이 시급하다. 슈타이너 전집은 350여 권을 넘지만 국내에 번역된 책들은 30권이 채 안 되며, 그마저도 영어나 일어로 번역된 중역본이 절반가량 된다. 중역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오역과 여러 오류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번역 작업이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까닭에 기본 용어들이 통일되지 않고, 번역의 질이 고르지 못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단법인 한국슈타이너인지학센터를 중심으로 루돌프 슈타이너 전집출간위원회가 발족돼, 용어에 대해 토론하고 공동으로 번역작업을 시작한 일은 매우 큰 의미가 있다. 사실 인지학포럼도 전집출간위원회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인지학이라는 사상의 학문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일은 시기적으로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그 토대를 쌓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학문적 엄밀성을 바탕으로 연구하고, 민주적인 학문 공동체를 형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런 뒤에야 외연을 넓히는 작업도 가능할 것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자신의 인지학을 정신과학이라고 불렀다. 실재하는 정신 영역을 과학적으로 탐구한 결과물이 인지학이라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신과학은 인지학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음양오행을 위시한 주역, 명리학, 한의학 등이 넓은 의미로 정신과학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동양사상이 진정한 '과학'인지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일생 동안 치열하게 고민하고 헌신한 일은 정신에 대한 탐구를 학문적으로 과학의 반열에 오르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과학이라는 학문이 대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 슈타이너는 인지학을 철학이 아닌 과학이라고 분명히 주장한다. 그는 정신 영역을 실제로 보았고 들었고 경험했다고 증언한다. 자연과학자들이 실재하는 물질세계를 탐구하는 것처럼, 실재하는 정신세계를 관찰하고 실험하고 객관적으로 검증한 것이다. 그는 누구나 수련을 통해 초감각적 기관을 계발할 수 있고, 그 기관을 통해 정신세계에 다가설 수 있다고 말한다. 인문학이 부흥하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온전한 의미로 대중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경험주의 또는 실증주의 과학이 득세하고, 반지성주의에 가까운 상대주의가 과학을 조롱하며, 수많은 유사과학이 과학이라는 탈을 쓰고 대중을 현혹하고 있다. 인지학이 '무분별한 종합주의'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는 과학이란 무엇이고, 정신과학은 학문 영역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할 수 있는지를 밝혀내는 실천적 논문이 나와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는 인지학을 주제로 한 포럼을 열고 있다. 우리는 현대인의 감각으로, 또 현대인의 언어로 인지학을 새롭게 제시해야 한다. 포럼은 포럼-디스커션(forum discussion)의 준말로써, 누군가 발제를 하면 청중이 질문을 하며 토론하는 형식을 갖는다. 우리말로 하자면 공개토론회라고 할 수 있다. 누구든 발표하고 누구든 질문을 던지는, 자유롭고 민주적인 이 포럼에서 인지학의 초석이 다져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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