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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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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에서 바라본 영혼세계(Seelewelt)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6. 9. 21:30

인지학에서 바라본 영혼세계(Seelewelt)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 이 글은 루돌프 슈타이너의 주저인 《신지학 Theosophie》의 제3장 <세 가지 세계 Die Drei Welten>의 1절 <영혼세계 Die Seelewelt>를 다룬 것입니다. 국내에 번역 출판된 책은 물병자리 출판사에서 나온 것이 유일한데, 일본인 인지학자 타카하시 이와오의 번역을 양억관 선생님이 중역한 것입니다. 여기에서는 그 책을 중심으로 독일어 문고판 원본과 Catherine E. Creeger의 영역본, 人智学教育基金會에서 출간한 중역본, 타카하시 이와오의 일역본, 그리고 최혜경 선생님이 번역하였지만 아직 정식 출간되지 않은 독일어 직역본을 참고하였습니다.

 

"몸을 구성하고 있는 소재와 힘은 물질세계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외적이고 물질적인 감각을 통해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이 감각만을 신뢰하여 오로지 그 지각 능력만을 개발하려는 사람은 다른 두 세계, 즉 영혼과 정신의 세계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79)

- 과학은 철학과 달리 세계가 실재함을 전제하고 탐구를 시작한다. (철학은 세계의 실재에 의문을 던짐으로써 존재의 문제를 인식의 문제로 환원한다. 데카르트,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유물론적 과학에서는 오로지 물질세계만이 실재한다고 전제한다. 물질세계만을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자연과학자들은 인지학을 신비주의의 일종으로 폄하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험주의의 한계에 갇힌 발상이다. 감각적으로 경험하지 못했다고 해서 영혼과 정신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 이와 달리 인지학에서는 영혼세계와 정신세계 역시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슈타이너는 영혼과 정신의 세계 역시 물질세계와 똑같이 경험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고차적 감각을 개발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동안 유물론적 과학에 의해 고차적 세계는 신비주의자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들은 온갖 헛소리와 망상, 그럴 듯한 궤변을 쏟아내면서도 당당하다. 과학을 숭앙하는 듯하면서도 실제로는 과학을 혐오한다. 이른바 '탈진실의 시대'가 도래한 오늘날에는 상대주의자들도 여기에 가세했다. 그들은 과학을 치켜세우면서도 교묘하게 이용한다. 인지학 역시 자신들의 이기적 목적에 이용할 뿐이다. 우리는 과학주의와 신비주의라는 양극단을 경계해야 한다.

 

"몸의 감각이 물질적 존재를 지각하듯이 영혼과 정신의 감각은 영혼적이며 정신적 존재를 지각한다."(80)

- 신체적 감각이 별다른 노력 없이도 저절로 육성되는 것과는 달리 고차적 감각은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 자연이 발달시켜 주지 못한 고차의 기관을 육성하는 것은 자연에 반하는 행위가 아니다. 고차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완수하는 모든 것은 자연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진화는 어떤 단계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끝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슈타이너는 말한다.

 

"현대라는 문화기에서 고차적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왜냐하면 이 문화기는 무엇보다 물질세계를 인식하고 지배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85)

- 우리가 누군가를 바라볼 때 오직 외모로만 그 사람의 인격을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주변 세계를 물질적 감각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누군가에 대해 영혼적으로 교감할 때 그 사람의 초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물질세계 또한 그 영혼적, 정신적 근거를 알았을 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차적 감각 없이는 현실세계의 본질적 부분이 가려진 채로 남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물질세계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영혼과 정신의 세계에 대해 비유적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우리의 위, 심장, 폐, 뇌를 구성하고 지배하는 소재와 힘이 물질세계에서 유래하듯이, 우리의 본능, 충동, 감정, 욕구, 소망, 감각 등과 같은 영혼적 특성은 영혼세계에서 유래한다."(85-86)

- 영혼세계는 물질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세계이다. 비교하자면, 영혼세계에 속한 모든 사물과 존재는 물질세계보다 훨씬 더 섬세하고 유동적이며 자유롭게 형태를 바꿀 수 있다. 물질세계의 물리적 힘과 소재가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부분과 다른 것처럼 영혼세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영혼세계의 소재와 힘은 물질세계에서처럼 엄밀하게 구분할 수 없어서 어떤 충동을 힘이라 할 수도 있고 소재라 할 수도 있다.

 

"영혼적 공간에서 만나는 두 구성체의 상호작용은 둘의 내적 특성에 의존한다. 둘이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면 서로 녹아들어 하나가 된다. 둘의 본성이 상반되면 서로 밀어낸다."(88)

- 영혼세계의 두 가지 근본적 힘은 호감(Sympathie)과 반감(Antipathie)이다. 호감이 다른 것을 끌어당기는 힘, 다른 것과 하나로 융합하려는 힘, 다른 것과의 유사성을 정당화시키는 힘이라면, 반감은 밀어내고 거부하고 배제하는 힘, 자신의 특성을 정당화하는 힘이다. 중국에서는 의역하여 Sympathie를 융합감(融合感)으로, Antipathie를 분리와 배척의 의미를 담아 이척감(離斥感)으로 번역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그 동안 Sympathie를 주로 공감으로 번역해 왔는데, 그 말은 오히려 Empathie에 적합하다.

- <방법론> 1,2강 : "여러분이 각 어린이를 호감으로, 진정한 호감으로 감싸주고자 노력한다면 여러분은 어린이의 의지 생활을 위해서 훌륭한 교사가 될 것이다.", "그저 그 어린이를 좋아하면 된다. 어린이와 행하는 것을 사랑을 다해서 함께 하면 된다." 

- <인간학> 5강 : "반감은 주위 환경의 관찰이 우리에게 남기는 인상에 대해서 우리가 혐오감으로 반응을 할 정도로 고조될 경우에만 의식된다. 반감은 모든 감각적인 지각의 고조된 인상일 뿐이며, 여러분은 그 외적인 인상에 구토감으로 반응한다."

 

"영혼세계는 세 가지 저차원 영역과 세 가지 고차원 영역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제4의 영역에 의해 매개되므로 영혼세계를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92-93)

1. 탐욕스런 불길(Begierdenglut, burning desire)의 영역

2. 유동적 반응성(fließenden Reizbarkeit, flowing sensitivity)의 영역

3. 소망(Wünsche, wishes)의 영역

4. 쾌감과 불쾌감(Lust und Unlust, pleasure and displeasure)의 영역

5. 영혼 빛(Seelenlichtes, soul light)의 영역

6. 활동하는 영혼 힘(tätigen Seelenkraft, active soul power)의 영역

7. 영혼 생명(Seelenlebens, soul life)의 영역

- 제1의 구성체 : 호감<반감. 주위의 다른 구성체를 호감 작용으로 끌어당기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 속에 작용하고 있는 강력한 반감이 주위에 있는 것을 물리친다. 반감이 호감을 압도적으로 이기고 있는 상태. 외적으로는 오직 반감의 힘만 보이나 호감도 함께 존재한다. 주위의 많은 것을 물리치고 극히 적은 것들만을 애지중지하며 끌어당긴다. 그래서 변화가 없는 형태로 영혼세계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이때 호감의 힘은 탐욕적인 모습. 반감이 자기에게 접근하는 모든 것을 물리치기 때문에 욕구를 충족할 수 없다. 만족을 모르는 탐욕의 불길이 타오른다.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본능과 충동. (* 미숙한 사춘기 시기, 미운 네 살 시기의 영혼 상태가 떠오름.)

- 제2의 구성체 : 호감=반감. 호감과 반감이 똑같은 강도로 작용하며 균형을 이루는 경우. 주위에 대해 중립적으로 대한다. 특별히 끌어당기지도 밀쳐내지도 않는다. 다른 것들에 유사성을 드러내며 작용. 자기와 주변 간에 확고한 경계를 긋지 않는다. 주위에 있는 다른 것들이 자기에게 언제나 영향을 미치도록 둔다. 다른 것을 끌어당기는 데에 탐욕이 없다. 인간 영혼이 색채를 감지하는 경우(<일반인간학> 5강 참고). 완전히 유연하고 유동적인 성격. 어디에 있든지 주변의 인상을 받아들이고, 만나는 많은 것과 자신이 유사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유동적 반응성. (* 자기 주장이 없고 우유부단하며 누구에게든 맞춰 주는 영혼 상태?)

- 제3의 구성체 : 호감>반감. 호감이 반감을 지배하고 있는 단계. 반감은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을 주장하지만, 이제는 주위에 대해 심하게 관심을 기울인다. 반감이 있기는 해도 호감에 비해 너무 미미하다. 이 호감은 아직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기조를 가지고 있다. 주변의 대상들을 모조리 장악해서 흡수하는 중심점으로 드러난다. 인력권의 중심. 소망 소재(Wunsch-Stofflichkeit). (* 오지랖의 영혼 상태가 아닐까? 다른 이의 삶을 침해할 수 있음.)

- 제4의 구성체 : 영혼의 더 높은 단계에 이르면 반감이 완전히 사라지고, 실제로 호감만 작용한다. 영혼 내부에서 호감의 힘은 쾌감으로 표현되고, 이 호감이 저하되면 불쾌감이 나온다. 냉기가 온기 없음을 뜻하는 것처럼. 쾌감과 불쾌감은 인간 감정세계의 활동이다. 쾌감과 불쾌감의 존재방식에 따라 영혼의 기분이 결정된다. (* 여기에서부터 Sympathie가 아니라 Empathie, 즉 호감에서 공감으로 바뀌는 듯하다.)

- 제5의 구성체 : 반감을 완전히 극복하였기 때문에 호감의 힘이 반감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비로소 다양한 영혼 구성체가 하나의 세계로 어우러진다. 자신을 위하는 단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다른 대상들을 어떤 계시를 주는 존재로서 받아들인다. 이 고차적 형식의 영혼적 소재는 영혼 공간에서 마치 물질세계의 빛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상을 위해서 대상의 현존과 존재를 흡수한다. 영혼 공간을 빛으로 비추어 환하게 밝힌다. 내면을 벗어나 바깥으로 흘러넘친다. (* 의식혼의 상태?)

- 제6의 구성체 : 영혼에 활기를 주는 활동력.

- 제7의 구성체 : 영혼 생명.

- 세 가지 저차원 영역은 호감과 반감의 관계로 이루어지고, 제4영역에서는 호감이 영혼 구성체 내부에서만 작용한다. 세 가지 고차원 영역을 통해 호감은 점점 더 자유로워져 바람처럼 불어간다. 빛을 발하고 힘을 전하며 생명을 불어넣어 혼자서 자기 존재 속에 매몰되어 가는 영혼 구성체를 각성시킨다. 이러한 영혼 영역의 구분은 상호 간에 엄격하게 나뉘어져 있지 않고 서로 침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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