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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카르마와 윤회에 나타나는 교육학적 법칙 (6) 본문

인지학/인지학의학

카르마와 윤회에 나타나는 교육학적 법칙 (6)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7. 2. 11:42

만약 우리가 주의력과 자아 현존의 영역에서 우리 자신을 분석하고 스스로 "내가 진정으로 현존하는 순간이란 무엇인가? 내 자아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인가내가 완전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아마도 제한적 관심에서 나온 특정한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입니. 그러나 또한 우리의 모든 개인적인 동기는 이 자아의 영역에 의해 좌우되며,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에 관심을 갖게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 역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인식과 실행할 수 있는 주의력이라는 이 자아 영역이 가장 열려 있으며 가장 유연한 영역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입니다.


다른 영역에서 우리는 더욱 더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한계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사고-감정-의지라는 영혼의 원형(原型)은 제한되어 있지 않은 무한한 것입니다. 우리의 사고 생활에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 생활에서는 모든 것에 대해 연민을 느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어떤 능력이든지 발달시키고 배울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를 탐구해 볼 때 우리는 영혼의 차원에서 한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지난 생으로부터 온 자신의 개인적인 카르마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생에서 영혼적 차원의 한계로 만나는 것들은 지난 육화(전생)에서 우리의 자아 인식의 결과, 즉 우리의 주의력과 관심의 결과입니다. 우리가 이번 생에서 겪는 아스트랄체 영역의 한계는 지난 생을 통해 있던 자아 활동의 현존에 대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기억 또는 흔적입니다. 이번 생에서 우리가 자아의 영역에서 열려 있고 자유로우며 한계가 없는 것은 지난 생에서의 모든 좋고 나쁜 경험의 흔적들이 현재의 아스트랄체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스트랄의 영역에서 뭔가를 좋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지난 생의 자아 활동의 표식을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저녁 여러분이 자기 영혼의 선율(melody)을 바라볼 때 다음의 내용들을 질문으로 가지고 계십시오. 지난 생에서 나의 운명과 전기(biography)의 윤곽에 관한 기억 같은 것은 없는지, 후렴구(refrain) 같은 것은 없는지? 그리고 지금 나는 그것을 나만의 특정한 자취를 나에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내 삶의 선율과 내 영혼의 한계들을 만나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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