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회복되는 교실> 리뷰 : 조용한 혁명을 기대하며 - 박성실 본문

책소개 및 서평/회복적 정의 및 비폭력 대화

<회복되는 교실> 리뷰 : 조용한 혁명을 기대하며 - 박성실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4. 10. 21:04

<회복되는 교실> 리뷰 : 조용한 혁명을 기대하며

 

박성실 회복적정의연구소 연구원

 

《 회복되는 교실  -  회복적 질문과 서클로 만들어 가는 관계 중심 생활교육 》

 

 

2023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한 신규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많은 이들이 애도를 표했고, 전국의 교사들이 거리로 나왔다. 언론은 학부모들을 ‘민원인’으로 호명하며 교권 하락에 대해 집중 보도를 했다. 이어 정부는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제도 시행을 발표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것은 이미 오래다. 특히 학교폭력 이슈는 매년 새롭게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맞았다. 이와 맞물려 공인 혹은 그들의 자녀가 가담한 가해 사실이 사회적으로 폭로되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해결되지 않은 학교폭력’과 ‘복수’가 단골 소재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다.

 

이처럼 매년 발표되는 정부의 대책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사회는 학교공동체의 주체인 교사, 학부모, 학생 들을 타자화하고 비난하는 것에 열을 올렸다. 덕분에 교사와 학부모는 길을 잃었고 무기력해졌다.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매일 학생과 만나야 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을 타개할 근본적인 대책은 존재하는 걸까?

 

회복적 정의와 회복적 교육

 

김훈태의 책, 《회복되는 교실 - 회복적 질문과 서클로 만들어 가는 관계 중심 생활교육》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그는 학교의 ‘시장화’와 ‘사법화’에 주목하고, 대안으로 ‘회복적 교육’을, 구체적으로는 ‘서클(circle)의 일상화’를 제안한다.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동시에 학생들을 건강한 사회의 일원으로 키워 내는 장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강화된 입시 경쟁은 교육의 시장화와 맞물렸다. 학교는 입시에 얼마나 효율적인가에 따라 평가되고, 교사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자 교육부는 응보적 정의 관점에서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갈피를 잡고, 생활기록부에 가해 조치 기재와 보존 기간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발표했다. 생활기록부 기재가 입시 및 취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가해 학생의 보호자들은 변호사를 대동하고 학교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해 학생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기보다는 처벌을 피해 가해 사실을 부인하고 책임지지 않을 방법을 강구하게 만든 것이다. 이러한 학교의 시장화와 사법화가 학교 구성원 간의 신뢰와 공동체성을 더욱 약화시킨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이에 저자는 회복적 정의 관점에서의 교육, 곧 ‘회복적 교육’을 제안하며, 세 가지 질문, ‘왜 회복적 정의일까?’, ‘회복적 교육이란 무엇일까?’, ‘회복적 관계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에 답해 간다.

 

회복적 정의 운동은 사법 영역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회복적 실천’이나 ‘회복적 접근’이라는 개념으로 다양한 분야에 뿌리내리고 있다. 교육에서는 주로 ‘회복적 생활교육’ 혹은 ‘학교에서의 회복적 실천’, ‘교육에서의 회복적 정의’라는 이름으로 실천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이들을 포괄해 ‘회복적 교육’을 사용했다.

 

일상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늘 존재한다. 회복적 정의는 갈등을 관계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접근한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무엇을 했는지를 밝혀 처벌을 내리는 데 집중하는 대신 개인과 공동체의 피해와 영향을 살피고, 그들의 피해를 회복하며, 필요를 채우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회복적 정의에서 가해는 범법이 아니라 피해 발생과 관계의 훼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복적 정의에서 사건의 해결은 당사자와 공동체의 피해가 복구되고, 이를 위해 책임지는 전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면 회복적 교육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교육을 학생들이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고, 소명을 발견하며, 책임을 키우도록 돕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교육은 고유한 자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학습 효과는 좋은 관계와 비례한다. 생활 지도와 학습 지도는 분리하지 않고 통합적으로 접근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저자는 회복적 정의가 인간의 핵심인 자아, 즉 근본적인 욕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관계 회복에 방점을 둔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시에 응보적 정의는 규제가 없다면 언제든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존재로 인간을 전제한다고 지적한다. 인간이 잠재적 가해자라면 학교는 마땅히 엄격한 규율과 처벌로 학생을 통제해야 할 것이다. 이런 학교에서 학생들이 원만하게 지내고, 인격을 고양하며, 공동체성을 기르고,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가기를 바라는 건 무리다. 이에 저자는 회복적 교육이란 인간에 대한 진정한 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클의 일상화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인간이 사랑을 갈구하는 근원적인 이유가 ‘단절’을 극복하기 위함이라고 본다. 단절에서 발생한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연결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존엄 연구의 권위자인 도나 힉스 역시 《관계를 치유하는 힘 존엄》에서 진화심리학에 기대어 인간이 관계를 맺고자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 반응이라고 말한다. 단, 존엄을 바탕으로 관계를 맺을 때 진정한 연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 존엄은 인간이 존재로 인정받고 공감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뜻이다. 자율성을 가지고 책임을 질 수 있는, 안전을 보장받고 공정하게 대우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뜻이다. 더불어 저자는 교육이 존엄을 바탕으로 할 때, 아이의 존엄을 존중한다는 건 발달 단계와 기질에 따라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본다. 여기에는 권위를 가지고 훈육하는 것도 포함된다.

 

저자는 인간을 개별적 존재이자 관계적 존재인 동시에 보편적인 욕구, 곧 사랑, 평화, 존중 등의 욕구를 지닌 존재로 본다. 욕구는 생각과 느낌과 함께 마음 안에 담긴다. 인간은 저마다 고유의 색을 가진다. 저자는 진정한 존중은 각자 다른 빛을 가진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서클의 일상화를 제안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서클은 둘러앉아 진심을 이야기하고 경청하는 대화 방식이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 공감하게 되고 존중과 연결을 경험한다. 여기서 공감이란 정혜신이 《당신이 옳다》에서 말하듯 충고하고 평가하며 판단하고 조언하는 대신 화자의 마음, 곧 감정을 묻고 생각과 욕구를 확인해 주는 것, 존재를 수용하는 것이다. 존재가 수용될 때 사람들은 안전하다고 느끼고 친밀해진다. 따라서 서클이 일상화될 때 공동체성이 강화되어 갈등을 예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인간은 누구나 욕구의 충돌, 곧 갈등을 경험한다. 따라서 서로 욕구를 존중하고 행위를 책임지는 것,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클은 공동체를 세워 갈 뿐만 아니라 갈등을 다루기도 한다. 갈등을 다루는 서클에서는 각자의 행동이 개인과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 어떻게 책임질지 결정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공동체의 지지를 경험한다. 저자는 아이들이 직면과 책임지는 과정을 통해 균형 잡힌 자아로 성장하며, 회복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서클은 존엄성을 존중하고 회복하며 책임을 배워 갈 환경을 만들 뿐 아니라 갈등을 예방하고 해결하는 데 기여한다. 따라서 저자가 서클의 일상화를 제안하며 회복적 교육의 3대 가치로 존엄, 존중, 책임을 소개하는 것은 매우 적절하다.

 

인간은 누구나 대화에 참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이에 저자는 서클을 수업에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수업에서 서클을 활용한다는 것은 학생들에게 주제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이를 공유할 수 있게 도우며, 그 주제가 개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고 논의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지식의 확장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의사소통 기술과 사회-정서적 기술을 개발하고, 자존감을 기르며,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을 높일 수 있다.

 

매일같이 학생들과 만나는 교사들에게는 ‘회복적 학교를 구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라는 명제는 또 다른 부담을 안길 수 있다. 이상이 구체적으로 상상되지 않을 때, 일상의 언어로 다가오지 않을 때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 현장에서 회복적 교육을 새롭게 도입하거나 실천하는 건 매우 어렵다. 다행히도 저자는 이 부분에 지면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회복적 학교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는지, 이론은 물론 일상적인 언어와 사례를 통해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다.

 

그는 평화학자 요한 갈퉁과 오스트리아의 정치학자 프리드리히 글라즐의 이론을 소개해 교사가 갈등의 원인을 실질적으로 분석하고, 갈등의 단계를 가늠하도록 했다. 갈등의 단계에 따라서는 문제 해결 서클과 전문가가 개입하는 회복적 조정을 제안했는데, 그 절차와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질문, 진행 시 유의점, 진행자의 역할 등도 상세히 덧붙였다.

 

더불어 저자는 갈등의 조짐이 보이거나 드러났을 때 혹은 다루기 힘든 아이와 대화해야 할 때 학생의 발달 단계와 기질을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접근법을 소개했다. 또한 문제 행동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지,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과는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도 설명했다. 이는 일상에서 다루기 힘든 아이들과 대화하는 어려움을 줄여 주고, 대화로 갈등을 다루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질문을 어려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장과 장 사이에 주제별로 질문을 소개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작고 조용한 혁명을 위하여

 

그동안 회복적 정의나 회복적 학교와 관련된 책들은 꾸준히 출간되었다. 이론을 충실하게 소개했던 하워드 제어의 《우리 시대의 회복적 정의》나 한국적 맥락에서 회복적 정의 개념과 실천 영역들을 소개했던 이재영의 《회복적 정의, 세상을 치유하다》, 회복적 생활교육을 소개하는 데 기여한 로레인 수투츠만 암스투츠, 쥬디 H. 뮬렛의 《학교 현장을 위한 회복적 학생생활교육》과 박숙영의 《회복적 교육을 만나다》, 회복적 정의부터 회복적 학교까지 이론과 실천을 망라한 서동욱의 《회복적 생활교육으로 세우는 회복적 학교》, 서클의 이론과 실제를 담고 있는 캐롤린 보이스-왓슨과 케이 프라니스의 《서클로 여는 희망》과 박성용의 《회복적 서클 가이드북》 등은 한국에서 회복적 학교를 꿈꾸고 만들어 가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책들은 회복적 정의를 한국 사회에서 뿌리내리기 위해 개념을 소개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방법을 설명하는 데 집중되어 있었다. 이에 회복적 정의를 교육의 인간관과 연결해 설명하고, 이를 사회적 맥락에서 풀어내는 데는 그리 힘을 쏟지 않았다.

 

저자는 교사 출신으로 갈등 조정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했다. 그의 앞선 저서 《교사를 위한 인간학》, 《발도르프 치유 교육》,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 등이 보여 주듯이 그는 연구자이자 실천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오랫동안 교육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질문해 왔고, 학교 현장에서 회복적 정의가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해 왔다.

 

또한 그는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응보적 정의의 인간관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한다. 동시에 그는 회복적 정의 운동이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한 사회운동의 일환’이라고 명명한다. 회복적 교육을 추구한다는 건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한 가치관에 질문하고, 근본적인 변혁을 촉구하는 사회운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학교폭력 이슈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교육 정책을 올바르게 펼치고 있다면, 교육의 방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학교에서 정의를 경험할 수 있다면, 학교를 공동체로 상상하고 있다면 학교폭력에 대한 복수를 주제로 담고 있는 드라마나 이야기가 이토록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스템을 정비하는 대신 교육의 주체들이 서로를 타자화하고 비난하는 일 역시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의지는 이상에서 나온다. 학교 현장에서 회복적 실천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회복적 교육’에 공감하는, 이상을 공유하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다는 뜻이다. 부디 이 책의 한 걸음이 저자가 말하듯 ‘작고 조용한 혁명’으로 이어져 책의 제목처럼 교실이 회복되는 데까지 이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https://communebut.com/recent

 

교육공동체 벗

2024년 3+4월호(통권 79호) 교육과 교육운동, 전환의 과제 기후 위기와 전쟁 등으로 돌출되고 있는 세계의 위기는 우리의 일상에까지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학교교육의 위기’, ‘교실 붕괴

communebut.com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