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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회복되는 교실 - 회복적 질문과 서클로 만들어 가는 관계 중심 생활교육> : 서문 본문

책소개 및 서평/회복적 정의 및 비폭력 대화

<회복되는 교실 - 회복적 질문과 서클로 만들어 가는 관계 중심 생활교육> : 서문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4. 2. 9. 09:41

회복되는 교실 

- 회복적 질문과 서클로 만들어 가는 관계 중심 생활교육

 

김훈태 씀, 교육공동체벗, 2024-01-29

 

들어가며

 

 

회복은 우리에게 위로를 주는 말입니다. 건강이든, 사업이든, 관계든 무언가 악화된 상황일 때 우리는 회복을 원합니다.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예전처럼 좋아지기를 바라지요. 회복적 정의가 주목받는 것은 그 이름이 주는 위안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회복적 정의는 치유적 정의, 관계적 정의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회복적 정의는 단순히 위안을 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고 살았던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좀 더 정의로운 방식으로 사고할 것을 제안합니다.

 

가해자 처벌 중심에서 피해자 회복 중심으로

 

회복적 정의는 기존의 처벌 중심적 사법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운동입니다. 형사사법은 처벌이 중심이다 보니 갈등이나 범죄 사건이 벌어졌을 때 처벌할 대상부터 찾습니다. 누가 잘못했는지,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가 주요 관심사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가해자를 처벌하면 끝이 납니다. 다시 말해, 응보가 이루어지면 사건에 대한 관심도 사라집니다. 응보를 문제 해결과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고 할 때, 우리는 누구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여야 할까요? 당연히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피해자겠지요. 가해자 처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자와 공동체가 입은 피해를 회복하는 일입니다. 갈등이나 범죄 사건에서 피해가 발생했을 때 우선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그 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누군가 소중한 물건을 빼앗겼다면 훔친 사람을 처벌하기 전에 그 물건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 일 이후에 피해자는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등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해자 또한 처벌과 별개로 피해자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고, 피해 회복을 위해 자기 책임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얻어야 가해자도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는 정의로운 해결입니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서 펴낸 《회복적 사법 프로그램을 위한 핸드북》에서는 회복적 사법(정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회복적 사법은 가해자, 피해자, 지역공동체가 참여하여 사법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대안적 경로Alternative pathway를 제안하는 접근 방식이다. 이 방식은 피해자에게 문제 해결 절차에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고,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와 그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책임 있는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범죄 행위란 단순히 법률 위반이 아니라 피해자와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한 회복적 정의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회복적 정의 운동은 오늘날 재판을 비롯해 검찰과 경찰 단계의 사법 영역을 넘어 행정과 돌봄의 영역까지 확장되었습니다. 회복적 정의의 정신에 기반해 공동체를 새롭게 혁신하고자 하는 회복적 도시 만들기프로젝트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청과 시의회, 경찰서, 교육청, 학교, NGO 단체 등 여러 기관이 회복적 정의의 모토 아래 유기적으로 연결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최초의 회복적 도시라 일컬어지는 영국의 헐Hull을 비롯해 리즈, 브리스톨, 리버풀, 뉴질랜드의 왕가누이, 호주의 캔버라, 미국의 오클랜드 등의 도시가 대표적입니다. 회복적 정의는 이제 사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위한 비전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교육 영역에서 회복적 정의는 회복적 생활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회복적 생활교육은 사실 회복적 훈육Restorative Discipline입니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훈육은 물론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교육의 한 부분입니다. 생활지도로서의 훈육과 학습지도로서의 수업은 학교교육의 두 축입니다. 회복적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훈육과 수업을 포함한 교육 그 자체에 회복적 정의의 철학을 접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를 기반으로 한 교육 관련 책들도 계속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 분야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로레인 수투츠만 암스투츠와 쥬디 H. 뮬렛의 회복적 학생 생활교육, 케이 프라니스의 서클 프로세스를 비롯해 최근에는 캐서린 에반스와 도로시 반더링의 회복적 교육, 린지 포인터와 캐틀린 맥고이, 해일리 파라의 회복적 정의를 어떻게 배울 것인가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교육이 온전히 회복될 때 사회도 다시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회복적 교육은 회복적 사회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점점 더 응보적 사회가 되어가는 듯합니다. ‘참교육이라는 소중한 가치가 통쾌한 응징따위의 의미로 변질된 것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모든 갈등 사안을 법대로 처리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사회의 모든 영역이 사법화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학교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폭력 사안을 생활기록부에 기재하라는 정책이 발표되면서 학교는 소송의 장이 되었습니다. 학교폭력을 처리하는 방식도 사법 절차를 그대로 가져오는 바람에 학교는 교육 기관이 아닌 사법 기관처럼 변했습니다. 여기에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이 강화되면서 무분별한 신고로 고통받는 교사 늘었습니다. 학교폭력 사안 처리와 악성 민원, 아동학대 신고 등으로 교사들의 직업 만족도는 바닥으로 떨어져 조기 퇴직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회복적 정의는 개인과 공동체의 필요를 채우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서클을 통해 구성원 모두의 이야기를 듣고 내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러한 열망의 실현을 가로막는 제도적, 문화적, 정치적 제약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교육에서 회복적 정의는 참다운 교육을 가로막는 현실적 제약을 분석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회복적 정의가 기존의 지배적인 권력 구조를 재생산하는 데 이용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합니다. 회복적 정의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적 논쟁과 참여를 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관계 회복을 통한 교육의 회복

 

절망적인 교육 현실의 기저에는 불합리한 제도와 함께 관계의 단절이 숨어 있습니다. 가정에서 많은 아이 관계의 단절을 경험합니다. 어린 시절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고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한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와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모와의 관계 형성에 어려움이 있는 아이는 친구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기 어렵습니다. 부모들도 예전에 비해 아이 키우는 일이 너무나 힘듭니다. 서로 돕고 배우며 함께 문제를 풀어 가는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고 없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교사들 역시 서로 간에 관계가 단절되어 외롭고 무기력한 경우가 많습니다. 교실에서 힘든 일이 벌어져도 교사 홀로 견뎌야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관계의 단절에서 관계의 회복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요? 회복적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관계 회복을 통한 교육의 회복입니다. 건강한 관계를 가꿈으로써 교실 자유롭고 즐거운 배움의 공간이 될 수 있고, 피해 회복 중심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관계가 좋을 때 수업도 더 잘 이루어집니다. 생활지도와 학습지도는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는 관계 회복을 위해 대화모임, 즉 서클Circle을 일상화할 것을 제안합니다. 서클은 둥그렇게 앉아 돌아가며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는 대화모임입니다. 갈등 예방과 갈등 해결뿐만 아니라 수업에서도 서클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대화는 마음과 마음을 이을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이때의 대화는 일방적인 말하기나 일방적인 듣기가 아닙니다. 마음을 알아주는 공감의 대화는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시켜 줍니다. 인간의 존엄을 바탕으로 하는 존중과 책임의 대화법, 관계를 회복하는 대화모임이 우리에게는 절실히 필요합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현실이더라도 우리에겐 그것을 이겨낼 힘이 있습니다. 이른바 회복탄력성 또는 회복력Resilience입니다. 서클은 우리 내면에 잠재된 회복력을 키워 줍니다. 속마음을 솔직히 표현해도 공격받지 않는, 안전한 공간에서 우리는 회복적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회복적 교육을 위해 전제하고 싶은 것은, 교육 기관은 사법 기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법화의 흐름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문제 해결 능력을 빼앗아 갑니다. 저명한 범죄학자 닐스 크리스티의 말처럼 갈등은 공동체의 자산입니다. 갈등은 부조리한 권력관계를 바로잡을 기회를 주고, 구성원들 간의 욕구를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잘못으로 인해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도와줍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갈등을 정의롭게 해결하는 과정에서 회복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때로 역경이 필요하고, 그것을 스스로 풀어 갈 때 마음의 근력인 회복력이 자랄 수 있습니다.

 

자아, 균형 그리고 힘

 

이 책 전반을 아우르는 근본 가치는 자아, 균형 그리고 힘입니다. 대화가 가능하려면 힘이 필요합니다. 권력의 위계 구조가 형성된 상황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은 낭만적 환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을 압도하는 물리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상대방이 대화 상대로 인정해 줄 수 있을 만큼의 힘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은 단결된 정치적 힘일 수도 있고, 도덕적 힘일 수도 있으며, 자아의 힘일 수도 있습니다. 이때 주변의 따뜻한 지지와 공감은 당사자에게 큰 힘이 됩니다. 약한 쪽에 힘을 실어Empowering 양쪽의 힘이 동등해질 때 균형이 이루어집니다.

 

균형은 단지 대화 당사자들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균형이 필요합니다. 존중과 책임이 균형을 이룰 때 좋은 관계가 형성됩니다. 애정과 통제를 균형 있게 기울여 줄 때 아이들의 자존감이 건강하게 자랍니다. 단호함과 친절함의 균형이 교사에게 권위를 줍니다. 호감과 반감의 균형이 우리의 마음을 유연하게 해 줍니다. 다행히 우리에겐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알려 주는 균형 감각이 있습니다.

 

내적 균형 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자아가 건강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은 인간적으로 존중을 받으면서도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지는 법을 꼭 배워야 합니다. 괴로울 수도 있고 귀찮을 수도 있지만 남에게 미루지 않고 자기 책임을 직면할 때, 균형 잡힌 자아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부모와 교사는 그것을 도와야 합니다. 갈등을 겪고 어려움을 이겨 내면서 회복력을 키우는 것은 자아 발달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것은 교육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서클을 통해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 역시 자기처럼 고유한 자아가 있는 존엄한 존재임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세 개의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 왜 회복적 정의일까? 2) 회복적 교육이란 무엇일까? 3) 회복적 관계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들을 서클의 방법으로 풀어 가고자 합니다. 자기중심적이고 비합리적인 세상의 흐름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행복한 삶, 진실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학교 안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해서 벌어지는 지금, 교육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뀐다는 말을 믿습니다. 함께 나누는 대화를 통해 진실한 길을 찾아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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