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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공동체로 거듭나기 - 루돌프 슈타이너 (2) 본문

루돌프 슈타이너

공동체로 거듭나기 - 루돌프 슈타이너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0. 15. 11:49
Rudolf Steiner and Marie von Sivers


그것이 제가 여기서 많은 강연을 통해 강조한 요지입니다. 인지학적 인식은 다른 공부를 하듯이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다른 느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갑자기 깨어나는 충격의 느낌, 귀로 쏟아져 들어오는 소리의 느낌, 꿈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빙판에서 얼음층이 얇은 곳을 아는 사람이 그곳으로 빠지지 않듯이, 정신적 진리를 향해 잘못된 접근에 의해 이기주의자가 되는 위험을 아는 자는 반-형제애적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신적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관용이라 불리는 능력을 최대한 계발해야 합니다. 인지학적 정신과학을 추구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서로를 포용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인간 포용력의 아름다움을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 시대에 포용하는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요즘은 아무도 타인의 말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말을 시작하자마자 누군가가 끼어들어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는 일 없이, 한 문장을 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현대 문명의 특성 중 하나가 아무도 경청하지 않고 타인의 의견은 존중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의견을 표출할 때, 친애하는 여러분, 그것은 인간의 의견이며, 그것이 여러분의 생각에 아무리 멍청해 보인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아주 역설적인 말을 하려고 합니다. 지적인 사고에 맞춰진 영혼을 가진 사람은 영리합니다. 각자는 영리한 것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이 영리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 그것들은 정말 영리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지점까지만 적용되며, 그 지점까지 영리한 사람은 아직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항상 이런 경험을 하며 일상적 상황에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판단을 발전시켜온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멍청한 견해를 듣고 있는 것은 정말 고문과도 같으며 그렇게 느끼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떤 지점까지만 진실입니다. 누군가 무엇을 점점 더 발전시키면서 더 영리해져갈 수 있습니다. 초감각적 통찰은 다른 특질의 영리함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멍청함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지 않고 더 늘어난다는 것입니다. 지혜를 얻은 사람은, 너무 노골적인 표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만, 그러한 멍청한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바보 같은 이야기가 평균적인 영리함으로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영리하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멍청함이 훨씬 더 발전된 인간성으로부터 종종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해 점점 더 깊어지는 통찰을 획득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멍청함이 세상의 다른 차원에선 다르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에 관심이 생깁니다. 일반적인 물질세계 안에서 영리한 사람에게 바보처럼 보이는 어떤 사람의 멍청함이, 그 형태가 뒤틀리고 우스꽝스러울 수는 있지만, 어떤 경우엔 다른 차원의 세계 안에서의 지혜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니체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세상은 “인정하기엔 너무 심오함”입니다.

인지학협회가, 또는 다시 말해서 인지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집단이 건강한 토대 위에 서려면 세상에 대한 우리의 느낌이 그러한 인식을 토대로 해야 합니다. 그렇게 물질세계에 관계하는 것과는 다르게 정신세계에 관계해야 함을 아는 사람은, 정신세계의 것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물질세계로 가져올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물질세계에서 꿈꾸는 사람이 아니라 실용적인 사람이 됩니다. 그것이 너무나도 중요한 것입니다. 인지학자가 됨으로써 물질세계에서 무용지물인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진정 필수적입니다. 이는 강조되고 또 강조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인지학협회의 개별 회원들이 인지학협회의 삶을 제대로 보살피기 위해 가져할 태도라는 점은 제가 두 번째 슈투트가르트 강연에서 하려는 말이었습니다. 그 삶은 머리의 것이 아니라 가슴의 것이란 점을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한 사람의 삶에서 어떤 경우엔 남들과 다른 외로운 여정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슈투트가르트에서 우리의 관심은 인지학협회의 삶의 조건, 그것을 공론화해야 했습니다. 인지학협회가 계속되기 위해서, 인지학협회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그 협회가 살아 있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흥미란, 인지협회를 상대로 계속 증가하는 적대감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포함됩니다. 저는 슈투트가르트에서 이 문제도 다루어야 했습니다. 저는 1919년 이후 인지학협회를 통해 생겨난 많은 단체들이, 그 자체로는 의미가 있었으나, 인지학 운동을 올바른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참가자들의 공통된 관심을 토대로 발전시켜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새로운 참가자들을, 그들이 참가하기 전에 시작된 것들에 흥미를 갖지 않고, 좁은 견해로써 인지학을 추구한다는 식으로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이들 새로운 단체들이 인지학 운동을 향해 증가하는 적대심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맞습니다. 전에도 적대감은 있었지만 우리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는 우리를 적대시하는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인지학협회 안에서 알아야 할 것을 말하겠습니다. 친애하는 동료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1916년 또는 1917년 이래 인지학협회가 발전해온 세 단계에 대해, 초감각적 세계에 관련한 인지학적 연구에 대해 강연을 해왔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진정한 정신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잘 느끼지 못하는 분들은 정신세계에 대한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자료의 양이 증가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들이 왜 적대적인지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가는 대로 따라가며 그들의 이유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 중에 몇몇 리더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각 개인이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지구의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정신세계의 진실을 억누르고 짓밟으려고 합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을 따르지만 그 리더들은 인지학적 진리가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의 반대는 완전히 의식적이며 그 추종자들을 부추기는 노력 또한 그렇습니다.

그들의 실제 의도는 무엇일까요? 저와 관련하여 말씀드리자면 그들은 제가 그들의 공격에 파묻혀서 인지학 연구를 할 시간이 없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신세계를 탐구하려면 우리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종종 말도 안 되는 공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조용함 속에서 내적인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베어벡 선생님은 그의 훌륭한 슈투트가르트 강연에서 종교학자들이 쓴 다수의 공격적인 책들을 소개하였습니다. 열두 권 정도의 책을 소개했는데, 그 책을 다 읽는 데에만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들에게 반론을 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아마도 다른 연구는 하나도 할 수 없을 텐데, 이것이 많은 분야 중 한 분야에서 그렇다는 말입니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만큼의 책들이 쓰여졌습니다. 실제 사람들은 진정한 인지학 연구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공격적인 글들의 폭격을 맞고 있습니다. 이는 매우 의도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각자가 균형을 잡기 위한, 인지학을 살찌우기 위해 필요한 힘을 갖고 있다면 그러한 책들을 제껴둘 수 있습니다. 저도 그 책들의 제목을 알지 못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책들도 책더미에 쌓아둘 뿐인데, 그러한 공격을 걱정하면서 동시에 정신세계의 연구를 동시에 실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적이 말합니다. “그는 우리의 질문을 회피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인지학협회가 그러한 역할을 저 대신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과 대적하지 않으면, 인지학적 연구를 진전시킬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법적 소송을 걸 근거를 마련하는 것에 가장 관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그러한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조짐이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저를 인지학적 활동을 할 수 없는 영혼의 상태가 되게 만들 거라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자, 친애하는 회원 여러분,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의 대부분은 그 사실을 알고 있고 잘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이 인지학협회에도 알려져야 합니다. 만일 그에 대한 올바른 주의가 기울여진다면 행동이 따를 것입니다. 저는 인지학협회가 유지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우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이룬 성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그곳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제가 인지학협회에서 빠져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만일 제가 슈투트가르트 총회에서 한 순간 일어난 일을 토대로 결심을 했다면,  최근 회원들이 인지학협회로부터 탈퇴하여 인지학을 다른 방법으로 세상에 알려야 한다고 말해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한 그 순간에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9인 위원회가 인지학협회의 여러 분야 활동에 대한 보고회 일정을 잡았습니다. 그 보고회에선 발도르프 학교, 자유정신적 삶 연합, Der Kommende Tag, 인지학 잡지 Die Drei 등등의 활동과 우리를 공격하는 자들에 대한 대처 방안이 논의될 예정이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문제에 골몰하고 있는 베어백 선생님은 문학적 관점에서 그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훌륭한 강연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사안에 대한 구체적 부분은 더 토론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나요? 베어백 선생님이 보고하고 있는 중간에 보고를 중단하고 바로 토론으로 들어가자는 발의가 있었습니다. 인지학협회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면서 토론을 하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우리를 공격하고 있는 사람들의 활동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는 중에 보고를 생략하자는 발의를 합니다!

더 황당한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전날 밤 슈타인 박사는 청소년 운동에 대한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모임의 장이었던 라인하스 님은 제가 이틀 전에 말씀드렸듯이 쏟아지는 회의 안건 발의 때문에 곤혹스러워했습니다. 하나의 안건이 발의되자마자 또 하나의 안건이 이어져서 어떻게 토론을 이어가야 할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표자 회의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은 사전 준비를 했던 사람들처럼 끝없는 회의에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슈투트가르트에서는 모두가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합니다. 우리는 종종 오후 9:30 또는 10시에 모임을 시작하여 아침 6시까지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대표단은 그러한 훈련이 안 되어 있었습니다. 슈타인 박사가 청소년 운동, 청소년들의 바람에 대한 보고를 하기 전에 이미 늦은 시간이었고, 진행상의 착오인지 또는 아무도 그가 보고를 하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하였는지, 많은 사람이 회의장을 떠났습니다. 어쨌든지 슈타인 박사는 보고를 하였고,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자신들이 없는 상황에서 보고가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다시 보고를 해 줄 것을 발의하였습니다. 하지만 슈타인 박사는 이미 거기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슈타인 박사가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고를 하러 돌아왔을 땐, 회의의 방향이 그의 보고를 두 번 듣자는 의견은 고사하고 한 번도 듣지 않겠다는 쪽으로 흘러갔고 또 그 발의가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그의 보고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는 반대 세력에 대한 세부적인 토론으로 이어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슈타인 박사는 세부사항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고, 인지학에 대한 형이상학적 적대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보고는 아주 영특한 것이었지만, 적들에 대한 실제적인 내용을 제공하지 않고 적대감의 형이상학에 제한된 것이었습니다. 그 상황은 독일 인지학협회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적에 대한 이야기를 아예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완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그러한 사안에 대해 보고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회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은 인지학협회 구성원의 자세는 아닙니다. 인지학이 세상에 알려지는 방법은 나날이 커져가는 적대세력에 대해 인지학협회 구성원들이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제가 회원들이 “인간은 인간을 만나야 한다”라는 식의 구태의연한 구호들을 반복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면, 더 이상 인지학협회에 관여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었습니다. 그 구호들은 슈투트가르트에서 여러 표현으로 외쳐졌지만 토론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자신의 상상 세계가 아닌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부터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인지학협회에서 탈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제가 지난 토요일에 묘사한 것과 같은 해결책을 찾기 위해 검토해야 하는데, 한편엔 옛 인지학협회가 실존하고, 또 다른 한편엔 느슨한 연대가 생성되고 있어서, 궁극적으론 어떤 다리 역할을 하는 그룹이 이 두 물길을 하나로 이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출처 : 발도르프교육 2021년 봄/여름호 https://www.waldorfedu.kr/menu01/%ec%97%b0%ed%95%a9%ec%9e%90%eb%a3%8c/]

* 약간의 교정 및 윤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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