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군사‧안보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군사‧안보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5. 9. 07:06

 

군사안보교육에서 평화‧통일교육으로

- 2008년 이후 아동을 대상으로 한 군사안보교육의 실태 조사와 비판적 분석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 서론 : 학교는 평화를 가르치는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기 1년 전인 20137, 태안의 한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다섯 명의 고교생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해경의 수사결과에 따르면 캠프 교관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학생들을 바다에 뒷걸음질로 들어가게 했다. 그 과정에서 갯골이라 불리는 바닥이 움푹 파인 지점에 학생들이 빠졌던 것이다. 학생들은 실종되었고, 며칠 뒤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충남교육청에서는 2010년부터 나라사랑 병영체험 캠프를 학교에 추천하고 관련 예산을 지원했다. 2010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교육청에서 인성교육을 위해 적극적으로 강조하던 항목인 나라사랑을 이 같은 안보교육으로 곧장 연결시킨 것이다.


병영체험이 천안함 사건 이후 처음 도입된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친 1997년부터 해병대사령부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해병대 캠프를 시작했다. 불황 타개를 위한 대국민 정신력 강화의 일환으로 호응이 높아지자 2000년대 초반 해병대 출신 전역 군인들이 운영하는 사설 병영체험 업체가 난립하기 시작했다. 사설 해병대 캠프의 주요 고객은 초중등 학생들로서 전체 고객의 80%에 이르렀고, 2012년에는 시장 규모가 9조원 대에 이르렀다.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안보교육이 강화되면서 병영체험 시장은 더욱 커졌다. 20113, 교육부와 국방부, 교총은 초중등 학생들에게 올바른 국가관 및 안보의식을 함양시킨다는 명목으로 학생 병영체험활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한다. 여기에 재향군인회와 보훈처가 적극 협력하게 되었다.


한때 학생자살자수가 연간 200명이 넘기도 했던 우리 사회에서 주된 인성교육으로 병영체험이 강조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강한 정신력이며, 이를 위해 학생들도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전쟁터임을 보여준다. 한 인간의 소질을 계발하여 자기실현의 길을 열어주고, 더불어 평화롭게 사는 법을 가르쳐주어야 할 학교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 이 보고서는 한국 사회가 그동안 벌여왔던 군사안보교육의 역사적 실태를 파악하고, 그 안에 담긴 모순과 폭력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안보교육을 평화교육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 학교 안에서의 안보교육

 

1. 학교 안보교육의 변천과정

 

안보교육의 역사는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시행한 반공교육에서 시작되었다. 6.25전쟁과 남북분단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체제유지의 수단으로 반공(反共)’은 국가정책의 제1원칙으로 적용되었다. 이후 통일교육에 이르기까지 안보교육의 시대적 배경과 각 시대별 교육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반공교육기 : 1945-1987

반공교육은 6.25전쟁 이후부터 강화되어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만행에 대한 적개심과 경계심을 고취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승만 정부에서는 반공교육을 도덕교육과 일원화하였고, 박정희 정부에서는 도덕교과서를 민주시민승공통일의 길로 분책하였다. 신군부정권인 전두환 정부도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데 치중하였다.

 

2) 통일안보교육기 : 1987-1991

소련이 해체되고 독일이 통일하면서 냉전체제가 막을 내리는 국제정세에 따라 반공교육은 통일안보교육으로 전환되었다. 북한을 대결대상이나 적으로 규정하기보다 함께 살아야 할 민족으로 규정한 것이다. 이 시기부터 통일관련 교육이 확대 편성되어 기존의 안보교육과 동등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

 

3) 통일교육기 : 1991-2007

문민정부가 출범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면서 통일관련 교육의 비중이 안보교육의 비중을 넘어섰다. 안보교육은 통일교육의 하위영역으로 규정되었다. 7차교육과정(1997) 이후에는 통일교육이 전 교과로 확대되었고, 안보와 관련된 개념과 비중은 극도로 약해졌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안보교육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2. 2008년 이후의 안보교육

 

20088월 교육과학기술부는 한미연합 훈련인 을지연습 기간에 맞춰 16개 시·도교육청에 안보교육 실시를 지시하는 공문을 보냈다. 청소년 대상 안보·안전의식 실태조사에서 학생들의 안보의식이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어서 각급 학교에서는 한국전쟁 영상시청, 을지연습 견학, 안보강연 등의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교과부는 이미 그해 5월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벌어졌을 때 각 시·도교육청에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그 실적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낸 바 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첫 해 지지율이 20퍼센트대로 떨어지자 정권차원의 위협을 느끼고 안보교육을 강화했다. 보수세력은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과 학생들을 종북좌파로 몰아세우기 시작했고, 교과부는 이에 편승했다.


이명박은 201012월 국무회의에서 안보 문제는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분단된 나라이기에 철저한 의식이 없으면 앞으로 우리가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어도 국민은 항상 불안할 수밖에 없다라고 발언하면서 전 국민 안보의식 강화를 주문했다. 이에 따라 행정안전부는 전국의 기초·광역 지자체의 민방위 안보교육을 부활시켰다. 이듬해 3월 기획재정부는 286개 공공기관과 공기업에 일제히 안보교육을 지시하는 공공기관 안보교육 실시 협조 요청 및 교육계획 제출 요청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안보교육의 강화 기조는 박근혜 정부에도 이어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통일교육 지침서에 제시되었던 통일정책과 남북교류 협력에 관한 내용은 전면적으로 삭제되었고,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위협을 강조하면서 이를 경계하는 방향으로 통일안보교육의 방향이 설정되었다. ‘2009 교육과정 개정과정에서 도덕과의 통일교육 내용은 전반적으로 위축되었다. 도덕교과서에서 통일교육은 초중등학교 2개 학년별 학습요소에서 1개 단원씩 일괄적으로 축소되었고 그 자리를 안보교육이 차지했다. ‘2015 교육과정 개정에서도 이러한 통일교육 축소 경향은 그대로 지속되었다. 사라져가던 안보교육이 통일교육을 누르고 올라선 것이다.

 

 

. 학교 밖에서 들어오는 안보교육

 

20147월 서울 강동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현역 육군소령이 상영한 안보교육 동영상이 파문을 일으켰다. 강제 낙태와 영아 살해, 손을 뒤로 묶는 비둘기 고문과 공중 매달리기 고문 등을 여과 없이 학생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칼과 몽둥이로 내리치고 피가 튀는 장면에서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생생하게 보여주겠다는 의도로 국방부에서 제작한 나라사랑교육 동영상이었다.


2010전 국민의 안보의식 강화 방안방침에 따라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는 군사안보교육을 강화해왔다. 2011년부터 전국의 군부대와 각 시도교육청은 안보체험교육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기 시작했고, 군에 의한 안보교육은 특히 2012년 이후 전국의 초중등학교에서 광범위하게 실시되어 왔다. 2015년 을지연습 기간 중 군에서는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총기사용 시범을 보이는 체험행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러한 무절제한 군사안보교육이 나라사랑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되어 왔다.


국가보훈처의 설명에 따르면 나라사랑교육이란 국민들에게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사람들의 숭고한 정신, 독립·호국·민주화에 대한 역사의식, 안보의식, 국가정체성 등에 대한 이해를 제공하여 국민으로서의 자긍심과 국가에 대한 나라사랑정신을 함양하기 위한 교육이다. 국가보훈처에는 나라사랑교육과가 부서로 존재했으며, 다음과 같은 활동을 해왔다.

 

나라사랑정신 함양에 관한 교육정책 수립 및 제도 운영 총괄

안보의식 고취를 위한 교육에 관한 사항

각급 학교의 나라사랑 교육 지원

국가정체성 확립을 위한 교사 등에 대한 교육

국가의식 고취를 위한 나라사랑 전문 강사진 구성 및 운영

국가유공자 등에 대한 연수교육 및 나라사랑정신 교육에 관한 사항

국외 사적지 탐방에 관한 사항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되어 박근혜 정부까지 확대된 나라사랑교육은, ‘구시대적이며 중립성과 객관성을 위반한 정치 편향적 반공교육, 안보를 빙자한 사상교육이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에서는 호국보훈교육진흥법을 추진해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교육 실시를 법으로 못 박으려는 시도까지 했으나 정권 교체 후 입법 절차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나라사랑교육과는 결국 폐지되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가보훈처와 국방부의 나라사랑교육 역시 폐지되었다. 그러나 국가유공자와 함께 하는 보훈현장 탐방 등 국가보훈처의 나라사랑 프로그램은 나라사랑배움터를 통해 유지되고 있으며, 국방부 역시 각종 안보체험행사와 나라사랑 계룡대견학, 해병대캠프 등을 지속하고 있다.

 

 

. 안보교육의 폭력성

 

안보교육을 옹호하는 이들은 군사안보와 평화가 다른 게 아니라고 말한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라든지, ‘상대보다 힘의 우위에 있어야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라는 식의 현실주의적 가짜 명언을 내세운다. 다시 말해, 세상은 양육강식의 무정부 상태이니 살아남으려면 힘을 기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업과 학교는 노동자와 학생들에게 해병대 캠프에 참가하기를 종용했다. 학생들은 입시체제의 학교라는 전쟁터에서, 노동자들은 사업장이라는 전쟁터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싸운다. 실제로 한국은 국가적으로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며, 전시상태에 준하는 국가폭력이 지배해왔다. 가까이로는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보여준 강압과 통제를 기억할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종전협정으로 나아간다면 새로운 희망이 싹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의 정신을 지배해온 것은 폭력적 군사문화였다.


안보교육은 늘 적을 상정한다. 우리와 적을 나누고, 우리는 늘 적의 위협 속에 살아간다고 가르친다. 적은 무자비하고 교활하며 비겁하기까지 하다. 그런 적과 상대하기 위해 우리는 긴장을 놓쳐서는 안 되고, 상급자의 지시에 이견을 달아서는 안 되며, 약한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안보교육을 받을수록 학생들은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 자기를 부정하고 혐오하는 사람, 강자에게는 순종적이고 약자에게는 위압적인 사람이 되기 쉽다. 나라사랑교육이 목표로 삼은 것은 애국심이 넘치고 안보의식이 투철한 국민이겠지만, 실제로는 내면에 공포와 의심이 가득해 서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들어낼 수 있다. 폭력적인 군사훈련체험은 전쟁교육으로서 이러한 과정을 완성할 것이다.

 

 

. 결론 : 전쟁교육에서 평화교육으로

 

19891120일 유엔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되고 1991년 대한민국이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의 서문은 아동이 사회에서 한 개인으로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히 준비되어야 하며 그 준비의 과정에서 특히 평화, 존엄, 관용, 자유, 평등, 연대의 정신 속에서 양육되어야 함을 고려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아동의 교육목표를 기술한 29조는 더욱 구체적으로 인종적, 민족적, 종교적 집단 및 원주민 등 모든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해, 평화, 관용, ()의 평등 및 우정의 정신을 교육 목표로 삼아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현재 초중등학교 일부에서 평화·인권교육이 일부 시행되고 있지만 주로 학교폭력 예방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안보는 군사적 대결과 적대감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시민 개인의 인권이 보호되고 존중되며,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존재여기에는 물론 북한도 포함된다를 서로 인정하는 것에서 나온다. 진정한 안보는 적극적 평화라고 할 수 있다. 평화와 인권에 관한 교육은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되어 현재의 군사안보교육을 대체해야 한다. 정부와 교육청, 전문성을 갖춘 전문기관과 시민단체들이 협력하여 교육 콘텐츠를 강화하고 안정적인 교육이 시행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평화를 준비해야 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