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평화를 만드는 원 - 회복적 대화모임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평화를 만드는 원 - 회복적 대화모임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2. 22. 06:57

평화를 만드는 원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대화모임은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비폭력적 방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갈등이 벌어졌을 때 더 이상 고조되지 않도록 하고, 그 에너지를 창조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함께 모여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의 본성을 이해했다면 그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면 됩니다. 기술적인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를 향해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는 함께 모이는 일이 가장 어렵습니다. 갈등이 생겼다는 것은 이미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을 낸다는 것은 크나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대화모임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용기를 주며 존중하는 태도를 훈련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문화처럼 어렸을 때부터 습관화되는 것이 좋습니다. 자의식이 확고해진 어른들의 경우에는 나이가 들수록 특별한 계기 없이는 마음을 내기가 어려워집니다. 어린 시절부터 교실에서 대화모임에 참여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갈등이 벌어지지 않았더라도 평소에 대화모임을 자주 갖는 것은 교실의 평화 문화를 가꾸는 데에 아주 좋은 영향을 줍니다. 우리는 누구나 표현의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기린이든 자칼이든 한마음입니다. 자기 마음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기본적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화모임을 통해 우리의 마음과 마음은 더욱 단단히 연결될 것입니다. 갈등으로 인해 단절되었던 마음은 대화 속에서 다시 이어질 것이며, 갈등 이전보다 더욱 굳건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원이 상징하는 것

 

대화모임에서 우리는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능하면 원의 형태를 만드는 게 좋습니다. 원은 특별한 도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화모임을 흔히 서클(Circle)’ 또는 원형 대화모임이라고 부릅니다. 수학적으로 원은 일정한 점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의 집합을 뜻합니다. 중심점으로부터 동등한 거리에 있는 점들은 평등합니다.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는 점들은 곡선을 이루고, 이 곡선은 유연하고 완벽한 형태로 도형 전체를 휘감아 돕니다. 여기에서 중심점은 인간의 심장과 같은 것으로 원의 씨앗이자 핵심입니다. 중심점을 통해 원은 팽창하며 자기 자신을 완성합니다. 중심이 제대로 버티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맙니다. 춤을 추는 사람은 움직이는 동안 몸의 무게중심을 이용해 균형을 잡으면서 아름다운 동작을 취합니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조차 우리에게는 마음의 무게중심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중심에는 사고, 감정과 함께 세상을 확인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인식의 욕구가 있습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인식 능력의 씨앗입니다. 우리가 원의 형태로 둘러앉을 때에도 그 중심에는 고요하고 신성한 인식의 씨앗이 있습니다. 이러한 원의 특성 덕분에 세계 많은 지역의 문화와 종교에서는 원을 특별한 도형으로 여깁니다.

 

모든 원은 모양이 같습니다. 다만 크기가 다를 뿐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색연필과 종이를 주고 무엇을 그리는지 관찰해 보면, 아주 어릴 때는 선을 지그재그로 그립니다. 그러다가 조금 자라면 아이는 선의 끝부분이 출발점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 고리 모양에 기뻐합니다. 고리 모양은 끝없이 빙글빙글 돌고,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분리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아이는 원을 그리게 됩니다. 원은 고리를 완전한 모양으로 만들어 어느 방향으로 가더라도 둥글게 돕니다. 원을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를 통해 우리는 어린 시절에 원형적으로 느끼는 우주의 전체성과 통일성, 그리고 신성한 질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부 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원의 발견은 아이가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과 타인을 구별할 때 비로소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어른이 되고 나서도 우리는 여전히 최면에 걸린 듯 우리가 만들거나 보는 물체들에서 원과 그 중심에 끌리는 것을 느낍니다.

 

김이 서린 창문이나 바닷가 모래밭에 낙서를 할 때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원을 그리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자아를 인식합니다. 원에는 세계와 우리 자신의 깊은 완전성과 통일성, 전체성, 그리고 자연의 신성함이 투영돼 있습니다. 원형 대화모임의 세계관은 세계가 통합된 하나이며 세상 만물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지학을 비롯해 인류의 위대한 사상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는 보편적 인식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과 자연물, 그리고 우주 전체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만약 다른 존재에게 어떤 일이 생기면 그것과 연결된 우리 자신도 영향을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이 변화하면 다른 존재들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을 완전히 체화했을 때, 우리는 서로를 전체의 일부로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여기고, 서로를 존중하게 됩니다. 갈등은 당사자 간의 욕구가 충돌하는 것이지만 더 깊이 들여다본다면 대화의 실패이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드러내는 현상입니다. 폭력적 범죄는 공동체의 신뢰 관계가 파괴되었고 병들었음을 보여 줍니다.

 

시간적으로 원은 순환을 상징합니다. 정지해 있는 중심과 달리 원주는 바퀴처럼 회전 운동을 합니다. 원은 자연의 보편적 주기와 순환, 규칙성, 리듬을 상징합니다. 리듬은 우주의 모든 곳에 스며 있습니다. 우리는 호흡과 심장박동, 낮과 밤, 계절처럼 주기적 리듬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규칙적인 주기를 따르고, 무언가 잘못되더라도 제자리로 돌아와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이 믿음이 윤회관으로 확대됩니다. 새싹이 돋는 봄이 오고 잎이 무성해지는 여름이 가며 열매가 열리는 가을을 지나 낙엽이 지면 겨우내 씨앗은 땅에 묻혀 차갑고 어두운 땅 속에서 봄을 기다립니다. 현재의 삶에서 겪게 되는 고통과 성취를 가지고 언젠가 우리는 정신세계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여러 단계를 거친 뒤에 다시 이곳 지상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돌아오면서 또 새로운 카르마, 즉 삶의 과제를 부여받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우리 문화의 윤회관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전은 당장의 삶에서도 일상적으로 벌어집니다. 누군가와 어떤 일로 갈등을 겪다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듯 가 버리면 그곳에 또 비슷한 사람, 아니 더 심한 사람이 있어서 다시 갈등을 겪게 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저학년 때 다른 친구들을 괴롭히던 아이가 고학년이 되어서는 괴롭혔던 친구들에게 오히려 괴롭힘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돌고 도는 세상이라고 말합니다.

 

교실에서 갈등 사건이 벌어졌을 때 서둘러 해야 할 일은 일단 둥그렇게 앉는 것입니다. 원형 대화모임은 좀 더 깊은 연결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서 갈등은 관계를 회복하는 계기가 됩니다. 원 안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합니다. 이것은 모임을 진행하는 사회자도 마찬가지이며, 어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원의 중심점은 비어 있거나, 촛불과 꽃처럼 우리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줄 수 있는 경건한 물건만이 허락됩니다. 원 안에는 갈등의 당사자뿐만 아니라 교사를 포함한 학급의 구성원 모두가 발언의 권리와 함께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해야 할 의무를 동등하게 갖습니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상이나 전략이 필요치 않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우리가 만일 인간의 본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 이야기 나누고, 마음을 모아 지혜로운 해결 방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진솔한 이야기에는 이야기만이 갖는 힘이 있어서 대화모임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무거웠던 마음이 풀리고 속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여기에 원이 주는 신비한 힘까지 더해져 대화모임은 갈등으로 불편해진 관계를 회복하고 교실에 신선한 기운을 가져올 것입니다.



<교실 갈등, 대화로 풀다>에서 발췌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