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데이비드 호킨스 Dr. David R. Hawkins 본문
데이비드 호킨스 Dr. David R. Hawkins
인간 정신의 진화에 관한 전문가이자 명강의자로서 널리 알려진 그는 1952년부터 정신요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정신치료협회의 종신회원으로 특별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환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다수의 과학 논문과 강연 테이프를 발표했으며, 1973년에는 <음식을 통한 정신 치료>를 노벨상 수상자인 리누스 폴링과 공동 저작하여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여 년에 걸친 연구와 수천 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의 열매인 이 책은, “표면의식에서는 모른다고 생각되는 것도 인간의 깊은 잠재의식에서는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음”을 증명해 보임으로써 그동안 잠자고 있었던 내면의 신성(神性)이 활성화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해 준다. 또한, 기독교가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 도교가 말하는 신명(神明) 시대, 증산이 말하는 후천개벽시대가 밝아오고 있음을 예표하듯, 실험 결과를 통해 최근 인가의 의식 레벨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음을 보고, 충격을 안겨 준다. (책날개)
<의식혁명>, 이종수 옮김, 한문화, 1997
제1부 방법
1. 앎의 도약
2. 역사와 방법론
3. 시험 결과와 해석
4. 인간의 의식 수준
5. 의식 수준의 사회적 분포
6. 새로운 지평선
7. 생활 속에서의 임계점 분석
8. 잠재력의 근원
제2부 연구
1. 삶의 자세와 잠재력의 패턴
2. 정치와 잠재력
3. 시장경제와 잠재력
4. 스포츠와 잠재력
5. 사회의 잠재력과 삶이라는 경기
6. 예술과 잠재력
7. 천재와 창조의 잠재력
8. 진정한 성공
9. 건강과 잠재력
10. 건강과 질병
제3부 의미
1. 의식의 데이터베이스
2. 의식의 진화
3. 순수 의식 탐구
4. 영혼의 투쟁
5. 진실의 추구
6. 앞으로 나아갈 길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사용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운동역학이다. 자극에 대한 근육의 반응에 기초를 둔 것으로 과학적인 검증이 즉각적이다. 긍정적인 자극은 근육에 강한 반응을 초래하고, 부정적인 자극은 약한 반응을 가져올 것이라는 가정에 따라 근육 테스트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분야로 확대하여 그 힘의 정도를 1부터 1000까지의 대수로 나타낸 것이다.
인간의 의식수준을 에너지의 수준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20 수치심, 30 죄의식, 50 무기력, 75 슬픔, 100 두려움, 125 욕망, 150 분노, 175 자존심, 200 용기, 250 중용, 310 자발성, 350 포용, 400 이성, 500 사랑, 540 기쁨, 700~1000 깨달음.
*
깨달은 이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다.
그들은 아주 단순해 보인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절대자의 신비를 알 수 있고,
이 신비를 아는 것은 은밀한 잠재의 힘이며,
미묘한 이 힘은 삼라만상을 움직이지만 이름이 없다. (5)
운동역학은 본격적으로 제 자리를 잡은 공인된 과학으로서, 자극에 대한 근육의 반응에 기초를 두고 있다. 긍정적인 자극은 근육에 대한 강한 반응을 초래하고, 부정적인 자극은 현저히 약한 반응을 가져온다. 운동역학적인 근육 테스트는 지난 25년 동안 진단을 내리는 데에 보탬을 주는 한 가지 테크닉으로서 그 정당성을 널리 인정받아왔다. 굿하트가 처음 연구를 시작했지만 일반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존 다이아몬드 박사의 저서를 통해서이다. 다이아몬드 박사는 이러한 긍정적, 부정적 반응이 물리적 자극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극에도 똑같이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16)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런 시험을 통해 인간의 의식 레벨을 수치화시킬 수 있었으며, 그리하여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의식 수준의 모든 영역을 대수(代數)로써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시험을 거듭한 결과, 필자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서 그 힘의 정도를 1부터 1000까지의 대수로 나타낼 수 있었다. (17)
여기에 기술된 운동역학적인 시험으로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어느 문제이든지 무제한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누구에 대해서든지, 어디서나, 어느 시대의 것이든,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다는 데에 대한 깨우침은 처음엔 패러다임적인 충격일 수 있다. 이러한 반작용은 대개는 의식 자체의 보편성과 무지역성, 몰개성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어느 한 개인의 고유한 생각과 동기가 시간을 건너뛰어 투명하게 관찰될 수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개개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우주에 지울 수 없는 흔적으로 남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커다란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19)
우주 안의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들 연구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 중 하나인 의식의 에너지 장이라는 지도책을 그리는 일은, 다른 학자들이 탐색해 온 모든 길들과 상호관련됨은 물론 그들에 의해 인증받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 경험의 다양한 표현들이 전체를 포용하는 하나의 패러다임 안에서 통합되어야 하리라 믿는다. 그러한 통찰력에 의해서만 주체와 객체라는 인위적인 이원성을 우회할 수 있으며, 이원성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내는 제한된 관점을 뛰어넘을 수 있다. 주체와 객체란 사실은, 하나인 것이며 같은 것이다. (40)
200 이하의 수준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삶의 태도는 ‘살아남기’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낮은 수준은 가난과 결핍에서 비롯되는 절망과 우울의 영역이다. 그보다 높은 분노와 욕망의 단계에 이르면, 개인의 생존을 위해 자기 본위의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자존심의 수준에 이르면, 살아남으려는 본능이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최초로 이해하기 시작한다. 긍정과 부정의 갈림길이 되는 용기의 수준에 이르면, 다른 사람들의 안녕이 점차 중요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500의 수치에 이르면, 다른 사람의 행복을 고려하게 되어, 그것이 그 사람을 움직이는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게 된다. 600대에 가까워지면,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눈뜸에 관심을 갖게 되고, 600대에 이르면 인간의 선과 깨달음을 위한 추구가 삶의 기본적인 목표가 된다. 700에서 1000까지는 모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삶이다. (64)
의식의 지도
MAP OF CONSCIOUSNESS
신의 관점 God-view | 세속의 관점 Life-view | 수준 Level | 대수의 수치 Log | 감정 Emotion | 과정 Process |
자아 Self | 존재 Is | 깨달음 Enlightenment | 700-1000 | 언어 이전 Ineffable | 순수 의식 Pure Consciousness |
항상 존재하는 All-Being | 완전한 Perfect | 평화 Peace | 600 | 축복 Bliss | 자각 Illumination |
하나 One | 전부 갖춘 Complete | 기쁨 joy | 540 | 고요함 Serenity | 거룩함 Transfiguration |
사랑 Loving | 자비로운 Benign | 사랑 Love | 500 | 존경 Reverence | 계시 Revelation |
현명함 Wise | 의미있는 Meaningful | 이성 Reason | 400 | 이해 Understanding | 추상 Abstraction |
인정 많은 Merciful | 화목한 Harmonious | 포용 Acceptance | 350 | 용서 Forgiveness | 초월 Transcendence |
감화 주는 Inspiring | 희망에 찬 Hopeful | 자발성 Willingness | 310 | 낙관 Optimism | 의향 Intention |
능력이 있는 Enabling | 만족한 Satisfactory | 중용 Neutrality | 250 | 신뢰 Trust | 해방 Release |
용납하는 Permitting | 가능한 Feasible | 용기 Courage | 200 | 긍정 Affirmation | 힘을 주는 Empowerment |
무관심한 Indifferent | 요구가 많은 Demanding | 자존심 Pride | 175 | 경멸 Scorn | 과장 Inflation |
복수에 찬 Vengeful | 적대의 Antagonistic | 분노 Anger | 150 | 미움 Hate | 공격 Aggression |
부정하는 Denying | 실망하는 Disappointing | 욕망 Desire | 125 | 갈망 Craving | 구속 Enslavement |
징벌의 Punitive | 무서운 Frightening | 두려움 Fear | 100 | 근심 Anxiety | 물러남 Withdrawal |
경멸의 Disdainful | 비극의 Tragic | 슬픔 Grief | 75 | 후회 Regret | 낙담 Despondency |
비난하는 Condemning | 절망의 Hopeless | 무기력 Apathy | 50 | 절망 Despair | 포기 Abdication |
원한을 품음 Vindictive | 사악한 Evil | 죄의식 Guilt | 30 | 비난 Blame | 파괴 Destruction |
멸시하는 Despising | 비참한 Miserable | 수치심 Shame | 20 | 굴욕 Humiliation | 제거 Elimination |
인간은 지금껏 법률 행위나 전쟁, 조작, 법률과 규제 등 억지의 힘으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치료’하려고 애써 왔다. 역사는 그 자취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렇듯 문제를 치료하기 위해 발버둥쳤건만 문제는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 억지의 힘으로 문제를 치료하녀는 정부나 개인은 근시안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예민한 관찰자들은 선연하게 알고 있다. 사회의 갈등이란 근본적인 병인(病因)을 드러내고 ‘치유’하기 전에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치료(treatment)와 치유(healing)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한다. 치료하려는 사람이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변화가 없고 한결같다. 그러나 치유하려는 사람은 문제의 앞뒤 관계를 파악하여 관점에 변화를 꾀한다. 그리하여 문제로부터 야기되는 증상을 다루기보다는 문제의 핵심을 철저히 제거하는 것이다. 고혈압 환자에게 약을 주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긴 하다. 그러나 환자로 하여금 인생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게 하여 분노하고 억압하는 마음을 없애도록 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차원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67)
높은 의식 수준으로 올라갈수록 사람들은 이미 주어진 자신의 전생애를 다시 계획하고 싶어하게 된다. 고도의 의식 상태를 단 한 순간 경험했을지라도, 그 순간의 경험은 인생에 대한 생각이나 목적, 가치관을 온전히 바꿔 놓을 수 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옛날의 자기가 아닌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영혼의 길목에서 얻어진 이러한 보기 드문 경험이야말로 영혼의 진화, 바로 그것이다. (100)
우주의 모든 것은 특정한 파장의 에너지를 발산하고, 이 에너지 패턴은 영구히 존재하며, 그러한 원리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 읽혀질 수 있다. 모든 언어․행동․동기가 영원한 기록을 남기게 된다. 모든 생각은 저절로 알려지게 되고, 영원히 기록으로 남는다. 거기에는 어떠한 비밀도 없다. 숨겨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또 숨길 수도 없다. 우리의 영혼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시간 안에서 벌거벗은 채로 서 있다. 우리는 결국, 저마다 우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143)
창조성과 천재성은 인간의 의식세계에 본래부터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 속에 똑같은 의식의 정수가 깃들여 있는 것처럼, 천재 또한 모든 인간 속에 잠재되어 있다. 천재성은 자신을 발현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동안 천재의 순간을 경험한다. 우리는 별안간 아주 명석한 결정이나 행동을 하며, 이유를 알 수 없이 그 순간에 적절한 말을 찾아내곤 한다. (185)
진화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과하는 데 있어서 우리 자신이나 인류 전체에 자비심을 품는 것은 상황이나 질병의 호전을 위해서나 의식의 진화를 위해서나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우리는 치유를 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치유를 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오직 이 길만이 육체적․영적 침체 상태를 치유할 수 있는 희망의 길이다. (208)
앎 자체는 의식조차도 초월하여 존재한다. 따라서, ‘절대’란 앎을 초월하기 때문에, 의식 자체가 가 닿는 너머에 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들은 절대란 설명될 수 없다고 말하며,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야말로 ‘실재’에 대한 우주적이고 영원한 진술이다. 우리가 ‘실재’를 알아보지 못할 뿐이다. 그러한 알아차림이야말로 깨달음의 진수이며, 자기를 초월하는 의식의 진화의 마지막 단계가 된다. (219)
우리가 항상 접하는 인간의 에고는 실제적으로는 개별적인 ‘나’가 아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그것’일 뿐이다. 이러한 환상을 꿰뚫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이 끝없는 ‘우주적 농담(Cosmic Joke)’이며, 인간의 비극은 그 코미디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분리된, 개별적인 ‘나’라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에고가 얼마만큼이나 맹렬히 투쟁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본질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모든 고통의 근원이 되는 그 ‘나’를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이성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부단히 애쓴다. 설명하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자기의 뒷머리를 보려고 하는 것 같은 희극에 불과하지만, 인간의 허영심은 끝이 없어서 무의미에서 의미를 찾으려 그렇게도 애쓰고 있는 것이다. (270)
인류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앎과 행동에 훨씬 진지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좋든 싫든,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는 이제 집단적인 깨달음의 진화를 꾀할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다. 무지로 인한 대가를 이제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치르고만 있을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집단 의식은 새로운 차원으로 뛰어오를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암흑의 노예로 남아 있을 수 없다. (270-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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