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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발도르프학교에서 추구하는 인간상 (5)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부모교육

발도르프학교에서 추구하는 인간상 (5)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9. 1. 15:24

발도르프학교에서 추구하는 인간상 (5)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코로나 이후 우리가 회복해야 할 공동체의 상은 무엇일까?

발도르프 학교들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공동체가 던지는 질문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들이 대단히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생활리듬이 깨져 있고, 학습 능력도 많이 약화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관계 능력에 심각한 어려움이 왔습니다. 요즘 학폭 사건이 많은데, 아이들에게 자기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맺는 훈련, 불편함을 참거나 풀어내는 훈련이 안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학교에 못 가고 비대면 생활을 하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악화되었는데, 전반적으로 향후 몇 년 동안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회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신뢰를 쌓을 것인가? 


오늘 제가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테마입니다.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가치가 뭘까, 생각을 해보면 ‘신뢰’가 첫 번째로 떠오릅니다. 우리가 함께 연합을 만들고, 학교를 운영하고,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는데 우리는 어디에서 힘을 받나요? 저는 관계에서 오는 신뢰감이라고 봅니다. 서로를 신뢰할 때 힘이 생기고 신뢰가 깨질 때 힘이 빠집니다. 우리 삶의 모든 과정은 ‘신뢰’를 기반으로 합니다. 학교도, 직장도, 가정도 그렇지요. 어떤 공동체든, 어떤 사람이든 신뢰감이 떨어질 때가 가장 큰 위기입니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친구들 사이에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학교생활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저는 다함께 질문을 던지고 같이 고민해 보았으면 합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열심히 하는 사람, 힘들어 하는 사람, 겉도는 사람 등등 아주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서로 신뢰하고 함께해 나갈 것인가? 그리고 교실에서 우리 아이가 따돌림을 당한다면, 또는 힘센 아이에게 폭력을 당한다면 다른 부모, 교사들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이에 대한 준비 없이 낭만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를 단단한 땅 위에 세우는 것은 재정과 관계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는 관계 문제에서 어떤 가치를 지향하고, 어떤 해결방법을 갖고 있을까요? 우리가 함께 지향해야할 가치는 무엇일까요? 고정된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아까는 아이들 교육에서 중요한 가치가 경이로움, 감사함, 책임감이라고 얘기했지만 지금 우리에게 상황이 달라지면 이 순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고 봅니다. 우선순위가 달라지는 거지요. 우리가 약속한 것들을 잘 지켜나가야 신뢰가 유지되겠지만, 상황에 따라서 약속은 변화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가치를 정말 중요하게 지향해야 할지, 하나의 예로서 봐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치는 이러합니다.

 


첫 번째가 신뢰입니다. 앞에서 얘기를 많이 했는데요. 우리의 에너지를 신뢰의 구축과 회복에 써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일상적인 일입니다. 학교에서든 가정에서든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신뢰가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면 언제든 그것에 대해 편안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신뢰가 깨지지 않도록 평소에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지요. 감당 안 되는 일을 함부로 약속하지 않고, 남에 대한 평가나 비판은 자제하는 게 좋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는 의도치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이해입니다. 누군가 이해가 안되면 특정 인물이나 조직에 반감이 생기고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발도르프 교육에서 발달이나 기질을 많이 다루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에 대해서 문제행동이 나왔을 때도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강한 의지와 지혜를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겠지요. 우리는 누구나 자아를 가진 존재이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똑같습니다. 하지만 분노조절이 안 되고 누군가를 괴롭힌다면, 나아가 반사회적 성향이 나온다면, 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필요하고 적절한 도움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단 문제행동, 어려움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발도르프 치유교육이나 특수교육에서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습니다.


세번째 가치는 성장입니다. 예전에는 신뢰가 가지도 않고 이해가 되지도 않은 것들이 어느 순간 이해될 때가 있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요. 성장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이들 역시 그렇습니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고 욕을 하던 아이들이 어느 학년 이상으로 올라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성숙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우리 어른들에게 성장이라는 가치는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주체적으로 접근하는 주인의식을 요구합니다.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달아야 하겠지만, 공동체 안의 일을 내 일처럼 책임감 있게 풀어나갈 때 우리는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다가오는 고통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성장합니다.


인지학에서 우리의 영혼은 감각혼과 지성혼, 의식혼의 단계가 있다고 하지요. 우리는 ‘의식혼’을 지향합니다. 감각혼과 지성혼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을 통과하면서, 성숙해지면서 의식혼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좋고 싫음으로 판단하고(감각혼) 옳고 그름으로 싸웠다면(지성혼), 이제는 진실한가 진실하지 않은가를 물을 수 있습니다. 전체를 보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마음에 안 드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났더라도 바로 소리를 지르거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왜 이러한 일이 벌어졌는지 전체적으로 살펴보고,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더 깊이 질문할 수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당장 처벌하려고 하는 것보다 그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는 게 우리가 더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궁극적인 목적을 항상 고려하는 것이 참된 삶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보통 입장을 가지고 싸웁니다. "이게 옳아요, 이렇게 해야 해요." 이런 것입니다. 아이가 어느 날 "나 학교 안 갈래. 안 가고 싶어." 이렇게 말하는 게 입장입니다. 더 부정적인 표현도 많겠지요. 비유하자면 입장은 삶은 달걀의 껍데기와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입장을 벗겨내고 부드러운 흰자로 들어가면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이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실익입니다. "학교에 가서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데 요즘 불편한 일이 있어. 그걸 해결하고 싶어." 입장이 경직된 표현이라면 실익은 좀 더 내밀한 속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근본 욕구는 무엇일까요? 근본 욕구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되는데요, 발도르프 교육을 통해 아이가 잘 자라고 서로 성장하고 신뢰하는 것 등이겠지요. 이것들을 놓치고 경직될 때 우리는 달걀 껍데기처럼 서로의 입장만 놓고 싸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욕구를 가진 존재로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기본 욕구는 지켜져야 하죠. 이에 비해 우리의 능력은 자유롭게 발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능력과 욕구를 연결시키는 건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내가 이만큼 능력을 발휘했다고 해서 남보다 더 많은 대가를 받아야 하나? 최소한 인지학의 관점에서는 자기중심적인 태도이고, 영역이 뒤섞인 것입니다. 욕구는 어느 정도 채워지면 되는 것이고, 능력은 자유롭게 발휘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 사이에 약속의 영역이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의 책임을 추구하며, 서로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약속을 만들고 의무를 이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원칙들이 우리가 공동체를 꾸리는데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저스의 혁신확산 모델인데요, 일반적으로 혁신 수용자는 2.5% 밖에 안됩니다. 발도르프 학교를 꾸려가면서 교육을 완전히 내면화해서 인지학적으로 추구해가는 리더 그룹은 2.5%, 선각수용자까지 합려서 15% 정도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자기 삶을 바치는 분들입니다. 공동체에는 지각수용자("발도르프 교육 싫어")도 16% 정도 있을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는 ‘설득’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이 분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끌어들일 것인가, 이것이 커다란 화두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슈타이너의 이 이야기를 전해드리며 마치겠습니다.

 

“최상의 수행은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해 보는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해 혐오감을 억제하고,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이 행하는 모든 것이 내 안으로 흘러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 질의응답

- 발도르프학교가 학습적인 부분을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충실하게 내용을 아이들에게 전달하고 소화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래서 최소한 공립학교 아이들보다 학습 수준이 떨어지지 않게끔, 더 높아지게 하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대학을 가려면 졸업 후든 입시를 알게모르게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발도르프학교 교육과정과 수준이 일반학교보다 떨어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일반학교 아이들은 시험, 학교, 학습지 등 사고 위주, 지식 위주로 가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보다는 그런 부분이 좀더 우세하다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당장 시험 성적은 더 좋을 수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졸업 후 대학에 가기로 한 아이들이 학원에 다니면서 하는 경험을 보면 성적이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지속적으로 오른다고 합니다. 보통은 떨어지거나 유지하는 것이 재수학원, 입시학원의 보편적인 모습인데 이 아이들은 학업에 대한 의지, 관심 등이 다른 결과로 나타나는 듯합니다. 하지만 발도르프학교에서 입시 교육을 하거나 허용하는 것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아교육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한글이나 수학, 영어 등을 가르치는 것은 원칙적으로 안 된다고 보고, 상급 과정에 가서도 입시교육을 역시 상당히 길게 봤으면 좋겠다는 원칙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해외 13학년의 발도르프학교 아이들 역시 아비투어 대학 준비 해 주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아이들이 졸업 후 재수학원이나 자기 혼자 공부하면서 대학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는 방통대를 추천합니다. 공부를 더 할 거라면 대학원에 가서 하면 좋겠습니다.

 

- 공동체에서 어떻게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좀더 얘기하겠습니다. 부모님 각자, 자기 자신에게서 그 힘이 나와야한다고 봅니다. 신뢰회복이라는 것.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고 행복하게, 힘을 내면서 이걸 해나갈 수 있을까. 언제 지치나, 왜 빠지나, 그런 고민을 많이 합니다.

 

- 발도르프학교에 아이들을 보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하나의 ‘운동’으로 갔으면 합니다. 사회적인 운동이자 개인적인 수행이라고 접근하고 변모해갈 때 우리에게 지치지 않는 힘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우리 아이를 가르치고 학교에 보내지만 인지학 사상으로 바탕으로 우리 아이가 만나게 될 세상을 바꾸고 싶어', '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켜 나갈까'. 이것은 하나의 운동이고 슈타이너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받아들이며 거시적인 안목을 키우는 것. 지금 벌어지는 갈등은 그래서 어찌보면 작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개인적인 수행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 내가 왜 아이를 발도르프학교에 보내고 있지? 나는 왜 이 교육에 매력을 느끼지? 나는 부모로써 어떻게 성장할 수 있지? 늘 이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거기서 힘이 생기고 무엇보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나, 내가 이 학교의 주인으로써 마음을 가지고 있나. 내 삶. 내 인생. 내가 중심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걸 왜 하지? 나는 내 삶, 학교의 주인으로써 하는 것입니다. 기여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자발적인 헌신들이 있을 때 학교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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