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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볼프강 아우어 선생님의 감각론 강의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감각교육

볼프강 아우어 선생님의 감각론 강의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3. 6. 20. 17:07

볼프강 아우어(Dr. W. Auer) 선생님의 감각론 강의


통역 : 장은심

이렇게 맨발로 강의하는 것은 처음입니다. 독일에서는 가능한 일이 아닌데, 이곳에서 이런 더운 날씨에 어울릴 것 같아요. 사실은 장은심 선생님과 키를 맞추기 위해서...(모두 웃음)

23년간 독일에서 발도르프학교 교사를 하였습니다. 교사생활을 끝낸 후에도 발도르프교사들과 유치원 교사들을 위해 현재 사범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활동을 하다 보니, 점점 나이가 들어가면서(43년생) 많은 나라들에서 교사양성과 학교 설립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더군요. 지금은 전 러시아 연방이었던 키르키즈, 코카시아를 돕고 있고 한국은 처음인데 인상이 참 좋습니다. 서울자유발도르프학교는 현재 여름방학 중이라 들었는데, 이렇게들 와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들과 같이 이야기할 것들은 교육학 주제들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주제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주제를 잘 들으시면 유치원과 학교가 얼마나 잘 협력해야 하는지에 대해 분명히 깨달으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것은 감각에 대한 것입니다. 처음에 감각 이런 말을 들으면 오감에 대해서 생각을 하죠. 그런데 우리가 감각 중에 중요하지만 잘 잃어버리는 감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잘 인지하지 못하는 감각이기 때문에 쉽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오감도 굉장히 중요한데 지금 말씀드리는 감각은 아이들의 발달과 관련해서 더~더~더~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다룰 감각을 그룹으로 묶어 이름을 붙여 본다면, ① 촉각 ② 생명감각 ③ 운동감각 ④ 균형감각 이렇게 4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4감각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몸을 알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몸을 내가 느끼지 못한다면, 이 감각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촉각의 예를 들어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입니다. 어른으로서 저는 물론 저의 몸을 잘 알고 있습니다. 먼저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움직이지 말고 앉은 자리에서 가만히 있어 보세요. 움직이시면 안됩니다. (왼팔의 맨살 어떤 한 지점을 오른손으로 만지시면서) 제가 지금 만지고 있는 지점을 여러분께서는 여러분 자신의 몸에서 동일한 그 곳이 어떤 느낌이고 어떤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 만지지 않고 알 수 있습니까? 제가 만지고 있는 부분은 보시다시피 팔 중에서 위쪽인데 만지지 말고 피부가 어떤지에 대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있습니까? 아마도 제가 만지는 팔위의 피부에 대해, (만지지 않고서) 피부의 느낌과 형태가 어떠어떠하다고 정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 손으로 만지는 순간 그 피부가 바로 그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만지는 순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촉각입니다.

촉각은 만져야만 인지되는 것이고, 촉각을 통해서 우리의 표면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내가 만약 한 쪽 팔을 들어서 쳐다보면 어떻게 생겼는지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손이 내 손인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남의 손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내 손이려면 내 몸의 일부이어야 하고 만져야만 이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발이 저리면 느낌이 없습니다. 독일어의 저린다를 직역하면, ‘잠들었다’는 뜻입니다. 저리면 꼬집어도 느낌이 없죠. 그러고 나서 차츰 시간이 지나서 감각이 돌아오면 내 발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만져야만 촉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촉각이 있어야 우리 몸이 우리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세상이 오면, 자연분만인 경우에 온몸이 다 만져지는 과정을 거쳐서 세상에 옵니다. 그 과정을 거쳐서 아이들은 자신이 세상에 온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만짐을 가지고는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만짐을 받게 되어야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은 외형적인 형태를 만짐을 통해 알게 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지 얼마나 넓은지 형태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몸에 대해 알게 되고 어떻게 해서 자라는지 형상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 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바로설 수 있게 됩니다. 내 몸의 형태나 크기 등 모양과 경계를 알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다른 사람 또는 물건에 부딪치지 않고 지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첫 번째, 자신의 신체에 대한 상을 갖게 되는 것은 만짐을 통해서입니다. 그 다음은 두 번째 단계로 우리는 단지 우리 몸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계를 알게 됩니다. 그 경계라는 것은 나와 세상과의 경계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내가 내 경계를 확실히 느끼게 되면, 나는 내안에서 안정감을 갖습니다. 그러나 자기 경계를 충만히 느끼지 않으면, 음... 예를 들어 한 아이가 자기 몸에 대한 경계를 확실히 느끼지 못하면, 집의 창문이 모두 열려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집에 창문이 모두 열려 있다면 바람이 불 때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요동을 치겠지요. 모든 물건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휩쓸리게 됩니다. 안정되지 못하다는 거죠. 집이 아이의 몸이고, 그 집에 있는 문이 항상 이렇게 열려있다면 그 아이는 어떨까요. 아이가 자기의 몸의 경계를 확실히 발달시키지 못한다면, 이런 비유적인 상황이 발생합니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안에서도 밖에서도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다른 예, 신화의 예를 들어서 좀 더 분명히 해보겠습니다. 이 신화는 독일 신화인데요. 동화에서 많이 나타나는 원형입니다. 지그프리드라는 영웅이 있었는데, 이 영웅은 용에게 빼앗긴 보물을 찾아와야 했기에 그 용을 죽여야 했습니다. 물론 영웅이기 때문에 그용을 죽였습니다. 이 용은 엄청나게 커서, 지그프리드가 용을 죽였을 때 용에서 검은 피가 나와 큰 웅덩이를 만들었습니다. 지그프리드가 용의 피를 살짝 맛보았는데, 그 피를 맛본 후 모든 새의 소리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들이 말하길, 지그프리드가 용의 피로 완전히 목욕한다면, 상처를 입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그프리드는 새의 소리를 듣고서 갑옷을 벗고 피 속에 들어가 몸을 담구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상처가 나지 않는 피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용의 피에 목욕을 하는 동안에 옆에 있던 나무에서 큰 나뭇잎이 내려와 지그프리드 등에 붙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나뭇잎이 붙었던 곳에는 그 검은 피가 닿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그 다음부터 지그프리드는 항상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운명이 그렇듯이 나뭇잎이 붙었던 곳에 상처가 생겨서 결국 죽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하나의 비유입니다. 마치 영웅이 용의 피에 피부가 다 닿아 상처입지 않게 단단해지듯이 촉각을 통해서 단단한 경계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이런 어루만짐을 아주 여러 번 받은 아이들은 자기 몸에 대해 경계를 알게 되고 세상에 대해 똑바로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루만짐이 아주 충분치 않은 경우, 즉 나뭇잎이 달라붙었던 등처럼 어떤 곳은 아주 엷게 어루만짐이 이루어졌다면, 거기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늘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촉각을 통해서 아이들은 자기 경계를 알게 되고 자기는 그 안에 안정되게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들려드린 이야기들은 우리가 우리 몸 안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내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면 그 안정감을 갖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런 안정감이 없다면, 항상 자기 안에서 불안하고 부산을 떨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아이들한테서는 곧 성장발달과 관련됩니다. 어루만짐, 촉각경험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아동 발달에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막간 질문. 의식적인 깊은 어루만짐과 형식적인 무의식적 어루만짐에 차이가 있는지요?
⇨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사랑스럽게 한 것과 특별한 감정 없이 한 것의 차이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폭력과 같은 촉각은 상처만 남길 뿐입니다. 잘못 만져지는 것들은 촉각이 만져지고 있지만,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성폭력이나 나쁜 만져짐이 그런 예인데요, 큰 상처를 받은 경우는 아이들이 경계를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박탈당한 것이기 때문에 오랜 시간 고생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그건 것을 회복하려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노력하게 됩니다. 만약 청소년기에 이런 노력은, 자신의 경계를 느끼기 위해 자해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국에도 그런 경우가 있겠죠? 청소년기의 자해를 잘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쁜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경계를 긋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처를 통해서 즉, 자기 몸을 느끼기 위해서 자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경우구요.

어린 시절에 촉각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툭툭 치고 공격적인 특성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아동들은 공격적인 게 아니라, 다른 요구가 있기 때문에 외형적으로 그렇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런 행동의 배경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아이는 다른 아이를 치고 만져짐을 통해서 자기의 몸과 경계를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한 아동이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있는가, 집중할 수 없는가는 매우 중요한데요. 그것도 촉각을 어떻게 경험했는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작은 실험을 한번 해 볼까요. 풍선을 불어 봅니다. (준비해 오신 풍선을 불어 크게 만듦) 이 풍선을 잘 묶으면 바람이 안 빠지겠죠. 즉 구멍이 나지 않으면 이것은 닫힌 공간입니다. 이렇게 경계가 닫힌 것은 묶어서 어디에 잘 놔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구멍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잡고 있던 풍선을 놓음) 이렇게 한군데가 닫히지 않으면 풍선이 난리를 칠 수 있습니다.

질문을 던져 보겠습니다. 이런 아이를 아시는 지요. (막 정신없이 팔을 휘저으며 돌아다니는 흉내를 냄) 이런 아이가 어디에나 있습니다. 이것은 아이의 의지 문제가 아닙니다. 아이가 촉각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신의 닫힌 경계를 아직 충분히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을 느끼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생기겠죠. 이미 그렇게 지나가 버렸는데 어떻게 하냐는 것인데요, 항상 보충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미리미리 어릴 때 할수록 결과는 더 좋습니다. 아주 어린아이일수록 그 결과가 직접적으로 바로 나타나게 됩니다.

내 부인이 영유아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와 봐주기 때문에 만1~3세 아이들을 자주 보게 되는데요. 어떤 소녀가 왔어요. 이 아이 부모가 말하길, 이 아이를 낮잠 재우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아무리 해도 안 될 겁니다! 라고 했는데 우리 집에서는 첫날부터 잘 잤습니다. 어떻게 했을까요. 담요를 깔고 아이를 눕이고, 아이를 담요로 꼼꼼히 싸주었습니다. 요나 이불로 아이를 감싸주기 때문에 아이가 요를 통해 자기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느끼기 때문에 안정감을 느끼고 잠든 것입니다. 아이를 펼쳐놓으면 안정되지 못하고 잠들지 못한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몸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안다면, 아이 나이에 맞게 어떻게 자신을 느끼게 할 수 있을까 시도해 볼 수 있겠죠.

좁은 공간에 기어들어가는 것도 자신을 느끼기 위한 시도입니다. 이불에서 뒹구는 것, 해수욕장에서 모래찜질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경계를 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한 달 동안 한국에 있는데요, 센터에서 세미나 하기 전, 2주 정도 제주도에 있었습니다. 제주도 해수욕장에서 보았는데, 부모들이 모래 구덩이를 파서 아이들에게 모래 무덤을 만들어주고, 노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 없지만, 많은 방법을 통해서 시도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거의 이해를 하셨을 꺼라 생각합니다만, 촉각이 얼마나 아동들의 학교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충분하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에서 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촉각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강조해서 이야기 했습니다.

그 다음이 생명감각인데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어보면, 가서 거울을 보나요? 예를 들어 누가 물어 봤을 때 거울을 보면서 내가 잘 지내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겠죠. 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몸은 내가 끊임없이 어떤 생명활동을 하고 있는지 인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가 고픈지 배가 부른지 목이 마른지 등등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자야 되는지, 더 일할 수 있는지 자신이 잘 알 수 있습니다. 계단을 오른다면, 계단 오르기 전과 후의 차이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은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생명감각은 잠잘 때도 작동하는데요. 아침에 일어날 때 상쾌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명감각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생명감각은 우리의 생명의 과정을 인지하고 느끼고 있는데 특이한 그 작동의 방식이 있습니다. 즉, 내 생명과정은 어떤 순간도 멈춰 있지 않고 계속되고 있습니다. 무언가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는 움직일 수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활동을 할 때는 그에 맞는 좀 더 많은 힘이 필요하구요. 생명의 과정이 작동하는 방식은 특별한데요. 그림으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아래 그림을 그리고 펜으로 양끝을 추 운동처럼 반복해서 왔다 갔다 함)

나도 70년 동안 이러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움직이는 것은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저 과정은 쉬지 않고 저렇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의 호흡, 혈액의 순환 등 모든 활동이 이렇게 반복해서 규칙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유기체가 각자 고유의 리듬을 갖고 있고, 분산과 집중의 과정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추의 운동처럼 운동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는데요. 가운데 점과 양극점입니다. 이 양극점은 대립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쪽이 마이너스, 다른 한쪽은 플러스, 또는 한쪽은 들어오고 한쪽은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양을 섭취하는 것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배고프다 싶으면 마이너스로 가게 됩니다. 부족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먹으면 다시 내 감각은 플러스로 올라가게 됩니다. 몇 시간이 지나서 활동하면 다시 가운데로 오게 됩니다. 가운데로 올 때까지 배고픔을 확실히 느끼지는 못합니다. 가운데 점을 지나 마이너스로 가면 다시 신호가 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감각은 잘 배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감각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길러져야 합니다. 감각이 길러진다는 것은 그것을 인지(온 몸으로 감지한다는 의미)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는 감각이 길러지고 양성된다는 것은 그것을 느끼고 길러져야 하는데, 어떤 아이가 매일 배가 불러져 있으면 나중에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가 그 감각을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에 형성되지 못한 것입니다.

아이가 항상 배부른 상태로 살았다면, 어떤 것이 편안한 중심인지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중심은 충분한 것과 부족한 것을 모두 알게 됨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항상 배부른 아이가 있나?'라고 질문할 수 있는데요 유감스럽게도 많습니다. 어떤 아이는 배고프기 전에 항상 무언가를 먹습니다. 그런 부모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아이가 앵 소리만 내도 바로 갖다 주는 것...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이런 경우 아이는 전혀 배고픔을 경험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되면, 어떻게 영양섭취를 해야 할지 감이 없게 됩니다. 어떤 것이 충분한지에 대해서도 모르게 됩니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먹는 것과 관련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영역들, 생명감각과 관련된 다른 영역들에서 그런 예를 충분히 들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학교에 갈 때 엄마가 가방을 항상 들어줍니다. 너무 무거워서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통의 가방이라면 아이가 들도록 놓아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짧은 거리도 항상 차로만 움직입니다. 아이들은 전혀 자신의 힘을 소진하지 않고 또 다시 충전하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힘을 쓰고, 다시 어떻게 힘을 얻는지에 대한 경험을 해보지 않게 되는 것이죠. 아이가 스스로 많이 걸으면서, 이것이 힘든 것이고, 힘이 빠진 상황을 경험하고 다시 힘이 돌아오는 경험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애들을 매일 시중들어 주는 것은 아이들의 생명감각 키우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립성을 키울 수 없게 됩니다. 어른들이 너무 아이들의 시중을 들어주는 것은 이런 의미에서 위험한 것이죠.

아이가 걷는 것도, 스스로 경험해서 걸어봐야, 오랜 시간을 걸어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되었을 때, 걷기를 다시 시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일학년을 맡았을 때 어떤 아이에게 걷자고 했더니, 자신은 걸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 아이는 그런 경험을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도 어린아이의 나이에 맞게 극단까지 경험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이 스스로의 자립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극단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것을 통해서 중심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항상 의지하게 됩니다. 의존적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뭐냐면, 모자란 부분을 경험한 아이들만이 자기를 믿는 힘이 생겨납니다. 즉, 노력해서 힘든 과정을 거쳐서 무언가를 완성했을 때, 자신에 대한 신뢰가 생기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일을 이야기 하겠습니다. 14년 전인가 6학년까지 다른 선생님이 담임을 하다가 7학년 때 제가 한 반을 맡게 되었습니다. 왜 6학년에 와서 담임이 바뀌었냐면 원칙이 없어서, 소란스러운 반이었기 때문에 제가 맡게 되었습니다. 2번이나 8년 담임을 하였기 때문에 저에게 넘어온 것입니다. 만 13세고 7학년이면 이 정도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과제를 내었는데 아이들이 난리를 쳤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난리를 피우길래, 새로 오신 선생님이 어느 정도까지 반응하는지 시험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지나서 아이들이 저를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못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추적해 보았습니다. 이 반이 어떤 반이었냐면, 예술 활동, 연극 활동을 멋지게 하는 반이었지만 일상생활은 카오스인 반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꽉 잡고 있는 반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선생님이 수업을 하면서 어떤 수업활동을 하려는데, 아이들이 하기 싫다고 난리를 치면, 그냥 하기를 포기하고 다른 것으로 항상 넘어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과제를 아이들에게 내고 며칠까지 내라고 했는데, 아이들이 지키지 않아도 교사가 거기에 대해서 적절한 대응, 반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까 시계 추 그림에서 보면, 아이들은 교사의 한쪽 부분만 경험한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가 요구하는 힘든 작업에 대해 항상 거부만 하고 노력해서 하는 것은 해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론적으로 원칙이 없는 반이 된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아이들이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선생님이 바뀐 이후로 이런 것들이 모두 바뀌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여행에서 저는 아이들이 힘을 다 써보는 여행, 신체의 한계를 느끼는 여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아이들은 자신의 육체적 힘이 어디까지 가는지 자신의 경계를 경험해 보는 여행이어야 했습니다. 여행은 자전거 투어로 진행되었고, 8일간 여행이었고 8일간 필요한 모든 것을 자전거에 실었고, 텐트 숙박을 했으며, 누구도 아이들을 위해 요리를 하려고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절대 시중들지 않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습니다. 모든 부모들은 이 여행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고 우려했습니다. 하지만 요리도 잘하고 해서 다들 잘 먹었습니다. 물론 그룹마다 차이는 났습니다. 어떤 그룹은 우아한 밥상을 잘 차려 먹었고, 어떤 그룹은 그저 인스턴트를 먹는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이 직접 한 것이라서 불평불만은 없었습니다. 300킬로를 여행했고 돌아올 때는 기차를 탄 부분도 조금 있었습니다. 돌아왔을 때 부모님들이 아이들을 보는 순간 아이들이 환하게 웃었고, 아이들의 자존감이 크게 자랐고, 자신들이 해냈다는 충만함이 가득한 것을 보았습니다. 그 이후로 학교생활이 엄청나게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갑자기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에 대해 다들 궁금해 했습니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우리의 몸이 행하는 일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잘 잊어버립니다. 촉각과 생명감각이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서 그것을 잊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촉각과 생명감각이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한지 이해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서 바로 운동감각과 균형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움직임과 뇌의 발달이 특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움직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움직임을 통해서 뇌가 발달하니까요. 이때 움직임은 아무렇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있는 움직임이고, 그래서 운동감각을 질적인 측면에서 4가지로 특징지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민첩성입니다. 그걸 통해서 자신을 배우고 또 자신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가 몸이 빠르게 잘 움직이는 것(민첩성)만 발달되었다고 하면, 이런 사람들은 직업세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하기 매우 힘든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가 함께 움직이는 것입니다. 사람들마다 각자 자기 고유의 움직임이 있어서 그 고유의 움직임들이 모여서 흐름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어떤 그룹에 들어가면, 그룹의 흐름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능력이 없으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이러한 움직임을, 함께 하는 줄넘기 놀이를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어른들이 줄넘기를 돌리면 아이들은 줄서서 기다리다가 줄넘기를 하게 됩니다. 우리가 돌릴 때, 아이들이 뛰어들기 전에 기다리면서 몸 전체로 줄넘기 리듬을 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리듬을 타고 있으면 언제 들어갈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혼자 빠르게 잘 움직일 수 있다는 것과 다른 움직임입니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능력과 다른 움직임 속에 내가 탈 수 있느냐는 다른 움직임입니다. 이것을 팀 움직임이라고 합니다.

작은 리듬 연습을 같이 해보겠습니다. 손뼉을 칠 것입니다. 짜~악~짝!짝!( ―∨∨ ),그룹 을 나누어서 하겠습니다. 긴 박자 하나(짜~악― ) 짧은 박자 두 개(짝!짝! ∨∨) 해보겠습니다. 바꾸어서 이쪽이 긴 박자, 다른 쪽이 짧은 박자를 하겠습니다. (학부모들이 잘 따라함) 좀 더 변화를 해보겠습니다. 변형입니다. 리듬은 남아 있지만 각 그룹은 박수를 한번만 칠 것입니다. 어떻게 하는 건지 이해되세요? 자 시작해 보겠습니다. (학부모들이 따라 하려 하는데 뭔가 어색한 표정들..) 갑자기 어려워 졌습니다. 전체의 리듬을 타고 있어야, 자신의 그룹이 언제 박수를 칠지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고개를 흔들며 리듬을 타면서 연습하고 다음에는 그냥 할 수 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경영주가 있다면 저는 경영을 할 수 있는 기본 자질로 앞서 예를 든 함께 하는 줄넘기를 먼저 시켜보겠습니다. 경영의 능력은, 이런 능력이 있어야만 전체 팀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과정 자체를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은 아이들이 학교에 올 때도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앉아 있고 선생님이 앞에서 말해주면 이 과정 모두를 아이들이 잘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수업이 시작하는 전체 과정의 리듬을 잘 타지 못하는 아이들은 전체 과정에 들어가지 못하고, 또 들어간다 해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전체 리듬 밖으로 나와 버립니다. 어떤 아이들은 계속 노력해서, 전체 흐름에 들어가는데 성공하긴 했는데, 과정은 곧바로 끝나버리게 됩니다. 전체 흐름에 들어가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린거죠.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아동들은 좌절감을 느끼게 되고, 언젠가는 학교에 가기 싫게 됩니다. 부모들은 보통 이런 경우 심리치료를 하려고 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지요.

여기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런 과정 속에 들어가는 능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같이 움직이는 능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들은 아이들이 놀이 속에서 길러집니다. 같이 원을 만들던가, 줄넘기를 하면서 전체적으로 잘 노는 자유놀이시간, 발도르프 유치원의 안정적인 하루 리듬 속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즉, 아이들은 유치원 과정에서 놀이를 통해서 그런 능력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함께 놀 수 있는 능력이 안돼서 학교에 오면, 아이들은 놀이 체육을 통해서 그 흐름을 배우게 됩니다. 예를 들면, 치료로서 말 타기, 승마, 수영이 있는데요, 물의 리듬에 자기 몸을 맡겨야만 수영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리고 승마를 할 때도 말의 리듬을 타야 승마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균형감각에 대해서는 시간상 잠깐만 언급하겠습니다. 아이들의 섬세한 소근육 운동이 발달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한 움직임을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능력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움직임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움직임뿐만 아니라 내적인 움직임도 포함됩니다. 우리가 움직이면, 우리의 균형감각도 바뀌게 되죠. 모든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우리가 좁은 곳에 오래 서있으면 가만히 서있지만 우리 몸의 움직임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은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항상 우리는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직립으로 서서 균형을 잡고 있는 것입니다. 잠이 들면 이것은 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행스럽게도 눕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의식이 없어져서 기절을 하는 경우 선 상태에서 쓰러지게 되면 다치게 됩니다. 동물 실험인데요. 뇌중에서 균형감각을 지배하는 신경에 손상을 주면 똑바로 서있지 못하게 됩니다. 즉, 우리가 잠을 잘 때 눕는 것은 자는 동안 균형감각이 작동하지 않고, 따라서 누워서 잔다는 것은 합리적인 것입니다. 균형감각을 지배하는 신경이 없으면, 서있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똑바로 서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갖고 있느냐는 내가 균형감각을 잘 키워왔느냐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균형감각을 통해서 우리는 공간의 방향도 인지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균형감각이 있기 때문에 빨리 걷는 것, 멈추는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가 운전하는 사람 옆 좌석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어도 속도가 빠른지 느린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야기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빠른 것, 느린 것을 알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그것을 감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의 균형감각이 잘 키워주고 육성이 되었다면, 어느 정도 속도로 달리고 멈춰야 다른 사람과 부딪치지 않는지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0년~15년 정도 독일에서 관찰한 결과, 최근에 점점 아이들의 그 능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즉, 아이들의 움직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이고, 따라서 아이들의 균형감각의 발달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균형감각에 속하면서, 학교에서 중요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실험을 해 보겠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데, 책은 가만히 들고, 머리를 흔들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면 읽을 수 있나요? 한번 해보세요. (다들 머리를 흔듦) 읽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머리를 가만히 놓고 책만 흔들어 보세요. (다들 책을 흔듦) 읽을 수 없습니다. 왜 움직임은 똑 같은데, 차이가 생길까요? 내가 머리를 흔듦에도 내 균형감각이 나를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뇌에 있는 균형감각을 내가 조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책은 내가 조종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공간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면, 그 움직임 속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의 움직임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내가 뛰고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움직임도 느낄 수 있습니다. 뛰고 있을 때 내 눈이 흔들리고 움직이고 있어도, 눈의 움직임으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눈이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균형감각이 그것을 잡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균형감각에 문제가 있을 때, 안과에 가서 눈이 균형감각을 유지하고 있는지 검사합니다. 균형감각이 잘 발달되었다면, 나는 세상 안에 잘 서있을 수 있고, 이렇게 뛰면 어디까지 갈 것이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또 내 움직임과 반대상황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포착할 수 있습니다.

어떤 아이가 이런 균형감각을 잘 발달시켰다면, 밖이 소란해도 자신의 원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균형감각이 덜 발달된 아이들은 옆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같이 휩쓸려 집중하지 못하게 됩니다. 맨 처음에 이야기한 촉각과 균형감각이 아이들에게 잘 발달되어 있느냐가 아이들이 어느 한 가지에 잘 집중할 수 있느냐를 결정하게 됩니다.

오늘 한 것은 감각에 대해서 조금 의미파악을 한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에 이런 감각들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많은 시도를 통해 이를 형성시킬 수 있습니다. 서울자유발도르프학교의 1,2학년 교실에는 일반적인 책상도, 의자도 없습니다. 대신 긴 의자와 방석이 있습니다. 이 교실에서 아이들은 긴 의자와 방석을 이용해서 자유롭게 놀이 공간을 만들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습니다. 긴 의자를 거꾸로 해서 평균대로 사용하여, 아이들의 균형감각을 도울 수 있고, 긴 의자를 여러개 겹쳐 그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의 자기 몸을 느끼는 활동도 할 수 있습니다. 긴 의자를 옆으로 치우면 교실 가운데 자리가 생겨서 그 안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실 형태는 유치원에서 발달되어야 할 감각들이 부족할 경우,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줍니다.

희망컨대, 오늘 신체감각이 아이들 발달에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셨기를 희망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많은 아이디어를 오늘 얻으셔서 집에서 많은 시도를 해보시길 희망합니다. 절대로 아이들한테 너무 많이 해주지 마세요. 스스로 아이들이 하게끔 해 주세요.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질문 못하면 집에 가서 잠이 안 올 것 같다 하시는 분 질문하세요.

질문 부모가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서 권하는 일을 아이들이 하기를 거부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 아이들에게 권할 때 그 방법이 세련되어야 합니다. 이게 좋으니까 이렇게 해라는 방법은 거의 통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잘 이끌고 유도해서 아이들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에서는 잘하는데, 집에서는 잘 안하려고 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그런 시기에 있기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특정화된 스포츠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갖고 있는 특징과 부딪쳐서 아이들이 거부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유도하는 방법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소풍을 가게 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일 숲으로 소풍을 가는데, 숲에 가서 밤에 모닥불을 지필꺼야. 모닥불을 지피는 것 뿐 만 아니라 밤을 새워야 하는데, 우리는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을 할꺼야.’ 이런 식으로 정말로 잘 묘사해서 설명하면, 남자 아이라면 꼭 가고 싶어 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거기에 가고 싶어 하는 내적 동기가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멋있게 묘사를 한다면 가능할 것입니다.

질문 수영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강습을 받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 그냥 아이들이 물결 물의 리듬을 경험하게 해주면 됩니다. 그 물결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물의 리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물속에서의 느낌을 아이들이 그냥 경험하게 하면 됩니다. 물속으로 가라 않게 되는 경험, 몸의 힘을 빼고 누우면 둥둥 뜨는 경험,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경험하도록 하세요. 또 하나는 음악시간에 소리에 대해 귀 기울이고, 잘 듣는 연습, 다른 사람의 소리 또는 악기(일상적인 도구까지 포함한 넓은 개념)를 잘 듣는 연습, 서로 간에 음악성을 키우는 활동들도 아이들의 운동하는 감각을 키워 줍니다.

질문 아이들을 야단치는 문제와 칭찬하는 문제에 대하여,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 칭찬과 야단맞는 것까지 적용해 보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칭찬을 할 때, 아이들이 정말 온힘을 다해 잘한 것을 칭찬한 것이 아닐 때는 엄청난 위험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칭찬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자 한 것을 완성한 것 자체가 칭찬입니다. 그때 부모들이 같이 기뻐해 줍니다. 그 자체로 충분합니다. 뭔가 노력했는데 아무 것도 안 되다 때 아이들이 실망을 경험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도 실망하겠죠. 그걸로 벌이 충분합니다. 거기에다가 뭔가 말을 하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 칭찬하는 것의 위험성이 들어있는 것은 아이들이 그 칭찬 때문에 일을 하는 역순환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것이 위험한 것입니다. 뇌과학에서 증명된 것인데, 뇌영역 자체에서 벌써 칭찬을 스스로 하게 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아이가 일을 시작해서 과정을 진행할 때, 그 과정에 대한 성공에 대해 호르몬을 통해 칭찬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옳지 않는 것을 했을 때, 어른들로부터 반드시 반응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반응을 느껴야만 아이들은 경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아이가 옳지 않은 일을 한다고 해도 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옳지 않은 것을 한 것에 대해서 욕하거나 벌을 주면 나쁜 결과가 나오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모든 선생님들이 알고 있는 상황인데요. 어떤 아이가 계속 떠들면서 수업을 방해합니다. 수업 중에 돌아다니고 떠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에서는 아주 쉽게 아이를 욕하게 됩니다. 그러면 아이가 무엇을 경험할까요. 그럼 아이가 느끼는 것은 아 드디어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또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됩니다. 그렇게 반응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잘못된 행동에 잘못 반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선생님으로서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데요. 그 방법, 아이가 관심의 표명으로 재밌어하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그런 경우에 아주 명백한 규칙은 있어야 합니다. 누가 말하려면 손들기 등과 같은,, 그렇다하더라도 항상 이런 일은 다시 발생하게 됩니다. 그랬을 때 선생님이 절대 욕하면 안 됩니다. 교사로서 이런 실수는 아주 쉽게 하게 되는데, 저도 많이 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아이들한테 경계를 느끼게끔 반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직접 손으로 입을 막고 놀란 표정을 지음) 이런 반응을 하면, 아이는 금방 이해합니다. 즉, 아이가 그 경계를 넘어섰음을 알아차리게 인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이런 것은 아이에게 어떤 기회를 주느냐면 선생님이 욕을 안 함으로 인해, 아이들이 ‘선생님이 나를 이 일 때문에 미워하지 않는다’ 는 안심을 갖게 하고, 스스로 알아서 다음에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게 되는 것이 됩니다. 욕을 하면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선생님이 자기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계속 유도하기 위해, 즐거워서 계속 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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