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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감각발달과 발도르프교육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감각교육

아이들의 감각발달과 발도르프교육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8. 2. 10. 06:15

아이들의 감각발달과 발도르프교육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오늘날 우리는 감각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아이가 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무얼 시켜도 하지 않고 겁을 먹은 얼굴로 앉아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아이, 삶에 아무런 기쁨이 없는 것처럼 무표정한 아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교사는 수업만 준비해 가면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수업을 들으려는 자세를 갖추었고, 교사는 수업내용을 나열하기만 해도 수업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수업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바르게 앉히고 집중을 시키는 일이 더욱 어려운 일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아이들의 감각발달에 어려움이 많이 생겼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이 세상은 과연 호의적이냐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삶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즉 라이프스타일이 아이들에게 맞느냐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른과 다릅니다. 현대사회는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정신이 없는 사회입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미디어가 24시간 우리의 관심을 끕니다. 아마 스마트폰 중독이 아닌 어른을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SNS 중독인 분들도 상당하시겠지요. 도시에서 안정되고 전통적인 삶을 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이렇게 분주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어떤 어려움들을 겪게 될까요? 우선 어린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부터 분명히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을 물질적인 존재로만 본다면 결코 인간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동물적인 수준으로 떨어트려 보는 것도 큰 오류를 가져옵니다. 인간에게는 물질적인 영역도 있고, 동물적인 특성도 있지만 인간만의 고유한 본성이 있습니다. 인간은 단지 지상적인 존재이기만 한 게 아니라 천상의 특징도 갖고 있습니다. 발도르프교육에서는 인간이 천상, 그러니까 정신적인 세계에서 왔다고 봅니다. 이 관점이 낯설거나 불편하실 수 있지만, 실용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 관점이 아이들을 이해할 때 더욱 유익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정신적 존재이고 정신세계에서 왔다고 보는 것은 교육적으로 특히 중요합니다. 하나의 이야기처럼 들어주셔도 좋습니다. 상상력을 발휘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이들이 지상에 오는 것, 몸을 입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우리는 육화라고 표현합니다. 처음 오는 것이 아니고 여러 차례 온다고 보기 때문에 재육화라고 합니다. 몸을 입었으니 언젠가는 벗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탈육화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어떻게 탈육화의 과정을 거칠 것인가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아이들을 본다면, 아이들의 정신과 영혼은 엄마의 뱃속에 잉태되면서 신체에 깃들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몸의 탄생, 또는 몸의 독립이라고 부릅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자라던 아이가 이제 세상에 나와서 무럭무럭 자라게 됩니다.

 

0세에서 7세까지 아이들은 몸의 발달에 집중합니다. 여기에는 하나의 방향성이 존재합니다. 머리부터 발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신체적 특징은 단연 머리가 큰 것입니다. 아이들은 세상을 만지고 맛보고 냄새 맡고 듣고 보면서 신경-감각 체계를 발달시킵니다. 이때는 손발을 쓰면서 놀고 세상을 탐색하는 게 하루 일과입니다. 신경-감각 체계의 발달에서 호흡-순환 체계(리듬 체계)의 발달로, 그리고 사지-신진대사 체계의 발달로 이어집니다. 아이들의 신경-감각 체계는 당연히 감각 경험을 통해 발달합니다. 이때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교육은 좋은 감각 자극을 주는 것입니다. 100년 전에 우리 문화에서는 아이들에게 담배를 주는 것을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어른과 맞담배를 하는 게 문제지, 배가 아프면 담배를 피우게도 했습니다. 지금 그렇게 하면 아동학대가 될 것입니다. 그 뒤로 아이들에게 어떤 음식을 주어야 하는가가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유기농 음식을 먹이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눈에 보이는 영역이 아닌 경우에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도 몸이 있기 때문에 감각을 갖고 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촉각적 경험도 합니다. 아주 무의식적인 차원이지만요. 이때의 태아도 양수의 단맛에 반응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 인간은 단맛에 매우 예민하지요. 그런데 갓난아기에게 사탕이나 아이스크림을 주면 어떻게 될까요? 아기는 그 강렬한 단맛에 빠져 다른 음식을 거부할지도 모릅니다. 미각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이지요. 시각은 어떨까요? 아무리 좋은 화질의 스마트폰으로 단풍잎을 보여주더라도, 그냥 실제의 단풍잎을 보여주는 것보다 시각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청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유명한 성악가의 노래를 녹음해 들려주는 것보다 잘 못 불러도 엄마 아빠가 불러주는 게 더 좋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경험을 통해 말을 배우고, 인간의 육성을 익혀 나갑니다.

 

아이들의 발달에 대해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감각존재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태어나서 만 7세까지 하는 일은 자신이 신체기관을 형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누가 도울까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는 엄마로부터 양분을 받았지만, 이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모두 엄청난 기운이 있습니다. 에너지, , 생명력, 어떤 말이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기운은 생명력이기도 하지만 형성력이기도 합니다. 우리 신체기관은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으며 그 형태에서 고유한 기능이 나오는데, 아이들의 넘치는 기운이 그것을 만들어 갑니다.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사지로 나아가는 이 방향성에 따라 7세가 되면 이갈이를 합니다. 이갈이를 한다는 것은 신체기관의 형성이 일단락되었음을 뜻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발달해가겠지만 기본적인 발달은 마쳤습니다. 이때에는 엄마와 아빠로부터 받은 유전적 특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태어났을 때의 몸과 완전히 다른 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7년을 주기로 우리 몸은 모든 세포가 바뀌게 됩니다.

 

7세에 이갈이와 함께 기억하는 힘이 강해집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학습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학습은 가능하지만 사고력은 우리 몸에서 독립한 기운의 작용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몸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기운도 약해지고, 형성력도 약해집니다. 20분 수업을 하고 금세 지쳐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7년 주기인 14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차성징이 완성되어 어른과 비슷한 신체가 됩니다. 생식기가 완성되어 아이를 가질 수 있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이때에는 마음이 독립합니다. 감정생활의 독립이라고도 합니다. 흔히 사춘기는 그 진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7년 주기에 아이들이 손발을 써서 마음껏 놀면서 의지를 키워왔다면, 두 번째 7년 주기의 핵심은 가슴이고 정서적인 활동입니다. 세 번째 7년 주기인 청소년기에 아이들은 머리, 즉 사고력 발달에 집중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 21세에는 자아가 독립합니다. 이제는 누가 말을 해도 잘 듣지 않습니다. 부모도 아이들을 교육하는 노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를 교육해야 합니다.

 

오늘은 이 자아에 대한 이야기를 중요하게 다루고자 합니다. 우리가 아이를 바르게 교육시킨다는 것은 이 자아의 탄생 또는 독립을 위해서입니다. 건강한 자아를 가진 성인으로 키우는 것, 그것이 교육의 목적입니다. 슈타이너의 12감각 역시 자아감각을 정점으로 합니다. 다른 감각들은 자아감각의 완성을 위해 노력합니다. 특히 촉각이 자아감각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아감각이란 무엇입니까? 자아감각은 타인의 자아를 지각하는 감각입니다. 사고감각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지각하는 것이고, 언어감각은 다른 사람의 언어를 지각하는 것입니다. 소리 속에서 언어를 파악하고, 언어 속에 담긴 생각을 이해하며, 생각의 주인인 그 사람의 자아를 감지하는 것이 우리의 상위감각이 하는 일입니다.

 

자아감각이 제대로 발달하지 않은 사람은 어떤 모습을 보일까요? 다른 사람에게서 자아를 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고 일종의 사물처럼 대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갑질, 육군대장의 갑질과 기업 회장의 갑질은 자아감각의 마비를 보여줍니다. 실제로 자아감각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사람들은 매우 폭력적입니다. 이와 반대로 자아감각이 풍부하게 발달한 사람은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공감 능력이 발달한 사람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감은 호감과 다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는 호감과 반감의 작용으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든다면, 우리가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우리의 호감과 반감은 끊임없이 오갑니다. 내가 무언가를 주장하고 열변을 토할 때 상대방은 의식적으로 잠들게 됩니다. 그러다가 상대방은 위협을 느끼고 점점 깨어나 자신의 주장을 펼칩니다. 이때 한쪽이 잠들이 않고 둘이 깨어 있다면 대화가 아니라 논쟁이 될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잠드는 것은 호감의 힘이 강해지는 것이고, 깨어나는 것은 반감의 힘에 의한 것입니다.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심전심과 역지사지입니다. 굳이 호감과 반감을 반복하지 않더라도 금세 이해할 수 있으니 대화가 오래 가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마음을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호감이 무조건 상대방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라면, 공감은 객관적으로 그 사람의 입장에 서서 느끼는 행위입니다.

 

교사는 물론 호감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반감이 가득한 상태로 교실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수업내용에 강한 호감을 가져야 합니다. 마인드 컨트롤을 하더라도 호감을 발달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 아이들이 수업에 관심을 갖고 푹 빠져 듭니다. 어린아이들은 호감이 강하지요. 초등학교 3,4학년까지만 해도 아이들은 선생님을 조건 없이 사랑해 줍니다. 그러나 5학년만 되어도 반감이 생기면서 선생님을 평가하기도 하지요. 사춘기가 되면 반감이 매우 강해집니다. 사실 호감도 반감도 모두 강한 상태입니다. 반감 속에서 아이들의 자의식이 깨어납니다. 3세 때 아이들이 사고하기를 하면서 스스로를 나라고 부르고 자기 생각을 갖는 것은 반감이 강해진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아감각은 이러한 호감과 반감의 조화로부터 옵니다. 자아감각을 통해 공감하는 힘도 키워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사회적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런 공감의 특성을 가장 먼저 이용한 곳은 경영학 쪽입니다. 물건을 파는 입장에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해주니까 더 많이 팔 수 있다는 것을 활용한 것입니다. 최근에는 교육에서도 공감의 가치가 커지고 있습니다. 갈등해결 방식에서도 공감을 추구합니다. 비폭력대화나 회복적 정의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감각교육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바라는 이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경이로움과 감사함, 그리고 책임감입니다.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경이로워할 줄 아는 아이, 감사함을 알고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 세상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우리가 교육을 통해 궁극적으로 접근해 가는 길입니다. 여기에 자아감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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