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비네켄 선생님의 인간학 강의 (2) 본문

발도르프교육학

비네켄 선생님의 인간학 강의 (2)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1. 5. 13:13

비네켄 선생님의 인간학 강의 (2)

 

 

일반인간학을 이어서 하겠습니다. 어제 10장에서 뒷부분을 다뤘습니다. 앞부분을 못 다뤘는데 책을 읽은 분은 아시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부터는 11장을 다루면서 10장의 앞부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11장의 중간부분부터 할 것입니다. 그게 어제에 이어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어제 우리는 머리와 사지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두 가지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우리의 사지 전체의 골격은 미래를 향해 만들어졌고 발달해간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두개골은 그 반대로 과거로부터 온 것이고 다 만들어져서 발달하지 않습니다. 머리는 닫혀 있고 사지는 열려 있습니다.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완성된 것은 과거에서부터 만들어진 것인데 그러면 얼마나 먼 과거부터일까요? 자연과학자들은 태아에서부터 시작할 거라고 할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인지학자와 자연과학자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지학자는 인간 몸의 정신적인 면까지 고려합니다. 그래서 두개골을 관찰하는 데에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떻게 인간이 이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대해 자연과학자와 인지학자들은 전혀 다르게 말합니다. 자연과학자는 원숭이에서 인간이 나왔다고(원숭이와 인간의 조상은 같음) 합니다. 하지만 인지학자는 "그렇지 않다, 형성하는 동기는 정신세계에서 왔고 물질적인 측면은 지구적인 것에서 왔다"고 합니다.

 

두개골이 언제부터 완성되어졌는지에 대해서도 다르게 말합니다. 자연과학자는 태아부터라고 하지만 인지학자는 태어나기 이전부터라고 합니다. 이전의 삶에서부터 현재의 삶으로 오면서 뭔가 변형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생에서 했던 일의 결과를 열매처럼 가지고 온 것이 두개골로 나타납니다. 이런 개념은 꼭 인지학에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다른 데에서도 그렇게 말합니다. 전생에서의 경험은 머리가 아니라 사지로 한 것입니다. 사지로 한 경험이 정신세계로 갑니다. 마치 씨앗, 열매처럼요. 전생 경험 결과의 정수를 열매로 가져와 천상의 위계에 따른 천사들이 두개골의 형성에 작용을 합니다.

 

11장에서는 정신적인 세계 존재들의 도움을 받아 변형된 머리는 가장 신체화된 것입니다. 물질적인 머리에서 그 사람의 특징이 가장 강하게 나타납니다. 우린 이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얼굴을 보고 확인을 합니다. 다른 부분은 그렇게 흥미롭지 않습니다. 거기에 인간의 존재가 표현된 것입니다. 슈타이너가 말했습니다. 머리가 가장 신체화된 것이지만 머리에는 영혼과 정신이 있습니다. 머리에서 영혼은 꿈꾸는 상태이고 정신은 잠자는 상태입니다. 그건 무슨 말일까요? 우리가 꿈을 꿀 때 우리의 존재가 몸에 탁 들어간 상태는 아닙니다. 우리가 잠을 잘 때는 우리의 존재(자아와 아스트랄체)가 주변으로 빠져나갑니다. 주변 환경이란 얼마나 멀리까지를 포함할까요? 저기 별까지입니다.

 

우리의 에테르체는 거기까지 가지 못합니다. 그러면 죽겠지요. 하지만 에테르체는 잠잘 때 신체의 경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으로 퍼져가서 자기 주변의 것들과 같이 합니다. 옆에 자동차가 달리면 에테르체는 같이 달리고, 무선인터넷 끄는 것을 깜빡했다면 그것과도 함께 합니다. 티브이를 보다가 그대로 잠들었다면 에테르체는 티브이를 계속 같이 볼 것입니다. 열차의 침대칸에서 잠을 자면 에테르체는 밤새 열차와 같이 달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테르체는 항상 주변의 것들과 같이 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상에 오면 머리에 있는 정신은 잠을 잡니다. 머릿속에 있는 잠자는 정신은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의 에테르체와 함께 움직이고 주변의 모든 것과 함께 합니다. 머리의 신체는 깨어 있고 영혼은 꿈꾸고 정신은 잠을 잡니다. 신체가 깨어 있기 때문에 형성도 가장 명확하게 되어 있습니다.

 

  깨어 있음  꿈꾸고 있음 잠들어 있음
머리  신체(두개골) 영혼  정신
가슴    신체 + 영혼 + 정신  
사지  정신 영혼 신체

 

머리에서 인간이라는 자연은 제일 신체적입니다. 머리에 있는 영혼과 정신은 꿈꾸거나 잠자고 있습니다. 신체가 깨어 있다는 것은 형성이 가장 잘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섬세하고 조밀하게 잘 발달되었습니다. 머리가 신체에서는 가장 잘 완성되어 있습니다.

 

가슴은 머리만큼 신체화되지 않았고, 가슴에서 영혼과 정신은 꿈꾸고 있습니다. 사지에서 정신과 영혼은 깨어 있습니다. 사지는 미완성된 신체이며 신체적인 부분이 잠을 자고 있습니다. 머리와 사지는 이렇게 상반됩니다. 가슴은 중간상태이므로 신체, 영혼, 정신이 모두 꿈꾸고 있는 상태입니다. 머리에서는 정신이 잠을 자지만, 사지에서는 신체가 잠을 잡니다. 반대로 머리에서는 신체가 깨어 있지만, 사지에서는 정신이 깨어 있습니다. (뼈까지 그렇습니다. 머리는 그래서 뼈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물론 슈타이너가 이렇게 표로 그려준 것은 아닙니다. 사지에서 신체적인 부분이 가장 적고 머리에서 신체가 가장 깨어 있지요. 서로 이런 식으로 바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상에 처음 내려왔을 때 이 상태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바뀝니다. 머리에서 정신이 잠자고 있으므로 깨워야 하는데 깨어 있는 사지의 힘으로 깨워야 합니다. 특별히 어려운 개념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특징입니다. 발도르프 교육은 이 정신을 깨우는 작업입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어떤 상태인가요?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장난을 치고 아우성을 칩니다. 이게 실재입니다. 슈타이너는 실재를 이야기한 것이지, 다른 이론을 말한 게 아닙니다. 12학년 아이들이 학교 정원에 서 있으면 어떨까요? 그냥 가만히 서서 1학년 아이들이 뛰노는 걸 보고 있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고요한 극을 하는 건 상급아이들이고 저학년 아이들은 난장판이 됩니다. 상급에서는 그래서 감독하는 교사가 필요 없습니다. 12학년에 리듬활동이 필요할까요? 아닙니다.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합니다. (열심히 리듬활동을 하시면서) 저학년에서 막 움직이는 활동이 필요하지만 상급에서는 그저 노래를 하거나 시를 외우면 됩니다.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잠자는 머리 정신을 사지로부터 힘을 가져와 깨우는 것입니다. 사지로 교육을 하는 것이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발도르프학교에서 하는 것은 머리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사지의 의지로부터 교육을 하는 것입니다. 사지를 움직이는 활동을 통해 점점 머리의 정신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의지로부터 오는 것이 머리를 깨우고, 머리가 완전히 신체화되었다고 하지만 그렇게 하여서 발달시키는 것입니다.

 

머리에는 두개골과 함께 뇌도 있습니다. 두개골은 완성되었지만 뇌는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이건 인간의 고유한 특징입니다. 인간은 뇌가 완성되지 않은 채 태어납니다. 요즘 생물학자들이 이것을 발견하고 흥미를 갖고 연구합니다. 신경계 쪽은 뇌와 연관이 있습니다. 모든 신경계 역시 태어날 때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신경계 자체가 아니라 신경계를 감싸고 있는 수초(髓鞘)는 아이가 자기를 라고 하기 전까지는 성숙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자기 자신을 라고 한다는 건 무엇을 뜻할까요? 자기 스스로를 지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스스로를 반영하는 작용입니다. 둘러싸고 있는 막에 부딪혀 반영되는 것입니다. 집안에서 아이가 막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자기를 잊어버리고 뭔가를 막 합니다. 화장실 다녀와서 뭔가를 닦아야지, 하다가 갑자기 거울을 보고 자기를 인식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모든 신경을 둘러싸고 있는 막이 성숙되었을 때 스스로를 지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잠자고 있는 정신이 약간 깨어나는 상태입니다. 아까 말했듯이 막 움직이다가 거울을 보고 자기를 인식할 때 약간 깨어나지요. 하지만 두세 살에 자기를 인식한다고 하더라도 아직 정신은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정신이 잠을 자고 있을 때 밖에서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머리를 형성하는 일을 작업하는데 그래서 뇌를 형성합니다. 작년에 두개골과 뇌의 용량 등이 어떻게 발달해왔는지 쭉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진화는 선형적으로 발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쭉 발달을 하다가 어느 순간 멈추면서 뒤로 옵니다. 그러면서 다음의 도약을 준비합니다. 완성된 오랑우탄이 인간이 될 수 없었습니다. 말이나 코끼리는 더더욱 안 되겠지요. 인간과 유사한 형태의 영장류가 필요했습니다. 완성된 원숭이가 아니라 뭔가 열려 있는, 덜 성숙한 원숭이의 형태가 도약을 위해 필요했습니다. 유인원의 초기적인 어린 모습이 어디까지 뒤로 관찰해야 하냐면, 처음 만들어지는 단백질 세포가 이전의 원숭이와 전혀 다른 데까지 뒤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궁에 있는 난자, 수정체에서부터 발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몸이 나오려면 완전히 새로운 초기의 수정체가 있어야 합니다. 발달이 되려면 뒤로 가야만 발달할 수 있습니다.

 

인간 뇌의 발달을 보면 어느 순간 뒤로 퇴보하듯이 보이는 때가 옵니다. 수정체까지 오지는 않습니다. 포유류의 발달을 봤을 때 그 뒤까지 뇌가 퇴보합니다. 인간의 뇌가 발달하려면 최소로 발달한 포유류가 되어야 합니다. 조건은 최대로 발달한 포유류가 필요하지만, 수정체에서는 이러한 요소가 하나도 없는 상태여야 합니다. 우리의 뇌도 완전히 뒤로 돌아가 초기의 상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과학자들은 인간이 미완성, 불완전한 존재라고 하고, 모든 것에 열려 있는, 모든 가능성이 있는 존재라고 얘기합니다. 선과 악에도 열려 있지요.

 

뇌과학자는 인간의 뇌가 이 세상 어떤 것보다 놀라울 정도로 발달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어른의 뇌에만 해당합니다. 아이의 뇌는 다릅니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감각기관만 완성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미완성입니다. 모든 것이 다 불완전하고 미완성입니다. 사지나 신경조직, 소화기관 등 모든 것이요. 감각기관은 태어나기 전에 뇌와 연결되어서 완성됩니다. 우리는 12감각을 가지고 있고, 뇌에 있는 9개의 중추를 갖고 태어납니다. 12감각 중 자아감각은 뇌 안에서 중심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언어감각과 사고감각은 뇌 안에서 하나의 중심을 갖고 있습니다. 생명감각은 역시 뇌에 중심이 없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몸 전체에 퍼져 있는 교감신경에 생명감각의 중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뇌 안에는 감각 중 9개의 중심을 갖고 있습니다. (9개를 찍고) 이건 뇌 안의 감각을 상징적으로 그린 것입니다. 태어날 때는 이것들이 다 연결되어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이가 뭔가를 만지고 봅니다. 그래서 시각과 촉각이 서로 상호작용을 합니다. (2개를 연결함) 아이가 엄마의 젖가슴을 만집니다. 따뜻하지요. 그래서 아이는 따뜻함을 느낍니다. 보고 만지고 따뜻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온감각이 이렇게 연결됩니다. 엄마 가슴에 아주 가깝게 있기 때문에 엄마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요. 그래서 후각이 연결됩니다. 그리고 맛을 볼 수도 있으므로 미각까지 연결됩니다. 감각끼리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에 2개의 선을 그립니다.

 

엄마와 아이 사이에 영혼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습니다. 이제 아이가 엄마를 떠나서 기어다니면 모든 감각을 발달시킬 수 있는데 이러면서 모든 감각을 서로 연결시킵니다. 모든 감각이 서로 연결됩니다. 아이의 경험에 따라 감각들이 통합되고 연결됩니다. 이것은 첫 번째 연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발달함에 따라 여러 개의 감각이 상호작용하여 활동을 합니다. 뇌에서는 감각들이 다중적으로 연결됩니다. 첫 번째 연결선과 연결선이 연결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연결입니다. 뇌가 점점 더 발달함에 따라 세 번째 층위로 갑니다. 두 번째의 연결선과 연결선이 또 연결됩니다. 이런 걸 뇌과학자들이 연구하려니 얼마나 복잡할까요. 사실 이것은 삼차원적으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90년 동안 3세대의 연구자들이 필요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연결층이 하나도 없는 영(0)의 상태로 옵니다. 하지만 포유류는 세 번째 층위의 상태로 옵니다. 그래서 포유류와 비교했을 때 사람의 뇌가 얼마나 열려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추가됩니다. 언어를 배우고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언어에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개념입니다. 그래서 언어 안에는 세상이 들어와 있습니다. 감각은 세상을 모방합니다. 책상이나 컵은 그대로 있지만 우리는 감각으로 상을 만듭니다. 거기에다가 언어를 통해 두 번째로 세상에 대한 다른 상을 만듭니다. 첫 번째 상이 감각에 의한 것이라면, 언어에 의해 두 번째 상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여기(세 층위)에도 세 가지 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언어에 의해 새로운 연결선이 생겼습니다.

 

언어를 통해 추상화가 되면서 사고가 가능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연결선이 생겼습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연결선이 생깁니다. 미완성으로 끝날 층위입니다. 이것은 언어도 아니고 사고도 아닙니다. 그것을 발명하는 사람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 에켈스와 칼 포퍼는 나와 뇌라는 책을 썼습니다. 자아와 그의 뇌에 대한 것입니다. 물질적인 측면에서 본 것이 아님을 제목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랬다면 제목이 뇌와 나일 것입니다. 정신이 그 자신의 연장, 도구를 형성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 연장, 도구가 뇌이고 그것이 훌륭해 뇌 안에 직관이 살 정도입니다. 이 책은 물질주의자들이 물질주의를 극복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이 아직 학교에 있는 책에 들어오지는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인간학에 들어 있는 내용입니다.

 

미완성인 채로 뇌는 태어나고 사지의 활동에 의해 뇌가 발달합니다. 현재의 뇌과학자들은 좀더 물질주의에 빠졌습니다. 뇌 자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자아)가 주체입니다. 앞의 두 사람은 뭔가를 발견한 대단한 사람입니다. 다른 뇌과학자들은 그걸 못 느끼고 물질주의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습니다. 질량은 계속 유지된다는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계속 그렇게 가고 있는 것입니다.

 

책에 있는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아주 어린 아이는 교육을 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손뼉을 치거나 뜀뛰기를 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교육을 할 수 있는 때는 아이가 스스로 기어다니거나 걸어다닐 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그 사이에 어떤 공백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초에 교육은 자연에 의한 것입니다. 교육을 할 수 없는 공백 기간에 아이를 돕는 것은 어머니의 모유입니다. 모유는 머릿속 잠든 정신을 깨우는 첫 번째 작용입니다. 그러면 모유 안에는 어떤 것이 있는 걸까요? 슈타이너가 얘기하기를, 그 안의 성분에서는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다고 합니다.

 

두 가지를 봐야 합니다. 어디에서 모유가 만들어지나요? 그리고 모든 물질에는 정신이 깃들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물질 성분에는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유의 성분을 분석했지만 동물의 젖과 우유와 비교했을 때 모유는 지방이 적습니다. 그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아이의 소화와 관련이 있을 뿐입니다. 본질적인 것은 모유에 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인이 우리 몸 안에서 무엇을 할까요? 아마 아실 겁니다. 콜라를 마시면 정신이 확 깨어납니다. (웃음) 인은 치유할 수 있는 약의 성질입니다. 바깥에 있는 것을 안으로 들어올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신체적인 과정을 훨씬 더 도와줄 수 있는 성분입니다. 아이가 크게 놀랐을 때는 정신이 밖에 나간 것인데 그때 인이 작용하면 안으로 다시 들어옵니다. 햄에 인이 많이 들어 있는데 ADHD 아이에게 햄을 많이 먹이면 더 산만해집니다. 왜냐면 아이가 인을 소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과잉행동 아이가 소화를 못 시켜서가 아니고, 그 아이들은 깨어 있는데 더 깨어 있게 하기 때문입니다.

 

= 그러니까 인은 깨우는 기능입니다. 성인을 위해서는 그렇지만 아이에게는 작용이 달라서 과잉행동하는 아이에게 콜라 같은 것을 먹이면 완전히 난리가 나는 것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모유는 어디에서 만들어집니까? 유선은 어떻게 생기나요? 유선은 가슴 위에서 배 아래까지 있습니다. 뱃속에 처음 생기는 아이에게는 사지가 없습니다. 2주 정도 지나야 팔다리가 생깁니다. 그때 그 선이 생기므로 유선이 아니라 사지선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거기에서 또 무언가가 발생하려다가 멈춥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이것이 밖으로 표출되는 게 아니라 안으로 만들어져 유선이 됩니다. 팔다리가 나오듯이 안쪽으로 발전하는데 멍울처럼 생깁니다. 여성의 유방은 사지가 변형된 형태입니다.

 

이걸 동물과 비교해보면, 소의 젖꼭지는 팔보다 다리 쪽의 소화기관, 배에 가깝게 있습니다. 초식동물 중 코끼리만 앞쪽에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과 가깝습니다. 인도에서는 코끼리가 인간의 영혼을 상징합니다. 붓다의 어머니가 태몽을 꿀 때 하얀 코끼리가 옆구리로 나오는데, 그것은 크리슈나의 전단계에 관한 그림입니다. 맹수들은 젖꼭지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유선을 사지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젖이 사지의 변형이기 때문에 모유를 통해서 사지를 발달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10장 앞부분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머리는 신체적으로 가장 섬세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머리와 구를 비교해봅시다. 구는 그 안에 중심점이 있습니다. 가슴은 구의 부분으로 초승달처럼 그렸지만 달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가슴 구의 중심은 어디입니까? 여기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더 멀리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딱 이 부분만 신체화되었습니다. 사지는 더 어려운데요, 다른 구의 표면에 있습니다. 온 곳곳에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기는 아마 힘들 것입니다. 이걸 이해하려면 투사기하학을 배워야 합니다. 구가 엄청나게 크기 때문에 사지의 모든 면에 중심이 있습니다. (투사기하학을 보면 중심점이 전체 면을 통해 다시 돌아옵니다. 중심은 사실 모든 면에 다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사지의 모든 면에 중심이 있습니다. 전우주를 통해 다시 반대쪽으로 들어와 구를 그립니다.)

 

삼각형이 있습니다. 위의 꼭지점을 계속 더 위로 올린다고 생각해 보세요. 점점 더 위로 올라가면 두 변이 평행이 될 것입니다. 아주 멀어져서 평행이 된다고 상상했을 때 위의 꼭지점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것을 수학에서 배웠겠지만 아마 대부분 잘못 배웠을 것입니다. 평행선은 무한대에서 만난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평행선의 교차점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공간 안에 있지 않습니다. 이건 아마 모든 학생이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정된 공간 안에는 없지만 무한한 공간 안에는 있습니다. 끝이 계속 나아가서 자기 자리로 돌아오면서 좁아집니다.

 

위의 꼭지점이 원의 중심이라고 한다면 위로 올라갈수록 원은 점점 더 커집니다. 중심점이 무한대로 올라간다면 원은 어떻게 될까요? 그 원의 중심점은 무한대에 있으므로 어디에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 사지의 중심점은 우리가 상상하는 공간에 없고 무한한 공간에 있습니다. 공간이라는 것을 넘어서는 공간입니다. 모든 곳에 다 있습니다. 정신적인 곳에. 사지의 중심점은 정신적인 것에 있고, 가슴의 중심점은 공간에 있으며, 머리의 중심점은 머리 안에 있습니다. 인간이 자아를 가지고 있는 한 세 중심점이 있습니다. 생각할 수 있는 머리의 중심은 두개골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주 깊이 생각할 때 손을 머리에 대고 점점 들어갑니다.

 

교사가 누가 꽃병을 깨트렸니?” 그러면 아무도 머리를 가리키며 제가요라고 하지 않겠지요. 그런데 누가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렸니?” 그러면 아이는 자기 가슴을 치면서 제가요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감정 자아의 중심은 가슴에 있고, 생각 자아의 중심은 머리에 있습니다. 교사가 이 수학적인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누구니?” 하면 아이는 손가락을 곧게 치켜들면서 저요라고 할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적인 자아의 중심은 저기 정신세계에 있습니다. 고차적인 자아가 우리의 일상적인 자아와 연결될 때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거기에 신경조직이 있습니다. 구심적인 신경이 그래서 필요하고 밖으로 뻗어나가는 신경이 또 필요합니다. 물질적인 게 오고 심리적인 게 나가고, "내가 세상을 바라본다"는 물질적으로는 반대방향으로 옵니다. 여기서 고차적인 자아는 (의자 위에 올라가 아래를 보며) “, 도대체 거기서 뭐하니?” 합니다. 고차적인 자아가 나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을까요? 구심과 원심의 힘이 작용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신경이 고차적인 자아로까지 갑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뭘 해야 하지? 불을 켤까? 문을 열까? 이게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우리 뇌가 명령을 내려서 사지가 인형처럼 따르는 걸까요? 중세시대처럼 인간 안에 또 하나의 자아가 있어서 감옥처럼 몸 안에 숨어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기까지 움직이는 것은 의지인간이 하는 일입니다. (다시 의자 위에 올라가서) 고차의 자아가 나를 보면서 인식하고 작동합니다. 그래서 근육까지 가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팔을 끝까지 손으로 밀어내며) 원심적인 게 신경으로 근육부분까지 싹 다 들어가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냐면 신경이 전기적인 게 아니라 자아가 살고 있는 따뜻한 온기에 작용하여 근육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고차의 자아는 주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전체에 온통 다 있습니다. 우리 몸에도요. 우리가 사지로 하는 모든 일이 고차의 자아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의 일상적인 자아가 하는 게 아니라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번 더 해야 할 것입니다. 이건 너무나 낯선 상상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그냥 듣고 습관처럼 들으면 나중엔 이해가 될 것입니다. 아마도 이걸 정말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다섯 명 정도 될 것입니다. 글뢰클러 부부, 볼프강샤트, 주한트케... 저까지입니다. 어느 날 슈타이너의 얘기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서 그림도 그리고 고민도 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슉 하고 직관의 힘으로 느낌이 왔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했더니 저 사람들이 모두 공감했습니다. 볼프강샤트의 신경조직에 관한 책에 슈타이너의 이야기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정말 여러 가지 굉장한 설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인식적인 방식으로 설명되었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제자 한 명이 발표하는 걸 보고 와닿았습니다. 너무 사고적으로 써서 잘 와닿지 않았는데 학생의 발표를 통해 정말 대단한 거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멋지지 않나요? 우리 안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자아의 중심이 있다는 게요. 아이들의 자아도 다 주변에 중심이 있는 거예요. 그걸 정말 제대로 생각하고 상상한다면 정말 다른 관계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게 발도르프 교육학입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