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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수치심에 대하여 (1)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수치심에 대하여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2. 25. 07:14

회복적 정의에서는 수치심(shame)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룹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저지르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회복적 정의에서 말하는 '직면'과 연결됩니다. 

문제해결서클에서 가해자의 잘못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수치심을 자극합니다. 

실제로 물리적 아픔보다 대중적 수치심이 더 괴롭기 때문에 행동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수치심이 잘못 작용하면 반발심이 커질 수 있습니다. 


"수치심은 단절에 대한 공포이다. 나에 대한 어떤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거나 보게 될 때 나와의 관계를 맺을 가치가 없다고 느낄지 모른다는 공포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 Dr. Brene Brown


수치심이란 나의 약점과 치부가 드러날 때 단절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입니다. 

일종의 죽음, 즉 사회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죠. 

아주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에덴에서 천진난만하게 노닐던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고 분별심이 생긴 뒤에야 수치심을 처음 느낍니다. 

'부끄럽다'는 어원적으로 '가리다'와 연결된다고 합니다. 


"어디 있느냐?"

"부끄러워서 숨었습니다."


알게 되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은 수치심이 사회적 현상임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 사회적으로 주입된 것입니다. 

도덕이라는 것은 그래서 사회적 억압이기도 합니다. 

해도 되는 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우리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부터 배워갑니다. 

이불에 소변을 보고는 키를 쓰고 소금을 얻으러 다녔던 기억이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마을공동체가 살아 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지만 요즘 아이에게 그런 일을 시킨다면 아동학대로 경찰이 출동할지도 모릅니다. 

보통 가정이나 교실에서 아이들의 문제 행동을 고치려고 할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수치심을 자극합니다. 

마찬가지로 그 공간이 안전하냐에 따라 아이들에게 긍정적 효과를 줄 수도 있고, 부정적 효과를 줄 수도 있습니다.


수치심을 주는 행위는 그 사람의 취약성(vulnerability)에 집중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과도하게 수치심을 많이 느끼게 훈육되었다면 부정적 자아감이 생기기 쉽습니다.

'난 이러이러해서 못났어.' 

'난 충분히 날씬하지 않아.'

'난 돈이 많지도, 예쁘지도, 똑똑하지도, 괜찮은 지위에 있지도 않아.'

스스로 감추고 싶은 나약함이 수치심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나약함은 자기 생각이나 판단에 따른 것으로 굉장히 주관적인 것입니다. 

굉장한 미인이 스스로 못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엄청난 부자임에도 아직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거죠. 



(계속)



* 한국평화교육훈련원에서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하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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