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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수치심의 치유 - 존 브래드쇼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수치심의 치유 - 존 브래드쇼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3. 2. 11:33

수치심의 치유

 

존 브래드쇼 지음

김홍찬, 고영주 옮김

사단법인 한국상담심리연구원



※ 중요한 내용을 발췌해 정리한 내용입니다. 

 

사실상 수치심은 아이들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생성되기 때문에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수치심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건강한 수치심과 해로운 수치심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해로운 수치심은 인간 내면에 분리를 가져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든다.

 

해로운 수치심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느낌을 부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 대신 뭔가 다른 모습이나 행위로 자신을 위장하려 든다. 해로운 수치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외모를 열심히 꾸미거나 남들보다 의욕과 열의에 넘쳐 뭔가를 해내려고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참 모습은 어두움과 비밀에 감추어져 있다. 어두움 속에 감춰져 있기에 이 해로운 수치심은 그동안 사람들의 주목을 피하여 교묘히 빠져 나갔다. 그렇기에 그 실체를 제대로 알려면 우리는 그 이면이 뭔지 깨달아야 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주로 어떤 행동들을 하는지 그 유형부터 파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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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느낌으로써 수치심은 우리가 한계가 있음을 알려준다.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한계 말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쩔 수 없이 제한된 존재이다. 우리 중 누구도 인간 이상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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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수치심은 우리 자신의 에너지를 산만하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통합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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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슨(Erick Erikson)에 의하면 아이들은 정신적 발달의 2단계에 수치심을 느끼기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앞선 1단계에서는 반드시 기초적인 신뢰감이 있어야 하며 반드시 신뢰감이 불신감보다 더 강해야 한다고 한다. 우리는 세상을 알기 전 먼저 신뢰감부터 갖게 된다. 우리가 제일 먼저 접하게 되는 세상은 바로 우리를 돌봐주는 부모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존재하며 우리를 돌봐준다는 것을 먼저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보살펴주는 사람들이 믿을 만하고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반영해 주고 의지할 수 있어야 세상을 신뢰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부모와의 신뢰 관계는 세상으로 가는 도약의 모든 교량이 된다. 그리고 그 교량은 우리의 가치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

 

우리는 이전에 우리라는 관계를 통해 자신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삶의 아주 초기부터 우리는 돌보는 자의 눈이 어떻게 거울의 역할을 하느냐를 보고 자신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성장하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를 돌봐주는 사람들과 신뢰 관계부터 구축해야 한다.

 

아이와 아이를 돌봐주는 사람과의 관계는 상호간의 교류를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해 간다. 진실로 신뢰란 상대방의 성숙한 행위를 통해 발전한다. 신뢰가 형성됨에 따라 감정적 연대감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감정적인 연대감은 아이와 돌봐주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것으로 이를 통해 아이는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세상으로 나가고 탐구할 수 있다. 이 연대감은 돌보는 자와 아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교량 구실을 하게 되고, 그 교량은 이해와 성장의 기반이 된다. 또한 그 교량의 힘은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기댈 수 있는가 하는 정도에 따라 비례하여 강해지기도 하고 약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 힘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데에 아주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리고 일단 이런 1차적 신뢰 관계가 구축되어야만 아이는 건강한 수치심이든 해로운 수치심이든 수치심을 발달시킬 준비가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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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는 건강한 수치심이든 감정의 표현이든 제대로 모범을 보여주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아이는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한지를 배워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며 자율성을 길러나가는 동시에 자신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에릭슨은 이런 확신이야말로 아이가 앞으로 닥쳐오는 확실치 못한 일을 대처하며 그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아이는 사랑의 확신을 얻고 자신의 한계를 배우고 탐험하여 앞으로 나간다. 그리고 자신이 고집을 피워도 여전히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면 아이는 건강한 수치심을 갖게 된다. 우리가 건강한 수치심을 느낄 때는 당황스런 순간을 맞닥뜨린다든지 혹은 낯선 사람 앞에 선다든지 아니면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 당황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때 건강한 수치심은 균형을 잡아주고 인간의 한계를 알게 해주며 우리가 전능하지 않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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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수치심의 기능은 우리가 사랑받아야 하고 도움받아야 하며 또 남을 사랑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한 마디로 건강한 수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필요로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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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기가) 옳다는 것을 확신하면 호기심을 멈추게 된다. 호기심과 의구심은 배움의 기초가 된다. 플라톤은 의구심을 갖는 것부터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떤 일에 대해서 절대적인 확신과 자기가 옳다는 의로움을 가지면 배우려는 것을 멈추게 된다. 건강한 수치심은 우리가 한계가 있는 존재로써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 건강한 수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호기심을 가지고 새로운 정보에 대한 탐험과 알지 못하던 일들을 배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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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캇 팩(Scott Peck)은 그의 저서에 신경증과 성격장애에 대해 기술해 놓았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신경증이란 너무 많은 책임을 지려는 것이고 성격장애는 자기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경증이 있는 사람들은 세상의 어려움과 문제가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고, 성격장애의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세상 탓이라고 돌려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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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신을 현실적으로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 팩에 따르자면 이는 책임에 따르는 고통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의지가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 능력은 그 혹은 그녀가 얼마나 자기 자신과 좋은 관계를 갖느냐에 달려 있다. 건강한 수치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로운 수치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해로운 수치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참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 해로운 수치심은 실제로 성격장애나 신경증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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