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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2019 회복적 정의와 실천 연수(통합 1,2과정)를 마치고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2019 회복적 정의와 실천 연수(통합 1,2과정)를 마치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3. 30. 17:15

2019 회복적 정의와 실천 연수(통합 1,2과정)를 마치고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내가 사는 서산에서 훈련원이 있는 남양주까지는 꽤 먼 길이다. 차로 열심히 달려서 2시간, 왕복 4시간의 거리다. 동 트기 전에 별을 보며 출발했고, 교육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밤 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그렇게 일주일, 그리고 또 한 주는 호의를 베풀어 준 동기 선생님의 양평 자택에서 출퇴근하며 교육을 받았다. 어쩔 수 없이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전혀 힘들지 않았다. 아침에는 기대로 설렜고, 저녁에는 감동으로 벅찼다. 무엇이 나를 날마다 신선하게 만들었을까?

 

연애를 책으로 배운 사람이 진정한 사랑꾼(들)을 만났을 때의 느낌이 이럴 것이다. 연수 전반에서 강연자뿐 아니라 스탭들 모두 진실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 공동체는 ‘진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회복적 정의를, 그리고 공동체를 삶으로 실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감동을 받았다. 완벽하다는 말이 아니다. 분명히 서툰 부분도 있다. 그러나 구성원 모두 온 마음을 다해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훌륭하고 유쾌한 강연, 마음을 깊이 나눌 수 있는 신뢰서클, 긴장감을 풀어 주는 놀이, 진지한 조정자 연습 같은 프로그램 내용보다 훈련원 식구들의 편안한 미소와 배려가 생활화된 태도, 정성이 깃든 간식, 그리고 무료로 제공되는 맛있는 점심식사(!) 등에 더 마음이 끌렸다. 살면서 이렇게 따뜻한 연수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공간 구석구석에 안전함과 평화로움, 또 공동체적 실천의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덕분에 훈련원생들은 연수 첫 날부터 무장해제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연수를 통해 배운 것을 굳이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직면’을 택하고 싶다. 직면한다는 것, 이것은 내게 늘 두려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직면하는 순간 물러설 수 없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 많은 사람이 평화를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몰라서가 아니다. 직면하는 순간 나는 나의 책임을 인식하게 된다. 이 삶은 나의 것이고, 그것이 고난일지라도 헤쳐나갈 사람은 결국 나이다. 직면이란 결국 나 자신의 진실에 직면하는 것, 즉 책임을 짊어지는 것이다. 우리 삶에서 진실은 그다지 아름답지도 고상하지도 않은 모습으로 찾아온다. 어찌할 수 없는 갈등처럼 위기 상황이 되어야 진실의 윤곽이 또렷해지는 탓이다. 그래서 공동체로 살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진솔하게 드러내고 갈등에 직면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직면 없이 공감이나 인정은 없다. 용서나 화해는 말할 것도 없다. 스스로 진실하지 않을 때 우리는 ‘나이스’해지고 만다. 가짜가 되는 것이다.

 

두 주가 그야말로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처음에는 서먹했던 동기 선생님들과 대화모임을 진행할수록 ‘이 공간은 정말 안전하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금세 정이 들었다. 토킹스틱의 마력 때문인지, 원이라는 형태의 신비로운 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마음을 터놓고 어디 가서도 하지 못할 마음속 이야기를 진실하게 털어놓았다. 왜 사람들이 그렇게 끼리끼리 모여 뒷담화하는 걸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누구나 안전한 공간에서 자신의 실익과 기본적 욕구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전문성을 쌓고 훈련이 되면 극심한 갈등의 문제도 조정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다. 회복적 정의에 입문한 것도, 머나먼 남양주에까지 와서 훈련을 받은 것도 나에겐 삶의 소명에 대한 직면이었다. ‘참 감사하다’는 감정이 여운으로 길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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