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회복적 정의에 대한 비판적 지점들 본문
◈ 회복적 정의란 무엇인가?
“사법제도 안에 혁명이 시작되고 있다. 밑으로부터 조용히 그러나 이 혁명운동은 우리 일의 가장 근본적 구조부터 바꾸어놓고 있다.” 이 말은 미국교정협회 (National Institute of Corrections)가 발간한 보고서 서문 중 일부이다. 미국교정협회의 전문운영위원 중 한명이었던 바라자스(Eduardo Barajas, Jr.)는 회복적 정의의 대두를 지금까지 있었던 사법개혁 역사의 틀을 넘어서는 큰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 사법계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혁신의 개념을 넘어선 진정한 발명이며 패러다임의 전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회복적 정의는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보자.
사법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개인의 단계이든 사회의 단계이든 바로 정의(正義)이다. 진정한 정의는 누군가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고 느낄 때 더욱 그 의미가 있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와 처벌에 대하여 전통적인 관점과는 전혀 다른 이해와 철학으로부터 출발한다. 현재 사법제도가 제시하는 관점에서 사법은 ‘어떤 법을 어겼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라는 응보적 관점으로 범죄를 규정하고 형벌을 구형한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에서 범죄는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 사이에 피해와 관계의 훼손을 가져왔고, 따라서 어떻게 그 깨진 관계와 피해를 회복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다시 말해, 회복적 정의의 관점에서는 범죄를, 국가가 만들고 지키도록 강제한 룰(법)에 대한 침해행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다른 개인에게 해를 끼치는 피해 행위로 이해하며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린 것으로 이해한다. 또한 회복적 정의는 사법절차의 과정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그 범죄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모든 사람의 상처를 최대한 아물게 하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결국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주변사람들, 더 나아가 지역사회 등 그 범죄와 관련하여 영향을 받는 사람들 모두가 문제해결의 주체로 참여하여 함께 해결한다는 뜻이다. 단순한 참관이나 참석뿐만 아니라 범죄로 인해 나타난 결과를 올바르게 정정하는 책임을 경험하는, 일련의 모든 과정에 적극적이고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위에서 밝힌 대로 회복적 정의는 정의를 구현하는 초점이 법을 어긴 행위와 그에 합당한 처벌을 찾는 데 있지 않다. 회복적 정의가 강조하는 것은 범죄로 인해 발생한 다양한 요구를 어떻게 채우느냐에 있다. 사회가 범죄행위와 그 처벌수위에 관심을 쏟는 사이 범죄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고 제3자인 법률전문가에 의해 매우 전문적인 용어와 과정 속에서 단지 참여자로 지켜볼 수 밖에 없다. 결국 사법기관이 내린 결론이 본인이 요구하는 정도에 만족되지 않더라도 어찌할 수 없는 현실적 한계가 발생하게 된다. 회복적 정의는 피해자의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가해자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려는 사법부의 필요와 그것을 회피하려는 가해자의 이해가 법적 공방의 핵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범죄의 직접 당사자인 피해자와 가해자의 요구가 무엇이고 그 요구를 어떻게 채울까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다.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묻되 관계의 회복과 사회공동체로의 회복을 기대하면서 그 목적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회복적 정의는 기존 사법제도에 안에서 좀 더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고안된 단순한 보완 프로그램이 아니다. 회복적 정의는 범죄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의의 구현을 위해 무엇을 초점에 두며 누가 이뤄갈 것인가라는 전반적인 사법과 정의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자 패러다임의 전환을 의미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없다면 회복적 정의 프로그램은 그 기능적 효율성으로 평가될 수 밖에 없다. 이는 회복적 정의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이자 기본 철학인 분쟁의 당사자들과 사회의 ‘전인적 회복’을 추구하는 데 한계를 나타낼 수밖에 없다.
<회복적 정의의 주요 특징>
● 회복적 정의에서는 범죄를 이해하는 초점이 '인간관계를 깨뜨린 것'에 있다. (Crime=Relationship Breaking)
● 피해자와 가해자는 범죄에 대한 피해와 책임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문제해결 과정에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주체가 된다.
● 양측간의 직접적 대면을 통해 피해자의 요구와 가해자의 책임을 통감하게 하고, 처벌에 대한 합의까지도 자발적으로 이뤄낸다.
● 기존 재판제도가 충분히 충족하지 못하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요구를 채우는 데 중점을 둔다.
● 법을 집행하는 전문기관과 더불어 지역사회의 참여와 관심을 강조한다.
● 민간 자원봉사자들이 소정의 훈련을 받아 사건의 해결을 돕고, 피해자를 지원하며, 가해자가 사회에 다시 적응하도록 돕는다.
◈ 회복적 정의에 대한 비판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해가 늘어가고 그 정신을 구현하는 프로그램들이 늘어가고 있지만 회복적 정의에 대한 비판적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회복적 정의가 직면하고 있는 비판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
범죄와 형벌에 대해 미리 정해진 법률에 의해 판단해야 하는데 회복적 정의에서는 당사자 간의 직접 대면을 통한 협의의 부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객관성이 결여되고, 같은 범죄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결론이 도출될 수 있는 위험성이 존재한다. 만약 객관성이 결여되는 가운데 사건마다 주관적 결정에 의해 문제가 해결된다면 '절차적 안정성을 어떻게 담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는 결국 법의 안정성을 매우 중시하는 현 사법제도에서 가장 우려되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 온정주의에 입각한 결과를 낳는다
처벌보다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미래지향적 방향을 강조하는 회복적 정의는 결국 피해자보다 가해자에게 더 유리한 기회를 제공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은 그에 응당한 처벌을 받음으로써 깊이 반성하고 널리 경각심을 일으킬 수 있지만, 당사자간 직접 협의는 가해자에게 너무 ‘약한 처벌(soft punishment)’을 통해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위험성이 있다. 또한 가해자의 진실성을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힘든 상황에서 좀 더 가벼운 처벌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개연성이 있다.
● 지역공동체가 부재하다
회복적 정의의 다른 특징 중 하나가 공동체적 정의인데, 실제로 공동체를 어떻게 정의 할 것인지, 어디까지를 공동체로 보고 그 참여와 책임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지역 공동체의 형성은 오히려 사법의 변화보다 더 큰 틀에서 이뤄져야 하는데 과연 그것이 전제된 회복적 정의가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할 것인가? 민간 조정자들의 형식적 참여만으로 지역 공동체의 참여라고 주장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좀 더 근본적인 지역 공동체 참여 모델이 제시될 수 있어야 한다.
● 강제성이 결여되어 있다
회복적 정의에서 말하는 자발성은 이 프로그램의 매우 기본적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당사자 중 어느 한 쪽의 의지에 의해서만 성립될 수 없고, 어느 정도의 강제성이 결여된 완전한 자발성만으로는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 강제적 요소가 포함되는 형태가 좀 더 효율적인 당사자 합의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쌍방의 협의에 의해 만들어진 결과에 대해 실행여부를 강제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제재할 수 있는 안전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회복적 정의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경제력이 있는 가해자의 경우 피해자와의 협의에서 나온 손해배상을 적극적으로 해 줌으로써 좀 더 유리한 협의에 이를 수 있고, 상대적으로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날 수 있지만,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경우 오히려 직접적 대면을 통해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태도로 비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형평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오히려 기존의 사법 제도가 양산하는 처벌은 획일적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이보다 더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다.
물론 회복적 정의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은 기존 사법제도의 이해의 틀에서 생각하기 때문에 생겨날 수밖에 없는 면도 분명 있다. 하지만 회복적 정의가 실질적인 대안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다. 특히 조정자와 진행자처럼 회복적 정의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민감하게 이러한 우려에 대해 인식하고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우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잘 훈련되고 준비된 전문인력(조정자나 프로그램 진행요원 등)의 양성이 필수적이지만 지금 한국의 상황은 이러한 전문인력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무엇보다도, 많은 민간단체의 역할이 필요한 회복적 정의의 구조를 정부와 제도권이 어떻게 수용하고 지원할 것인가가 관건이라 하겠다.
* 이 글은 한국평화교육훈련원 이재영 원장의 논문 「회복적 정의의 이해」의 일부 내용을 발췌하고 교정 및 수정을 한 것입니다. 전문은 KOPI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kopi.or.kr/?page_id=10#data-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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