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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배우는 진정한 이유 - 크리스 클라크 본문

발도르프교육학/발도르프 수학교육

수학을 배우는 진정한 이유 - 크리스 클라크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10. 23. 10:15

수학을 배우는 진정한 이유

<발도르프학교의 수학> 추천의 글

 

크리스 클라크Chris Clarke

영국 윈스톤 발도르프학교 교사

 

 

수학은 가르치기 쉽지 않은 과목이다. 자칫하면 아이들이 수학을 무시무시한 괴물로 여기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수학은 우리에게 세상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펼쳐 보여주는 학문이자, 퍼즐 같은 지적인 유희로 사고를 자극하는 즐거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언어'이자 삶의 기술인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1990년 영국 정부는 아이들이 암산에 필요한 기초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깊은 우려를 표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몸 바쳐 입증하고 싶었는지 한 교육부 각료가 최근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7×8 = 54'라고 답하는 웃지 못할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인 론 자만의 말을 빌자면 '모든 교사의 목표는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확실하고 자신감 있는 능력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참관했던 수학 수업 대부분은 아이들의 세계와 거리가 먼 '차가운 추상'으로 시작했다. 어떤 교사는 네 살짜리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음식을 그림으로 그려 교실 벽에 붙이라는 과제를 냈다. '~보다 많은'과 '~보다 적은'을 가르치려 했던 것 같다.

 

아이들을 그렇게 일찍부터 추상의 세계로 데리고 들어가는 것이 과연 옳은 방법일까? 정작 아이들은 그 그림을 보며 각자의 내면에서 무엇이 다르다고 여겼을까? 어쩌면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닌, 나중에 수에 대한 이해를 일깨울 중요한 사전 경험인 색깔이나 움직임, 재질의 차이를 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아이들은 어떻게 느낄까? 어린아이들의 감정을 고려한 수학 교육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교육은 아이들의 상태와 존재 자체에서 출발해야 한다. 1학년 아이들은 아주 작은 땅속 난쟁이, 꼬마 요정, 난쟁이, 거인이 12개의 돌로 징검다리가 놓인 개울을 각각 몇 걸음에 건너는지를 비교한다. '깡충 걸음으로는 한 번에 징검다리 두 개, 또는 서너 개를 건널 수 있다.(12=6×2, 4×3, 3×4) 짧은 다리로 '종종 걸음'을 걷는 땅속 난쟁이는 징검다리를 한 번에 하나씩 디뎌야 한다.(12=12×1) 하지만 거인은 한 번에 6개의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기 때문에 두 걸음만에 개울을 건넌다.(12=2x6) 이야기를 들은 아이들은 교실에 나무로 징검다리를 만들어 직접 난쟁이와 거인이 되어 걸어본다.

 

교사가 사고를 위한 양식으로 '돌무더기'를 준다면 아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사고를 위한 진짜 음식, '따뜻한 빵'이다. 여기서 돌멩이는 12=3×4 같은 순수한 추상을 의미한다. 이야기와 그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존재들이 있는 힘껏 다리를 뻗어가며 징검다리를 건너는 상과 수학 공책에 정성껏 그린 그림이야말로 가장 군침 도는 '빵'이다. 아이가 어릴수록 상을 이용한 수업이 효과적이다. 상상 속에 자리 잡은 상은 사고 및 느낌과 연결된다. 빵 반죽이 발효되어 부풀어 오르듯 그 상은 아이의 상상 속에서 발달하면서 확장하고 자란다.

 

흔히 모방의 중요성은 유치원 단계에서 많이 강조한다. 하지만 이야기, 그림, 상과 몸동작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초등 교육 단계에서도 모방의 힘은 계속 작용한다. 아이들에게 추상을 제시하기에 앞서 이런 요소를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

 

사고, 느낌, 의지라는 3개의 '기둥'은 모든 발도르프 수업의 중심이다. 수학은 본질적으로 의지의 과목이다. 론 자만은 사고 속에 의지를 통합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살아 있는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들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정신'이다. 아이들은 수학에서 차갑고 단단한 추상이 아니라 삶과 생명을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론 자만은 멋진 발도르프 교육 방법론에 따라 수학 수업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산술(셈하기)은 신체의 리듬 체계에서 나오며, 기하는 사지와 뼈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숫자 속에 내재된 리듬에 맞춰 노래하고 손뼉치고 춤을 춘다. 이로써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구구단과 도식은 생동감 있게 살아난다."

 

또한 이 책은 수학 수업을 본질적이고 통합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 먼저 저자는 정신의 차원에서 수학의 기원을 살핀다. 세상의 다른 많은 것처럼 숫자들의 관계 역시 영혼에서 탄생했다. 저자는 이를 기점으로 발도르프 교육과정 전체를 아우르는 한편, 수학의 개념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발전해왔는지 설명한다.

 

수학의 기원과 발달에 대한 생생한 개괄은 수학의 본질을 통찰하게 한다. 나아가 이 통찰은 교사가 학생들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안목으로 성장한다. 여기서 소개하는 수학은 교사와 학생 모두가 읽고, 연습하고, 숙고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학문이다.

 

수학은 본질적으로 관계의 학문이다. 숫자와 숫자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고, 개념과 개념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든다. 아이들은 세상을 보면서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연결 관계와 함께 자신의 정신 및 영혼의 내용, 즉, 가장 내밀한 자아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찾으려 애쓴다. 달팽이집 놀이를 하는 6세 아이들은 아주 좋은 예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는 나선과 밖으로 나오는 나선의 성질을 배우는 한편, 즐겁게 놀이가 이어지기 위해서는 모두가 마음을 모아 협력해야 함을 깨닫는다. 여기서 나선은 원이 변화 발전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원을 만든 다음, 선두에 선 아이가 원의 중심을 향해 돌아서 조금씩 다가가고 다른 아이들이 그 뒤를 따르면 원은 깨졌다가, 목적지에 도달해서 중심을 경험하고 난 다음에는 되돌아 다시 원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매번 아이 스스로 터득하도록 맡기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지혜롭게 조언해주어야 하는 순간도 있다. 한번은 10세 아이들에게 번개가 번쩍이고 조금 후에야 천둥이 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질문했다. 그랬더니 '반짝이는' 한 아이가 눈이 귀보다 조금 더 앞쪽에 있기 때문에 귀가 소리를 듣기 전에 눈이 먼저 빛을 본 것이라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수학적 사실과 개인의 경험을 사고가 소화해서 받아들이고 나면, 추상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추상은 생각을 타인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추상을 너무 일찍 요구하거나 자극하면 아이는 추상적 사실과 자신과의 연결 지점을 잃어버리고 결국엔 의미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수학을 싫어하고 그 여파로 수학을 잘 못하게 되는 이유가 어쩌면 너무 일찍부터 추상을 요구하는 경직된 교과과정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과서와 TV, 컴퓨터를 사용한 수업도 추상성을 강화한다. 배움의 과정에 수반하는 인간적, 사회적 관계가 배제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 특히 열정을 가진 교사와 대화를 나눌 때 가장 잘 배운다는 사실을 교사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나는 영국의 윈스톤Wynstones 발도르프학교에서 6, 7세 반을 맡기 전에 발도르프 교사로 다시 교사교육을 받는 동안 론 자만 선생님의 교수 방법과 통찰력, 따뜻한 인간성을 가까이에서 접하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선생님의 강의는 내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교육에서 초등학교 담임교사 및 주임교사로 30년을 보내면서 켜켜이 쌓인, 감추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이 된 과거 경험들의 정곡을 찔렀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나의 직관에 따라 수업 내용을 정한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지점을 읽고, 가능한 한 교과서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직접 경험한 바를 토대로 수업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선생님이 나뭇가지 하나를 불쏘시개로 쓰려고 부러뜨렸어요. '하나'는 '둘'이 되고, 둘은 '넷'이 되었지요."처럼 인간의 경험에서 최초이자 근본은 '전체성'이다. 그래서 저자는 '전체에서 부분으로' 수업하라고 당부한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최고의 놀이는 아이와 부모가 상상력을 발휘해서 주변의 물건이나 사건을 이용해 즉석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경직된 교과과정의 굴레에서 해방된 뒤로 나는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통찰하는 힘을 키웠다. 1학년 아이들이 아주 좋아하는 '황금 공' 놀이를 소개한다. '황금 공(테니스공)' 하나씩을 나누어 주고, 바닥에 튕기고, 잡고, 박수치고 잡고, 만졌다가 튕기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10번, 20번, 30번씩 일정한 동작을 반복하게 한다. 이는 마법의 주문이며 규칙에 따라 동작을 마치면 손에 ‘마법의 힘'이 들어간다. 마법의 힘을 얻은 아이들은 상상의 계단을 올라가 마녀의 정원을 탈출할 수 있다. 마녀의 정원을 빠져나갈 힘을 모으기 위해 10의 단위로 수를 세면서 공을 잡고 튕기는 것은 아주 재미있는 놀이인 동시에 근사한 수학 활동이다.

 

본문에는 아이들의 발달단계도 잘 정리되어 있다. 또 다른 중요한 비법은 '상급학년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것을 저학년 때 가볍게 소개하면서 기대감 불러일으키기'이다. 바로 이점에서 진정한 교육이 일어난다. '미리 씨를 뿌리고 열매는 나중에 거두기' 방식으로 산술의 사칙연산을 가르치는 것이다. 처음 산술식 쓰기를 할 때부터 숫자마다 '제 위치'가 있으니 제자리에 잘 써넣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이는 나중에 배울 '자릿값'의 밑 작업인 동시에 더 나중에 배울 '긴 곱셈'으로도 이어진다.

 

이 밖에도 교사에게 도움이 될 내용이 풍성하므로 꼼꼼히 정독하기를 권한다. 공교육 교사와 발도르프학교 교사 모두 이 책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론 자만의 유쾌한 글 솜씨 덕분에 수학 교재지만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흔치 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멋진 수학 수업을 위한 마법의 힘이 전달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998년 3월

 

 

 

 

 

 

[출처 : 론 자만, <발도르프학교의 수학>, 도서출판 푸른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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