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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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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돌프 슈타이너

슈타이너의 생애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 11. 11:07

 

슈타이너는 1861년 2월 27일 헝가리 크랄예백(지금의 유고슬라비아)에서 철도 전신기사인 요한 슈타이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잦은 전근 탓으로 자주 이사를 하기는 했으나, 슈타이너는 유년시절 아름다운 숲으로 둘러싸인 자연환경 속에서 아름다움과 신비를 느낄 수 있었다고 회상하였다. 한편, 기차역 근처에서 기차를 통해 현대 물질세계의 기술문명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여덟 살에 이미 그는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초감각적인 세계’와 ‘영적인 세계’에 관심을 두었다. 10살 때는 마을의 신부로부터 코페르니쿠스의 우주론을 배우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경험들은 훗날 그의 교육론에 토대가 된다.

 

슈타이너는 1872년 초등학교를 마치고 철도회사 기술자가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실업학교(Realschule)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인 직업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대한 관심이 철학과 역사와 종교로 이어져서,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을 20번 이상 반복해서 읽는다. 그리고 자연현상의 창조와 인간의 사고 사이의 관계를 통찰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빈 공대(1879-1883)에서 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하였고 부전공으로 문학, 철학, 역사학도 공부하였다.

 

그는 대학시절 21살의 나이에 이미 칼 슈뢰어 교수의 추천으로 독일민족문학 대전집을 출간하는 작업 중 괴테의 여러 작품들(특히 괴테의 자연과학 작품들)을 편집하는 일을 하였으며, 빈에서는 한 가정의 가정교사로도 일하였다. 그리고 대학시절의 경험들을 통해 후에는 독일 바이마르의 괴테-쉴러 박물관(1890-1897)에 취직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그는 “괴테 세계관의 인식론적 기초”를 확립했고 이를 통해 ‘살아 있는 것(생명)의 현상’을 위한 괴테 인식론의 학문적인 토대를 만들어 놓게 되었다. 

 

1891년에 그는 독일 로스토크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고, 당시의 논문 내용은 후에 “진리와 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으며, 이 작품은 나중에 슈타이너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자유의 철학"(1894)을 만들어내는 전초가 되었다. 이렇게 바이마르에서 지내는 시기에 수많은 철학과 철학사에 관한 글들을 쓰게 되었으며 1894년에 “자유의 철학 -현대적인 세계관의 요강”을 집필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주로 정신과학에 대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괴테의 “순수 인식학”, “원초형상”을 기반으로 하여 슈타이너가 새로운 유기체적인 세계에 대한 연구를 한 것이다. 이를 통하여 그는 “순수 사고 안에서 활동하는 자아”에 대한 통찰력을 터득하게 되었고, 이와 함께 그는 인간과 세계에의 닫혀진 면에 대한 인식의 확장을 준비하였다. 또 이 시기에 그는 프리드리히 니체와 에른스트 헤켈에 관한 저서들을 남기기도 하였다.

 

슈타이너는 1897년 베를린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1899년부터 1900년까지 문화 잡지인 “문학지”의 편집자, 그리고 베를린 노동자학교에서 교사로서 일을 하였다. 그는 자신이 편집한 잡지에 “시대에 맞지 않는 김나지움의 개혁”, “콜레기움 로기쿰”, “대학교와 공적인 생” 등을 발표하여, 교육학적인 견해들을 제시했다. 슈타이너의 철학적 기초가 되는 저서인 <특히 쉴러를 고려한 괴테의 세계관 인식론 초고>,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특히 피히테를 고려한 인식론의 기초>, <진리와 학문>, 철학적 대작 <자유의 철학> 등을 출판했다. 이것들은 정신과학적 저작들로의 학문적 기초를 제공하였다. 이런 이념들을 그는 <정신과학에서 본 아동 교육>, <신지학>, <고차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에서 새로이 정리했다.

 

초기에 슈타이너는 “신지학자(Theosophist)”로 이해되었고, 그의 강연 활동도 실제로 1902년 10월 이후 신지학회의 테두리 안에서 형식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렇지만 1913년 그는 신지학회와 완전히 결별했다. 1902년부터 슈타이너는 자신의 고유한 연구결과들만 집대성하여 정신과학적 연구 방법을 시종일관하게 사용하였으며 그것을 인간의 참된 본질을 의식하도록 이끌어준다는 의미로 ‘인지학(Anthroposophie)’이라고 불렀다. 인간의 본질속에 내재해 있는 정신적인 것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우주에 내재해 있는 정신현상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슈타이너는1925년 3월 30일 눈을 감을 때까지 수많은 저서와 6000회 이상의 강연으로 인지학을 제시했다. 1912년 베를린에서 인지학협회가 결성되었고, 이어서 1913년에는 스위스 바젤 근교의 도르나흐(Dornauch)에 두 개의 돔이 있는 건물을 세우기 시작했는데, 그 건물에 괴테아눔(Goetheanum)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괴테아눔은 예술 활동의 다양한 방법을 위한 공간으로서, 그리고 정신과학적인 연구와 인지학 운동을 위한 중심지로서 슈타이너가 직접 건축설계를 하고 건물의 완성을 주도했으며 무엇보다 예술적인 형상화에 몸소 관여했다. 그는 4편의 신비극을 써서 연출했고 소리의 질과 어조의 질이 몸짓을 통해 표현되는 새로운 동작예술, 즉 오이리트미(Eurythmie)를 창조해 내었다. 이러한 슈타이너의 독특한 인지학적 인간 이해에 기초하여 발도르프학교의 교육사상을 정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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