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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아이의 발달주기, 부모의 인생주기 (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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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발달주기, 부모의 인생주기 (3)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0. 12. 11. 12:37

의식혼의 시대

 

30대 후반이 되면 영혼의 가장 높은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를 의식혼이라고 하는데요, 누구나 자연스럽게 그 상태에 진입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식혼은 대단히 영적인 또는 정신적인 영혼의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성이란 게 무엇입니까? 정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일상적인 주제는 아니지요. 인간의 정신적인 요소를 들여다본다면, 우리의 영혼 또는 마음이 주관적인 특성을 갖고 있는 것에 비해 영 또는 정신은 객관적이고 고차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주의 법칙, 섭리, 진리, 선 등과 관련되어 있는, 우리 자신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20대의 영혼은 자기중심적이지만, 30대가 되면 자기인식을 하려고 하지요. 가능하면 합리적으로,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30대 후반부터 시작되는 의식혼의 시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의식혼 단계에서 판단의 근거는 그것이 참이냐 거짓이냐, 진실하냐 그렇지 않으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각혼의 좋고 싫음, 지성혼의 옳고 그름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입니다. 아이가 마트에서 떼를 쓰고 운다면 감각혼 단계에서는 그 모습이 그냥 보기 싫고 화가 날 것입니다. 지성혼 단계에서는 이건 잘못된 행동이고, 왜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면 안 되는지 알려주려고 하겠지요. 의식혼의 단계에서는 있는 그대로를 봅니다. 아이가 그렇게 우는 게 어쩌면 진실한 모습이라는 걸 압니다. 그러니 일단 아이의 마음에 공감하려고 합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과제는 자기중심성을 극복하는 것인데, 이때 합리성을 놓치면 안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영성의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싶습니다. “영성이란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합리성이다.” 오늘 여기에 오면서 차가 너무 밀려서 차 안에서 막 화가 났습니다. 제가 시간 약속 어기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요, 15분 전에 도착하겠다고 해놓고서 20분이나 늦었습니다. 차 안에서 분노가 막 치밀어오르려고 할 때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뭐라고... 내가 뭐라고... 차가 막히면 늦을 수도 있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면 현실을 왜곡해서 보기 쉽습니다. 또 합리성을 잃으면 비과학적인 사고에 빠지기 쉽지요.

제가 얼마 전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양자물리학이 쉬울까, 인지학이 쉬울까?’ 슈타이너는 정신세계를 자연과학과 똑같이 과학적 방식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학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운 것인데요, 현재의 주류학문은 물질주의, 유물론이 기본입니다. 그렇지만 정신적인 세계, 종교의 영역도 과학적으로 탐구하지 않으면 신비주의자들이 그 영역을 차지하고 만다는 게 슈타이너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신과학이라고도 부르는 인지학이 쉬울리는 없습니다. 양자역학이 어려운 것처럼 정신과학도 매우 어려운 분야입니다.

 

슈타이너는 자신의 저서 대부분에서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정신세계를 탐구하면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식을 추구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요. 과학이란 무엇인가요? 가설을 설정하고 그 가설을 귀납적으로, 또 연역적으로 입증하는 것이라고 보통 설명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낡은 방식입니다. 우리는 양자역학의 시대에 살지만, 여전히 뉴턴식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기계적 결정론도 상식처럼 인식되고 있지요. 여전히 경험주의가 강력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실험을 통해 벌어지는 현상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은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과학은 인과적인 힘을 찾는 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는 유사과학, 사이비과학, 가짜뉴스 등을 조심해야 합니다. 인간은 지성을 갖고 있으나 불안해지면 지성을 벗어버리고 광기에 사로잡히기 쉬운 존재입니다. 합리적으로 따져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과학은 암흑물질을 찾는 데까지 왔고 앞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양자컴퓨터가 곧 실용화된다고 하지요. 이 대단한 힘을 인간의 이기심을 위해 사용하면 끔찍한 세계대전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은 3차 세계대전에 준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 것이 온 것입니다. 이 사건의 인과적 힘은 바로 인간의 이기심, 탐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후기 자본주의 중에서도 말미에 와 있는데요, 자본주의는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착취할 수 없기 때문에 나온 것이 신자유주의입니다. 그런데 사회학자들은 이제 신자유주의도 끝났다고 봅니다.

 

다음으로는 무엇이 올까요? 우리가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참여하지 않는다면 반지성주의, 즉 파시즘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트럼프 같은 반지성주의자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슈타이너의 사회삼원론이 더 알려지길 원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사회시스템, 의식혼 수준의 새로운 사회질서가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는, 우리 각자가 자기중심성을 극복하고 있는지, 자기인식을 하고 있는지, 머리로만 공부하는 건 아닌지, 삶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노력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성혼 수준(28-35세 시기)에 사로잡혀 있으면, ”내가 옳다라는 생각을 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 자기만이 옳다고 억지를 부린다면, 그리고 서로 자기 이익을 보려고만 한다면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건강한 관계를 형성할 수 없겠지요. 슈타이너는 지금 이 시대가 이미 의식혼의 시대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의식혼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방식, 세상을 보는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우선 에 대해서 새롭게 접근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내가 남보다 나아야 한다는 의식을 강요합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 하고, 마음껏 소비해야 하고, 잘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울증이 오는 이유 중 하나는 나는 대단한 사람인데 현실이 뜻대로 안 되네... 괴롭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 주질 않네. 우울해.” 바로 자기중심성이 하나의 요인입니다. 합리성이 배제된 자기중심성이 그 뿌리에 있는 것입니다. 다르게 보자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인간은 자아가 있는 지성적 존재입니다.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엄청난 문명을 이루어낸 존재입니다. 동물보다 존엄하고 우월한 존재지요. 그러나 우리가 동물보다, 야생의 토끼 다람쥐 새보다 더 행복할까요? 그렇지 않다면,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서 뭘 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의식혼 수준에서는 다르게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가족, 이 상황, 이 시대가 나에게 요구하는 게 무얼까? 아이가 나에게 요청하는 게 무얼까?’ 이렇게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너는 이걸 더 배워야 해, 엄마가 살아보니 그렇지 않아...” 이것은 있는 그대로를 보지 못하고 , 나의 자기중심성을 발휘하여 개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혼적 접근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이 상황의 진실을 느끼고 파악해야 합니다.

 

이 상황이, 이 아이가, 이 세상이, 이 순간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이지?’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양로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요. “저는 서류정리를 잘 해요. 이걸 시켜 주세요.” 이렇게 말을 한다면 이건 자기중심성을 극복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그러면 그 기관에서 일 시키기가 참 어렵겠지요. 필요한 일은 청소나 빨래, 목욕 봉사 같은 것일 수 있으니까요. 이럴 때 합리적인 태도는 무엇일까요? “제가 잘하지는 못해도 시키시면 뭐든 열심히 할게요. 여기서 가장 필요한 일이 뭔가요?” 자기중심성을 극복한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부 관계에서도 중요합니다. 자기중심성을 극복한 합리성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결혼이란 일방적으로 나의 이익만을 위해서 맺는 관계가 아니지요. 서로 협력을 하며 살기 위해 부부가 된 것입니다. 사랑을 하면 더 좋겠지만 사랑이 식었다 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아이를 키우고 집안살림을 하면서 상대방이 싫어하는 말이나 행동만 안 해도, 집안일에 협력만 잘 해도 관계는 좋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만큼 하는데 너는 왜 나보다 적게 하느냐, 이렇게 접근한다면 상당히 피곤해집니다. 아이를 키우는데 집안일도 안 하고 애도 안 돌보고 자기 취미에만 몰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과 같이 사는 건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헤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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