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온전함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주술원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온전함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주술원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7. 8. 3. 15:19

온전함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는 주술원


 

김훈태(슈타이너사상연구소)




수천 년 동안 북아메리카 원주민은 주술원(medicine wheel)이라고 부르는 상징물에 원형 대화모임의 철학적 가르침을 담아냈습니다. 원 안쪽을 동서남북 네 방향에 맞추어 4분면으로 분할해 표현한 주술원은 아주 오랫동안 우주를 나타내는 강력한 상징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주술원에서 서쪽은 땅, 남쪽은 물, 북쪽은 공기, 동쪽은 불의 요소를 상징합니다. 중앙은 비어 있는 영성입니다. 서쪽 땅의 에너지는 직관과 자기 성찰, 죽음, 변화와 변형을 상징하며, 우주에서는 광물계, 인간에서는 몸(물질체)의 요소에 해당합니다. 남쪽 물의 에너지는 믿음과 순수함을 상징하고, 우주에서는 식물계, 인간의 요소 중에는 기운(생명체)입니다. 북쪽 공기의 에너지는 지혜와 지식, 그리고 논리를 상징하며, 우주에서는 동물계, 인간의 요소 중에는 마음(혼체)입니다. 동쪽 불의 에너지는 이해와 깨달음, 기쁨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며 우주에서는 인간계, 인간에서는 ’(자아체)의 요소를 나타냅니다.

 

주술원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몸과 기운, 마음과 자아를 가진 입체적 존재입니다. 인간의 이 네 측면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하며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그렇지만 공동체에서도 네 측면 중 어느 하나가 지나치게 우세하면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됩니다. 2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는 누구나 기질적으로 한 측면이 다른 측면들보다 강하긴 합니다. 봄의 기질(다혈질)은 마음이, 여름 기질(담즙질)은 자아가, 가을 기질(우울질)은 몸이, 겨울 기질(점액질)은 기운이 유독 강합니다. 그러나 특정한 요소가 너무나 강해져 균형이 깨지면 기질은 병적 상태가 됩니다. 봄의 기질이 지나치면 과잉행동장애가 되기 쉽고, 여름 기질은 난폭해지거나 우울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울증은 자아의 문제와 관련이 깊습니다. 가을 기질은 자폐증, 겨울 기질은 중독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갈등 문제와 연관지어 사회적 현상을 본다면, 현재 우리의 사법제도는 갈등 사건이 벌어졌을 때 자아에만 관계된 재판을 한 뒤에 판결은 엉뚱하게 벌금형이나 금고형 같이 몸에만 영향을 주는 결과를 내놓습니다. 감정이나 욕구 등 마음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갈등 문제를 해결할 때 네 가지 측면을 모두 염두에 두고 균형을 맞추는 것은 우리 자신과 공동체의 회복에 중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북쪽 - 마음(혼체)

* 느낌 자체와 그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

* 진심을 담아 마음 나누기

동쪽 - (자아체)

* 정보 분석 및 통합

* 자아 성찰, 자신의 생각에 정신 집중

* 이해관계의 욕구, 차이의 인식

서쪽 (물질체)

* 몸짓

* 개인과 집단의 감각적 욕구 보살피기

남쪽 - 기운(생명체)

* 행동의 길잡이가 되어 주는 가치

* 전체적인 기운으로 연결됨

 


서쪽 - 몸의 측면

대화모임에 몸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모임을 존중한다는 뜻입니다. 몸은 땅처럼 관계의 굳건한 토대가 됩니다.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형성하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감각적 자극입니다. 빛과 소리, 향기, , 온기, 감촉 등 수많은 자극들에 의해 우리는 살아가고 또 성장합니다. 특히 어린아이들에게는 진실한 감각 경험이 필요합니다. 나무 모양의 플라스틱 장난감이 아니라 실제의 나무가 장난감으로 주어져야 하며, MP3 플레이어로 듣는 노래보다 실제로 옆에서 불러 주는 노래가 감각 발달에 도움을 줍니다. 수업 역시 컴퓨터와 멀티비전으로 제공되는 프로그램보다 직접 몸을 움직여서 배우는 활동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아이들은 교사의 육성을 듣고 교사의 말투와 몸짓을 따라하며 자아를 형성해 갑니다. 세상에 대한 신뢰는 우리가 접하는 대상이 얼마나 진실한가에 따라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교실 환경은 자연에서 온 것, 우리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들로 꾸며져야 합니다. 교실 문화 역시 TV에 나오는 대중문화보다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는 자연스러운 활동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건강하고 아름답습니다. 우리가 진실함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다면 신뢰 관계는 형성될 수 없습니다. 무수한 갈등이 이러한 현상에 뿌리를 둡니다. 우리는 몸의 가치에 좀 더 주목해야 합니다.

 

남쪽 - 기운의 측면

원으로 둘러앉을 때 우리는 전체의 기운이 하나로 모인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비어 있거나 꽃과 촛불 등으로 경건하게 꾸며진 원의 중심에서 흘러나오는 영적인 힘이 대화모임의 참가자들에게 새로운 기운을 줍니다. 중심을 향해 둘러앉은 참가자들은 기운을 통해 연결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적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몸이 공간과 관련이 있다면 기운은 시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시간에 의해 이뤄지는 과정은 무엇이든 주기적 리듬을 갖게 되고, 리듬은 모든 삶의 기본이 됩니다. 리듬에 의해 모든 생명이 발전해 갈 수 있습니다. 리듬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어 ‘rhythmos’는 본래 흐르다의 뜻과 함께 질서라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따라서 리듬은 운동의 질서, 또는 운동과 질서 사이의 관련성으로 이해됩니다. 현대적 삶은 리듬이 파괴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 상점,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 계절에 맞지 않는 과일 등 자연의 리듬과 어긋난 삶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교실에서 우리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일은 아이들의 리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육과정과 시간표는 아이들의 발달단계에 맞게 엄격하게 짜여야 하며, 대화모임의 운영에도 리듬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합니다.

 

북쪽 마음의 측면

대화모임에서 우리는 침묵과 함께 마음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는 강요가 없습니다. 대화모임의 원칙은 항상 초대를 하고 부탁을 할 뿐, 특정한 행동이나 말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는 것입니다. 대화모임에 어떤 의도가 깔려 있거나 특정한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한 무언의 강요가 있다면 마음의 문은 닫히게 됩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서로 자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감정의 뿌리인 욕구를 표현하는 것이 대화모임의 목적 중 하나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머리로 판단하지 않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우리의 삶을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그렇게 열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의 일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내면의 사회적인 힘을 계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사회적인 힘에 사로잡혀 있으면 자기 관심사에만 빠질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게 됩니다. 마음의 경계를 유연하게 넓히기 위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교실에서 대화모임이 일상적으로 벌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동쪽 자아의 측면

대화모임은 우리의 관계를 더욱 진실되게 합니다. 대화를 통해 우리는 내가 바라는 것, 내가 느끼는 것,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자아와 관련됩니다. ‘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만이 호칭할 수 있는 고유한 존재입니다. 자아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다른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만약 자아를 잃게 되면 동물보다 못한 상태가 됩니다. 마약이나 술에 취해 자아를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특정한 감정이나 욕구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자아를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의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분명하게 사고할 줄 압니다. 동물과 달리 우리 인간은 생각을 하고 기억을 하며 반성을 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우리는 잘못된 사고방식에 대해 깨닫기도 하고, 올바르게 사고하는 법을 터득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대화가 겉돌고 공허한 모임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소득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네 가지 측면에서 늘 균형을 맞추려고 합니다. 몸과 기운, 마음과 자아는 서로 다른 리듬을 갖고 있습니다. 자아의 리듬은 잠과 깨어남이며, 하루 24시간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낮에 깨어서 일을 하고 밤에 잠을 자면서 회복이 됩니다. 자아는 태양의 리듬을 갖습니다. 이에 비해 마음은 일주일, 기운은 한 달의 리듬을 갖습니다. 생각이 달라 갈등을 겪으면 부정적인 생각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하룻밤 잘 자고 나면 긍정적인 생각이 싹트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은 다릅니다. 감정적으로 상처를 받았을 때 마음이 풀리려면 최소 일주일은 지나야 합니다. 사고 영역과 달리 감정 영역의 변화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운, 즉 생명력과 에너지는 달의 주기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언가를 온전히 배우고 익히기 위해서는 최소한 한 달 정도 힘을 모아야 자기 것이 됩니다. 발도르프학교에서 주요 수업을 한 달의 리듬으로 진행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몸은 사계절을 포함한 일 년의 리듬으로 살아갑니다. 갓난아기를 보면 태어날 때까지 엄마 뱃속에서 머무는 시간이 아홉 달에서 열 달 사이입니다. 그런데 아기의 생체 리듬이 어느 정도 안정되기 위해서는 태어난 뒤에도 석 달 정도가 더 필요합니다. 그렇게 1년이 필요한 것입니다. 일 년의 리듬에 따라 아이들의 몸은 튼튼하게 성장합니다. 하루가 아침, 점심(오후), 저녁, 밤의 흐름을 따라가듯이 일 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을 따라갑니다. 일주일도 월화수목금토일의 흐름이 있고, 요일마다 고유한 성격이 있어서 저마다의 리듬을 형성합니다. 한 개인의 삶은 이처럼 하루,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이라는 리듬 속에서 조화를 이루어 갑니다.

 

원형 대화모임에서도 네 측면은 모두 중요하며 서로 균형을 맞추도록 리듬 있게 진행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강하고 약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기질적으로 다르며, 누구든 네 측면을 완벽하게 갖출 수는 없습니다. 온전함이란 그러한 불완전성 속에서 독특하게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구성원들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서로를 도울 때 관계가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이때의 온전함이란 완전함 또는 완벽함이 아닙니다. 우리는 저마다 고유한 존재로서 어떤 능력에 장점이 있는가 하면 인간적으로 약점도 있는 존재들입니다. 한 가지 측면이 단지 우세하다고 해서 병적인 현상은 아닙니다. 병이란 어떤 특성이 지나치게 강해졌음에도 통제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모임을 통해 온전한 관계를 만들어 나간다면 갈등은 예방될 것입니다. 만약 갈등이 벌어졌다 해도 그것을 계기로 우리는 더욱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