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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에서 바라보는 청소년기의 신체발달 - 비네켄 본문

인지학/발달론과 기질론

인간학에서 바라보는 청소년기의 신체발달 - 비네켄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9. 7. 25. 17:02

인간학에서 바라보는 청소년기의 신체발달

 

 

비네켄 선생님

: 퀼른에서 생물화학과 기초의학전공,

비텐 사범대학의 교수로 계시고 루마니아 사범대 설립.

독일과 루마니아 왕래하며 교수로 계시며

고학년 생물화학강의를 맡고 계심.

 

 

(오늘은 인간학 관점에서 청소년기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존경하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은 독일어와 한국어가 왔다갔다 하는 혼란스런 강연회에 오셨습니다. 오늘의 강연은 단지 단어를 알아듣는 차원의 이해가 아니라 본질적인 느낌을 전달하고 전달받는 교류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과연 어떤 성과가 일어날지 궁금합니다. 저는 이론에 불과한 것은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실제의 삶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는 일곱 자녀를 두었습니다. 위로 다섯 명의 아들이 있고 한참 떨어져 또 한 아들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딸이 있습니다. 다섯 명의 아이들은 이미 삼십이 넘어갔고 이미 성장했습니다. 제일 어린 아들은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로서 여섯 번째의 사춘기를 겪고 있습니다. 막내딸은 사춘기 전 단계에 있는데 아주 전형적인 현상이 보입니다. “아빠는 정말 이해할 수 없어! 아빠는 정말 둔해!”라거나 아빠 이거 해줘, 저거 해줘등등 어리광도 부립니다.

 

또한 저는 세상에 나온 훨씬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저기 앉은 꼬마 아이, 아주 작은 아이지요? 하지만 저도 저 아이만할 때가 있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 모두 저만할 때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4구성체

 

갓난아기가 누워 있는 것을 보면 우리는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고 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요. 앞으로 어떤 일을 경험하고 또 어떻게 성장할지는 아직 감추어져 있지만 말이지요. 우린 그저 외형적인 신체만 볼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지금 능동적으로 뭔가 작용하고 있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지요. 아이가 소리를 지르고 우는데, 왜 울고 소리 지르는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아직 많은 것이 감추어져 있고 보호되어 있어 어른들이 모르는 것입니다.

 

엄마나 아빠가 미소를 띠고 웃을 때 서로 교류하는 차원에서 움직임이 생겨납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고유한 본모습은 아직 볼 수 없는 단계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아이의 모습 속에서도 볼 수 있는 영역과 아직은 볼 수 없는 영역이 동시에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약간의 분석을 하고자 합니다. 우선 신체를 먼저 들여다보겠습니다. 감각적 기능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물질적 몸에 대해 봅시다. 이것은 우선 공간적인 하나의 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칠판에 구조를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물질체

I

생명체(에테르체)

I

영혼체(아스트랄체)

I

자아

 

 

신체의 물질적인 차원은 자연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물질로서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신체(물질체) 안에는 다른 어떤 것이 살고 있습니다. 앞서 살아 있는 존재를 살펴보았듯이, 그 안에 깃든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우연히 펼쳐지거나 우연히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확히 정돈된 규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의 물질체가 머리는 위에 있고 발은 아래에 있는 것처럼, 생명체라는 것도 그러한 질서에 의해 정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정돈은 단지 공간적 정돈이 아니라 시간적 정돈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리듬을 가지고 있는 정돈입니다. 낮과 밤을 느끼고 잠과 깨어남을 통해 활동하는 그러한 것입니다. 또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느끼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24시간 내내 신체 안에서 항상 작용을 하면서 각 기관들의 작용을 따라서 정돈하고, 그 정돈 활동을 통해 생명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예를 들어보면, 우리의 간이 있지요. 간은 사실상 낮에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하는 리듬을 가지고 있습니다. 12시에서 3시까지는 간이 깨어 있는 때이고, 12시부터는 깊은 잠에 빠져드는 시간입니다. 한편 신장은 정반대로 낮에 아주 왕성하게 활동하고 한밤에는 잠을 잡니다. 간은 받아들이는 기능을 하고, 신장은 내보내는 기능을 합니다. 이에 비해 심장은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두 기능을 다 합니다.

 

지금까지는 시간적인 관찰, 다시 말해 시간적 움직임에 대한 관찰이었습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물질체 안에는 생명의 기관들이 들어 있고, 생명체(에테르체)는 시간과 관계하는 특성을 갖습니다.

 

우리가 아기를 바라볼 때 아기의 신체 안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 안에는 웃고 울고 하는 영혼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렇듯 우리 안에 영혼이 있기 때문에 웃고 울고 표현하는 것임을, 즉 영혼이 작용함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영혼이라는 것도 사실은 어떤 형태로 조직화되고 정돈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혼은 어떻게 움직일까요? 영혼은 극과 극 사이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늘 높이 오르는 기쁨과 희망을 느끼는가 하면, 땅 밑으로 떨어지는 절망과 좌절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것을 영혼체(아스트랄체), 영혼조직, 또는 영혼기관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물질체는 공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고, 생명체는 시간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혼체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영혼체는 밀도 또는 집중도와 관계가 깊습니다. 영혼적인 작용은 어떤 경우에는 아주 약하게, 부드럽게 작용하다가 또 어떤 경우에는 아주 밀도 있게, 강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또 개별성에서의 핵이라 볼 수 있는 자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자아가 우리 영혼의 얕고 깊은 가운데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개별성의 핵심, 또는 개인고유성, 자아, 또 나(Ich)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자아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자아는 바로 도덕성이라는 것으로 그 특성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도덕이 현대적이지 않은 구태의연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학문영역에서는 혼란스럽거나 기피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다윈도 이 부분에 대해선 정확히 파악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잘 알려진 다윈의 학설 중 적자생존의 법칙이 있습니다. 다윈은 이것을 자연 속에서 발견한 사실이라며 생명활동을 정리했지만 사실상 생명활동 속에서 적자생존이 발견된 것이 아닙니다. 거꾸로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 인간의 산업구조 속에서 생겨난 경쟁의 논리가 자연의 현상인 것처럼 동물과 식물에 적용된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는 도덕성이 필요합니다. 인간사회의 것을 꺼내어 동물에 적용시키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다윈의 적자생존 법칙은 인간의 사회적 모습 속에 있는 적자생존의 논리를 가지고 동물의 세계로 가지고 간 것입니다. 실제 동물의 세계에 그것을 적용한다면 상당히 혼란스러워집니다.

 

물론 사람은 동물의 영역에서 가져온 것이 있고 그것에 영향을 받지만 사람의 내면에 작용하는 것은 동물의 영역에서가 아니라 천상과 하느님과의 관계 속에서 가져오는 것입니다. 도덕성이라는 것은 결코 동물의 영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물영역에 있는 것을 도덕성에 견주거나 결부시키면 안 됩니다. 동물세계에는 도덕이란 게 없습니다. 따라서 동물영역에서는 도덕적이지 않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동물세계 자체가 도덕성과는 연결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덕적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도덕성과 아예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도덕이 윤리와 오해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것물질체, 생명체, 영혼, 자아은 인간을 관찰했을 때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합칠 때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 아주 복잡하고 까다로운 존재입니다.

 

우리 바깥에 있는 세상도 아주 복잡합니다. 어떤 물리학자가 이 세상에 적용되는 단순한 형태의 원리를 찾고 싶다고 한다면 그것은 어려운 얘기입니다. 우주전체, 세계전체를 한 번에 설명할 수 있는 구조나 형태에 관한 어떤 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시도는 가능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거꾸로, 세상을 관찰하면 할수록 훨씬 더 복잡해지고 그 깊이의 영역에서 나오는 층들이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관찰한 아기의 모습에도 인간의 요소인 4구성체가 다 있고, 그 안에 아직 드러나지 않은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계속 성장해야 하고 관찰해야 할 부분입니다. 한 신생아가 태어난다고 했을 때 신체적인 탄생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다고 하는 것은 신체가 자유로워지고 계속 그 이후의 단계도 자유롭게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사람의 이 4구성체의 발달에 대해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다른 영역도 신체적인 감각기관으로 관찰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한사람이 와요, 이렇게 걸어옵니다. 이 사람은 팔다리 멀쩡하고 손가락이 다 있습니다. 이렇게 신체적인 것을 먼저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건강한지 아픈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꾸부정하거나 힘들게 가는 사람을 보면 뭔가 어려움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류머티즘처럼 관절의 어려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생명기관의 작용이나 느낌들이 겉으로 표현되어 나타나고 우리는 그것들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습니다. 건강의 문제를 생각할 때 두 번째 영역인 생명체까지 다룰 수 있습니다.

 

동시에 이 사람이 어떤 기분으로 지나가는지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주 기뻐하는지 또는 괴로운 상황인지 감정의 상태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분명 뭔가 의식적으로 분명하지는 않지만 네 번째의 영역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아에 대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집 안에 앉아 있으면서 바깥에서 들어오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을 듣고도 아빠나 엄마인지 알 수 있습니다. 보지 않고도 그 현상을 알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네 가지 구조는 단지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발견되는 사실입니다. 이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청소년기의 아이를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되는 관점입니다.

 

 

인간의 3가지 구조 체계

 

여기에는 두 번째 기초가 있습니다. 두 가지의 영역을 간략히 표현했는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거기에 덧붙여 생물학적 관찰을 해보겠습니다.

 

 

감각-신경조직 체계

 

<언어구조>

 

호흡-혈액순환 체계

 

<생식구조>

 

신진대사-사지활동 체계

 


생물학자들은 사람에게
9가지 기능적인 요소가 있다고 얘기합니다. 오늘날 생물학 영역에서는 인간의 감각적 기능에서 작용하는 것을 9가지로 보고, 뇌신경학 계통에서는 2가지로 해서 총 11가지의 감각-신경조직이 모든 것들을 하나로 통합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깥세상과의 관계는 감각기관이 합니다. 신경조직은 감각이 가져온 것을 가지고 작업을 합니다. 감각과 신경조직이 하나의 짝을 이룹니다.

 

또 하나의 구조는 호흡체계입니다. 호흡이라는 것은 신체의 신진대사 기능 및 혈액순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집니다. 바깥에서 공기를 들이마시며 들숨을 쉬고, 혈액순환 구조는 이것을 내부로 가져갑니다. 바깥으로부터 들어오는 산소를 혈액을 통해 온몸으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렇게 전달한 것을 내부로 가져오는 과정을 거친 후에 날숨을 뿜어내게 됩니다. 혈액순환과 호흡은 함께 이루어지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두 가지의 구조가 하나가 되어서 (이 짝 구조가) 우리 안에서 항상 작용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한 가지의 영역에서 작용하는 짝이 있는데, 신진대사와 사지활동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음식물이나 영양분을 섭취하면 내부에서 교환, 변환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통해 사지에 영양분을 전달하며(신진대사) 이것을 통해 사지가 활동을 하게 됩니다. 신진대사와 사지활동은 짝 체계입니다. 신진대사와 사지활동은 나머지 두 구조가 밀접히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 가지 상호작용하는 영역이 우리의 생명활동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감각, 호흡, 영양을 통해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 세상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생물학의 7번째 영역이 어떤 부분에 속할지 살펴보면, 생식(재생산)의 구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생식구조는 외롭게 독립되어 서 있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이것을 어느 지점과도 연결시키기 힘들어 호흡과 혈액 아래에 넣었습니다. 원인과 결과의 쌍이 이루어지는 작용이 이 안에 스스로 들어 있기 때문에 따로 고립되어 놓여 있습니다. 이것은 조금만 살펴봐도 다 알 수 있는 것으로 생물학자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른바 생식구조가 어느 정도 성숙했구나라는 것은 사춘기, 변성기와 밀접한 것입니다.

 

생물학의 8번째 영역은 언어구조입니다. 언어 자체는 생물학의 영역이라 할 수 없지만 언어구조는 생물학의 영역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는 호흡 윗부분에 자리합니다(칠판 그림에서). 언어, 호흡, 혈액순환, 생식구조가 크게는 리듬의 구조라 할 수 있습니다. 언어와 생식이 호흡과 혈액순환을 감싸면서 커다란 일체의 리듬구조를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작은 리듬체계는 폐, 심장).

 

잘 살펴보면 생식구조라는 것은 리듬체계의 영역과 밀접한 작용을 합니다. 우리의 내부, 중심부에서 작용하는 것을 리듬체계라고 본다면, 우리 중심의 위쪽에는 머리의 구조가 있고 우리 중심의 아래쪽에는 사지가 있듯이 전체적으로 보면 세 가지의 아주 큰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가운데 중심의 영역인 리듬체계 안에서도 다시 세 가지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생식구조는 리듬체계에 속해 있지만 그 안에서는 신진대사-사지체계의 영역처럼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구조는 역시 리듬체계에 속해 있지만 마치 감각-신경영역처럼 작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괴테가 발견하고 설명한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괴테를 통해 우리는 각각의 작은 체계라 해도 전체의 구조를 그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각 체계의 이름을 1,2,3이라하면 두 번째 체계 속에서도 다시 1,2,3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시도해야 하냐면, 처음 기초체계(물질체)와 두 번째 기초체계(생명체)를 하나로 살펴봐야 합니다. 생명체 전체는 신체 영역 안에 다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명체는 인간의 신체구조 안에 다 포함되어 있는데, 신체기관은 생명기관의 활동작용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기관이 신체기관을 만들어내고 조직하고 형성한 것입니다. 이 안에서도 세 가지의 구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구조가 기초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은 그와 같이 세 개의 커다란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혼의 영역은 사고, 감정, 의지의 세 영역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고의 영역은 인간 신체구조에서 감각의 영역과 관계합니다.

 

 

사고 ― 감각/신경체계

 

감정 ― 리듬체계

 

의지 ― 신진대사/사지체계

 

 

독일에서는 나는 생각합니다할 때 머리를 짚으며 말합니다. 머리 한가운데에 의식이 집중된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쁨이나 반가움을 느낄 때는 가슴을 가리킵니다. 한국에서 가슴에 손을 모아 인사하는 것은 감정의 영역이 풍부해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풍부하게 하고 보호하면서 관계합니다.

 

우리가 덜 표시내는 영역이 바로 신진대사 및 사지활동의 영역인데 표현이 덜 이루어지는 영역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활동 속에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만약 하루종일 못 먹어 배가 고파 힘이 빠지면 어떻게 느끼게 될까요? 또 소금이 부족할 경우에는 우리 영혼 활동 중 의지의 활동에 영향을 주고 약해지게 될 것입니다. 철분이 적어져도 우리의 의지 영역에서 어려움을 가지게 될 겁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느끼시는 것과 같이 의지와 영양-신진대사 체계의 연관은 아주 밀접합니다.

 

여기서 오해가, 시대적 착오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사고와 연관이 있고 사고라는 것이 영향을 주지만 실제 의지 영역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것은 영양-신진대사 체계입니다. 사고는 도울 뿐, 신진대사 없는 의지나 활동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영혼의 기관도 세 가지 구조를 갖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아라는 것은 어떤 구조를 갖게 될까요? 자아도 세 가지 구조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자아는 영혼의 세 가지 영역을 통합해 일체화시켜 하나로 묶어가는 작업을 합니다. 우리의 사고가 우리의 느낌이나 의지와 따로 떨어져 나가지 않고 하나의 유기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자아입니다. 자아는 영혼의 세 가지 구조를 하나로 통합하는 역량과 기능을 합니다. 저는 한국의 사찰에서 이러한 상징을 발견했습니다. 직관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   

 

 

인간의 신체 발달

 

우리의 과제를 발전시켜봅시다. 미국의 한 연구기관이 100년 전에 많은 조사를 통해 이룬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신체 영역 안에서 여러 다양한 발달과정을 겪는다고 합니다.

 

출생을 0이라 설정하고 시작합니다. 감각을 빼고 나머지 모든 것을 0이라고 놓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감각기관은 완전히 형성되어 태어났고 나머지는 점차 형성되는 것으로, 신경조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말단까지 뻗어나가는 신경조직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점점 아이들 성장이 빨라지지만 신경조직이 완성되려면 3~4년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신경조직이 어느 정도 형성되면 자기 자신을 라고 지칭하는 시기가 옵니다. 그 이전에는 신경조직만 불완전하게 형성된 것 아니라 아직 뇌조직도 불완전한 상태입니다. 이러한 미완성을 발전시키면서 완성시켜 나가는데 감각을 통한 자극이 신경조직을 발달시킵니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 몇 년간의 발달경험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의 감각 기능을 통해 하는 모든 경험은 우리의 뇌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세로축은 이렇게 형성으로 해놓고 가로축을 나이로 하면, 0%의 신경조직이 진행하다가 21세 지점에서 100% 완성의 시기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그래프 상의 선이 보여주듯 5세 정도가 되면 이미 상당한 진전을 보입니다.

 

여기서 경사가 급하다는 것은(0~5세 사이) 아이들이 이 시기에 상당히 빨리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조기교육을 통해 많은 것을 학습시킬 수 있다는 착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기교육은 아주 위험합니다. 한 가지만 알고 한 가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이건 유아기의 발달과정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아기에는 하나의 변환 과정을 스스로 안에서 겪어 나갑니다.

 

우리는 발달이라는 것을 직선적으로 똑같이 간다고만 단순히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생물학적으로도, 영혼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 것입니다. 세계의 어느 것이든 이런 식의 단순한 과정을 갖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단순한 도식에 빠지기 쉽습니다. 생명체의 활동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하거나 빠뜨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체의 활동은 우선 물질적 몸의 발달을 어느 정도 해놓고 나서야 나머지 영혼의 활동에 대해 힘을 기울이는데, 단선적인 이해는 그것을 놓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생명체의 역할과 힘이 신체기관에 작용하다가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면(젖니갈이 이후) 그 다음에 영혼의 활동에 관여할 힘이 생기기 때문에, 그제서야 학령기에 접어들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조기교육으로 생명체의 힘을 일찍 쏟게 되면 신체와 건강에 나쁜 영향을 주게 됩니다.

 

신진대사에서 혈액순환 말고도 우리 몸을 흐르는 여러 가지 것들이 있는데 이러한 활동 중 하나가 림프액의 흐름입니다. 순환하는 액체의 기능인 림프시스템의 발달에 대해 더 의미 있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림프시스템은 7세에 100% 지점까지 올라가서 정점에 올랐다가 하향한 뒤 21세에 다시 100% 수준으로 정상화되는 과정을 겪습니다. 7세에는 생명체가 힘이 생겨 이제는 다른 활동으로 전환해도 건강상의 영향을 겪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이 그래프 상의 표가 무엇을 나타내느냐 하면, 7세에는 림프순환체계의 분비하고 작용하는 모든 것들이 다른 신체기관이 받쳐주지 않아도 되는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액체적인 활동이 고체적인 체계를 뛰어넘어 활동하는 것입니다. 흐르는 액체적인 성질로서 느낄 수 있듯이 이 시점에서 생명체의 활발한 작용이 있고 뭔가 그곳에서 급격히 많은 것이 뿜어져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00%를 지나는 이 시점에서 림프순환체계가 최대한 활성화된다는 것은 생명체(에테르체)가 이때 완전히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펼쳐진 것은 또 다른 것과 통합을 시도하게 됩니다. 림프순환체계가 하향곡선을 그린다는 것은 이제 쇠퇴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과 조화롭게 되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넘쳐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위에 섰다가 다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세 번째 그래프가 나오는데 직접적으로 사춘기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인 생식(재생산)의 기능은 어떻게 그래프 곡선을 그리는지 살펴봅시다. 생식기능은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잠을 자고 있습니다. 두 번째 림프순환곡선이 정점에서 내려오기 시작할 때부터 생식기능은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은 더 빨라지고 있지만 기준점이 되는 시기를 더 늦은 나이로 그림) 이 경사면은 14세를 중심으로 상승곡선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세 가지의 발달 곡선, 발달 그래프를 하나로 종합해서 살구색으로 표현된 모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살구색의 그래프는 세 가지의 특징적인 표현을 하나로 통합한 것인데, 14세를 기준으로 조화를 이뤄간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프 상의 모습뿐 아니라 14세를 기점으로 아이들 영혼의 활동을 살펴보면 어떤 것이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에는 뭔가 다른 것이 있고, 이제 새로운 영혼의 느낌이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전에는 교사와 부모에게 상당히 많이 매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14세 이후에는 독립적이고 자기 스스로 하려는 영혼으로서 자기만의 공간을 누리길 원합니다. 교사나 부모가 자기 생활을 침범하는 것을 싫어하며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추구합니다. 높고 낮은, 얕고 깊은, 모든 차원에서 자신의 영혼생활을 시도합니다.

 

동시에 신체적으로도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됩니다. 아동기에 보였던 신체구조도 급격히 변화하면서 이제 어른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부모님들께는 아주 슬픈 현실이 되는데, 아이가 이제 막 뭔가를 스스로 하고 조화롭게 되는 듯하더니 완전히 반항하는 적으로 거듭납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가 12살 즈음의 아이로 계속 머물기를 바랄 텐데 우리에게 그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 좌충우돌하는 이유는 그 아이의 영혼이 자유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끊임없이 엄청나게 다가오는 바깥세상을 감정으로 겪으면서 좌충우돌하게 됩니다. 동물의 세계는 이 시기에 발달을 끝내고 아무 문제가 없는데 인간에게는 이 시기부터 뭔가가 다시 시작됩니다. 우리와 가장 가깝다고 느껴지는 동물인 침팬지들은 7살 시점이 되어서 사춘기가 다가옵니다. 그 시점이 되고나서 침팬지는 더 이상 배우고 싶어 하지 않고 더 이상 시도나 실험을 하지 않습니다. 사춘기를 기점으로 모든 동물은 자기 가족을 떠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인간에게는 아직 발달해야 할 기관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재되어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기관이 발달해야 합니다.

 

하나의 선상에 도표로 그려본다면, (도표의 가로선) 신체 발달의 마지막 기간에 자아의 탄생이 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충동(성향)’이라는 것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호랑이는 사춘기가 되기 전에는 가축으로 생각할 정도로 온순한 편입니다. 그러나 사춘기가 지나면 주인을 잡아먹을 것입니다. 이제 충동이 완전히 지배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이렇게 동물은 자기를 지배하는 주인이 충동이지만, 사람은 그것이 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 영혼기관이 태어났고 다시 자신의 주인인 자아가 태어나는 기간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시기 영혼기관의 발달은,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아 사고와 감정과 의지가 제 각각인 상태가 됩니다.

 

수년에 걸쳐 자아의 힘을 사용하고 통제하는 연습을 하며 발달해 가는 과정을 겪습니다. 그 시기에는 자아가 올바로 형성된 어른의 모습이 아이에게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특히 이 시기에 통제되지 않는, 다시 말해 스스로 조율하지 못하는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많고 예전보다 더 커다란 도움이 요청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 정도입니다.

 

첫째 이유는 이 사춘기라는 시기가 너무 일찍 온다는 것입니다. 지난 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사춘기 시기가 점점 앞당겨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영혼기관의 탄생이 훨씬 미숙한 상태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영혼은 전반적으로 세상과의 관계 속에서 전체 삶의 영역을 통시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되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바깥세상에서 자신을 조율하고 통제하는 것을 찾지 못합니다. 이렇게 미약한 상태에서 영혼의 탄생은 이 세상에서 뭔가를 도전하고 배워서 시도하기보다 담배나 컴퓨터에 대한 중독과 집착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하는 경향으로 가게 되고 심하면 자살도 하게 됩니다.

 

만약 문제가 무엇인지 찾기만 한다면 더 단순하게 해결될 텐데 말입니다. 집착을 하든 뭘 하든 한 가지 문제만 있으면 더 쉬울 텐데요, 또 다른 한 가지 문제는 교사나 부모로부터 자신의 영역을 고립시키면서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가 버리게 된다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감각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강렬하고 심각한 현상이 덜 나타났다면 요즘에는 영혼의 어려움이 더 심하게 나타나는데, 이것이 학생들의 언어생활에 잘 나타납니다. 본래는 신진대사의 활동으로 인한 영향이 언어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의지를 통해 발현된 언어구조를 살펴보면 말로써 부정하고 말로써 닫는 것을 넘어서서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이 관점에서 고려해보면 아이들이 왜 이 시기에 말로 거부하고 반항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어른으로서 이해해야 할 것은 아이가 자기 스스로 의지적인 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거부하는 상태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사춘기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그러면서도 다른 각도에서 관찰을 시도해야 합니다.

 

다른 그림을 가져와 보면, 아기가 걷는 연습을 할 때 걷다가 넘어지면 부모님은 어떻게 하십니까? 걷다가 넘어지고 아파하면 부모는 아이를 위로하겠지요? 청소년 시기의 아이들이 영혼의 차원에서 걷기를 배운다면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넌 다 컸는데 이런 상태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해. 넌 대가를 치러야 해!"라고 습관적으로 반응합니다. 습관적으로 벌 줄 게 아니라 도와주고 위로하고 이해해줘야 합니다.

 

아이들에게 자동적으로 이런 것들(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이 기다가 일어나서 걷는 것은 주위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눈에 보이는 현상입니다. 이제는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습니다. 모든 다른 어른들과의 관계 속에서 이런 문제가 일어납니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자신의 상, 자신의 모범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어린 시절의 아기가 배울 때는 부모가 전형이고 모범이죠. 청소년기, 그러니까 영혼의 걸음마를 배우는 시기에는 부모를 떠나 삶의 모범, 전형을 찾으려고 합니다. 집에서는 망나니가 바깥에서는 칭찬을 받습니다. 짧은 시기이긴 하지만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가정이나 다른 나라의 가정에 보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그림을 그려봅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중 멋진 장면이 있습니다. “저 사람은 마치 책에서 나온 것처럼 칼싸움을 한다.” 책에 나온 대로만 하니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어떻게 할지, 내가 미리 다 알 수가 있다는 대목입니다. 우리 자녀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내가 이렇게 해서 이런 행동을 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으면 대응하고 준비하고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점점 우리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공간 안에서 자신을 조절하는 힘을 키워가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열시까지 돌아와야 하는데 계속 열두시까지 온다고 고집하면 아이와 그럼 열두 시까지 자신을 조절할 수 있는 시도를 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전체 발달의 규칙성을 찾아보고 그 과정에서 힘의 변화를 살펴봤습니다. 어떻게 감각적인 것들이 발달하고 성장하여서 학령기에 또 어떻게 발달하고 성장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어린아이 시기에 감각적 발달이 둔화되고 어려움을 겪었다면 나중에 이 부분에 해당하는 영혼의 어려움을 갖게 됩니다. 감각구조가 7세까지 충분히 발달하지 못하면 이후에 어려움을 겪는데, 도덕적인 것이 나와야 할 때 아이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자신을 조절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는다면 문제가 그 시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시기에 부족한 것이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시기에 도덕성이 필요하다면 그 시기 이전에 도덕성의 씨앗을 심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번째 시기에 심어서 키운 싹이 점점 싹을 키우고 성장하여 세 번째 시기에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조절하는 힘, 즉 도덕성이 꽃을 피우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은 큰 그림으로서의 모범, 위인을 통해 도덕성을 심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담임교사 과정을 하면서 저는 아이들이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말이 되면 성탄 이야기를 연극으로 하면서 아이들이 성장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그리스도의 삶, 붓다의 삶의 이야기를 즐겨 들으면서 두 번째 시기에 도덕성을 심어가는 모습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습니다.

 

두 가지에 대해 감사드리고 싶은데, 첫째는 슈타이너입니다. 그는 학문적 영역에서도 혼돈을 겪고 있는 영역을 잘 정리해 주었고 인지학을 창시했으며 발도르프 학교를 세우는 데 정신적 지주가 된 분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오랫동안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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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청소년 아이가 미디어의 세계로 도피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하나요?

 

) 청소년기에는 두 가지 대극점이 있습니다. 여학생은 바깥으로 나가길 원하고 맘대로 행동하며 세상을 향해 열려 있지만 비판적입니다. 수업시간에 웃기만 하고 진지하게 생각을 안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 남학생은 안으로 들어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착되지 않도록 도와줄 필요가 있는데 컴퓨터에 중독되기 더 쉽습니다.

 

세상을 보여주고 안내하고 견인해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종교적으로 참되고 진정한 인간이 되고 싶어 합니다. 물론 이 시기에는 세상과 단절되려는 성향이 있는데 세상으로 안내해주세요. 이런 과정에서 부모는 치유자가 될 필요도 있습니다.

 

 

* 201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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