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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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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칼럼

틱낫한 스님의 입적을 기리며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1. 23. 19:20

틱낫한 스님의 입적을 기리며

 

김훈태 슈타이너사상연구소



존경하는 틱낫한 스님께서 1월 22일 고국인 베트남에서 열반에 드셨다. 스님의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그중 한 권을 직접 번역하기도 하면서 오랫동안 스님에게 깊은 영향을 받아왔다.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신 스님은 평화운동을 절박하게 했지만 평정심을 잃지는 않으셨다. 나는 그것이 늘 놀라웠다. 젊은 시절 이라크 전쟁이나 미군기지이전 문제 때문에 이따금 화를 주체하기 어려웠는데 스님의 법문을 곱씹으며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무엇보다 스님의 말씀은 쉬웠고 깊이 있었다. 연기법과 불이의 가르침을 '더불어 있음(inter-being)'으로 표현하신 스님 덕분에 세계관을 새롭게 정립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는 지금 여기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화살을 맞았다면 그것을 당장 빼고 치료하는 데 집중해야지, '이 화살을 쏜 자는 누구인가? 왜 화살을 쏘았는가? 내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가? 화살에 독이 있지는 않은가? 어떤 독이 있는가? 해독할 방법은 무엇인가?' 이런 식으로 부차적인 일에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다. 그렇게 해서는 두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없다. 부처님은 "첫 번째 화살은 맞더라도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틱낫한 스님은 그 화살을 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나를 겨냥해 날아오는 폭력적인 말과 행동을 받아들여 꽃으로 만들 수 있다. 이해와 자비의 힘으로 그렇게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가르침을 회복적 정의와 연결하고 싶다. "마음을 다쳤을 때 가능한 두 가지 사고방식이 있다. 하나는 우리를 더 화나게 하고 상대에 대한 보복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고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진정시키고 내면의 자비 및 이해와 접촉하여 평화로운 마음을 되찾는 사고방식이다. 후자를 선택할 때 상대방 역시 고통 받고 있음을 볼 수 있고, 그때 우리의 화는 사그라진다." 응보적 정의에서 회복적 정의로 나아갈 때 우리는 평화에 닿을 수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상대방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건, 우리가 세상을 꿰뚫어 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우리 안에 상대가 고통을 그만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을 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와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우리는 그 사람으로 인해 고통 받지 않을 것이고 그에게 고통을 주지도 않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영성일 것이다. 우리가 자기중심성을 극복해낼 때, 그러면서도 합리성을 추구할 때 우리는 영성에 다다를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의 극우주의자들이 걸어가는 주술과 신비주의, 종교의 정치 기득권화는 정신을 오염시키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틱낫한 스님의 청정한 말씀이 더욱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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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불교 지도자이자 평화 운동가이며 교사, 시인으로도 알려진 틱낫한 스님이 지난 22일 베트남에서 입적했다. 법랍 80년, 세수 96세.

틱낫한 스님이 생전에 세운 불교 명상공동체 ‘플럼빌리지’는 이날 오전 1시30분 베트남 중부 도시 후에의 뚜 히에우 사원에서 고인이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2014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스님은 2018년 고국인 베트남으로 돌아가 출가한 곳인 뚜 히에우 사원에 머물렀다.

틱낫한 스님은 민중의 고통을 덜어주는 실천적인 사회 활동인 ‘참여 불교’의 선구자이며 ‘마음챙김(mindfulness)’ 수행법을 널리 알린 세계적 선승이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함께 ‘살아있는 부처’ ‘영적 스승’으로 꼽혔다. 미국의 마틴 루서 킹 목사는 반전 운동을 펼치던 그를 “평화와 비폭력의 사도”로 칭하며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도 했다.

1926년 베트남 중부 지역에서 태어난 스님은 16세에 출가했다. 베트남 여러 수행처에서 불교 혁신 운동을 벌이던 스님은 1961년 프린스턴대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의하기 위해 미국으로 향했다. 이듬해에 컬럼비아대에서 불교 연구를 지속했다. 1963년 베트남으로 귀국해 참여 불교 종파 ‘접현종(接現宗, Order of Interbeing)’을 창립하고 평화운동과 사회활동을 주도했다. 베트남 전쟁이 본격화하자 1966년 반전운동을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난 스님은 킹 목사 등 해외 지도자들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베트남 정부는 이 같은 활동을 문제삼아 스님의 귀국을 금지했고 이후 39년간 망명 생활을 하게 된다.

1973년 프랑스로 망명한 스님은 베트남 난민을 돕는 일에 주력한 한편 1982년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과 함께 프랑스 서남부 지역에 명상 공동체 ‘플럼빌리지(자두마을)’를 세웠다. 고인은 이곳에서 호흡명상을 통해 평화를 얻는 ‘마음챙김’ 수행법을 비롯한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현재도 플럼빌리지에는 200명 이상의 승려가 머물고 있으며 매년 8000명 이상의 방문자들이 찾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TDzFYRa2vA

 

 

https://www.youtube.com/watch?v=Lqzc-48z7u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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