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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1) (2019. 6. 17)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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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1) (2019. 6. 17)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22. 2. 27. 20:04

인지학,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1)

슈타이너사상연구소 김훈태




"발도르프교육의 철학인 인지학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인지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주류학문이 아닌 까닭에 기존 상식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비주류학문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다. 오늘날 통상 '학문'이라고 하면 물질주의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인지학은 물질세계만큼이나 정신세계를 중요하게 다루며 정신세계가 실재함을 강조한다. 주류든 비주류든 현대 학문세계에서 이렇게 정신의 실재를 주장하는 학문은 극소수이고, 대개는 학문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형편이다. 인지학이 신비주의로 오인받는 이유이다.

인지학은 물질주의에 경도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비과학을 따라가지도 않는다. 인지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슈타이너는 일생동안 과학적인 자세를 견지했고, 자신의 인지학 사상을 정신과학(Geisteswissenschaft)이라고 불렀다. 그는 공대생이었다(빈 공과대학에서 물리학, 화학 등 과학을 전공했다). 어릴 적부터 수학과 기하학을 깊이 연구하던 그는 스스로 철저하게 과학적인 훈련을 쌓았다. 물론 철학과 미학, 문학 등에도 폭넓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 당대의 수많은 문인들과 교류한 바 있다.

어린 시절부터 슈타이너는 자신의 영적 능력을 자각했고,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예를 들어, 신비극에 등장하는 펠릭스 발데의 실존 인물인 약초상)의 도움을 받으며 정신수련을 해왔다. 이처럼 독특한 인물인 슈타이너의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다름아닌 현대적 학문, 특히 과학을 통해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일이었다. 정신적 세계에 대한 고려 없이는 올바른 인식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괴테 역시 뉴턴식의 기계론적이고 물질주의적인 인식으로는 자연을 올바로 파악할 수 없다고 보았다. 슈타이너는 감각적 인식뿐 아니라 초감각적 인식, 즉 정신적 눈을 통해 세상을 보아야 온전한 인식이 가능함을 주장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지학을 머리로만 공부할 수 없다. 온갖 종류의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는 헛똑똑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인지학을 공부할수록 머리가 아프다면 그것은 머리로만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공부를 하면 상기(上氣)가 되어서 머리가 뜨겁고 매사에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일관할 수 있다. 영적 유물론, 즉 지식을 머리에 축적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갈 우려도 크다. 당연히 내적 수련이 필요하다. 슈타이너는 당시의 서양인들에게는 호흡을 통한 수련이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한 수련의 전통이 끊긴 지 오래되었고, 잘못된 호흡수련은 몸과 마음을 돌이킬 수 없이 파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차수련> 같은 내적 수련을 제안한 것이다. <부차수련>이나 <고차 세계의 인식으로 가는 길> 또는 <초감각적 세계 인식에 이르는 길> 같은 책은 이미 번역되어 나왔다.

덧붙인다면, 공부는 삶으로 실천하면서 하는 것이 가장 나아 보인다. 슈타이너의 가르침을 일상생활에 적용해 보고, 인지학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고는 명료하게, 감정은 풍부하게, 의지는 확고하게 살아 보는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되 열려 있고, 도그마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 늘 현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태도이다. 과학은 세계관이나 이론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다. 관찰하고 가설을 세우고 적용해 본 뒤 수많은 검증을 통과해야 이론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도 더 나은 이론이 나오면 폐기될 수 있다. 그리고 인지학을 떠나서, 학문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지적 엄밀함과 겸손함을 갖춰야 할 것이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지적 엄밀함뿐 아니라 늘 겸손한 태도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매사에 단정적이고 조급하며 비판을 용납하지 못하겠다면 학자나 교사로서는 준비 자체가 안 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인지학의 학문적 정체성 문제

어떠한 사상이든 그 사상이 태동한 본래 지역에서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때는 온전한 번역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스도교가 팔레스타인 땅을 벗어나 유럽 각지로 전파될 때 예수의 제자들이 벌였던 노력을 생각해 보라. 신라 시대에 한문 번역에 만족하지 못하고 죽음을 각오한 채 인도에 건너가 원전을 연구했던 승려들의 노고도 마찬가지이다. 학문을 하겠다는 사람 중에서 원전 번역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기꾼이거나 자기는 이미 깨달았다고 믿는 식의 망상에 사로잡힌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학문세계에서 탁월한 성취를 내기 위해서는 그 공동체의 기본 토대에서부터 신뢰를 쌓아야 한다. 어디든 진입 장벽이란 것이 있다. 이것은 옥석을 가리기 위한 안전장치이지, 독선과 폐단이 아니다. 최소한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한 분야의 전문가 행세를 하는 일은 부끄러운 짓이다.

물론 역사를 돌아보면 늘 이단은 출몰한다. 중국 청나라 말기에는 홍수전(洪秀全)이라는 인물이 우연히 기독교 전도지를 읽고 스스로 계시를 받았다고 믿었다. 그는 꿈속에서 여호와와 예수에게 검과 도끼를 받았다며, 자신을 예수의 동생이라 칭하고 나름의 기독교국가인 태평천국을 세워 천왕(天王)이 되었다. 말년이 비참했던 홍수전과 달리, 이단이 아닌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여 독특한 사상을 발전시킨 사례도 있다. 일제시대에 평범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박중빈(朴重彬)은 자연과 인생에 대한 의문을 품고 20여 년간 구도수행을 한 끝에 큰 깨달음을 얻고 원불교를 창시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근원으로 표방하지만 유학, 도교, 동학, 증산교, 기독교 등의 영향을 두루 받았고, 이 모든 가르침이 결국 하나로 통한다(一圓相)고 보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보통 홍수전 같은 인물이 많은 편이다.

발도르프교육 100주년 기념행사가 많은 해이다. 기념강연도 많고 외국에서 초청되어 오는 분들도 많다. 그러나 한국의 인지학 사회는 무엇보다 우리의 학문적 기반이 튼튼한지 돌아보는 일이 중요해 보인다. 철학이나 과학 같은 기초 학문의 발전 없이 덜렁 인지학만을 수용한 상황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루돌프 슈타이너라는 인물이 누구이고, 그는 어떻게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켰는지, 인지학의 바탕에 어떤 철학과 과학 사조가 영향을 끼쳤는지 등에 대해 조명하고 공부하는 것이 먼저 아닐까? 3.1운동도 100주년이고 임시정부 수립도 100주년이지만 우리가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것은 루돌프 슈타이너와 인지학이다. 아직 토대도 건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체적 수용'이라는 미명 아래 동양학이나 동양종교 등과 통융합하는 작업을 거침없이 벌인다면, 그 정체성이 심각하게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2019.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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