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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너사상연구소 : 평화의 춤

<회복적 정의와 교육> '프롤로그 : 스피릿베어' 본문

회복적 정의+비폭력 대화

<회복적 정의와 교육> '프롤로그 : 스피릿베어'

슈타이너사상연구소 2016. 10. 3. 09:48

프롤로그 : 스피릿베어



내가 『스피릿베어』를 처음 읽은 것은 폭력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던 한 발도르프 학교에 다녀온 뒤였다. 학교폭력 문제를 회복적 정의의 방식으로 풀어가기 위한 모임에서 이 책을 소개받았고, 다음 날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원제는 ‘Touching Spirit Bear’였다. 저자인 벤 마이켈슨Ben Mikaelsen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는데, 350킬로그램의 검은 곰과 함께 산다는 소개가 이색적이었다. 그는 스피릿베어가 브리티시컬럼비아 연안에 실제로 산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던 중 135킬로그램이나 되는 스피릿베어 수컷이 근처에 다가왔던 일을 황홀하게 회상하며 후기에 남겼다.


이야기는 우리에게 생소한 ‘원형 평결 심사Circle Justice’를 소개한다. 주인공 콜 매슈스는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아들이 정신을 잃을 때까지 때리곤 하지만 사회적으로는 훌륭한 직업을 가진 평판 좋은 가장이다. 그런 아버지와 최근에 이혼한 어머니는 콜의 표현대로 ‘겁에 질린 바비 인형’ 같은 존재였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무기력한 어머니, 그리고 콜은 남들 눈에는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부유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첫 장의 소제목이 ‘문제아 콜 매슈스’이다. “콜 매슈스는 고개를 꼿꼿이 쳐든 채 차디찬 9월의 바람을 맞받으며 뱃머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예상대로 콜이 얼마나 문제아인지 묘사하는 데에 집중한다.


철물점에 몰래 기어들어가 난동을 벌이고 나온 콜은 의기양양하게 범죄사실을 떠들어댄다. 친구들 모두 침묵하는 와중에 이 사실을 경찰에 신고한 피터는 콜에게 무자비한 폭행을 당한다. 이로 인해 콜은 소년원에 수감된 뒤 성인법정에서의 재판을 기다린다. ‘병신들! 아예 눈앞에서 싹 꺼져 버렸으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는 부모를 떠올리며 콜이 내지르는 탄성이다. 이 아이는 내면이 얼마나 망가져 버린 걸까. 콜은 면회 온 부모에게 내뱉는다. “내 앞에 두 번 다시 그 더러운 낯짝 들이밀지 말아요.” 관례대로라면 징역형을 받고 감방 신세를 지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 보호관찰관 가비가 등장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인 가비는 원형 평결 심사를 받도록 콜을 설득하고, 오로지 감옥에 가지 않기 위해 콜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헌신적인 가비를 한껏 비웃으면서.


여기까지가 이 이야기의 도입부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원형 평결 심사란 무엇인가? 가비는 말한다. “수백 년 동안 원주민들이 시행해 온 재판 방식이야. 치유가 목적이지.” 치유? 설명을 더 들어보자. “원형 평결 심사는 처벌이 아니라 치유가 목적이야. … 처벌이 아닌 치유를 통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거야. 네가 만약 내 고양이를 죽였다면 너는 다른 동물들을 더 사랑해야 하는 거야. 너와 내가 서로 마음을 열고, 나는 너에 대한 분노를 삭이고 너를 용서하는 거지. 그게 바로 원형 평결 심사란다. 지역 주민을 포함해서 누구나 치유과정에 동참할 수 있어.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지만 치유한다는 건 웬만한 처벌보다 훨씬 힘든 일이란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책임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거든.”


상투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가비의 설명은 치유의 중요성과 함께 치유의 어려움을 얘기한 것인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는 오만한 콜이 과연 마음을 돌려먹고 치유의 길을 걸을 것인가를 의심하게 만든다. 삐뚤어진 아이답게 콜은 원형 평결 심사를 대놓고 무시하며 처벌을 면하기 위해 쇼를 벌일 작정이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고, 피해자든 부모든 다 귀찮고 짜증나는 인간들로 치부하는 가해자에게 가혹한 처벌 말고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다행히 콜은 원형 평결 심사를 통해 감옥행을 면하게 된다. 그 대신 알래스카의 외딴 섬에서 홀로 1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의 콜은 외딴 섬에 도착하자마자 오두막과 함께 식량, 땔감, 1년 치 과제물을 모두 불태우고 만다. 그리고 그 길로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어 탈출을 감행한다.


원형 평결 심사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한 방법으로 그 뿌리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전통문화에 있다. 원주민들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들만의 독특한 재판 방식으로 범죄를 다루었다. 가해자와 피해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공동체의 원로들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범죄는 근본적으로 관계가 파괴된 것으로 보고 공동체의 관계를 회복하려 했다. 인디언 속담에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오랫동안 걸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게 있다.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는 일이 위험하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의 이야기를 함께 듣는 방식의 재판이 발달해 온 것이다.


“내 뒤에서 걷지 말라. 난 그대를 이끌고 싶지 않다.

내 앞에서 걷지 말라. 난 그대를 따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옆에서 걸으라. 우리가 하나가 될 수 있도록.”[각주:1]


원형 평결 심사는 화합 평의회라 불리는 예비 모임이 있고, 토의 주제와 참가자에 따라 토론 평의회, 조정 평의회, 지역 평의회 등이 열린다. 모든 모임은 최종적으로, 보증금을 납부하는 조건으로 가해자의 구속을 멈추고 석방시킬 것인지를 다루는 보석 평의회와 가해자에게 처벌 대신 어떤 활동을 시킬 것인지를 결정하는 판결 평의회로 마무리된다. 콜에게 내려진 1년의 유배는 최종 판결이 아니었다.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감옥이 아니면 어디든 좋으니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라도 보내달라는 콜의 간절한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보호관찰관 가비가 거들긴 했지만 콜이 요구한 것이었고,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판결을 1년 유예시켜준 것이다.


섬을 탈출하려 했던 콜의 계획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만다. 밀물 때라는 걸 알지 못한 콜은 해안으로 떠밀려온다. 다시 탈출하기 위해 물 때를 살피던 콜에게 스피릿베어가 나타나고, 콜은 이 새하얀 곰에게도 적의를 드러낸다. 무심한 듯 고요한 눈으로 콜을 바라보던 곰은 콜의 급작스러운 공격에 맹수의 모습을 드러낸다. 콜의 다리와 팔을 이빨로 물어 부러뜨린 다음 가슴을 거칠게 할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갈비뼈를 모조리 으스러뜨린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콜은 끝까지 살아남고자 애쓴다. 곰의 습격을 당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한 채, 성한 팔이 닿는 곳의 풀을 한 웅큼 뜯어 삼키고 지렁이와 들쥐를 씹어 넘기며 어떻게든 살아내려고 한다. 시간이 지난 뒤 불쌍한 이 열다섯 살짜리 소년에게 스피릿베어는 다시금 몸을 드러내고 새하얀 털을 만지게 한다. 두려움 속에서 곰의 가슴을 어루만지던 콜은 따뜻함과 함께 뜻밖에 ‘믿음’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느낀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천만다행으로 구조된 콜은 여섯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고 다시 섬으로 돌아간다. 물론 섬으로 돌아가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사람들은 섬을 탈출하려고 했던 콜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다시 원형 평결 심사가 열리고 몇 차례의 진통 끝에 보호관찰관 가비와 알래스카에서 콜을 외딴 섬까지 태워 주었던 인디언 노인 에드윈이 후견인으로 나서면서 가까스로 섬에 돌아갈 수 있었다. 두 어른에게 자신의 변화를 설명하면서 콜은 이렇게 말한다. “저는 곰한테 공격을 받고 이제 죽는구나 싶었어요. 꼭 풀 나부랭이가 된 기분이었거든요. 하찮기 짝이 없다고나 할까. 저는 제가 왜 존재하는지조차 몰랐어요. 그냥 죽는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웠어요.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으시겠지만, 죽어가는 그 순간 제가 얼마나 무의미한 삶을 살아왔는지를 문득 깨달았어요. 아무도 저를 믿어 주지 않았어요. 그때까지 저는 누구를 사랑한 적도 없고 저를 진정으로 사랑해 준 사람도 없었어요.”


처음과 달리 가비와 에드윈은 섬까지 동행해 오두막을 새로 지을 때까지 콜과 함께 머무른다. 콜은 혼자 오두막을 지어야 했고, 매번 음식을 요리해 가비와 에드윈을 대접해야 했다. 대신 그들에게 가슴속 깊이 박힌 분노를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배운다. 고된 노동과 소박한 축제, 동물을 흉내 낸 춤과 명상하는 법을 통해. 스피릿베어를 만난 뒤로 달라진 콜의 마음은 차츰 자기 자신을 직시하고 분노가 어디에서 왔는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비폭력대화 훈련에서 자주 사용하는 쟈칼 인형 안의 작은 기린 인형처럼 콜은 자신의 분노가 한 인간으로 존중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나왔음을 깨닫는다. 채워지지 못한 욕구에서 좌절감과 분노가 자랐고, 어느 순간 자신이 누구인지는 잊은 채 그 감정들에 빠져 생활한 것이다. 콜은 동물 춤을 추면서 자기 자신을 본다. 자기의 본질인 내면의 빛을. 내면의 빛을 발견하고 희열감을 느낀 콜은 진심으로 피터에게 사죄하고자 하는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자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 시도를 벌인 피해자 피터 역시 이 섬에 들어온다.


피터가 콜을 용서하고 서로 화해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화해나 용서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강요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치유를 위해서는 화해와 용서가 필요할 테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불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초점이 되어야 할 것은 폭력으로 인해 훼손된 자아의 회복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벌어진 사건에 정면으로 맞서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피터의 아버지는 깊은 고민 끝에 아들을 섬에 데리고 온 뒤 콜에게 따로 이야기를 한다. “피터를 여기에 두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단다. 다른 길이 있다면, 지금처럼 싫다는 애를 억지로 여기에 데려오지도 않았을 거야. 그 애가 두 번째 자살을 시도한 후에, 피터가 너랑 당당하게 맞서지 않으면 두고두고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게 될 거라고 가비 씨가 우리를 설득했단다.” 회복적 정의는 낭만적이거나 유토피아적인 방식이 아니다. 만병통치약도 아니다. 자아의 회복과 관계의 회복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본질적인 방식이지만 무엇보다 실질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기에 주목하는 것이다.


회복적 정의가 근대 북미 사회의 사법제도에 도입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1장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그것은 1974년 캐나다 엘마이라Elmira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과 그 사건을 대안적으로 다루었던 사법 사례에서 기인한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두 청년이 마을에 들어와 닥치는 대로 기물을 파손했다. 자동차의 타이어를 칼로 찢고, 울타리를 망가뜨렸으며, 유리창을 깨트렸다. 스물두 가정에 엄청난 피해를 끼친 두 청년은 다음 날 아침 체포되었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 기독교 평화교단 중 하나인 메노나이트의 교도이자 이 청년들의 보호관찰관이었던 마크 얀치는 판사에게 새로운, 그러나 오래된 방식의 제안을 한다. 가해자들이 피해자들을 일일이 만나서 사과를 하고 보상을 하여 합의해 나가는 방식 말이다. 훗날 ‘피해자 가해자 대화모임Victim Offender Conferencing’의 시초가 되는 이 사건은 회복적 정의 운동의 출발점이라고 불린다. 이후 캐나다 전역에 회복적 정의의 개념이 알려졌고, 미국과 유럽에도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에서 스피릿베어란 무엇일까? 스피릿베어의 존재는 신비롭기만 하다. 책에서도 자세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다. 오직 인디언 노인 에드윈의 몇 마디 말로 소개되고 만다. “저 너머 브리티시컬럼비아 연안에 스피릿베어라는, 유독 사나운 곰들이 있어. 눈부시게 하얀 곰인데, 긍지와 위엄과 영예를 상징한단다. 웬만한 사람보다 낫지.” 이 말을 들은 콜은 곰이 눈에 띄면 죽여 버리겠노라고 응수한다. 이에 대한 노인의 대답에 스피릿베어가 어떤 존재인지 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그 동물한테 무슨 짓을 하건, 그건 바로 너 자신한테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걸 명심해.” 그렇다면 스피릿베어는 말 그대로 영적(spiritual) 존재인 걸까?[각주:2] 이야기 속에서 스피릿베어는 콜의 내면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때마다 등장하곤 한다.


스피릿베어의 영성은 북아메리카 특유의 토테미즘에 연원한다. 에드윈은 섬에서 콜에게 춤을 가르쳐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는 온갖 힘이 넘쳐흐른단다. 고래, 곰, 늑대, 독수리 같은 힘센 동물들이 있지. 태양, 달, 계절 같은 자연의 힘이 있고, 행복과 분노처럼 우리 안에 깃들어 있는 힘도 있단다. 우리는 이 모든 힘을 느끼고 춤으로 표현할 수 있어. 힘을 지닌 모든 것으로부터 수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섬에 처음 갔을 때 가비는 콜에게 파랑과 빨강 실로 토템 기둥의 무늬를 수놓은 ‘엣투’라는 담요를 주며, 나중에 콜은 피터와 함께 통나무에 동물을 조각해서 자기만의 토템 기둥을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들이 단순히 주술적인 사고나 동물숭배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원형 평결 심사 또는 회복적 정의가 그렇듯 이제는 잊혀진 과거의 지혜를 지금 이곳에 되살리려는 노력이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장에도 수많은 콜과 피터가 길을 찾지 못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폭력적인 괴롭힘과 따돌림으로 인해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치닫는 일이 늘었다. 심각한 폭력사례들이 증가하고 있을 뿐더러, 학교폭력의 주체도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급속하게 이동 중이고, 초등학교 5·6학년까지 저연령화되는 등 매우 우려되는 모습이다. 학교폭력의 피해자들이 담임교사나 학교에 피해를 신고한다 하더라도 학교당국에서 적극적으로 피해학생에 대한 보호조치를 취해 주지 않는 사례는 흔하다. 대체로 학교폭력의 발생사실을 숨기고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피해자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형사고소를 제기하는 등 피해학생과 가해학생 및 그 학부모와의 갈등의 골이 깊어져 화해나 조정 등 원만한 문제해결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은 대안학교나 혁신학교도 마찬가지이다.

  1. 인디언 유트족의 속담. [본문으로]
  2. 영적 동물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과 스피릿베어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조나단이 부단한 노력을 통해 스스로 영적 경지에 오른 존재라면, 스피릿베어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지만 그 자체로 신성한 자연을 상징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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